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뉴욕사무소 11

82. 준비된 대통령과 무법시대, 그리고 눈물의 한시퇴직

그랬다. 그것은 IMF 경제위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뉴욕사무소에 나가있는 동안에는 골프 치러 다니느라 크게 못 느꼈지만 한국전력은 오랜 세월 박봉의 회사였던 것이다. 돌아보면 1969년 내가 한전에 입사하던 그 때, 열아홉 살짜리 고졸 신입사원이 2만원 넘는 월급을 받던 그 때가 유일하게 ‘반짝’ 좋은 때가 아니었다 싶다. 그러나 그 때부터 이미 한전의 봉급은 치솟는 물가에 짓눌리고 끌려가기 시작하였고 30년 회사생활을 해오면서 쪼들리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명백히 30년의 착취였다. 회사생할을 그렇게 하고도 전세 아파트 얻을 돈이 없어 부모님 신세를 져야 했고 전세금을 올려주지 못 해 이리저리 이사 다니고 아이들 학원비도 없었던 세월, 그리고 이제 뉴욕사무소를 떠나 뉴저지에 가족을 두고..

8. 뉴욕사무소 2023.04.02

81. 술 안 마시는 예수쟁이 부장

꼭 10년 만에 다시 온 영광원자력은 옛날 영광 1,2호기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본부 전체를 관장하고 대표하는 본부장, 영광 1,2호기를 운전하는 제1발전소의 소장, 영광 3,4호기를 운전하는 제2발전소의 소장, 영광 5,6호기를 건설 중인 건설소의 소장, 이렇게 최고위 1직급 간부만도 네 분, 2직급 부소장이 각각 둘씩 여섯 분에다 실장이 세 분, 그리고 본부, 제1발전소, 제2발전소, 건설소별로 각각 부장급이 열 명씩이 넘어 부장들만 50 여명 되는 것 같았고 과장들 250 여명, 직원들 일천여명이 되어 전체인원은 일천 이삼백 명은 되지 않았나 싶다. 내가 발령받은 보직은 본부장 직속 품질관리2부장이었는데 건설중인 영광 5,6호기 품질관리업무를 담당하는 자리였다. 이미 준공되어 가동중인 발전소..

8. 뉴욕사무소 2023.04.01

80. 영주권신청, 그리고 단신귀국

1996년 연말 무렵이 되자 뉴욕사무소에도 인사고과와 승진을 둘러싼 바람이 불었다. 부장승격심사를 앞두고 본사에서는 갑자기 승격심사의 방식을 바꾸었다. 전에는 인사고과를 비밀로 하여 본사로 보냈는데 이번에는 인사고과와 함께 승격심사대상자들에 대한 순위를 매기도록 변경이 된 것이었다. 그 갑작스러운 부장승격심사제도의 변경으로 우리 뉴욕사무소에서도 적지 않은 혼란과 갈등이 있었다. 그리고 지사장의 부장들에 대한 인사고과도 이루어졌다. 지사장이 부장들에게 매긴 인사고과를 박 부장이 보았는지 지사장이 내게 매긴 인사고과는 최하점수이고 아마도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내가 승격심사에조차 들어가지 못 할 것이라고 넌지시 말해 주었다. 나는 이미 지사장이 그럴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지도 않았다. 한국에서 아버지가..

8. 뉴욕사무소 2023.03.30

79. 베스페이지 골프장

뉴욕사무소는 주말에는 열심히 골프 치고 주중에는 열심히 일했다. 주중에 우리 기술부 부장, 과장들은 미국업체들을 방문하여 제작진도 확인과 제작중간검사, 출하검사를 하느라 출장 가는 때가 많았고 사무부장과 과장들은 주로 사무실을 지키는 날이 많았다. 지사장도 주중에 바쁘게 움직였다. 코참(KOCHAM: 한국지상사협회) 모임에도 나가야 했고 한국에서 온 고위공무원이나 본사에서 온 높은 분들을 만나야 했고 더러는 국제회의 참석을 위하여 워싱턴 DC, 서부나 남부의 대도시에도 가야 했다. 그러다 보니 지사장은 주중에도 높은 분들과 운동을 하는 때가 자주 있는 듯 했다. 물론 우리 쫄따구들이 찾아다니는 그린피 저렴한 퍼블릭 골프장이 아닌 프라이빗 골프장과 유명골프장이었다. 지사장은 유명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경험을..

8. 뉴욕사무소 2023.03.29

78. 뉴욕지사 골프부대

1996년이었다. 아직 50이 채 못 된 소장, 아니 사무소장으로 부임하여 사무소를 지사로 만들어 지사장으로 승격한 지사장은 아직 젊었고 패기가 넘쳤고 키도 크고 체구도 당당하였다. 육사 4년을 다 마치고 소위임관을 하루 앞둔 전날 밤 들뜬 생도들이 시내로 나가 모임을 갖고 술을 마셨는데 사관학교 학칙 위반이 된 이 사건으로 소위임관을 못 하고 퇴교 당했다고, 동기들은 군대에서 장성급인데 자신은 한전에서 요 모양으로 살고 있다고 억울해 했다. 하긴 억울할 만도 했다. 임관만 했더라면 지금쯤 사단장, 최소한 여단장은 되어서 황금색 별 박힌 빨간 표지판 달린 검은 차를 타고 흰 장갑 낀 헌병들이 우렁찬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를 붙이는 위병소를 통과하여 위엄 넘치는 사단본부에서 폼 잡았을 텐데 겨우 스무 명 남..

8. 뉴욕사무소 2023.03.28

77. 청기와장수 소장 떠나고 육사출신 소장 부임

청기와장수 소장님이 클리블랜드에서 주책을 부리신 그 사건을 나는 회사를 떠나는 날까지 입 밖에 낸 적 없이 철저히 비밀에 붙였다. 청기와장수 소장님도 그 일 말고는 나를 힘들게 한 적은 별로 없었다. 여전히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할 때면 그놈의 Dewars 양주를 주문해서 드시고 술 안 마시는 나를 운전기사로 활용한 것 말고는. 80년대, 90년대에 열 몇 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준공시켜 가동한 덕분에 한국전력은 전기요금을 거꾸로 내렸고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전력요금이 싼 나라가 되었고 전 세계 전력산업계는 한국전력의 눈부신 실적과 성장에 주목하였다. 한국전력은 국유재산법 때문에 주식을 양도하거나 매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채권을 발행하는 방법으로 뉴욕증시에 진출하였다. 최고의 전력회사에 수여하는 에디슨대상..

8. 뉴욕사무소 2023.03.27

76. 미국 이민사회와 주재원사회

앞서 이야기한 대로 1995년 4월 1일 우리가 미국에 도착한 날은 토요일이었고 우리 가족은 살림살이와 가재도구를 사느라 쉬지도 못 하였는데 다음날인 일요일에 우리 가족이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온 가족이 늦잠을 자고 교회에도 가지 못 했던 것 같다. 그 다음 주에는 이웃에 살던 부하 과장댁이 알려준 주소로 교회를 찾아 나섰다. 잉글우드라는 동네였는데 이리저리 헤매다가 그 교회는 찾지 못 하고 시간은 11시가 다 되었는데 마침 한 교회의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표지판을 따라 가니 제법 큰 교회 하나가 있었고 우리는 교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 교회로 들어갔다. 그런데 교회의 분위기가 어쩐지 좀 이상했다. 교인들은 젊은 사람들이 많았고 앞에서 근사하게 흰 옷을 입은 한 여자의 인도에 ..

8. 뉴욕사무소 2023.03.25

75. 미국 탈원전의 어두운 그림자

1995년 4월부터 1998년 4월까지 3년간 뉴욕사무소에서 기술부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회사를 위하여 내가 한 일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 회사생활 30년 가운데 일은 가장 적게 하고 혜택은 가장 많이 누린 시기였던 셈이다. 1995년 당시만 해도 누가 뭐래도 해외주재원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가족과 함께 누리는 3년의 해외생활은 특혜였다. 뉴욕사무소의 업무는 크게 힘들거나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영광 3,4호기와 울진 3,4호기에 공급되는 기자재를 제작하는 많은 미국업체들이 있었지만 과장들이 분담을 하여 제작진도를 점검하고 품질검사를 하였고 그저 미국업체들이 납품만 제대로 해 주기만 하면 만사형통이었고 우리는 그저 주말에 골프만 열심히 치면 되었다. 제작공장을 방문할 때도 몇 시간을 운전해서 가거나 비행..

8. 뉴욕사무소 2023.03.24

74. 골프 치는 아빠와 여름가족여행

뉴욕사무소 주재원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 하나가 골프였다. 1995년, 아직 한국에는 골프장이 열 개도 안 되었고 골프는 일반인들이 좀체 하기 어려운 귀족운동이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주재하는 3년 동안 골프를 열심히 치는 것이 돈 버는 거라 하여 부장과 과장들이 전부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골프를 치러 다니는 것이 불문율, 아니 의무사항이 되어 있었다. 나는 과장들의 추천에 따라 1,100불짜리 캘러웨이 아이언세트, 거의 300불짜리 드라이버, 150불인지 200불짜리 우드 두 개, 그리고 골프백, 골프공, 장갑, 모자, 티셔츠, 그리고 손으로 끌고 다니는 카트까지 도합 이천 불 가까이의 거금을 들여 골프장비를 구입하고 골프연습장에 가서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하였다. 두어 주 레슨과 연습을 거친 다음..

8. 뉴욕사무소 2023.03.23

73. 청기와장수 소장님과 김치찌개 사건

뉴욕사무소의 업무는 기자재구매업무와 해외업체상대를 해온 내게 그리 어렵거나 무거운 일들은 아니었다. 기술부서의 과장들은 미국 업체들의 공장에서 제작, 공급되는 영광 3,4호기와 울진 3,4호기 건설용 기자재와 보조기기들의 제작진도를 점검하고 독려하여 늦지 않게 납품되도록 하는 일, 그리고 제작과정에서, 그리고 제작완료 때 공장을 방문하여 품질검사를 하고 출하승인을 하는 일이 주업무였고, 사무부서 과장들은 미국업체들이 제작된 물품을 미국수출항에 운송하여 대한통운에 인도하면 기자재 납품대가를 지불하는 업무, 대한통운의 운송대가를 지불하는 업무, 그리고 경영정보 수집이라 하여 미국에서 발간되는 전력관계 잡지와 뉴스를 발췌, 번역하여 본사로 보내는 일들을 하였다. 사실 사무직들이 하는 대가지급업무나 경영정보수집..

8. 뉴욕사무소 2023.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