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뉴욕사무소

77. 청기와장수 소장 떠나고 육사출신 소장 부임

Thomas Lee 2023. 3. 27. 15:29

청기와장수 소장님이 클리블랜드에서 주책을 부리신 그 사건을 나는 회사를 떠나는 날까지 입 밖에 낸 적 없이 철저히 비밀에 붙였다. 청기와장수 소장님도 그 일 말고는 나를 힘들게 한 적은 별로 없었다. 여전히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할 때면 그놈의 Dewars 양주를 주문해서 드시고 술 안 마시는 나를 운전기사로 활용한 것 말고는.

 

80년대, 90년대에 열 몇 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준공시켜 가동한 덕분에 한국전력은 전기요금을 거꾸로 내렸고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전력요금이 싼 나라가 되었고 전 세계 전력산업계는 한국전력의 눈부신 실적과 성장에 주목하였다. 한국전력은 국유재산법 때문에 주식을 양도하거나 매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채권을 발행하는 방법으로 뉴욕증시에 진출하였다. 최고의 전력회사에 수여하는 에디슨대상을 받았고 100년 후 원금과 이자를 상환한다는 조건으로 일명 백년채권, 센츄리본드(Century Bond)를 발행하였다. 이종훈 한전 사장님이 뉴욕증시를 방문하였고 청기와장수 소장님은 미국 TV와 인터뷰를 하였다. 청기와장수 소장님은 그 TV인터뷰를 녹화해서 사무실에서 몇 번이나 틀고 또 서울로도 보냈다. 한편 94년도에 북한의 영변을 폭격하려던 미국을 ‘전쟁은 안 된다’고 김영삼 대통령이 말리고 미국의 갈루치 대사와 북한의 강석주 외무상 부상이 제네바에서 협상을 하고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전제로 신포에 경수로 원전 2기를 지어주고 또 해마다 중유 50만 톤을 주기로 합의하고 이에 따라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라는 국제기구가 뉴욕 맨해튼에 설치되고 한전에서도 부처장 한 사람과 부장 한 사람이 파견되어 오게 되었다.

 

뉴욕사무소가 그렇게 흘러가는 사이 청기와장수 소장님의 임기만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1995년,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던 어느 가을날 사무부장 박 부장이 청기와장수 소장님을 설득하여 뉴욕사무소 가을체육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말이 체육대회지 골프대회를 하기로 한 것이다. 사무부장 박 부장이 뉴욕사무소장으로 오셔서 3년이나 계시면서 골프 한 번 안 치고 미국을 떠나시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건의를 했는지 꼬드겼는지 청기와 소장님이 체육대회 테이프를 끊는 첫 시타를 하기로 했다. 청기와 소장님은 태권도에다 평소에 운동으로 단련하는데 그까짓 막대기 휘둘러 조그만 공 치는 게 무슨 대수냐 하고는 연습도 하지 않고 시타를 하게 되었다.

 

골프장은 포트리에서 한 시간 반 좀 넘게 멀리 떨어진 펜실베니아주 포코노(Pocono)라는 아름다운 공원구역 안에 있는 마운트에어리(Mount Airy)라는 골프장이었다. 아침 10시쯤 골프장에 도착한 우리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네 명씩 다섯 팀으로 나누어 팀별로 티샷 출발을 하게 되었다. 클럽하우스에서 약간 올라간 곳에 첫 홀 티박스가 있었고 그 첫 홀은 아주 긴 오르막 Par 5 홀이었다. 오르막인데다 오른편으로 작은 연못이 있고 그린 가까이 왼편에 또 물이 있는 쉽지 않은 홀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골프장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아,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산과 언덕을 넘으며 넘실넘실 파도치는 융단처럼 뒤덮은 붉고 노란 가을단풍은 환상적이었다.

 

청기와 소장님이 전 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첫 팀 첫 타자로 1번 홀 티박스에 서셨다. 몇 번 연습스윙으로 몸을 풀고 난 소장님이 드디어 회심의 티샷을 날리셨다. 아니었다. 힘차게 헛스윙을 하셨다. 둘러선 직원들 사이에서 웃음 섞인 탄식이 나지막하게 흘러나왔다. 소장님은 다시 자세를 바로 잡고 또 힘차게 골프채를 휘둘렀다. 또 헛방이었다. 직원들이 조용해졌다. 세 번, 네 번, 헛스윙이 이어졌고 겨우 빗맞은 골프공이 떼구루루 굴러나갔다. 체육대회 분위기는 싸늘해지고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소장님은 “어, 이거 생각보다 어렵네?” 하면서 멋쩍어 하였고 사무부장이 재빨리 소장님의 팔을 잡아끌고 카트에 태워서 홀 방향으로 달려가더니 언덕너머 보이지 않는 다음 홀로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뉴욕사무소 골프체육대회는 아름다운 단풍 속에서 치러졌다. 그리고 그렇게 멋진 골프장에서 난생처음 골프채를 휘둘러보신 청기와장수 소장님은 이듬해 본사로 복귀하고 신임 소장이 새로 부임해 왔다.

 

신임소장 C씨는 육사를 다니고도 임관을 못 하였는데 어떻게 된 연유인지 모르지만 한전에 들어와 사장비서로 오랫동안 근무하였고 뛰어난 능력으로 사장님을 잘 보필하여 사장의 신임과 배려로 2직급으로 승진하여 밴쿠버사무소 소장으로 3년 동안 나가있었고 다시 본사에 복귀하여 1직급으로 승진한 다음 이번에는 뉴욕사무소장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나이는 나보다 세 살 위였는데 그 나이에 벌써 나 보다 두 단계 위 최고직위 1직급 간부로 승진해 있었고 뉴욕사무소 소장으로까지 나온 것이었다. 나는 그 신임소장 C씨를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본사에 있을 때 부하직원의 일로 그 때는 2직급이었던 그와 다툰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가 불같이 화를 내면서 나를 형편없는 간부라고 매도하는 문서를 만들어 돌리는 걸 보았기 때문에 그가 신임소장으로 부임해 오면 나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감을 하고 있었다. 그 신임소장이 JFK 공항에 도착하는 날 부장들과 과장들이 마중을 나갔다. 그 신임소장이 입국장에서 나오면서 나를 발견하는 순간 멈칫 놀라는 것 같았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너냐?” 하는 듯 그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신임소장이 부임하자 뉴욕사무소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오랜 사장비서실 근무경험으로 높은 분이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하여 브리핑 차트를 만드는 데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뉴욕사무소의 여러 업무를 하나하나 A4용지 한 장에 압축, 정리하여 매뉴얼인지 일람표 책자인지를 만들게 하였다. 당연히 기술업무는 알지 못 하니까 사무직 업무와 일반적인 업무를 중심으로 그렇게 하였다. 사장이나 전무, 처장급 인사, 혹은 VIP가 오면 어떻게 영접준비를 하고 맞이해야 하는지를 항목별, 단계별로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공항에 나갈 때는 어떻게 차량을 준비하고 누구누구가 나가고 어떻게 영접해야 하는지, 차량의 좌석배치나 식사장소의 좌석배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호텔예약은 어떻게 하고 호텔방에 과장 부인들을 보내서 다과와 물, 인삼드링크, 환영카드와 꽃병을 갖다놓고 시차적응과 수면유도를 위한 멜라토닌을 비치해 놓고..... 이런 걸 수십 개 항목별 단계별로 절차서인지 점검표를 만들었다. 높은 분이 뉴욕사무소를 방문할 때는 이 의전 절차서에 따라 뉴욕사무소에 비상이 걸리고 과장들과 과장 부인들까지 동원되어 요란을 떨었다.

 

또 뉴욕사무소에 부임해 오면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나열하고 안내하는 정착지침서를 만들었다. 뉴욕사무소에 부임해오면 어떻게 소셜시큐리티 번호를 받고 운전면허를 받고 은행계좌를 열고 전기가스, 전화, 케이블TV를 설치하고, 차량을 구입할 때는 어떻게 하고 자동차 보험은 어떻게 하고 같은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을 지역정보와 함께 세세하고 꼼꼼하게 항목별로 안내하는 지침서를 책자로 발간하였다. 소장은 또 뉴욕사무소 업무 중에서 자신의 공적이 될 만한 모든 업무수행내용과 결과를 한 장의 A4 용지에 “현황, 문제점, 조치내용, 결과” 식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파일로 만들어놓고 언제든지 높은 분이 오시면 뉴욕사무소의 업무보고와 함께 자신의 공적을 브리핑 하고 보고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에게 나는 찍어내야 할 제거대상 인물이었다. 나의 하는 일마다 은근히 시비를 걸어왔다. 내가 부임해오기 전부터 뉴욕사무소에서는 한 주일에 한 번 점심시간에 신우회 모임과 예배를 해오고 있었는데 신임소장은 기술부장이 사무소 내에서 신우회라는 별개의 조직을 만들어 사조직화 하고 뉴욕사무소의 단합을 저해하고 있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신우회 모임을 금지하면 종교박해가 된다고 생각했는지 단체모임 사무실 사용금지명령을 내렸다. 신우회가 아래층에다 다른 빈방을 얻어서 모임을 이어가자 결국 다른 트집을 잡아 기어이 신우회 모임을 중단시키고야 말았다. 가까운 곳에 식당이 없었으므로 점심시간에 직원들이 포트리나 팰리세이즈팍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올 때가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점심시간이 끝나는 오후 한 시를 조금 지나 돌아오는 일이 잦았다. 한 동안 지켜보던 신입소장이 어느 날 바깥 점심식사 금지령을 내렸다. 모든 직원들이 그 때부터 점심도시락을 싸들고 출근하게 되었다.

 

밉게 보면 발뒤꿈치도 달걀처럼 보인다더니 소장 눈에 싫게 보이는 모든 일에는 미운 기술부장이 관여되어 있는 것으로 비치는 모양이었다. 그런 식으로 한 동안 기술부장의 비리(?)와 트집거리를 수집, 정리한 소장은 본사에 “기술부장은 무능할 뿐 아니라 뉴욕사무소의 단합을 저해하는 함량미달의 간부이므로 즉시 귀국조치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공문을 보냈다. 사무직이 장악하고 있는 회사에서 사무직의 강력한 엘리트인 자신의 요청 한 마디면 나 같은 기술부장 하나쯤 처리하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장의 기술부장 제거작전은 실패하였다. 서울 본사에서 소장의 요청공문을 보신 권 부사장님이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기술부장에게 그러는 게 아니라고, 기술부장은 원자력직군에서 인정받는 인재이고 사장님이 이 사실을 아시면 자네가 오히려 좋지 못 할 거라고 한 마디 하신 모양이었다. 기술부장 귀국조치는 실패하였지만 그러나 소장의 야비한 기술부장 박해는 멈추지 않았다.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노골적으로 기술부장을 비난하고 망신을 준 것도 여러 번이었다.

 

또 소장은 1직급인 자신이 사무소장이 뭐냐 하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에디슨대상을 받고 센츄리본드를 발행할 정도로 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한국전력이 세계의 중심인 뉴욕에 설치한 뉴욕사무소를 이제 뉴욕지사로 승격시켜 뉴밀레니엄 21세기에 대비하야 한다는 논리로 공문서를 화려하게 만들어 본사에 지사승격을 요청하였다. 당시는 한전에서 과거에 도(道)에 하나씩 있던 지점들을 지사(부산 지사, 경남지사, 경북지사, 전남지사....)라고 부르고 있을 때였다. 얼마 후 본사는 뉴욕사무소를 뉴욕지사로 승격시켰고 소장은 지사장이 되었다. 실로 대단한 사무직 실세였고 대단한 사무직 파워였다. 지사장이 된 그는 자신이 원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거칠 것이 없는 뉴욕지사 제왕이 된 듯하였다. 현지채용 여직원이 마음에 든다고 지사장 직권이라면서 과장으로 임명하였다. 아마 할 수만 있었다면 기술부장인 나를 틀림없이 과장이나 평직원으로 강등시키거나 해고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