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영광 3,4호기, 울진 3,4호기

61. 월화수목금금금

Thomas Lee 2022. 12. 14. 13:55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167번지 한국전력공사 사옥, 아담한 20층짜리 건물은 맞은 편 54층짜리 무역회관 건물이 워낙 높아 좀 찌그러들긴 했지만 소나무와 대나무, 잔디밭, 한전인상 청동조각상, 인공폭포와 인공조형물들로 제법 운치 있는 정원을 갖추고 자태를 자랑하고 있는 이 건물은 밤늦도록 불이 꺼질 줄 모르는 건물이다. 한전이 전기 만드는 회사라 전기 하나는 풍족하게 쓴다는 걸 보여주려고 켜놓은 건 아니었다.

 

한전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보안(保安)이다. 북한과의 대치상황에서 철통같은 방위태세는 국군장병만의 것은 아니다. 모든 직원은 퇴근할 때 책상 위의 모든 서류를 종이 한 장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치워 캐비닛에 집어넣어 잠그고 쓰레기통의 휴지조각까지 말끔하게 치우고, 전등과 컴퓨터 등 모든 전기기기의 스위치를 끈다. 그리고 최종퇴사자가 보안점검일지에 점검결과를 기록하고 문을 꼭꼭 잠그고 퇴근한다.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밤중에는 당직근무자가 각 사무실들을 돌면서 캐비닛이 잘 잠가져 있는가, 책상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가, 쓰레기통은 비워져 있는가 같은 걸 점검하고 순찰대장에 서명을 한다. 경비를 맡은 청원경찰이 또 순찰을 한다. 철통같은 보안, 이른 바 ‘보안의 생활화’이다.

 

안기부인지 국가정보부가 가끔씩 불시점검을 하기도 했다. 직원이 혹시 잊어버리고 자기의 책상설합이나 캐비닛을 잠그지 않고 퇴근했다가 회사자체 순찰에 걸리는 건 주의나 경고 정도로 넘어가지만 만에 하나 불시에 나온 정부기관의 ‘보안점검’이나 ‘보안검열’에 걸리면 최소한 견책 이상의 징계를 받거나 심지어는 옷을 벗기까지 했을 정도니 보안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퇴근해서 집에 갔다가 무언가를 잊어버린 것 같이 찜찜해서 회사로 다시 돌아온다. 도무지 정신이 있어야지, 책상설합을 잠갔는지, 안 잠갔는지.......

 

청사진이나 도면에 ‘원자력’이라는 글자가 써져 있으면 이건 대외비가 된다. 언젠가 한 번 한전직원이 부산 시내버스에 ‘고리원자력 사택 난방배관 도면’을 두고 내린 적이 있었는데 ‘원자력’이라는 글자 때문에 난리가 난 적이 있다. 사택의 난방설비 배관도면이 무슨 중대한 보안사항이 되겠는가만 그 도면을 주운 시민이 ‘원자력’이라는 글자에 놀라 신고를 하고 경찰이 출동하고 상부에 보고하고 신문에 나고 그랬다.

 

원자력이 아니라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원자력발전소 건설공사를 진행하면 엄청난 분량의 서류철과 도면과 기술자료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 수많은 자료와 도면, 책자와 팜플렛, 계약서와 사양서 등이 쌓여 더 이상 보관할 수가 없거나 정부기관에서 보안검열이라도 나온다고 하면 이 귀중한 자료들을 모조리 파쇄기로 분쇄하고 쓰레기 소각장으로 보냈다. 자료보존? 기술축적? 보안검열에 내 모가지가 달랑거리는데 무슨 자료보존이고 무슨 기술축적이겠는가? 수많은 귀중한 자료들이 그렇게 파쇄기에서 분쇄되었다.

 

사전통보를 하고 나오든 불시에 점검을 나오든 정부기관에서 보안검열이 나올 때 가장 안전한 대응은 사무실에 불을 켜놓고 사람이 앉아있는 것이었다. 사무실에 불이 켜져있고 사람이 있으면 그 사무실은 보안검열대상이 될 수가 없고 따라서 보안검열로부터 가장 안전했기 때문이다. 꼭대기충부터 20층, 19층, 18층.....,, 원자력건설처와 원자력발전처가 밤 열 두 시가 넘도록 불이 안 꺼지는 상습적 지각퇴근부서들이었다.

 

한전의 공식 퇴근시각은 오후 다섯 시였다. 그러나 간 크게 다섯 시에 퇴근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저녁 여섯 시, 일곱 시쯤 되면 그제야 퇴근들을 했다. 이 시각이 되면 한전직원들이 건물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다 퇴근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일부는 저녁식사 하러 나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회사 근방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더러는 사무실에서 인근 식당에 전화를 걸어 배달시켜 먹기도 했다. 회사 앞에 한진식당이라는 식당이 있었는데 그 식당에서 일하는 아줌마는 날마다 커다란 함지박에 밥그릇, 국그릇, 반찬그릇을 잔뜩 담아 머리에 이고 한전을 들락거리셨다. 키는 작았지만 힘은 참 센 아줌마였다. 처음엔 처녀 같더니.... 강남시립병원 앞쪽에 있는 옥돌집, 청우식당도 한전직원들이 단골로 찾는 저녁식사 식당이고 배달전문집이었다. 그렇게 직원들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또다시 사무실에 들어가 앉는다. 일이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다들 그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일도 일이었지만 습관적인 시간 때우기, 타성적인 지각퇴근이었다. 피곤하면 의자에 기대어 천장의 형광등 불빛을 응시하다가, 일어나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옆 사무실에 가서 동료들과 잡담을 하기도 하고, 자동판매기에서 100원짜리, 200원짜리 커피를 뽑아서 홀짝거리기도 하면서 휴게실은 언제나 담배연기가 자욱하였다.

 

저녁까지 얻어먹고 나서 밤 열시에 퇴근하는 건 염치없는 일이었다. 밤 열 한 시에 퇴근해야 지하철을 탈 수 있는데 그것도 미안했다. 밤 열두 시가 넘어야 비로소 좀 떳떳하게 퇴근할 자격이 생기는 듯 했다. 밤 열 두 시에 퇴근하면서 “먼저 갑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집에 잠깐 다녀오겠습니다.”가 더 적절한 인사였다. 주말이라고 집에서 쉬는 것 또한 실례요, 무례요, 마음에 큰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밤에도 일하고 밤샘까지 한다고 시간외근무수당을 더 주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과다한 시간외근무를 금지하고 있다. 회사에서 돈을 더 준다면 근로기준법 위반을 했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는 과다한 시간외근무를 절대로 시키지 않는다. 아니 시간외근무수당을 절대로 더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회사를 위하여 자기 호주머니, 박봉을 털어 저녁 사먹고 밤늦게까지 일 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최소한 저녁은 사줘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저녁식사대 명목의 예산이 없다. 예산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 저녁식사대를 지출했다면 이 역시 회사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면서 직원들을 혹사했다는 명백한 물증이 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그래서 각 부서마다 매달 두어 건 씩 가라출장, 일명 앉은뱅이 출장을 끊는다. 업무협의차 지방사업소에 갔다거나 공장검사차 출장 가는 것으로 서류를 만들어 출장비를 타다가 부서의 저녁식사대로 쓰는 것이다. 죄짓는 기분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섯시 땡, 전원퇴근 하거나, 저녁을 굶고서 일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본사만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본사만큼은 아니었지만 지방사업소들도 그랬던 것 같다. 특히 건설현장.

 

감사원 감사에서도 가라출장문제는 여러 차례 도마 위에 올랐었지만 회사를 위해 야근까지 하는 직원들 저녁식사비로 쓰였다는 것, 그리고 뾰족한 대안도 없고 가라출장비 또한 빠듯하게 관리되고 정부가 허용하는 예산의 테두리에 묶여있는 터라 그냥 넘어가곤 하였다.

 

지금은 10조원에 현대그룹에 매각되어 헐려 버렸지만 삼성동 167번지 한전빌딩은 언제나 그렇게 불이 훤하게 켜져 있었다. 가라출장비로 저녁식사를 하신 한전직원들이 켜놓은 불이었다.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의 얼굴도 잊어버린 아빠들, 기다리다 지친 아내들로부터도 버림받은 불쌍한 남편들이 켜놓은 불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40대의 사망률, 과로, 스트레스, 돌연사는 그렇게 밤늦도록 켜놓은 불빛으로 인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월화수목금금금”,

도대체 그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우린 가라출장비로 한진식당에 저녁밥 배달시켜서 먹은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을, 건강을, 청춘을, 가족과의 시간을 먹고 있었던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바보짓이고 미련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