전체 글 101

69. 다시 본사로

동해안은 아름다웠다. 머나먼 교통오지에 서울에 가족을 두고 홀아비생활을 하긴 했지만 울진은 내가 30년간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그러나 울진에 그리 오래 있지 못 하였다. 1년이 지나자 본사 원자력건설처에서 나를 또다시 콕 집어 본사로 발령을 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름다운 동해, 죽변 바닷가, 그 동안 정들었던 직원들과 교회식구들을 뒤로 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1993년 겨울이었다. 나를 콕 집은 분은 전에 나의 상사 기술부장으로 영광 3,4호기 주기기를 담당하다가 승격하여 울진 3,4호기 담당역, Project Manager(PM)가 된 이J 씨, 나중에 한수원 사장이 되신 분이다. 나는 그 분을 보좌하고 울진 3,4호기 건설공사 전체를 총괄하는 공사운영3부장으로 발령 받..

68. 억울한 원자력은 오늘도 말이 없다

1993년, 내가 울진 3,4호기 건설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던 때 있었던 일 한 가지를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은 회사가 “2001년 대화”라는 이름으로 전 사원들로부터 미래의 한국전력 경영에 관한 제안을 모집한 일이었다. 바야흐로 눈앞에 다가오는 2000년 뉴밀레니엄 시대를 앞두고 중지(衆智)를 모아 한국전력이 나아갈 바를 모색한다는 취지였다. 나는 공릉동 원수원에 입소하여 신임부장 교육을 받을 때 분임토의에서 발표했던 내용에 회사의 경영지표 자료들을 좀 더 보완하여 “원자력건설실무자가 본 전력원가절감 및 경영개선방향”이라는 제목으로 응모하였다. 그 제안서에서 나는 한국전력의 전력원가를 분석하고 원자력이 한국전력의 경영에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폭증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하..

67. 머나먼 울진원자력

1992년 내가 부장으로 승진한 그 해에 우리 가족은 자양동 주택조합이 건축한 아파트에 입주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입주한 강변아파트는 잠실대교 바로 옆 강변에 자리 잡은 12층짜리 두 동, 모두 25평형 국민주택 사이즈로 200 세대 쯤 되었는데 우리 집은 뒷동 11층, 1104호였다. 앞동에 절반 쯤 가려졌지만 그래도 오른편으로 한강과 잠실운동장과 영동대교 쪽으로 좀 트여져 있어 제법 시원한 조망과 근사한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조그만 방이지만 방도 3개 있었고 거실과 부엌, 그리고 화장실과 욕실이 딸려있었다. 아파트 입주 때 잔금은 고덕동 아파트를 판 돈으로 충당이 되었고 좀 남은 돈으로 가죽소파와 침대를 구입하여 구색을 갖출 수 있었다. 나와 아내는 교회 식구들을 불러다 저녁대접을 하고 집 구경을 ..

66. 과장 12년 만의 부장승진

1992년, 어느덧 내 나이도 마흔 두 살이 되었다. 원자력 초창기에 원자력에 자리 잡은 선배님들은 30대에 과장, 부장을 거쳐 처장의 자리에까지 초스피드로 승진하기도 하였지만 우리는 그 분들 보다 5년, 10년 늦게 태어나 늦게 입사한 죄로 앞을 꽉 채운 똥차(?)들에 가로막혀 도무지 승진이 되지를 않았다. 회사는 역시 공돌이 기술직 보다는 펜대 사무직이어야 했다. 사무직은 그래도 승진이 좀 되었다. 회사의 전체 인원수는 기술직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상위직급으로 올라갈수록 사무직 자리가 더 많아졌다. 그리고 기술직, 특히 원자력에서는 수많은 어려운 일들을 헤쳐 나가고 자신의 기술과 능력으로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만이 최선이었고 그래서 승진을 위하여 윗사람에게 아부하고 잘 보이려는 게 거의 없었다. ..

65. 나를 찾아오신 주님

만주에서 고모님이 오시고,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것 말고도 내게 또 다른 큰 어려움이 닥쳤었는데 그것은 자양동주택조합에 가입하여 내 집 마련을 하려던 내게 1가구 2주택이라는 이유로 주택조합원 자격이 박탈된 사건이었다. 고덕동에 분양받은 18평 아파트에다 고향의 아버지께서 지은 집을 내 앞으로 등기를 해놓은 까닭이었다. 아내는 그 무렵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였다. 아내의 초등학교 동창생이 결혼하여 서울에 와서 살았는데 그 남편이 잘 다니던 회사를 돌연 그만 두고 대전 침례신학대학을 마친 다음 자곡동에 조그만 개척교회를 시작하였다는 것이었다. 어릴 때 잠시 교회에 나갔던 아내는 그 동안 교회에 나가지 않다가 이제 친구가 개척교회를 시작하였으니 거기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 대한민국의 헌법에..

64. 슬픈 내 아버지

1988년 봄 서울 본사로 발령 받아 삼성동 AID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나는 그 해 열리는 올림픽 구경을 좀 하겠거니 내심 기대하였지만 밤늦게 퇴근하여 TV로 올림픽 뉴스나 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회사일로 바빠 시간도 낼 수 없었지만 표를 구하는 것도 언감생심이었다. 딱 한 번 아내와 두 아이를 올림픽경기장 수영장에 데리고 가서 수구 예선경기를 보았다. 88 올림픽은 그렇게 끝났다. 영광원자력에 있을 때는 안동이 그토록 멀었지만 서울로 오니 안동이 좀 가까워졌다. 그러나 200 킬로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였지만 길이 막히지 않아도 다섯 시간은 족히 걸렸다. 서울에서 국도로 하남, 장호원, 이천, 충주, 수안보를 지나고 구불구불 이화령 고개를 넘고 다시 문경, 점촌, 예천을 지나 안동까지 가는 길은 멀고..

90. 한전 분할과 탈원전 재앙

한 사람이 역사를 뒤바꾼 일이 얼마나 많은가? 세종대왕이 없었다면 한글이 어찌 있을 것이며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만 이 나라와 민족이 어찌 되었을까? 이승만 대통령이 없었다면 자유대한민국이 어찌 존재할 수 있었을 것이며 박정희 대통령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이 번영이 어찌 가능했을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단 한 사람으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다. 그런데 좋은 일도 한 사람으로 되지만 나쁜 일도 한 사람으로 인하여 생긴다. 역사적으로도 한 사람으로 인해 재앙이 닥치고 나라가 멸망하는 일이 또한 얼마나 많았던가? 내가 30년 청춘을 바친 한국전력도 그렇다. 한국전력은 1961년 박정희 군사혁명정부가 전광석화 같이 민간주식을 사들이고 조선전업, 경성전기, 남선전기 등 민간삼사를 통합하여 1961년 7월 1..

카테고리 없음 2023.01.31

63. 군축교 참사

1969년 1월 23일, 우리는 대구공고를 졸업했다. 기계과, 전기과, 화학과, 토목과, 건축과, 방직과, 자동차과, 이렇게 일곱 과 520여명이 졸업하는 졸업식은 우리 기계과 교실 앞에 있는 함석판으로 지붕만 씌워놓은 어설픈 강당에서 치러졌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대구로 내려오셔서 내게 꽃다발을 안겨주고 색종이 테이프를 어깨에 감아 주면서 축하해 주셨고 흑백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우리 기술전공부 졸업생 32명은 이날 저녁, 대구시내 서성로의 한 중국집에 모여 짜장면과 배갈로 졸업자축 저녁식사를 하고나서 홀어머니가 동인동 로타리에서 옷가게를 하시는 태석이네 집에 몰려가서 막걸리를 마시며 웃다가 울다가 부둥켜안고 노래를 부르며 밤을 새웠다. 나를 포함하여 한전에 들어가게 된 다섯 놈은 행복한 놈들이었다..

62. 원자로격납건물 천장 크레인

원자력발전소에는 둥그렇고 거대한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있다. 원자로계통 설비들이 들어있는 원자로격납건물이다. 이 건물이 원전의 핵심이요 상징이다. 팔뚝만큼 굵은 철근들이 빼곡하게 들어가고 고강도 콘크리트가 타설된 두께 1.2미터에 달하는 이 건물벽체는 팬텀기가 충돌하여도 팬텀기가 증발해 사라져버릴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견고한 건물이다. 게다가 벽체 안에는 팔뚝보다 더 굵은 강철와이어로프들 백 수십 가닥이 건물 전체를 꽁꽁 싸매고 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이 개시되고 얼마 후인 3월초, 러시아군은 자포리자 원전을 포격하였는데 원전 핵심시설을 포격하지는 않고 주변설비와 시설들을 공격하였다. 만일 원자로격납건물을 직접 포격하였다면 원자로격납건물이 파괴되었을까? 자포리자 원전의 격납건물..

61. 월화수목금금금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167번지 한국전력공사 사옥, 아담한 20층짜리 건물은 맞은 편 54층짜리 무역회관 건물이 워낙 높아 좀 찌그러들긴 했지만 소나무와 대나무, 잔디밭, 한전인상 청동조각상, 인공폭포와 인공조형물들로 제법 운치 있는 정원을 갖추고 자태를 자랑하고 있는 이 건물은 밤늦도록 불이 꺼질 줄 모르는 건물이다. 한전이 전기 만드는 회사라 전기 하나는 풍족하게 쓴다는 걸 보여주려고 켜놓은 건 아니었다. 한전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보안(保安)이다. 북한과의 대치상황에서 철통같은 방위태세는 국군장병만의 것은 아니다. 모든 직원은 퇴근할 때 책상 위의 모든 서류를 종이 한 장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치워 캐비닛에 집어넣어 잠그고 쓰레기통의 휴지조각까지 말끔하게 치우고, 전등과 컴퓨터 등 모든 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