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미국해외훈련 15

45. 미국아, 잘 있거라.

피닉스를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는 짐을 싸고 살림살이를 정리하였다. 이민백에 도저히 들어갈 것 같지 않은 많은 물건들을 버려야 했다. 벡텔사가 한아름씩 안겨준 교육훈련교재도 너무 많고 무거워 눈물을 머금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여덟 달을 신었지만 아직도 새것 같은 아까운 안전화는 누구 신을 사람 있으면 신으라고 쓰레기장 앞에다 고이 갖다 놓았다. 키우던 선인장 화분도 거기 갖다 놓았다. 가방과 이민백 안에는 카메라와 라디오와 밥솥과 사진들과 환등기 필름들을 챙기고 입던 옷과 선인장 그려진 티셔츠도 챙겨 넣었다. 여덟 달 가까이 우리를 태우고 다닌 72년형 크라이슬러 뉴포트는 ‘For Sale"종이를 붙이고 다녔지만 끝내 사는 사람이 없어 내가 몰고 LA까지 가기로 했다. 우리는 팔로버디에서 정들..

44. 미친 서부일주여행

7월이 되고 8월이 되자 피닉스의 태양은 더욱 뜨겁게 타올라 사막과 사막의 선인장들과 또 건설현장을 달구었고 들판의 농작물은 더욱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우리의 훈련기간도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다. 이제 한 달 남짓이면 해외훈련도 끝나고 귀국해야겠지. 그러면 언제 다시 미국에 올 수 있을까? 귀국하기 전에 미국 구경을 더 해보고 싶었다. LA사무소 김계장님 한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우리도 하계휴가 한 주일 낼 수 있습니까?” 김계장님은 별 문제 없으니 알아서 하란다. 나와 한 방을 쓰는 장o씨와 또 LA에 있는 양o씨가 의기투합하여 서부일주여행을 하기로 했다. 한 주일 휴가를 내면 토요일과 일요일이 앞뒤로 붙어서 9일간의 여행이 가능했다. 지도를 펴놓고 LA에서 요세미티 국립공원, 옐로우스톤 국..

43. 팔로버디의 친구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미국인 친구들이 욕을 많이 가르쳐 주었다. 나와 단짝친구가 된 Paul Horn도 그랬다. Paul이 나에게 가르쳐 준 욕들 중에 쇠똥(Bull Shit)이나 개자식(Son of Bitch), 시발(Fuck) 같은 욕은 점잖은 편에 속했다. 더 심하고 노골적인 욕들도 많았다. 한국에도 입에 담지 못 할 육두문자 욕이 많지만 미국의 욕은 더 심한 것 같았다. 욕을 무슨 씨리즈처럼 만들어 자동으로 연속적으로 발사했다. Paul은 나와 나이가 비슷했고 호리호리한 몸을 가진 백인이었는데 텍사스에서 한 여자와 함께 살다가 헤어진 다음 자동차를 몰고 아리조나로 혼자 왔단다. 나와 Paul은 건설현장에서도 같이 일했지만 퇴근한 다음에도 만나서 붙어 다니다시피 했다. 나를 말경주장과 개경주장에 데리..

42. 팔로버디 원전 건설현장

팔로버디 원전은 1,300 MW급 3기로 미국에서 가장 큰 단위용량을 가진 원전들이었다고 기억된다. 운전초기에는 전기출력이 127만 킬로와트 정도였으나 나중에 설비개선을 하여 지금은 전기출력이 140만 킬로와트나 나온다고 한다, 팔로버디 원전의 원자로설비(NSSS)는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ombustion Engineering, CE), 터빈발전기는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GE)이 공급하였으며 앞서 말한 대로 벡텔사가 설계와 시공을 맡았었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물이 없는 내륙 사막에 건설된 원전인 팔로버디 원전은 피닉스로부터 하수를 끌어다 정수처리하여 사용하는데 냉각탑에서 증발되어 날아가는 물이 워낙 많기 때문에 피닉스로부터 끌어오는 하수의 양이 1년에 약 1억 톤에 달하는 것으..

41. 피닉스의 홀아비들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쌀을 씻어서 LA에서 사온 코끼리밥솥으로 밥을 지었다. 네 사람이 다 요리에는 젬병이라 채소와 고기를 손에 잡히는 대로 이것저것 썰어 넣고 된장이나 간장을 넣고 물을 부어 끓였다. 국인지 찌개인지 제목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큰 문제없이 입에만 들어가 주면 되었다. 콩에다 간장과 물을 부어 끓이거나 햄이나 소시지에다 간장을 부어 조리거나 아무튼 짭쪼롬하게 만들어 김치와 함께 밥반찬을 삼았다. 그걸로 아침식사를 하고 또 도시락을 쌌다. 건설현장에는 점심시간에 우리가 무엇을 사먹을 만 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꼭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다. 더러는 햄과 빵으로 도시락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역시 밥이 최고였다. 네 홀아비들이 함께 사는 10개월 동안 그런 식의 어설픈 요리와 식사는..

40. 달려라, 72년형 크라이슬러 뉴포트

한 동안은 피닉스에 한 달 먼저 가있던 K계장이 운전하는 차에 얹혀 해결했지만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구입하는 일이었다. 한 집에 함께 살 교육생 네 명 가운데서 내가 가장 먼저 운전면허를 땄다. DMV(차량국) 운전면허시험장에 가서 필기시험을 보았는데 필기시험은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사지선다형 문제를 푸는 것이었다. 정답 번호를 선택해 버튼을 누르면 “맞다”, “틀렸다.”가 바로 하면에 표시되었다. 25문항 가운데 20문항 이상을 맞추어야 한다고 했다. 시험도중에 여섯 문제를 틀리면 거기에서 시험이 중단되고 불합격 처리가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나는 첫 문제부터 다섯 문제를 내리 틀리고 또 한 문제를 더 틀려서 초장에 보기 좋게 낙방하였다. 창피하지만 이상하게시리 모르는 ..

39. 후버댐, 라스베가스, 그리고 아리조나

벡텔사에서 교육을 받은 지 한 달 좀 더 지난 12월 어느 날인가, 벡텔사는 교육생들에게 2박3일 일정으로인가 견학인지 투어를 간다고 알려왔다. 강의실에 앉아서 강의만 듣던 교육생들은 모처럼 신이 났다. 나도 백화점인지 마트인지에 가서 거금 300 달러나 투자하여 일제(日製) 아사히 펜탁스 카메라 한 대를 사고, 코닥인지 후지인지 필름도 몇 통 샀다. 또 12월이라 날이 추울 것 같아서 노랑색 골덴 재킷 하나를 구입하여 입었다. 마트는 우리가 사는 아파트 뒤쪽에 볼링장을 지나면 있었기 때문에 걸어갈 수 있었다. 규모가 꽤 큰 그 마트엔 온갖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다 미국제 아니면 일제였다. 일제 카메라, 일제 텔레비전, 일제 장난감, 일제 공구와 문방구.....,, 한국산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

38. 한국 촌놈들 미국구경

우리 교육생 거의 전부가 자동차를 운전해 본 적도 없었고 운전면허를 가지지도 못 했다. 따라서 미국에서 교육기간 동안 살아가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운전면허를 취득해야 했다. 나도 미국으로 떠나기 전 한국운전면허를 따서 국제면허를 받으려고 청담동 운전면허교육장에서 연습도 하고 강남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시험도 쳤지만 오르막 눈물고개에서 시동을 꺼트리는 바람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교육생 중에 이미 미국 운전면허를 가진 친구 하나가 있었다. 사무직 계장이었는데 이미 미국에 한 번 와서 교육을 받은 적 있고 그 때 미국 운전면허를 땄다고 했다. 그는 비오는 날 미국의 도로를 달리는 기분을 잊을 수가 없어서 다시 해외교육에 지원했단다. 그 친구는 미국에 오자마자 중고 승용차를 구입하여 운전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

37. 로스앤젤레스 사무소

1981년 11월초, 로스앤젤레스 인근 다우니에 자리잡은 벡텔사에서 교육이 시작되었다. 우리 교육생들에게는 두꺼운 교재가 한 아름씩 주어졌고 오전 네 시간, 오후 네 시간 벡텔사 직원들이 와서 강의를 했다. 바인더로 두껍게 만들어진 교육교재는 모두 열 권도 훨씬 넘었는데 원자력발전소 건설 전 과정이 분야별, 과정별로 분류, 정리되어 있었다. 벡텔사 직원 강사들이 와서 열심히 강의하였지만 우리의 짧은 영어로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데다 시차 때문에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 해 조는 교육생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벡텔사의 교재들은 발전소 건설 전체 과정을 경영, 재정에서부터 구매, 자재관리, 예산관리, 공정관리, 품질관리 뿐 아니라 토목, 건축, 기계, 전기, 계측제어 등 기술 분야로 나누어 설명하고 교육하는..

36. 벡텔사 해외훈련

온 가족이 새벽부터 법석을 떨고 시골에서 올라온 부모님과 친척들로 구성된 환송단이 비좁은 13평 아파트를 덮치고 나는 그 환송단을 이끌고(?) 오후 1시인가 2시 쯤 잠실을 출발하여 김포공항으로 나갔다. 거기에서 또 기다리고 찾고 부르는 어수선한 가운데 출국수속을 하고 짐을 부치고 난리법석을 떤 끝에 저녁 일곱 시쯤엔가 환송단의 전송을 받으며 나는 출국장을 지나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하루 종일 난리를 치른 것이다. 그렇게 비행기에 탑승하고서도 또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우리가 탄 KAL기는 활주로를 달리더니 하늘로 솟아올랐다. 비행기가 큰 원을 그리며 빙 도는가 싶더니 서울이 발 아래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어둠이 깔린 서울은 보석 같은 불빛들로 한강물과 함께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난생 처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