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영광 3,4호기, 울진 3,4호기

71. 취수구에 스테인리스 강철판을 끼워 넣는다고?

Thomas Lee 2023. 3. 19. 16:17

내가 본사 원자력건설처에서 울진 3,4호기 새끼 PM으로 불리는 공사운영3부장으로 일하던 1994년 가을쯤이었다. 울진 3,4호기 건설현장에서는 건설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고 발전소로 바닷물을 끌어들이는 취수구도 콘크리트 타설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복수기를 냉각시키기 위하여 호기당 6개씩 주냉각수 취수구가 있고 각 취수구에 1기씩 모두 6기의 대형 주냉각수 펌프가 설치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바닷물에는 온갖 부유물과 오물이 섞여 들어오기 때문에 해수취수구 입구에는 쇠창살 같이 생긴 고정식 바 스크린(Bar Screen)이 맨 앞에 설치되어 나무토막 같은 커다란 부유물을 막고 그 창살을 통과하는 좀 작은 오물들은 트래블링 스크린(Travelling Screen)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걸러내도록 되어 있다. 그렇게 걸러내지 않으면 오물이 발전소 안으로 들어와서 펌프를 손상시킬 수도 있고 복수기로 들어가 튜브들을 틀어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취수장(Intake) 트래블링스크린 출구에서 해수흐름에서 허용치를 넘는 소용돌이 와류가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울진 3,4호기에서 트래블링스크린을 신형(新型)으로 바꾼 것 때문이었다. 종래 영광 3,4호기까지는 트래블링스크린이 ‘One Through Type’이라고 해서 해수가 통과하면서 트래블링스크린이 아래로부터 위로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오물을 걸러내는 방식이었는데 바닷물의 오물의 일부가 스크린을 타고 뒤편으로 넘어가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울진 3,4호기에서는 해수가 스크린의 가운데로 들어와서 양편으로 나누어 빠져나가는 ‘Double Flow Type'으로 만들어져 오물이 아예 뒤로 넘어갈 수 없도록 설계된 신형 트래블링스크린이 채택되었다.

 

그 신형 트래블링스크린에서는 해수가 양편으로 나누어져 통과하기 때문에 나누어졌던 해수가 다시 합쳐지면서 와류가 심하게 발생하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 와류가 길이 10 미터가 넘는 수직형 펌프인 주냉각수펌프(CWP)의 축(軸)을 심하게 흔들어 펌프를 파손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 아이오와대학에서 수행된 수리모형실험의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는 것이었다. 이미 건설공사가 한참 진행되고 공정이 촉박하여 콘크리트 구조물을 철거하고 설계를 고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심각한 문제였다. 비상이 걸렸다.

 

플랜트종합설계 회사인 한기(한국전력기술: KOPEC)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했다. 물속에 콘크리트 기둥을 여러 개 세우는 방법, 취수구를 가로질러 보를 촘촘히 설치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기발하고 괴상스러운 아이디어들이 등장한 끝에 결국 트래블링스크린 후단에 수 천 개의 구멍을 ‘뽕뽕’ 뚫은 거대한 스테인리스 강철판을 설치하는 방법을 최종적으로 선택하였다. 그 스테인리스 강철판을 ‘Perforated Plate’라고 했다.

호기당 6개씩이나 되는 취수구에다 두께 2인치, 폭 약 5미터, 높이 약 10 미터가 넘는(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기억으로 대충... 아무튼 엄청나게 크다.) 거대한 스테인리스강판에다 지름 2인치짜리 구멍 수 천 개를 ‘뽕뽕’ 뚫은 Perforated Plate를 설치한다는 것이었다. 스테인리스강철판 값만 30억 원이 든다고 했다. 30억 원이라면 트래블링 스크린 구매가격이나 비슷한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런 거대한 스테인리스강철판을 취수구에 끼워 넣어야 한다니......., 참으로 어이없고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급박한 건설공정 때문에 다른 해결책을 강구할 시간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 일은 내 책임은 아니었다. 그것은 설계를 수행한 한기(KOPEC)의 책임이었고 토목부서의 책임이었다. 나는 프로젝트의 진행을 독려하고 건설공정관리를 챙기는 공사운영부장일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를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나는 1970년대초, 내가 아직 20대 젊은 나이로 부산화력에서 운전원으로 일할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부산화력 4호기 정기점검보수 때였다. 발전소를 세워놓고 보수부서에서 크레인으로 높이 10여 미터에 달하는 주냉각수펌프를 취수구로부터 끌어올려 꺼내어 발전소 마당에다 세워놓았다. 기다란 펌프 케이싱과 샤프트에는 따개비와 홍합들이 새까맣게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작업인부들이 족장목을 쌓아놓고 올라가 따개비와 담치들을 긁어내는 작업을 했다. 그런데 한 20대의 젊은 작업인부가 실족하여 콘크리트 바닥으로 추락해 죽었다. 그 뿐 아니었다. 1,2호기에서는 발전소를 세우고 정기보수작업을 하던 중 취수구에 붙은 따개비, 담치가 썩으면서 내뿜은 암모니아에 질식해 초급간부고시에 합격해 놓고 발령도 못 받은 채 문B씨가 젊은 아내와 어린 두 자식을 남겨두고 고인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내가 건설하는 이 울진원자력 3,4호기 취수구에 와류문제를 해결한답시고 거대한 스테인레스 강철판을 끼워 넣는다고? 그 강철판들을 끼워 넣으면 해마다 끌어올려놓고 따개비, 담치를 긁어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세계유일의 우스꽝스러운 원자력발전소를 만든다고? “안 돼. 말도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월권을 하기로 했다. 토목 설계부서를 찾아갔다. 아이오와 주립대에 가서 수리모형실험을 참관하고 돌아온 이W 과장을 만나서 아이오와 주립대에 가서 수행한 수리모형실험결과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시험결과 데이터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촬영해온 비디오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돌려보았다.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울진 3,4호기 취수구 축소모형을 만들어놓고 물에다 물감을 풀어가면서 해수의 흐름을 관찰, 기록한 실험결과는 와류발생이 허용치를 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허용치를 아주 크게 초과한 것은 아니었다. 대략 20% ~ 30% 정도로 허용치를 넘고 있었다.

 

“허용치를 20%, 30% 넘은 것 때문에 이 우스꽝스럽고 괴상한 스테인리스강판을 설치해야 한단 말인가?”

하긴 펌프가 파손될 수 있다면 20%, 30%가 아니라 1%, 2%를 넘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해마다 6개의 거대한 철판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꺼내서 따개비, 담치를 긁어내는 작업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다.

‘어느 놈이 발전소를 이 따위로 지었느냐고 욕을 하겠지. 내 잘못은 아니지만 울진 3,4호기 건설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무더기로 욕을 먹겠지.......‘

뭔가 해결방법이 있을 것도 같은데 뾰족한 해결방도는 없고 마음이 번거로웠다.

 

그러던 중 한국중공업과 ‘파사방(프랑스 계열 회사)’이라는 회사의 직원들이 나를 찾아왔다. 트래블링스크린 제작공급을 담당하는 직원들이라고 했다. 그들은 내게 말했다. “저희들은 이 부장님이라면 우리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실 것이라고 믿고 찾아왔습니다. 우리 파사방과 한국중공업은 우리가 공급하는 트래블링스크린으로 인하여 이런 바람직하지 못 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자존심과 명예가 걸린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미 이 문제를 검토하였고 거대한 스테인레스강철판을 설치하지 않고도 약간의 콘크리트 구조물 변경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내가 바라던 이야기였다. 내가 말했다.

“와류가 허용치를 겨우 20%, 30% 정도 넘는 것 때문에 거대한 스테인레스 강철판을 끼워 넣는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저도 화가 나고 어이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말씀대로 와류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시간이 없습니다. 이 문제로 취수장 콘크리트 타설공사가 진행되지 못 하고 있고 건설공정이 영향을 받는 상황입니다. 내년에 중요건설공정인 냉간수압시험과 고온기능시험 일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그들은 간곡히 내게 말하였다, “우리는 이미 기술적 검토를 했습니다. 우리를 믿어 주십시오. 6개월만 시간을 주십시오. 네델란드 델프트대학에서 수리모형실험으로 와류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겠습니다.”

 

‘6개월이라.... 지금도 건설공정이 늦다고 난리인데.....,’

나는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취수구에 스테인레스 강철판을 끼워 넣는 것도 한심스럽지만 공사지연은 더 큰 문제였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의 말을 믿고 델프트대의 수리모형실험에 기대를 걸고 선뜻 모험을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만일 델프트대 수리모형시험으로도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온다면?’ 그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것은 새끼PM인 나 뿐 아니라 PM인 이J 부처장님도 목을 걸어야 하는 일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결국 위험한 도전을 택했다.

나는 이 PM에게 말씀드렸다. “부처장님, 6개월만 주십시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나를 신뢰하는 PM이었지만 이 문제만큼은 큰 모험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선뜻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아이오와 수리모형실험결과를 내가 본 것과 그들의 계획과 또 나의 생각을 설명 드렸다.

“이 부장이 어떻게 책임을 지나? 내년에 3호기 냉간수압시험(CHT)과 고온기능시험(HFT) 일정 잡혀 있는 거 알지?”

“예, 압니다.”

“그 공정목표 못 맞추면 3호기 건설공정, 준공일자 물 건너가는 것도 알지?”

“예, 압니다. 그렇지만 취수구에다 스테인리스강판을 설치하는 건 차마 못 보겠습니다.”

“그래. 그건 나도 그래. 시공계약자와 이야기 다시 좀 해보자.”

이 PM은 시공자인 동아건설 PM을 다시 불러 취수구의 그 부분을 Block-Out"시켜 콘크리트 타설공사를 보류하고 다른 부분은 진행하여 공정지연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협의를 하였다. 마침내 PM의 결심이 떨어졌다.

“좋다. 해보자. 그런데 이 부장, 이거 잘못 되면 자네나 나나 끝이다. 6개월이다. 알았지?”

 

나의 지시에 따라 한국중공업과 파사방 사람들은 네델란드 델프트대학에 연락하여 수리모형실험 준비에 착수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일을 저질러놓고(?) 나서 그 결과가 나오기 전인 1995년 4월, 나는 뉴욕사무소 부장으로 전근을 갔다. 후속업무는 후임인 Lee SB 부장에게 인계하였다. 뉴욕사무소로 자리를 옮겼지만 그 일이 궁금해서 가끔 전화로 진행상황을 알아보기도 했다. 몇 달 지나서 소식이 왔다. 네델란드 델프트대학에서 수행한 수리모형실험 결과 냉각수펌프 흡입구 바닥에 크지 않은 콘크리트 돌기 구조물을 설치하면 와류문재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는 것이었다. 성공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울진 3,4호기는 하마터면 30억 원의 거금을 들여 취수구에 구멍 뽕뽕 뚫은 스테인레스강판을 설치한 세계유일의 ‘웃기는’ 발전소가 될 뻔 한 위기를 면했다.

그런데....., 얼마 후 웃기는 일이 또 있었다. 나의 후임 그 Lee SB 부장이 이 일을 가지고 1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공적보고서를 작성하여 그걸 자신의 공로로 만들어서 무슨 상과 상금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또 한 번 어이가 없었다. 이런 족제비 같은. 아니 SB 같은!

 

아무튼 나의 이 모험의 결과는 후속기들에도 계속 적용이 되었다. 만일 내가 그 모험으로 울진 3,4호기 취수구에 스테인레스강판을 설치하는 것을 막지 못 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울진 3,4호기는 거대한 철판을 끼워넣은 취수구를 가진 세계유일의 우스꽝스러운 원자력발전소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광 5,6호기, 울진 5,6호기 등 후속기들에서는 도로 옛날의 구형 One Thru Flow Type 트래블링 스크린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아니면 많은 비용을 들여 취수구 설계를 대폭 수정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모험의 결과로 그저 주냉각수 펌프 입구 바닥에 조그만 돌기 구조물만 설치하면 와류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 뒤로 영광 5,6호기, 울진 5,6호기, 신고리 1,2,3,4호기, 신월성 1,2호기, 신한울 1,2호기, 그리고 아랍에미레이트에 건설된 바라카 원전 1,2,3,4호기까지 모든 원전 후속기가 Double Flow Type 신형 트래블링스크린을 설치하고 취수구 바닥에 와류방지를 위한 조그만 돌기 구조물을 설치했다. 이 모든 발전소들의 취수구 바닥 물속에 설치된 작은 구조물들은 나의 모험을 기념하는 비석들이요 기념탑들이다, 그것들이 나를 기억하는지 모르지만.....

 

생각해보면 한국전력 역사상 나만큼 이런 공적을 남긴 사람은 별로 없다 싶다. 나는 영광 1,2호기에서 해외공급사들로부터 무려 55건, 수정작업비용 배상금 50만 불 이상을 받아내었고, MSIV를 공급한 Atwood and Morrill 사의 책임을 물어 100만 불을 받아내었고, 영광 3,4호기에서는 격납건물 폴라크레인 위에 접근용 사다리를 설치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수천억 원인지 얼마인지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기여를 하였고, 울진 3,4호기에서는 지진가속도의 불합리를 따져서 830만 불에 살 뻔 한 원자로케이블을 150만 불에 구매하여 680만 불을 절감하도록 하였고, 또 하마터면 울진 3,4호기에서 수십억원을 들여 설치할 뻔 한 스테인리스강판 설치를 막았고 모든 후속기에 신형 트래블링스크린이 채택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공로를 세운 사람이 또 있을까?

 

그러나 회사가 내게 해 준 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바란 적 없다. 하필이면 내가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최선을 다 해서 해냈을 뿐이다. 아니 회사가 내게 해 준 게 있긴 있다, 배신. 나를 마흔 여덟 살의 한창 나이에 불법적인 한시퇴직으로 명예퇴직금도 빼앗고 쫓아낸 파렴치 범죄행위......

후배들은 알기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