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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베스페이지 골프장

뉴욕사무소는 주말에는 열심히 골프 치고 주중에는 열심히 일했다. 주중에 우리 기술부 부장, 과장들은 미국업체들을 방문하여 제작진도 확인과 제작중간검사, 출하검사를 하느라 출장 가는 때가 많았고 사무부장과 과장들은 주로 사무실을 지키는 날이 많았다. 지사장도 주중에 바쁘게 움직였다. 코참(KOCHAM: 한국지상사협회) 모임에도 나가야 했고 한국에서 온 고위공무원이나 본사에서 온 높은 분들을 만나야 했고 더러는 국제회의 참석을 위하여 워싱턴 DC, 서부나 남부의 대도시에도 가야 했다. 그러다 보니 지사장은 주중에도 높은 분들과 운동을 하는 때가 자주 있는 듯 했다. 물론 우리 쫄따구들이 찾아다니는 그린피 저렴한 퍼블릭 골프장이 아닌 프라이빗 골프장과 유명골프장이었다. 지사장은 유명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경험을..

8. 뉴욕사무소 2023.03.29

78. 뉴욕지사 골프부대

1996년이었다. 아직 50이 채 못 된 소장, 아니 사무소장으로 부임하여 사무소를 지사로 만들어 지사장으로 승격한 지사장은 아직 젊었고 패기가 넘쳤고 키도 크고 체구도 당당하였다. 육사 4년을 다 마치고 소위임관을 하루 앞둔 전날 밤 들뜬 생도들이 시내로 나가 모임을 갖고 술을 마셨는데 사관학교 학칙 위반이 된 이 사건으로 소위임관을 못 하고 퇴교 당했다고, 동기들은 군대에서 장성급인데 자신은 한전에서 요 모양으로 살고 있다고 억울해 했다. 하긴 억울할 만도 했다. 임관만 했더라면 지금쯤 사단장, 최소한 여단장은 되어서 황금색 별 박힌 빨간 표지판 달린 검은 차를 타고 흰 장갑 낀 헌병들이 우렁찬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를 붙이는 위병소를 통과하여 위엄 넘치는 사단본부에서 폼 잡았을 텐데 겨우 스무 명 남..

8. 뉴욕사무소 2023.03.28

77. 청기와장수 소장 떠나고 육사출신 소장 부임

청기와장수 소장님이 클리블랜드에서 주책을 부리신 그 사건을 나는 회사를 떠나는 날까지 입 밖에 낸 적 없이 철저히 비밀에 붙였다. 청기와장수 소장님도 그 일 말고는 나를 힘들게 한 적은 별로 없었다. 여전히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할 때면 그놈의 Dewars 양주를 주문해서 드시고 술 안 마시는 나를 운전기사로 활용한 것 말고는. 80년대, 90년대에 열 몇 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준공시켜 가동한 덕분에 한국전력은 전기요금을 거꾸로 내렸고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전력요금이 싼 나라가 되었고 전 세계 전력산업계는 한국전력의 눈부신 실적과 성장에 주목하였다. 한국전력은 국유재산법 때문에 주식을 양도하거나 매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채권을 발행하는 방법으로 뉴욕증시에 진출하였다. 최고의 전력회사에 수여하는 에디슨대상..

8. 뉴욕사무소 2023.03.27

76. 미국 이민사회와 주재원사회

앞서 이야기한 대로 1995년 4월 1일 우리가 미국에 도착한 날은 토요일이었고 우리 가족은 살림살이와 가재도구를 사느라 쉬지도 못 하였는데 다음날인 일요일에 우리 가족이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온 가족이 늦잠을 자고 교회에도 가지 못 했던 것 같다. 그 다음 주에는 이웃에 살던 부하 과장댁이 알려준 주소로 교회를 찾아 나섰다. 잉글우드라는 동네였는데 이리저리 헤매다가 그 교회는 찾지 못 하고 시간은 11시가 다 되었는데 마침 한 교회의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표지판을 따라 가니 제법 큰 교회 하나가 있었고 우리는 교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 교회로 들어갔다. 그런데 교회의 분위기가 어쩐지 좀 이상했다. 교인들은 젊은 사람들이 많았고 앞에서 근사하게 흰 옷을 입은 한 여자의 인도에 ..

8. 뉴욕사무소 2023.03.25

75. 미국 탈원전의 어두운 그림자

1995년 4월부터 1998년 4월까지 3년간 뉴욕사무소에서 기술부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회사를 위하여 내가 한 일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 회사생활 30년 가운데 일은 가장 적게 하고 혜택은 가장 많이 누린 시기였던 셈이다. 1995년 당시만 해도 누가 뭐래도 해외주재원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가족과 함께 누리는 3년의 해외생활은 특혜였다. 뉴욕사무소의 업무는 크게 힘들거나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영광 3,4호기와 울진 3,4호기에 공급되는 기자재를 제작하는 많은 미국업체들이 있었지만 과장들이 분담을 하여 제작진도를 점검하고 품질검사를 하였고 그저 미국업체들이 납품만 제대로 해 주기만 하면 만사형통이었고 우리는 그저 주말에 골프만 열심히 치면 되었다. 제작공장을 방문할 때도 몇 시간을 운전해서 가거나 비행..

8. 뉴욕사무소 2023.03.24

74. 골프 치는 아빠와 여름가족여행

뉴욕사무소 주재원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 하나가 골프였다. 1995년, 아직 한국에는 골프장이 열 개도 안 되었고 골프는 일반인들이 좀체 하기 어려운 귀족운동이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주재하는 3년 동안 골프를 열심히 치는 것이 돈 버는 거라 하여 부장과 과장들이 전부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골프를 치러 다니는 것이 불문율, 아니 의무사항이 되어 있었다. 나는 과장들의 추천에 따라 1,100불짜리 캘러웨이 아이언세트, 거의 300불짜리 드라이버, 150불인지 200불짜리 우드 두 개, 그리고 골프백, 골프공, 장갑, 모자, 티셔츠, 그리고 손으로 끌고 다니는 카트까지 도합 이천 불 가까이의 거금을 들여 골프장비를 구입하고 골프연습장에 가서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하였다. 두어 주 레슨과 연습을 거친 다음..

8. 뉴욕사무소 2023.03.23

73. 청기와장수 소장님과 김치찌개 사건

뉴욕사무소의 업무는 기자재구매업무와 해외업체상대를 해온 내게 그리 어렵거나 무거운 일들은 아니었다. 기술부서의 과장들은 미국 업체들의 공장에서 제작, 공급되는 영광 3,4호기와 울진 3,4호기 건설용 기자재와 보조기기들의 제작진도를 점검하고 독려하여 늦지 않게 납품되도록 하는 일, 그리고 제작과정에서, 그리고 제작완료 때 공장을 방문하여 품질검사를 하고 출하승인을 하는 일이 주업무였고, 사무부서 과장들은 미국업체들이 제작된 물품을 미국수출항에 운송하여 대한통운에 인도하면 기자재 납품대가를 지불하는 업무, 대한통운의 운송대가를 지불하는 업무, 그리고 경영정보 수집이라 하여 미국에서 발간되는 전력관계 잡지와 뉴스를 발췌, 번역하여 본사로 보내는 일들을 하였다. 사실 사무직들이 하는 대가지급업무나 경영정보수집..

8. 뉴욕사무소 2023.03.22

72. 뉴욕사무소로 가다

인생의 길은 매순간 선택과 갈림길의 연속이다.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수없는 변화와 고비가 만들어져 가는가 보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갈까 말까, 할까 말까, 만날까 헤어질까, 지금 할까 나중에 할까, 이걸 택할까 저걸 택할까.... 헤아릴 수 없는 크고 작은 선택의 갈림길들.... 81년 아리조나 팔로버디 원전건설현장에서 원자력건설요원 해외훈련을 받았던 나는 결국 해외사무소 주재원 근무의 꿈을 택하였다. 그리고 그 갈림길의 선택으로 나와 나의 가족의 삶과 길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그 후에 닥친 IMF 경제위기와 회사생활의 갈등, 거기에서 나는 또 회사를 떠나는 길을 선택하였다.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보다 평탄한 길을 걸을 수 있었겠지. 지금 ..

8. 뉴욕사무소 2023.03.21

71. 취수구에 스테인리스 강철판을 끼워 넣는다고?

내가 본사 원자력건설처에서 울진 3,4호기 새끼 PM으로 불리는 공사운영3부장으로 일하던 1994년 가을쯤이었다. 울진 3,4호기 건설현장에서는 건설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고 발전소로 바닷물을 끌어들이는 취수구도 콘크리트 타설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복수기를 냉각시키기 위하여 호기당 6개씩 주냉각수 취수구가 있고 각 취수구에 1기씩 모두 6기의 대형 주냉각수 펌프가 설치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바닷물에는 온갖 부유물과 오물이 섞여 들어오기 때문에 해수취수구 입구에는 쇠창살 같이 생긴 고정식 바 스크린(Bar Screen)이 맨 앞에 설치되어 나무토막 같은 커다란 부유물을 막고 그 창살을 통과하는 좀 작은 오물들은 트래블링 스크린(Travelling Screen)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걸..

70. 830만 불짜리 케이블을 150만 불에

내가 본사 원자력건설처 공사운영3부장으로 울진 3,4호기 새끼PM을 하던 때 있었던 몇 가지 일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1994년 어느 날 전기부장 박J씨가 내게 와서 의논할 일이 있다면서 이야기를 했다. 영광 3,4호기 때는 원자로 노심계측 케이블이 원자로설비(NSSS) 공급범위에 포함되어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이 공급하였는데 그 금액이 300만 달러 가량 되었단다. 그 케이블은 원자로용기 내부의 상태를 감지하는 여러 감지설비(detector)들로부터 나오는 신호를 원자로 밑바닥에서부터 받아서 외부의 계측제어설비로 연결해 주는 수십 가닥의 케이블들이다. 뜨겁고 압력이 높은 원자로 밑에 뚫린 여러 개의 구멍들에 끼워져서 원자로 내부의 상황을 감지하여 연결해주는 케이블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케이블들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