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화력 7

30. 단칸방 전세살이

내가 영월화력을 떠나 부산화력으로 간 해가 1970년이었고 그 부산화력에서 운전교대근무를 하면서 학교를 마치고 군대에 다녀오고 결혼을 하고 부산을 떠나 본사 원자력건설부로 간 해가 1979년이었으니 나는 70년대를 온전히, 나의 이십대를 온전히 부산화력에서 보낸 셈이다. 당시엔 아직 송도가 변두리였는데 감천은 송도에서 높은 고개를 넘어서 가는 외곽 시골동네였다. 16번 입석버스와 17번 좌석버스가 감천-괴정-대티고개-서대신동 구덕운동장으로 다녔고, 또 같은 번호의 버스가 반대방향으로 감천-송도-산복도로-충무동-서대신동 구덕운동장으로 순환운행하였다. 버스가 서대신동 구덕운동장에서 대티고개를 넘으면 괴정동 인분종말처리장에서 풍겨나오는 구수한 인분향기(?)가 버스를 온통 휘감고 모든 승객의 후각을 마비(?)시..

4. 부산화력 2022.05.25

고종황제와 한성전기주식회사

(20 여 년 전에 쓴 글) 오늘은 일본 사람들 이야기 좀 해야겠다. 대학에 다니는 내 딸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아빠, 인터넷 MP3로 일본 꺼 듣다가 나 졸라 열나서 죽는 줄 알았어.” “그게 무슨 소리야?” “응, 일본가수 둘이서 부른 노랜데, 한국 사람과 한국을 욕하는 가산데, 너희 한국놈들이 우리 일본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미개인 생활할 텐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우리를 욕한다느니, 군인, 징용으로 남양군도에서 죽여주고, 탄광에 끌어가서 죽여주고, 정신대 끌고 가서 죽여주고, 그래서 인구를 조절해 줬는데 은혜도 모른다느니, 너희 한국놈들은 더럽고 치사하고 영원히 욕을 보고 죽어 없어져야 할 족속이라느니 그런 가사야. 어떻게 그런 가사의 노래를 만들어 국제적으로 유포시키는지 알 수가 없어.” "그러..

4. 부산화력 2022.05.20

29. 베니어 전기장판 사건

이 글을 쓰는 지금이 2022년 1월이니 내가 한시퇴직으로 한전을 떠난 지도 23년이 지났다. 한전이 지금도 이 사가(社歌)를 부르고 있나 모르겠다. 가사를 기억으로 적어보는데 맞는지도 모르겠다. “백두산 줄기 따라 한라산까지 연연히 이어가는 귀한 동맥을 한 마음 한 뜻으로 가꾸어가는 우리는 횃불이다, 겨레의 등불 나가자, 한국전력 힘을 다 하여 어둠을 이겨내자, 광명의 역군“ 한전 사가(社歌)의 가사(歌辭)는 전력 송전선을 ‘동맥’으로 표현하고 ‘횃불’과 ‘등불’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어둠을 이겨내는 광명의 역군’으로 한전의 역할을 나타내고 있다. 그랬다. “광명(光明), 그 시절 전기는 어두운 호롱불을 밝은 전등불로 바꾸는 광명이었다. 내가 입사하던 1969년 그 시절에도 각 가정들에는 아직 이렇다..

4. 부산화력 2022.05.20

28. 전차부대(電車部隊)

1998년 내가 한시퇴직으로 한전을 떠날 무렵 그 때, 1997년 기준으로 한국전력의 노동생산성은 1인당 연간전력판매량 6,520MWh이었고 그것은 당시 세계최고수준이었다. 미국의 일부 전력사들이 무지막지하게 합병, 다운사이징하고 잘라내서 7,000~8,000MWh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한전의 노동생산성은 일본 동경전력의 5,850MWh, 독일의 5,784MWh, 일본 중부전력의 5,271MWh, 미국 평균 4,865MWh, 대만전력의 4,154MWh, 프랑스의 2,940MWh를 압도하고 있었다. 90년대에 한국전력이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전력요금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결정적으로 원전 덕분이지만 이와 함께 한국전력 직원들이 그만큼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고 가장 많은 일인당 전력을 생산해내고 있었..

4. 부산화력 2022.05.14

27. 부산화력 노조위원장 선거

지금 대한민국은 노조의 천국이요 노동자 낙원이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해마다 노조파업이 벌어지고, 붉은 띠를 맨 노조원들이 거리를 점령하고 각목과 새총, 돌멩이와 볼트너트가 날아다니고 최루탄이 터지는 극한투쟁도 심심찮게 벌어졌고 현대자동차 노조니 금속노조니 화물연대니 희망버스니 하는 이름들도 우리 귀에 익었다. 그리고 지금은 민노총이 정권까지 흔드는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온순한 순둥이 노조는 어디일까? 아마도 전국전력노조, 즉 한전 노조가 아닐까 싶다. 전국전력노조는 1961년 5.16 군사혁명 전에 있던 조선전업, 경성전기, 남선전기 3사가 통합되어 한국전력주식회사로 발족한 다음 3사의 노동조합도 통합되어 통합노조라는 뜻으로 ‘전국’을 앞에 붙여서 ‘전국전력노동조합’..

4. 부산화력 2022.05.14

26. 산업재해사고

“사고 책임 질 ‘빨간 줄 임원’까지 만들었다. 건설사 중대재해법 초비상....” 2022년 새해가 되자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건설업계엔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이다. 안전사고가 나면 경영자를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하는 법 때문에 중견 건설사 오너들이 줄사퇴해 ‘월급쟁이 대표이사’를 세우고, 대형 건설사들은 사고 때 법적 책임을 뒤집어쓸 안전 담당 임원 자리, 즉 ‘빨간 줄 임원 자리‘를 신설하는 등 난리란다. 지금부터 3년 전 쯤 2018년 12월에도 태안화력에서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석탄 컨베이어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머리는 이쪽에 몸체는 저쪽에 등을 갈려져서 타버렸다’고 했다. 이런 소식을 들으니 내가 열아홉 살 때부터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석탄가루, 아황산가스..

4. 부산화력 2022.05.06

25. 복직, 복학, 그리고 졸업

어머니는 제대한 나를 데리고 안동시내 구시장 어귀 조흥은행 앞에 있는 양복점으로 가셨다. 입대하기 전에 입던 양복이 한 벌 있기는 했지만 너무 낡은데다 입대하기 전 57kg, 58kg 나가던 내 몸무게가 64kg으로 불어나 있었고 다리통과 어깨쭉지가 굵어져서 맞지가 않았다. 옷을 입고 조금 힘을 주었는데 옆구리의 실밥이 ‘투두둑’ 터져버렸다. 군대생활을 하면서 나도 제법 탄탄한 사나이의 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집에서 이틀인가 지나고 나서 집에서 쉬면 뭣 하겠나 싶어 부산으로 내려가는 중앙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감천 부산화력발전소는 정문 앞에 전에 없던 건물이 한두 개 생긴 것 말고는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나를 맞아주었다. 정문을 지키는 수위 아저씨 얼굴도 낯익었다. 나는 발전과 사무실로 가..

4. 부산화력 2022.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