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독야근 6

16. 발전소근무와 대학공부

그렇게 나는 한국전력 직원이면서 동아대학교 학생이 되었다. 그 때 부산화력에는 나 말고도 그렇게 학생이 되어 근무와 학업을 병행하는 직원들이 30여명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대학에 다니는 것을 달가워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굳이 문제 삼지는 않았다. 공부하겠다는 기특한(?) 젊은이의 앞을 가로막기도 어려웠을 게다. 학교에 다니기 위하여 우리는 주로 낮근무(Day Shift)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그 사람의 야간근무(Night Shift, 또는 After Shift)를 대신 해주었다. 대근을 부탁 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밤근무 보다 낮근무 하는 게 낫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별 말없이 못 이기는 체 선심 쓰듯 근무를 바꾸어 주었다. 발전소에서 밤 11시부터 아침 8시까지 근무를 하..

2. 주독야근 2022.04.18

15. 동아대학에 들어가다

감천 동네에 자리를 잡고 나서 나는 서대신동에 있는 한 대학입시학원에 등록하여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공부가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공고를 다니면서 고등학교 교과과정도 제대로 못 밟은 데다 석탄미분기 운전을 하고 보일러 버너 작업을 하면서 2년 가까이 지나서 대학입시를 준비하려니 모든 게 어설프고 설게 느껴졌다. 대학입시가 몇 달 남지도 않아 마음만 급했지 강사가 열심히 떠들어대는 소리가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고 예습이나 복습도 도무지 되지가 않았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기술전공부라는 특수반에서 배운 게 줄질, 대패질, 땜질, 제도 그리고 기계공작, 기계재료, 재료역학, 유체역학, 원동기 같은 전공과목이 거의 전부였던 내게는 영어, 수학, 국어과목이 새삼 멀게 느껴졌고 공고에서는 구경도 못 ..

2. 주독야근 2022.04.18

14. 부산화력 보일러 운전원

서울에 올라간 나는 본사에서 근무하는 일가분을 찾아가 나를 부산화력으로 전근시켜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 분은 높은 자리에 계시진 않았는데 대학공부를 하고 싶다는 나의 소원을 듣고는 인사부서 쪽으로 부탁을 했던 모양이다. 1970년 6월말, 나는 부산화력으로 전근발령을 받았다. 영월에 온 지 1년이 다 되어가던 때였다. 나는 함께 근무하던 C계 계장님과 또 정든 직원들과 작별하고 또 하숙집 김씨네와 나의 사투리를 놀려대던 꼬마 녀석, 함께 하숙하던 친구들과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그 짧은 기간 있었던 많은 이야기들과 영월 처자와의 달콤했던 데이트의 추억, 그리고 잊지 못 할 석탄미분기를 뒤로 하고 영월을 떠났다. 부산역에 내린 나는 버스를 타고 남포동을 지나서 버스를 또 갈아타고 송도 뒤편 높은 고개를 넘..

2. 주독야근 2022.04.18

13. 영월 처녀

일은 힘들고 험했지만 봉급은 많다는 게 위로였다. 2,500원의 벽지수당을 합쳐 약 2만 4~5천원 쯤 되었으니 만 18세 사회초년병의 봉급으로는 참 많은 셈이었다. 나는 봉급을 받을 때마다 하숙비 5,000원과 용돈 얼마씩을 떼어놓고 매달 1만 5천원의 거금(?)을 고향으로 부쳤다. 석 달마다 한 번씩 나오는 1만 5천 원가량의 보너스는 손도 안 대고 통째로 송금하였다. 우체국에 가서 송금할 때면 일하는 아가씨 앞에서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영월에 있던 10개월 남짓 동안 내가 고향으로 보낸 돈은 17만원이 넘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부치는 이 돈으로 소 두 마리인가를 사서 시골의 아는 사람에게 맡기셨다. 소는 농사도 지으면서 잘 키우면 새끼도 낳아 늘어나니까... 아버지도 참, 지금생각해도 이재(理財..

2. 주독야근 2022.03.25

12. 영월화력발전소

영월읍내에서 발전소까지는 10여리 되었는데 출퇴근 시간에 어두운 초록색깔의 통근차가 다녔고 우린 우체국 건너편에 모여서 통근차를 기다렸다. 구화력은 1931년엔가 왜정 때 지은 참으로 오래 된 구닥다리 발전소였고 신화력은 차관을 도입하여 1965년에 건설한, 당시로서는 비교적 신형에 속하는 발전소였다. 구화력은 8개의 보일러에 4대의 터빈발전기를 연결하여 모두 10만 kw였고 신화력은 5만 kw짜리 2기였으므로 영월화력은 도합 20만 kw의 발전소였다. 당시 전국의 수력, 화력, 내연력 발전소를 몽땅 합쳐 163만 7천 kw였으니 20만 kw이면 약 8분의 1을 차지하는 대형사업소였던 셈이다. 인원은 600명 가까이 되어 본사 보다 인원이 많은 전국에서 가장 큰 사업소였다. 구화력의 보일러는 정말 고물이..

2. 주독야근 2022.03.25

11. 마산에서 영월로

한국중공업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시 52년 전, 1969년으로 돌아간다. 69년 2월 17일에 입사한 우리가 쌍문동 연수원에서 신입사원 초등반 교육을 마친 날이 3월 15일이었고 정래혁 사장의 이름과 커다란 직인이 찍힌 빨간 사령증을 받아가지고 마산으로 내려가 마산화력에 집결한 날은 아마 3월 18일이나 19일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안동에 들러 부모님을 뵙고 다시 중앙선 열차를 타고 출발하여 대구에서 경부선 열차로 갈아탄 다음 삼랑진역에서 다시 남해선 열차를 타고 마산으로 갔다. 내 눈에 처음 비친 마산은 무학산이 미끄러져 마산만으로 흘러내려가는 비탈 밑자락에 대롱대롱 붙어있는 도시였다. 마산화력으로 집결한 신입사원 교육생들이 100여명 가까이 된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수습교육이 3개월이 ..

2. 주독야근 2022.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