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뉴욕사무소

78. 뉴욕지사 골프부대

Thomas Lee 2023. 3. 28. 17:03

1996년이었다. 아직 50이 채 못 된 소장, 아니 사무소장으로 부임하여 사무소를 지사로 만들어 지사장으로 승격한 지사장은 아직 젊었고 패기가 넘쳤고 키도 크고 체구도 당당하였다. 육사 4년을 다 마치고 소위임관을 하루 앞둔 전날 밤 들뜬 생도들이 시내로 나가 모임을 갖고 술을 마셨는데 사관학교 학칙 위반이 된 이 사건으로 소위임관을 못 하고 퇴교 당했다고, 동기들은 군대에서 장성급인데 자신은 한전에서 요 모양으로 살고 있다고 억울해 했다. 하긴 억울할 만도 했다. 임관만 했더라면 지금쯤 사단장, 최소한 여단장은 되어서 황금색 별 박힌 빨간 표지판 달린 검은 차를 타고 흰 장갑 낀 헌병들이 우렁찬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를 붙이는 위병소를 통과하여 위엄 넘치는 사단본부에서 폼 잡았을 텐데 겨우 스무 명 남짓, 2개 분대 병력 밖에 안 되는 조그만 뉴욕사무소 파견대장이나 하고 있으려니 어찌 억울하지 않았겠는가?

 

신임소장은 골프를 잘 친다고 했다. 밴쿠버사무소장으로 나가 있을 때 골프를 배웠는데 1년 만에 싱글 스코어를 기록했다고 자랑했다. A4 용지 두 장으로 골프 스윙의 레슨인지 요령을 그림을 곁들여 정리해 만들어 놓은 미니골프교본인지 지침서를 복사해서 공부하고 연습하라고 전 직원들에게 나누어주고 지사장 특별골프강의도 하였다. 골프를 치지 않던 청기와장수 소장님 때는 우리끼리 팀을 짜서 주말골프를 나갔지만 이제부터는 지사장님을 모시고 나가게 되었다. 사무부장이 과장들을 시켜 주말마다 골프장을 물색하고 단체예약을 해서 지사장님을 모시고 골프장으로 나갔다. 가까운 버겐카운티 퍼블릭코스는 워낙 많은 한국인들 때문에 예약이 어려운지라 좀 멀리 떨어진 골프장들을 찾아서 예약을 하였는데 뉴저지 북부지역, 뉴욕 업스테이트, 펜실베니아 포코노 지역, 뉴욕 롱아일랜드까지 자동차로 한 두 시간 거리 안에 있는 괜찮은 퍼블릭 골프코스들이 망라되었다. 그리고 골프가 끝나고 포트리로 돌아오면 으레 뒤풀이 저녁식사와 술자리가 이어졌다. 전임소장처럼 Dewars 같은 특정한 술을 고집하지는 않았지만 주량도 대단하였고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과장들을 앞에 앉혀놓고 라떼 이야기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졌다.

 

결국 골프 때문에 뉴욕사무소에는 주말이 없어진 셈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사무실로 출근하여 근무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반드시 골프장으로 출근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사장은 주말에는 직원들이 자유롭게 팀을 만들어 골프를 쳐도 좋지만 한 달에 한 번은 뉴욕지사 단합을 위하여 전직원 골프대회를 개최하기로 한다고 결정하였다. 나는 주일에 교회에 나가는 예수쟁이라고 일요일에는 빼주었지만 토요일에는 골프대회에 참가해야 했다. 신임소장, 아니 지사장이 부임하고 뉴욕지사 첫 골프대회가 회사에서 한 시간 반 가까이 떨어진 곳의 꽤 유명한 크리스털스프링스(Crystal Springs) 골프장에서 개최되었다. 최저타수 우승자, 홀인원과 이글 상, 미리 정한 홀에서 티샷을 가장 멀리 날리는 사람에게 주는 롱기스트 상과 핀에 가장 가까이 붙이는 니어리스트 상도 마련되었다. 그리고 골프대회가 끝나면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부인을 동반하여 리틀페리에 있는 유명한 한식당으로 집합하라고 했다. 환영식을 겸한 뷔페연회를 한다고 했다.

 

크리스털스프링스 골프장 첫 홀에서 첫 팀은 신임소장과 사무부장, 그리고 골프를 잘 치는 과장 두 사람, 이렇게 네 명으로 출발하였다. 신임소장이 워낙 골프를 잘 치고 엄청난 장타라고 자랑을 했기 때문에 모든 직원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소장이 첫 티샷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소장이 드디어 첫 티샷을 날렸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공은 슬라이스가 되어 커브를 그리며 코스 우편 숲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어째 조짐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첫 팀이 출발하고 다음 팀이 출발하고 나는 그 다음 팀인가에 끼어서 소장으로부터 멀찌감치 뒤떨어져 출발하였다. 그렇게 골프가 끝난 다음 성적발표가 있었는데 신임소장의 타수는 90타를 훨씬 넘었다. 크리스털스프링스 골프장이 어렵다고 소문난 코스이긴 했지만 소장으로선 체면을 구긴 성적이었다. 롱기스트 우승자도 장타를 자랑하던 소장이 아니라 임 과장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임 과장이 3번 우드로 부드럽게 친 공이 소장이 드라이버로 친 공 보다 멀리 날아가 있더란다. 졸지에 임 과장이 스코어에서나 장타에서나 소장을 밟아버린 셈이 되었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골프대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각자 아내를 데리고 시간에 맞추어 연회장소로 나갔다. 소장이 부인과 함께 연회장 입구에 서서 처음 보는 부장 부인들과 과장부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좀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나는 아내를 소장과 소장 부인에게 인사시킨 다음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 때 임 과장 부부가 도착하였다. 그런데 신임소장이 임 과장을 향하여 뭐라고 소리 지르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이야기인지 왜 그러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싸가지’라느니 ‘삐딱’이니 ‘똑바로’니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좀 있으니 임 과장이 울상이 되어 연회장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내게로 와서 바닥에 주저앉아 나를 붙잡고 울기 시작하였다. “부장님, 제가 뭘 잘못 했다고 소장님이 저러시는 겁니까? 저 이제 어떡해요? 이제 회사생활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이 친구, 승승장구하여 훗날 부사장까지 되었다.

 

첫 가족모임이자 상견례였던 연회는 그렇게 살벌하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저녁을 먹었는지 무엇을 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신임소장은 마이크를 잡고 위엄을 갖추어 인사말을 하였고 저녁식사가 끝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미니악단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고 부장 과장들에게도 인사말을 시키고 돌아가며 부부합창으로 노래를 시켰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을 텐데 그 비용을 어떻게 조달했는지 난 모른다.

 

나중에 임 과장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그랬다. 신임소장님이 워낙 골프 고수라니까 안 그래도 높으신 소장님이 무서웠고 골프를 치면서도 조심스러워 말도 못 하고 주눅이 들었단다. 퍼팅을 하고 공이 안 들어가면 웬만한 거리에서는 오케이, 기브(컨시드)를 주어야 하는데 골프고수에게 함부로 기브나 오케이를 주었다가는 무시한다고 할까봐 그냥 퍼팅하는 걸 숨죽이고 지켜보고만 있었단다. 그래서 안 그래도 전 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날린 첫 티샷부터 슬라이스가 나서 기분 잡친 소장님의 기분이 몹시 상하기 시작했던 모양이라고 했다. 거기에다 롱기스트 홀에서 체구도 크지 않은 임 과장이 3번 우드로 신임소장의 드라이버샷 거리를 넘겨버리자 구겨진 체면에 부아를 삭일 수 없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러게 웬만한 거리에서는 ‘오케이’ 하면서 공을 집어 드리고 롱기스트 홀에서도 그냥 아이언으로 티샷을 할 것이지, 눈치 없게시리.......

 

아무튼 그 때부터 뉴욕지사 소대는 주말마다 골프장으로 출동하여 지사장 사단장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그린 고지를 향하여 바주카포, 박격포, 소총 골프채로 하얀 공을 쏘며 공격하는 각개전투를 벌렸다. 비가 오고 바람이 물어도 후퇴는 없었다. 용맹스러운 뉴욕지사 골프소대는 비오는 날에는 코텍스 방수점퍼를 입고 출격하였다.

 

골프만이 아니었다. 지사장은 한 달에 한 번씩 전가족 팟틀럭(Potluck) 모임을 개최했다. 한 달에 한 번씩 각자 분담하여 음식을 만들어 와서 사무실에서 뷔페식 점심식사를 하였다. 이 날에는 부부 뿐 아니라 아이들도 모여서 지사장님 부부에게 인사를 드려야 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모이던 팟틀럭 모임은 지사장 집에서 모이는 모임으로 발전하였고 이때는 장소문제로 아이들은 빠질 수가 있었다.

 

이어서 부인회 여군이 조직되어 동원되기 시작하였다. 체격 좋으신 지사장 부인께서 골프를 시작하셨다. 지사장 부인이 골프를 시작하니까 그 전에는 샤핑몰이나 다니던 부장 부인들과 과장 부인들도 골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남편들이 출근한 다음 열 시쯤 부인들은 클로스터(Closter) 사격연습장, 아니 골프연습장에 모여서 골프를 배우고 연습하기 시작하였다. 과장 부인들이 미리 골프연습장에 도착하여 지사장 부인의 자리를 잡아놓고 머신에 돈을 넣고 연습공을 한 바구니씩 뽑아서 갖다놓았다. 커피도 뽑아오고 음료수도 사왔다. 지사장 부인께서 부장, 과장 부인들과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골프연습을 마치면 지사장 부인은 부장, 과장 부인들을 데리고 가까이에 있는 물레방아 식당에 가서 점심식사 모임을 가졌다. 점심식사 비용은 부장, 과장 부인들이 돌아가면서 부담하였다. 그렇게 한 동안 골프실력을 닦은 후 뉴욕지사 골프부인회도 드디어 골프장으로 실전을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 부인골프모임에서 아내는 따돌림 대상이었다. 남편이 미움 받는 기술부장인데다 골프를 배우는데 열심을 내지도 않았고 일요일엔 교회 간다고 빠지고 수요예배나 금요기도회라고 빠지니 지사장 부인이 좋아할 턱이 없었다. 아내는 골프연습장에도 자주 나가지 않았고 골프장에 나갈 때는 실력미달이라고 끼이지 못 했다. 부장부인인 아내가 빠지니 과장부인 한 분이 아내를 대신하여 지사장 부인을 수행해야 했다. 우리부부는 인사고과에 목매여 윗분에게 어떻게든 잘 보여야 하는 현실세계로부터 동떨어진 한심한 부부였던 셈이다.

 

당시 뉴욕사무소에는 미국 제작업체들의 에이전트를 하는 한인들이 더러 출입하고 있었다. 영광 3,4호기든 울진 3,4호기든 미국에서 제작납품 되는 보조기기 제작업체들에는 예외 없이 한국인 에이전트들이 중간에 끼여 있었다. 한국인 에이전트들은 한전의 구매부서에서 해외발주품목의 정보를 입수해 가지고 미국업체들에게 가서 알려주고 에이전트 계약을 맺고 입찰을 도와주고 그 미국업체들이 수주에 성공하면 많게는 10%까지 커미션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수주 후에도 업체와 한전 사이에서 중간연락책 역할을 하고 있었다.

 

미국업체의 입장에서는 잘 알지도 못 하던 한국에 물품을 납품하게 주선해 준 에이전트들이 고마울 수밖에 없었고 한국인 에이전트들로서는 10% 가까운 커미션을 받으니 대단한 돈벌이가 되는 것이었다. 그 한국인들이 어떤 연유로, 어떤 줄로 한전의 구매부서와 연결되어 그렇게 에이전트 활동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희한하게도 한전출신 에이전트는 한 사람도 없었다. 뉴욕사무소에 드나들던 한국인 에이전트들이 가끔씩 부장이나 과장들 두어 명씩 초청하여 골프를 치거나 저녁식사를 대접하기도 하였지만 적절한 거리를 두고 예의를 지키는 선을 지켜오고 있었다.

 

그 에이전트 중 권씨 형제가 있었는데 계약금액이 수백만 달러, 천만 달러씩 되는 여러 개의 계약을 따낸 ‘잘 나가는’ 에이전트였다. 어느 날 그 권씨 형제 후원으로 뉴욕지사 골프대회가 열렸다. 지금까지 뉴욕지사에서 업체나 에이전트가 주최하거나 후원하는 골프대회를 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뉴욕지사 역사상 처음으로 에이전트 후원 골프대회가 열린 것이다. 골프장은 한 시간 반 좀 넘게 떨어진 뉴욕 업스테이트 17번 도로에서 조금 들어간 곳에 있던, 지금은 폐쇄된 쿠쳐스 골프장(Kutshers Golf Course)이었다. 일인당 그린피가 40 달러 정도였으니 권씨 형제가 부담하는 골프피도 적지 않았을 거 같아 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런데 더 마음 편치 않은 일은 골프대회가 끝난 다음에 있었다. 그 골프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17번 도로 바로 옆에 한인이 운영하는 큰 식당이 있었다. 말이 식당이지 술과 밴드가 있는 유흥음식점이었다. 권씨 형제는 그 식당에서 오늘 뜻 깊은 골프대회를 후원하게 되어 영광스럽고 기쁘게 생각한다는 인사를 하였고 식사와 아울러 양주가 테이블에 올라왔고 밴드가 들어와 연주를 하고 노래와 장기자랑이 이어졌다. 지사장에게는 신나는 달밤이었을지 모르지만 술도 안 마시는 예수쟁이 나에게는 곤욕스럽기만 한 자리였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권씨 형제는 그 날 몇 천 달러를 썼을까? 얼마나 속이 아렸을까?

 

뉴욕지사의 골프는 더욱 발전해 나갔다. 커넥티컷주 윈져에 있는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E)이 뉴욕지사장 환영을 겸하여 CE사 사내 골프대회에 한전 뉴욕사무소를 초청하였다. 우리 뉴욕지사 소대원들은 모두 소총과 바주카포, 아니 골프채 가방을 메고 커넥티컷으로 출동하였다. CE는 골프장을 통째로 빌려 골프대회를 개최했고 물론 우리에게는 아무런 비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골프공을 한 줄씩 나누어주었고 골프가 끝난 후 클럽하우스에서 식사까지 대접해 주었다. 내 기억에 CE사의 골프초청은 그 후에도 두어 차례 더 있었다.

 

또 어느 날 지사장님은 에이전트 권씨 형제의 안내를 받으며 뉴욕지사 골프소대를 대동하고 영광 3,4호기에 제어반을 제작, 납품하는 커넥티컷주 댄버리(Danbury)에 있는 이튼사(EATON Co.)를 방문하여 현장지도를 하시었다. 그리고 현장지도를 마친 다음 가까이에 있는 골프장에서 이튼사 사장님과 함께, 또 한전과 이튼사 직원들간 친선골프를 개최하셨다. 물론 후원은 이튼사가 했다. 이튼사 사장님은 뚱뚱한 체구에 골프를 잘 못 치는 양반이었는데 기꺼이 뉴욕지사장님의 동반자가 되어 함께 즐겁게(?) 골프를 치셨다. 골프가 끝난 다음엔 역시 조촐한 이튼사의 감사 저녁만찬이 이어졌다.

 

겨울철에는 뉴저지 북부 일대의 골프장들이 문을 닫았다. 그런다고 굴할 뉴욕지사가 아니었다. 뉴저지 턴파이크와 가든스테이트 파크웨이를 타고 남쪽으로 한 두 시간 내려가면 뉴저지 남부에는 겨울에도 문을 여는 골프장들이 여럿 있었다. 겨울철이 되면 용감한 뉴욕지사 골프부대는 뉴저지 남부 골프장들을 공격하기 위하여 주말마다 남침을 감행하였고 얼어붙은 물을 건너고 눈 덮인 언덕을 넘어 그린을 향하여 하얀 공을 쏘아 올리며 각개전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