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영광 1,2호기 건설현장 14

59. 문장고개 교통사고

영광을 떠나기 전에 85년엔가 있었던 교통사고 이야기를 하나 더 해야겠다. 영광에서 광주로 가는 길 중간에 문장고개라는 제법 높은 고개가 있다. 1986년 그 고개 꼭대기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1985년 12월이었던가,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는 때였던 걸로 기억난다. 우리 기계기술과 직원 가운데 강S가 서울에서 결혼식을 한다고 해서 나와 직원들 셋, 이렇게 네 사람이 서울로 올라가서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양S씨가 승용차를 몰고 광주역에 마중을 나왔다. 늦은 오후였다. 나는 차를 몰고 마중 나온 양S씨가 고마웠지만 평소에 그의 운전실력을 알고 있었던 터라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는 나 보다 두 살인가 세 살이 많았고 우리 기계기술계에서 제일 나이 많은 직원이었다. 그런 그가..

58. 영광의 시절 기억

“영광의 시절”, 제목을 이렇게 써놓고 보니 우습고 아리송하다. 영광스러운 시절이었다는 이야기인지, 영광에서 살던 시절이었다는 이야기인지....... 우리가 흔히 쓰는 영화로운 빛은 ‘榮光’이고 영광원자력이 건설된 곳의 지명은 靈光이다. 靈光이라니, 영(靈)의 빛(光)이라니 지명 치고는 특이하고 으스스하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그 영광의 원자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 30대의 절반을 보냈다. 영광을 떠날 때 30대 초반이던 나는 40이 다 되어가는 아저씨가 되었고 아들은 홍농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 있었고 딸은 홍농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학년이 되어 있었다. 그 때만 해도 도로사정이 열악하여 영광은 내 고향 안동으로부터 너무 먼 곳이었다. 1983년에 내가 전라도 영광으로 발령받아 간다고 하니까 고향 어르신들이 ..

57. 접대비와 앉은뱅이 가라출장

한전지점 전기원 아저씨가 더운 여름날 한 여관에 들어선다. “야, 이거 정말 푹푹 찌는군, 아, 덥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아, 예. 어서 오세요.” “야, 이 집 에어컨 참 좋네. 아, 시원하다. 이제 좀 살 만 하네.” “아, 예, 예. 더운데 수고 많으시지요?” 그리고 여관 아줌마는 안에다 대고 소리 지른다. “야, 안에 누가 있냐? 시원한 맥주 두어 병 내 오너라. 한전 아저씨 오셨다.” 에어컨 시원하단 그 말 한 마디에 주인아줌마는 어쩔 줄 모르고 쩔쩔 맨다. 맥주에다 과일까지 대접이 융숭하다. 여관집 아주머니가 왜 한전 전기원 아저씨한테 이렇게 잘 해줄까? 전기회사가 고마워서이겠지, 뭐. 전기는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게 아니다. 전류가 많이 흐르려면 더 굵은 전선이 필요하고 더 큰 용량의..

56. 업무추진비와 지역홍보비

앞서 이야기한 적 있지만 좀 더 이야기해야겠다. 한전은 이런 점에서도 정상적인 회사라고 볼 수 없다. 한전에는 사장이 없다. 한전에서 직원들의 급여를 정해주는 것은 사장도 아니고 노사협약도 아니다. 다음 해 급여를 정하는 것은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 제 21조(예산편성지침)이다. “재정경제부 장관은 매년 10월 31일까지 다음 회계연도의 각 투자기관의 예산편성에 적용되는 사항에 관한 지침을 작성하여 이를 각 투자기관의 사장에게 통보하여야 한다(개정 1997. 8. 28)” 정부투자기관들이 예산관리를 제대로 하고 효과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투자 및 관리할 수 있도록 재정경제부장관이 지도한다는 것이 그 법률취지다, 글쎄, 지도한단다. 그런데, “예산편성에 적용되는 사항”, 요게 바로 독소조항이다. 이 조항을 ..

55. 체르노빌 원전 사고

내가 영광원자력건설현장에서 기계기술계장으로 일한 지 3년 째 접어든 1986년, 7호기는 준공을 앞두고 막바지 시운전을 하고 있었고, 8호기도 뒤를 이어 건설 막바지 공정에 들어가고 있었다. 이 1986년 1월 어느 날씨가 몹시 춥던 날 이른 아침, 건설현장에 출근하던 시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폭발사고 소식이 전해졌다. 아침뉴스 TV 화면에는 일곱 명의 우주비행사를 태우고 힘차게 날아오르던 우주선이 발사 1분 남짓 후 폭발하여 거대한 백조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흰 연기 덩어리와 몇 가닥 포물선 연기구름을 남긴 채 공중에 흩어져 버리는 장면이 비쳐지고 있었다. 연료탱크의 볼트 하나가 잘못 되어 있었다나, 전 세계 수억의 눈이 지켜보는 앞에서 일곱 명의 생명이 수억 불짜리 우주선과 함께 꽃잎처럼 흩어지는..

54. 영광원자력 해수냉각수 이야기

* 서해안의 해수냉각수 화력이든 원자력이든 발전소에서는 터빈을 돌리고 나오는 증기를 복수기에서 응축시켜 물로 만드는 데 엄청난 양의 냉각수를 사용한다. 영광원자력에서도 서해의 바닷물을 끌어들여 복수기를 통과시킨 다음 지하관로를 통하여 방류구로 내 보낸다. 그런데 동해안은 비교적 수심이 깊고 해수온도도 낮지만 영광은 서해안이라 바다의 수심이 얕고 해수온도도 높고 뻘도 많다. 영광 1,2호기 설계가 고리 3,4호기의 설계를 복제(複製, Replication)하는 것이지만 조건이 다르면 그 부분의 설계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터빈을 돌리고 나오는 증기를 냉각시키는 데는 해수온도가 낮으면 많은 냉각수가 필요 없지만 해수 온도가 높으면 훨씬 많은 냉각수가 필요하게 되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해수 냉각수..

53. 보조기기 Back Charge와 MSIV

영광 1,2호기에서 구매한 보조기기 품목들의 계약건수는 200건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중에 기계품목, 내가 담당한 품목이 가장 많았다. 원자로설비와 터빈발전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거기에다 국내분, 해외분을 막론하고 온갖 펌프, 밸브, 열교환기, 공기조화설비, 복수기, 보조보일러, 디젤발전기, 물처리설비, 복수탈염설비, 고체폐기물 설비, 액체폐기물 설비 등이 모두 기계품목이라 하여 모조리 우리 기계과 일이 되고 기계기술계가 공급계약을 관리해야 했다. 아마 보조기기 절반 가까이는 기계품목이었을 것이다. 내가 본사에서 보조기기구매업무를 했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업무량이 워낙 많았다. 그리고 품목들이 워낙 많다보니 문제도 많았다. 부러지고 망가지고 없어지고 잘못 된 온갖 문제들이 부적합보고..

52. 가압기와 무뇌아 소동

만일 모든 일이 설계대로, 도면대로, 절차서대로, 계획대로 진행되고 이루어진다면 건설공사는 얼마나 쉽고 편했을까? 우리는 별로 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대체 설계대로, 도면대로, 절차서대로 왜 못 하는 것인지, 또 더러는 왜 설계나, 도면이나, 절차서가 그 따위로 잘못 되어 있었는지..... 참 탈도 많고 문제도 많고 일도 많았다. 인간이 하는 일에 애당초 완벽이란 있을 수 없었나 보다. 하긴 완벽했다면 타이타닉의 비극도 콜럼비아호의 비극도 없었겠지. * 현대건설 기술인력이 복수기 도면을 잘못 읽었다. 복수기 내부에 급수가열기를 설치할 브래킷(Bracket)을 엉뚱하게 반대편에다 용접해서 붙여놓았다. 당연히 부적합보고서(NCR)가 발행되고 용접된 브래킷을 다시 뜯어내어 반대편 제자리에 붙이는..

51. 복수기 목욕 시키기

이번에는 5년 동안 영광 1,2호기 기계기술과장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몇 가지 일들을 나의 기록과 기억을 더듬어 몇 개 적어볼까 한다. 1. 복수기 목욕시키기 호기당 3 대의 복수기는 각각 길이 약 20M, 너비 약 12M, 높이 약 20M의 거대한 철판 통이다. 제작공장에서 부분품으로 가공되어 건설현장에서 터빈 아래에 조립, 설치된다. 복수기 안에는 길이 18 미터에 달하는 손가락 굵기의 기다란 튜브 2만 여개가 촘촘히 들어간다. 그러니 호기당 3 개의 복수기에 들어가는 티타늄 튜브는 6만 개가 넘는다. 그리고 이 티타늄튜브로 바닷물이 통과하면서 터빈을 돌리고 나오는 증기를 냉각시켜 다시 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오랜 건설기간 동안 복수기를 조립하는 과정에서 탄소강재가 녹슬어 부식될 것이므로, 기술..

50. 한국식 공정관리와 세계 최저가 원전건설

우리나라의 80년대는 실로 대한민국 원자력발전소 건설의 전성기였다. 78년에 고리 1호기가 준공되고 5년 뒤 83년에는 고리 2호기와 월성 1호기가 준공되었다. 고리 1, 2호기는 웨스팅하우스, 월성 1호기는 캐나다원자력공사(AECL)가 건설하여 한전에 열쇠를 넘겨주는 턴키(Turn Key)방식이었다. 이후 고리 3,4호기부터는 한전이 건설공사의 주인이 되어 난턴키(Non Turn Key)방식으로 건설하였다. 그리하여 85년 고리 3호기, 86년 고리 4호기와 영광 1호기, 87년 영광 2호기, 88년 울진 1호기, 89년 울진 2호기, 그야말로 해마다 원전이 잇달아 난턴키 방식으로 준공되었다. 원전의 잇단 준공으로 대한민국의 전력단가는 80년대의 엄청난 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떨어져 82년 k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