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뉴욕사무소

79. 베스페이지 골프장

Thomas Lee 2023. 3. 29. 16:12

뉴욕사무소는 주말에는 열심히 골프 치고 주중에는 열심히 일했다. 주중에 우리 기술부 부장, 과장들은 미국업체들을 방문하여 제작진도 확인과 제작중간검사, 출하검사를 하느라 출장 가는 때가 많았고 사무부장과 과장들은 주로 사무실을 지키는 날이 많았다. 지사장도 주중에 바쁘게 움직였다. 코참(KOCHAM: 한국지상사협회) 모임에도 나가야 했고 한국에서 온 고위공무원이나 본사에서 온 높은 분들을 만나야 했고 더러는 국제회의 참석을 위하여 워싱턴 DC, 서부나 남부의 대도시에도 가야 했다.

 

그러다 보니 지사장은 주중에도 높은 분들과 운동을 하는 때가 자주 있는 듯 했다. 물론 우리 쫄따구들이 찾아다니는 그린피 저렴한 퍼블릭 골프장이 아닌 프라이빗 골프장과 유명골프장이었다. 지사장은 유명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경험을 비밀스럽게 혼자 간직하지 않고 우리에게 자랑하고 공유하였다. 워싱턴 DC에서는 PGA 대회가 열리고 정치인들이 자주 찾는다는 무슨 프레지덴셜인가 인터내셔널인가 하는 유명골프장에서 해가 넘어가 어두워질 때 겨우 아슬아슬 마지막 18번 홀까지 플레이를 마쳤다는 무용담도 나누어주었다.

 

뉴욕시 동편 롱아일랜드에 유명한 베스페이지(Bethpage) 퍼블릭 골프장이 있다. 블랙, 그린, 블루, 레드, 옐로우 이렇게 다섯 개의 18홀 코스, 총 72홀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골프장이다. 이 중 블랙코스(Black Course)는 2000년대 들어 US Open 골프대회를 두 번이나 유치한, 어렵기로 소문난 명문 골프장이다. 미국의 지명은 유럽의 지명들을 따온 것도 많지만 성경에서 따온 지명도 많다. 베스페이지는 영어로 Bethpage, 한글성경 복음서에 ‘벳바게’라고 나오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를 타고 가신 곳이다. 헬라어로 ‘벳’은 집, ‘바게’는 무화과를 의미하니 ‘무화과의 집’이라는 뜻이다. 미국사람들은 그걸 ‘Bethpage’, ‘벳파게’라고 써놓고는 ‘베스페이지’라고 발음하고 있다.

 

그 베스페이지 골프장은 허드슨 강 건너 뉴욕시내를 지나 롱아일랜드에 있었는데 두 번이나 톨비를 내고 다리를 건너야 하긴 하지만 40 마일 정도, 길이 막히지 않는다면 한 시간 정도밖에 안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지금까지는 뉴욕사무소 골프 부대가 주로 허드슨강 서편 뉴저지 일대에서 놀고 거기까진 진출하지 않았었는데 지사장이 오고 나서 상황이 달라졌다. 96년 당시 아직 US Open을 유치하기 전이었지만 베스페이지 블랙코스는 이미 미국인들은 물론 교민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퍼블릭 코스라 그린피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뉴욕 근방에 그런 명문 퍼블릭 골프코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사장이 가만 둘 리 없었다. 어느 날 베스페이지 블랙코스에서 토요일 11시쯤에 골프를 칠 수 있도록 예약을 하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특명을 받은 과장 두 사람이 토요일 새벽 두시에 출동하였다. 두 사람의 과장은 어둠을 뚫고 각자 자기 차를 몰아 죠지 워싱턴 브리지를 건너고 스로그넥 브리지를 건너고 다시 405번 고속도로를 타고 롱아일랜드 베스페이지 골프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늘어선 주차장 차량들의 줄에 차로 줄을 섰다. 당시 베스페이지 골프장 블랙코스는 몰려드는 골퍼들 때문에 일체 예약을 받지 않고 먼저 오는 사람이 먼저 치는 선착순(First Come First Served)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블루코스, 레드코스 같은 다른 코스들은 그리 붐비지 않았지만 죽어도 블랙코스에서 골프를 치겠다는 골퍼들이 새벽부터 몰려드니까 골프장에서는 차량으로 줄을 서도록 하고 동이 트기 전 새벽 다섯 시쯤 나와서 앞차부터 순서대로 한 장씩 번호표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이 번호표 순서대로 블랙코스 예약을 받았다. 그러니까 네 사람이 블랙코스에서 골프를 치려면 그 중 한 사람은 새벽에 나가서 차 안에서 대기하였다가 나누어주는 번호표를 받아서 클럽하우스가 문을 열면 번호표 순서대로 들어가서 예약시간을 잡은 다음 그 티타임 시간에 맞추어 나머지 세 사람이 합류하여 네 사람이 골프를 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과장 두 사람이 새벽출동을 해서 11시와 11시 10분인가, 그렇게 두 팀, 여덟 명의 티타임을 확보하고 나서 전화를 해 왔다. 연락을 받은 사무부장과 나, 그리고 과장 몇 사람이 시간에 맞추어 베스페이지 골프장으로 갔다. 지사장은 그 사이에 JFK 공항에 누군가를 전송하고 11시에 맞추어 골프장에 도착하였다. 드디어 그렇게 어렵게 예약을 잡은 블랙코스 골프장에서 여덟 사람이 두 팀으로 나뉘어 골프를 치게 되었다. 나는 모처럼 지사장과 박 부장, 또 한 사람의 과장과 함께 한 조가 되었다. 파4인 1번 홀 티박스는 클럽하우스 바로 앞에 높직한 곳에 있었고 “블랙코스는 매우, Extremely 어려운 코스이므로 숙달된 골퍼들만 플레이 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경고안내판이 서 있었다.

 

과연 1번 홀부터 어려웠다. 오른편으로 꺾어지는 도그렉(Dog Leg) 홀이었고 오른편에 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OB 구역이 있었다. 화이트 티에서 쳤는데도 첫 홀부터 장타자가 아니면 세컨샷이 쉽지 않았다. 역시 장타자인 지사장의 공은 멀리 날아가 홀이 보이는 지점에 안착하였다. 내가 친 공은 슬라이스가 나서 오른편 OB구역 가까이 나무 밑에 떨어졌다. 나무 밑에서 탈출하고 나니 이번에는 그린 옆에서 벙커들이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2번 홀 티박스는 도로 아래 굴다리를 지나 있었고 페어웨이가 왼편으로 비스듬히 꺾이면서 올라가면 언덕 위 포대 그린이 커다란 벙커에 둘러싸여 기다리고 있었다. 3번 홀은 골짜기 건너편 언덕에 그린이 있는 파 3 홀이었다. 역시 커다란 벙커가 그린을 호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갔는데, 아, 블랙코스에서도 제일 어렵다는 핸디캡 1번인 4번 홀은 페어웨이 가운데에 두 계단의 사막 벙커고지를 넘어 또 그린 앞에 큼지막한 벙커들을 거느리고 위압적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다음 홀은 골짜기를 따라 길게 파진 파 4 홀이었고, 또 그 다음 홀은 골짜기를 넘어야 하는 긴 파 4홀이었고 그 다음 홀은 드넓은 모래벌판을 건넌 다음 오른편으로 꺾어져 키 큰 나무숲을 따라 가는 파 5 홀이었다. 그 홀에서 나는 티샷으로 모래벌판을 겨우 건넜고 지사장은 나무숲을 넘겨 질러가겠다고 힘껏 공을 두들겼는데 공은 나무에 걸려 숲속에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아무튼 베스페이지 블랙코스는 나 같은 겨우 2년차 초보골퍼에게는 너무 벅찬 골프코스였다. 코스는 길었고 페어웨이는 좁았고 벙커는 많았고 러프는 무성하고 질겼다. 재미있기도 했지만 유격훈련을 받는 기분이었다. 지사장은 베스페이지 블랙코스가 장타자인 자기 스타일에 딱 맞는 코스라고 적이 흡족해 하였다. 평소에는 기술부장을 미워하던 지사장이었지만 골프를 함께 칠 때만큼은 같은 그린, 같은 구멍, 같은 목표, 같은 뜻으로 함께 진군하였다. 우리는 새벽부터 출동하여 고생한 두 과장 덕분에 유명한 베스페이지 블랙코스 골프장에서 그렇게 행복하게(?) 골프를 치고 포트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여느 때처럼 저녁식사와 뒤풀이 술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한 때 이후락씨 소유라고 소문나기도 했던 포트리 ‘사랑방’ 이층상가 건물의 한식집으로 들어갔다. 그 시각이 저녁 일곱 시나 여덟시쯤 되었던 것 같다. 저녁식사를 하고 술자리가 이어졌다. 양주를 마시며 지사장은 또 그 길고 긴 자랑과 훈시를 시작하였다. 새벽부터 고생한 두 과장이 지사장 맞은편에 다소곳이 앉았다.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한 훈시는 회사생활을 어떻게 해야 한다느니, 성공하는 사람은 어떠해야 한다느니, 윗사람은 어떻게 모셔야 한다느니, 나는 옛날에 어떻게 했다느니로 이어지면서 끝날 줄을 몰랐다. 새벽부터 고생한 과장들을 생각하면 ‘수고 많았다, 이제 그만 가서 쉬거라.’ 해야 할 텐데 지사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밤이 깊어갔다. 열시가 넘고 열한시가 넘었다. 우리 때문에 문도 못 닫고 식당주인이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다. 보다 못 해 내가 ‘오늘 너무 수고 많으셨는데 이제 들어가 좀 쉬시지요.’ 한 마디 했다가 분위기 깬다고 핀잔만 먹었다. 앞에 앉은 과장들이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지사장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기가 오르고 있었다. “야, 똑바로 앉아. 자세 흩트리지 말고.” 호통에 과장들이 꼼짝도 못 하고 내리감기는 눈꺼풀과 씨름하며 자세를 바로잡고 경청하느라 죽을 애를 쓰고 있었다. 그렇게 술자리는 새벽 두시나 되어 끝났다. 식당주인이 이제 그만 가시라고 간청하지 않았으면 밤을 새웠을지도 모른다. 베스페이지 블랙코스 원정은 그 뒤로도 두어 차례 더 있었다. 한 번은 뉴욕지사 전 직원이 나가서 골프대회를 하기도 했다. 과장 몇 사람이 동원되어 ‘새벽 줄서기“를 해야 했던 건 물론이다.

 

그렇게 주말마다 함께 골프 치면 웬만하면 지난 감정을 풀고 사이도 좋아지련만 지사장의 기술부장 박해는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KEDO에 파견 나온 부처장이 안타까웠는지 나에게 윗사람에게 좀 고분고분하게 잘 해드리라고 했지만 나는 차마 옛날 감정 때문에 저러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본사에서 한 때 나의 직속상사였던 원자력 C처장님이 부인과 함께 오셨을 때 내가 아내와 함께 그 분들을 차에 태워 맨해튼 안내를 한 적이 있었다. 저녁에 뉴욕지사장이 C처장님을 접대하는 저녁만찬자리가 마련되었다. 뉴욕지사 전 직원이 참석하였다. 그 자리에서 C처장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지사장은 전 직원이 다 보는 앞에서 노골적으로 나를 공격하였다. “원자력직군끼리 잘 해봐라, 잘 되나 보자.”며 막말을 퍼부었다. 어이없고 황당했다.

 

또 본사에서 원자력발전처 Y처장님이 뉴욕에 오신 적이 있었다. 나는 원자력건설처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그 분과 같이 일해본 적이 없었지만 같은 원자력직군이라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괜히 목이 메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분은 “이 부장, 사무직 밑에서 고생이 많지?” 하는 한 마디로 나를 위로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