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영광 3,4호기, 울진 3,4호기

70. 830만 불짜리 케이블을 150만 불에

Thomas Lee 2023. 3. 18. 16:50

내가 본사 원자력건설처 공사운영3부장으로 울진 3,4호기 새끼PM을 하던 때 있었던 몇 가지 일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1994년 어느 날 전기부장 박J씨가 내게 와서 의논할 일이 있다면서 이야기를 했다. 영광 3,4호기 때는 원자로 노심계측 케이블이 원자로설비(NSSS) 공급범위에 포함되어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이 공급하였는데 그 금액이 300만 달러 가량 되었단다. 그 케이블은 원자로용기 내부의 상태를 감지하는 여러 감지설비(detector)들로부터 나오는 신호를 원자로 밑바닥에서부터 받아서 외부의 계측제어설비로 연결해 주는 수십 가닥의 케이블들이다. 뜨겁고 압력이 높은 원자로 밑에 뚫린 여러 개의 구멍들에 끼워져서 원자로 내부의 상황을 감지하여 연결해주는 케이블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케이블들이고 따라서 고온고압에도 견디고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견뎌야 하는 안전요건이 적용된다.

 

그런데 한전의 담당자가 영광 3,4호기에서 CE가 그 케이블 값을 너무 비싸게 받아먹었다고 생각하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울진 3,4호기를 추진하면서 그 업무를 담당했던 김S 부장이 이 케이블을 원자로설비 공급범위에서 빼내어 보조기기 품목으로 돌렸단다. 보조기기로 한전이 직접 구입하면 훨씬 값싸게 구입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원자로계통설계를 담당하는 원자력연구소가 그 케이블에 무려 12g(무게단위 '그램'이 아니고 중력가속도 단위 '지')나 되는 지진가속도를 기준으로 내진설계검증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설계요건으로 정하는 바람에 그 요구조건을 맞출 수 있는 케이블 제작업체가 없단다. 중력가속도 12g라는 엄청난 지진충격에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그 조건을 충족하는 케이블을 제작할 수 있는 업체는 미국 뉴욕주 버팔로에 있는 코낙스버팔로(Conax Buffalo)사 뿐이고 그래서 코낙스버팔로사가 단독입찰업체(Sole Bidder)가 되어 무려 830만 달러의 입찰금액을 제시하고 그 금액을 한 푼도 못 깎겠다고 요지부동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건설공사비를 줄여보자고 주기기 공급범위에서 빼내어 보조기기로 바꾸었는데 300만 불이 아니라 830만 불을 주고 케이블을 사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박J 전기부장은 내게 그 이야기를 하면서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했다.

“지진가속도가 12g라고요?”

“글쎄 말입니다. 그 정도의 지진가속도라면 거의 대포 쏘는 수준이죠. 원자력연구소(KAERI)가 그렇게 설계했다는데 솔직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케이블이 그 충격에 견딜 수 있도록 제작하고 안전성을 입증할 수 있는 업체는 Conax Buffalo 뿐이라네요.”

“케이블이 12g를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해야 한다고요? 우와, 차라리 TNT 폭파에도 흠집 하나 안 나는 케이블이어야 한다고 그러지.”“그러게요. 어이없습니다.”

건설공정이 촉박하니 830만 불이라도 어쩔 수 없다 하고 그냥 Conax Buffalo사가 공급하도록 계약하고 넘어가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박 부장은 원자로 케이블을 830만 불에 구입하는 바가지를 쓸 수는 없다면서 분개했다.

“알았습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봅시다.”

나라고 뚜렷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지만 일단 그렇게 약속했다.

 

그 때부터 나는 PM 회의 때마다 이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원자로 감지설비 케이블의 설계내진가속도가 12g라는데 도대체 그런 가속도가 어떻게 나온 겁니까? 코낙스 버팔로사에서 830만 불이나 주고 케이블을 사와야 하게 생겼습니다.”

건설참여 회사들은 공사운영부장이었던 나를 ‘새끼 PM’이라고 불렀는데 그 ‘새끼 PM'이 회의 때마다 이 문제를 들고 나와 떠들어대니 원자력연구소 PM과 실무진들이 꽤나 당혹스러워 했다. 원자력연구소 PM과 실무책임자들은 처음에는 컴퓨터로 계산된 내진설계의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컴퓨터로 구조해석을 하고 공진으로 인한 증폭현상을 고려하여 계산하면 결과가 그렇게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영광 3,4호기와 울진 3,4호기의 내진설계 기초가 되는 지반가속도가 얼마입니까?”

“리히터 지진 계수 6이고 지반가속도는 0.2g입니다.”

“그럼 0.2g 지반가속도로 어떻게 원자로 하부에 연결되는 케이블에서 12g라는 말도 안 되는 가속도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까?”

“구조물 컴퓨터 구조해석으로 나오는 결과치가 그렇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도대체 그 구조가 어떻게 설계되어 있기에 그런 증폭현상이 나타납니까? 그렇다면 원자로는 괜찮습니까? 원자로는 안 깨집니까? 원자로가 설치되는 콘크리트 구조물은 괜찮습니까? 지반에서 0.2g의 가속도가 발생하면 원자로가 케이블을 마구 흔들어서 12g나 되는 엄청난, 대포 쏘는 가속도가 발생한다, 이게 말이 되는 겁니까?”

“컴퓨터 구조해석의 결과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선행호기인 영광 3,4호기에서도 그렇습니까, 아니면 울진 3,4호기만 그렇습니까? 그렇게 엄청난 지진가속도가 나온다면 울진 3,4호기는 건설 자체를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 같군요.”

“.......”

매주 회의를 할 때마다 나는 이 문제를 계속 거론하고 원자력연구소 실무진을 다그쳤다.

 

몇 주 동안 그렇게 다그쳤더니 결국 원자력연구소가 CE와 설계재검토를 거쳐 케이블에 적용되는 지진가속도를 2g인가로 대폭 낮추었다. 2g도 과도한 지진가속도라고 생각되었지만 어쨌든 그 결과에 따라 케이블 구매 기술규격서를 수정하고 박J 부장은 이를 외자처에 통보하여 그 케이블을 재차 입찰에 부치도록 하였다. 그 결과 서너 군데의 입찰자가 경쟁입찰을 하게 되었고 미국 알라바마주에 있는 한 케이블 제작업체가 최저가인 150만불에 입찰하여 낙찰자로 선정되었다, 830만 불에 사 올 뻔 했던 케이블을 150만 불에 구입하게 되었으니 680만 불을 아낀 셈이고 영광 3,4호기에서 300만 불에 산 케이블을 절반 값인 150만 불에 구입한 셈이 되었다.

 

그 일이 있고 난 얼마 후 어떤 분이 사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신사였다. 그 분은 나를 찾더니 내게 다가와서 굳은 얼굴로 나지막하게 말하였다.

“이 부장님, 그러시는 게 아닙니다.”

“예? 뉘신지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나는 코낙스 버팔로 한국대리인입니다. 나도 먹고 살려고 이 일을 합니다. 그렇게 남의 일을 망쳐놓고 어디 무사하신지 두고 봅시다.”

그렇게 협박인지 경고인지 모를 말을 나지막하게 뱉고는 돌아서서 사무실을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다행히 나는 무사하였다. 무사하였으니까 30년도 더 지난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지. 원자력연구소 박사님들이 일부러 그렇게 까다로운 설계조건을 달아서 코낙스버팔로사가 830만 불에 납품하도록 하려고 그랬던 건 아닐 거야. 설마 무슨 흑막이 있었던 건 절대 아닐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