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뉴욕사무소

75. 미국 탈원전의 어두운 그림자

Thomas Lee 2023. 3. 24. 14:35

1995년 4월부터 1998년 4월까지 3년간 뉴욕사무소에서 기술부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회사를 위하여 내가 한 일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 회사생활 30년 가운데 일은 가장 적게 하고 혜택은 가장 많이 누린 시기였던 셈이다. 1995년 당시만 해도 누가 뭐래도 해외주재원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가족과 함께 누리는 3년의 해외생활은 특혜였다. 뉴욕사무소의 업무는 크게 힘들거나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영광 3,4호기와 울진 3,4호기에 공급되는 기자재를 제작하는 많은 미국업체들이 있었지만 과장들이 분담을 하여 제작진도를 점검하고 품질검사를 하였고 그저 미국업체들이 납품만 제대로 해 주기만 하면 만사형통이었고 우리는 그저 주말에 골프만 열심히 치면 되었다.

 

제작공장을 방문할 때도 몇 시간을 운전해서 가거나 비행기를 타고 가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제작업체들이 하기에 따라 제작진도 점검이나 독려, 품질검사 업무 또한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도 아니었다. 아침에 제작공장을 방문하여 대개 몇 시간이면 일이 끝났다. 그러면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미국에서는 봄부터 가을까지 썸머타임인지 일광시간절약(Daylight Saving Time)이 시행되어 저녁 8시가 넘어야 해가 지니 더욱 그랬다. 그래서 공장방문 출장을 갈 때는 골프채를 챙겨 가지고 가서 일을 마치고 나면 골프를 쳤다. 제작업체에서 담당직원을 붙여서 골프장을 안내하고 함께 골프를 치기도 했다. 바쁘고 시간이 맞지 않을 때는 그럴 수 없었지만 이것 또한 우리의 은근하고 비밀스러운 즐거움이기도 했다.

 

더러 문제를 일으키고 속을 썩이는 제작업체도 있었다. 델라웨어 윌밍턴에 있던 ‘에이머(Amer)’라는 회사가 배관맥동방지설비를 제작하면서 설계를 잘못 하고 제작이 늦어지고 시험을 잘못 하는 바람에 부장인 내가 한기(KOPEC) 기계부장과 함께 여러 차례 방문하여 설계의 잘못 된 부분, 제작이 잘못 된 부분, 시험이 잘못 된 부분을 하나하나 바로잡아야 했다. 그런 형편없는 제작업체가 어떻게 영광 3,4호기와 울진 3,4호기의 기자재 납품업체로 선정되고 공급계약자가 되었는지 의아했다. ‘Amer’란 회사 이름은 사주(社主)의 성(姓)이었는데 그 사주라는 뚱뚱한 아랍계 미국인은 고급승용차에다 ‘에이머’라는 번호판을 붙여서 타고 다니고 있었고 집에서 말을 키우고 승마를 즐긴다면서 말 탄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그 업체 때문에 우리가 고생을 좀 한 셈인데 그 때 나와 함께 그 제작업체를 다니던 한기 기계부장 Cho W씨가 한국으로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어 병으로 아내와 아들을 남겨놓고 세상을 뜬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또 나는 한기 전기부장과 함께 앞서 이야기한 적 있는 830만 불짜리 원자로 원자로케이블을 150만 불에 수주한 알라바마의 케이블 공장도 방문하였다. 게리 엘람이라고 이름이 기억나는 사람이 제작책임자였는데 한 쪽 다리가 온전치 못 하여 보행이 불편하였지만 성실하고 책임 있게 제작업무를 수행해 주었다. 그 때 그 업체에 함께 갔던 한기 전기부장 Choi H씨도 암으로 부인과 두 딸을 미국 땅에 남겨놓은 채 고인이 되었다. Choi 부장이 뉴욕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찾아가 그 앙상한 손을 잡고 기도하던 기억이 내게 깊은 슬픔으로 남아있다.

 

나는 그 케이블을 830만 불에 수주하려다 실패한 코낙스버팔로사도 두어 번 방문하였다. 그 회사는 뉴욕주 나이아가라 폭포가 가까운 버팔로(Buffalo)에 있었는데 영광 3,4호기와 울진 3.4호기 격납건물 관통설비(Penetration)들을 제작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그들로 830만불짜리 케이블을 팔아먹지 못 하게 만든 바로 그 범인(?)이라는 건 알지 못 하였을 것이다.

 

커넥티컷주 하트포드 북쪽 윈저(Windsor)라는 곳이 자리 잡은 ABB-CE(컴버스쳔엔지니어링)에는 우리 한전 과장 한 사람이 상주하고 있었고 한국중공업에서 파견된 직원 두 사람도 근무하고 있었다. 또 원자력연구소에서 파견되어 나와서 공동설계를 하는 인원과 또 연수를 받는 수십 명의 훈련인원들이 있었다. ABB-CE는 드넓은 부지에 제작공장과 연구소를 갖추고 있었고, 그 보다 훨씬 규모가 큰 중기계 제작공장과 설비들을 뉴햄프셔주 뉴잉턴(Newington)에 가지고 있었다.

 

잘 알려진 대로 1979년 발생한 드리마일 아일랜드(Three Mile Island, TMI) 원전사고로 인하여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US NRC)는 원자력안전요건을 엄청나게 강화하였고 이를 건설중이던 원전들에도 적용토록 요구하였다. 이 바람에 엄청난 추가비용을 감당하지 못 한 전력회사들이 원전건설을 줄줄이 포기하였고 워싱턴주에서는 공정 90%에 이르러 곧 준공단계에 있던 원전마저 포기하였다. 그리고 그 후 30여년 세월 미국에서는 단 한 기의 원전도 새로 건설되지 못 했다. 1979년의 드리마일 원전사고로 몰아닥친 탈원전 태풍에 미국의 원자력산업이 초토화된 셈이다. 웨스팅하우스나 CE나 GE, 그리고 수많은 원전제작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발버둥을 쳤다. 이들 원전업체들은 한국의 원전건설에 참여하고 중국에 진출하는 것으로 활로를 모색하였지만 수십 년 계속된 탈원전 속에서 버텨내고 살아남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1979년 드리마일 아일랜드 원전사고로 시작된  탈원전 태풍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강타하였다. 그런데 한국은 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여 영광 3,4호기에서 CE와 GE를 한국중공업과 원자력연구소의 하청계약자로 만들고 싸전트 앤 런디를 한기의 하청계약자로 만들어 원자력기술자립을 추진하였고, 강화된 TMI 안전요건을 적용하면서 원전건설을 계속하였고, 한국형원자로를 설계, 개발하였고 마침내 아랍에미레이트에 원전을 수출하는 세계최고의 원전건설강국이 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한국의 영광 3,4호기 수주전에서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에 일감을 빼앗긴 웨스팅하우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고리 1호기와 2호기를 턴키(Turn Key)방식으로 건설하고, 고리 3,4호기와 영광 1,2호기에서 원자로설비와 터빈발전기를 공급하여 한국의 원전을 장악했던 그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는 한국중공업의 하청계약자로 허리를 굽히고 들어온 컴버스쳔엔지니어링과 제너럴 일렉트릭에 영광 3,4호기 한국 원전시장을 빼앗긴 다음 일감부족과 경영난으로 결국 원자력 파트를 매각하고 정리한다는 이야기들이 들렸다. 컴버스천엔지니어링은 ABB사가 인수, 합병하여 ABB-CE가 되었고 한국중공업의 하청계약자로 영광 3,4호기와 울진 3,4호기 원자로설비를 공급하였다. 그리고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2000년대 중반 무렵 웨스팅하우스는 절치부심 끝에 부활하였고 이번엔 거꾸로 웨스팅하우스가 컴버스쳔엔지니어링을 인수하게 된다. 컴버스천엔지니어링을 인수한 웨스팅하우스는 원한 맺힌 보복인지 몰라도 윈저에 있던 컴버스쳔엔지니어링 본사를 깡그리 밀어 없애 버렸다. 내가 2014년에 윈저에 다시 가보았더니 건물들은 온데간데없고 쑥대밭으로 변해버린 드넓은 부지 입구의 초소에서 경비원이 나를 막아섰다.

 

웨스팅하우스는 그러나 경영난으로 인하여 2014년 그 때에는 일본의 도시바(Toshiba)에 인수되어 있었고 한국중공업과 함께 한국전력의 아랍에미레이트 바라카 원전에 원자로설비를 공급하고 있었다. 또 웨스팅하우스는 AP1000이라는 원전모델을 설계, 개발하여 중국에 진출하였고 미국에서도 죠지아주에 보글(Votgle)원전 등 원전을 건설하고 있었다. 그런데 죠지아 보글원전 건설공사는 순조롭지 못 했다. 30년 동안 미국의 원전건설이 중단되고 원전산업계가 완전히 붕괴된 상태라 기자재 공급이나 시공이 원활하게 진척되지 못 했다. 거기에다 웨스팅하우스가 건설공사비를 줄이려고 최대한 공장에서 조립하여 건설현장에서 끼워 맞추면 되도록 모듈화 설계를 하였는데 실제 건설현장에서 조립하려니 맞지 않는 불일치 문제가 너무 많이 발생하였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하여 시간을 끄는 바람에 공사는 지연되고 공사비는 당초예산의 두 배, 세 배, 하염없이 늘어났고 결국 보글원전은 건설을 포기하였고 막대한 손실을 입은 웨스팅하우스는 2017년 파산신청을 하고 2018년 캐나다의 자산운용사 브룩필드에 매각되었다. 미국판 탈원전으로 인한 원전산업붕괴의 심각한 후유증은 아직도 계속중인 것이다.

 

터빈발전기를 제작하는 제너럴일렉트릭(GE) 본사와 공장은 뉴욕주 주도(州都)인 알바니(Albany) 서쪽 스케넥터디(Schenectady)에 있었다. 컴버스천엔지니어링과 함께 영광 3,4호기와 울진 3,4호기 터빈발전기를 제작하였는데 1995년, 거기에도 한국중공업 직원 두 사람이 나와 있었다. GE도 일감부족으로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1995년 당시 스케넥터디 시내에 가보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떠난 빈집들과 빈 아파트들이 흉물스럽게 늘어서 있었다.

 

그 때 GE는 감량과 긴축에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잭 웰치 회장은 무자비한 감량과 감원을 밀어붙이고 있었고 나이 많은 간부직원을 자르고 대신 해군사관학교 출신 젊은 사람들을 데리고 와 프로젝트매니저로 앉혔다. 내가 GE공장을 방문하면 군기가 바짝 든 사관생도 같은 젊은 PM이 ‘씩씩하고 절도 있게’ 나에게 제작진도보고를 하고 제품이 제작되고 있는 공장으로 나를 안내하였다. 또 GE 공장에서는 “식스 시그마”라는 이름의 "반복해서 걸러내어서 짜고 또 걸러내고 짜는" 방식으로 불량과 품질문제를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품질관리체제를 정착시켰다. 그리고 공장에는 고압의 물을 분사하여 철금속을 절단 가공하는 새로운 공작기계들이 도입되었다. 이러한 경영개선 노력 끝에 GE는 다시 경영정상화를 이루고 막대한 흑자를 내어 2000년대 초반 한 때 시중에는 GE머니라는 이름의 대출융자 상품이 등장하기도 하였고 잭 웰치 회장은 뛰어난 경영귀재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하였다. 아무튼 내가 뉴욕사무소에 근무하던 1995년부터 1998년까지 3년 동안에도 미국 원자력산업은 동면기, 빙하기였던 셈이고 GE 공장을 방문할 때마다 내가 보았던 스케넥터디 시내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은 그 미국판 탈원전의 어두운 그림자였던 셈이다.

 

그 때 탈원전에 짓눌려 있던 미국의 원자력전력업계의 중요한 화두는 원전의 수명연장이었다. 전력회사들과 원전산업체들은 건설한 지 40년이 된 원전들을 영구정지, 폐쇄하지 않고 증기발생기 같은 중요핵심설비를 교체하고 발전소의 노후설비들을 고치고 보수하여 US NRC의 연장운전허가를 받아내어 계속 운전하는 방안과 문제를 연구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협력하기 위하여 회의도 하고 세미나도 열었다. 이러한 경영정보들은 INPO에 나가있는 부장의 업무이기도 했지만 뉴욕사무소의 기술부장과 과장들도 몇 차례 그러한 회의와 세미나에 참석하였다.

 

더 이상 원전을 건설할 수 없었던 미국의 전력회사들에게 기존 원자력발전소 수명연장은 회사의 명운(命運)이 걸린 중대한 문제였다. 세미나에 참석하여 들은 이야기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발표자가 큰 비용을 들여서 원전을 완전히 고쳐서 새것처럼 만들어 돌린다 해도 감가상각비와 금융비용을 고려할 때 여전히 엄청난 이득이라고 열을 올려 설명하던 모습이었다. 40년을 돌린 원전은 감가상각이 끝나서 재무장부가격으로 영(제로)이 되므로 연장하여 운전한다면 거짓말 좀 보태서 거저줍는 거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지금 미국은 100 기가 넘는 원전들 거의 전부가 40년을 넘겼고 대부분의 원전들이 개조와 보수를 거쳐 지금 60년, 혹은 80년 기한으로 연장운전중이다. 미국의 전력회사들은 그렇게 원전수명연장에 의존하여 지금까지 버텨오고 연명해온 셈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런 식으로 연명해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도 소형원전이나 액체금속냉각재 원전, 수소핵융합이 실용화에 성공한다면 꿈같은 에너지원이라는 수소핵융합으로 가게 되겠지만 그 때까지 기존 원전들을 최대한 고쳐서 연장 운전하는 것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에너지 공급대책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원전들은 워낙 튼튼하게 건설되기 때문에 건물이나 구조물이나 많은 설비들은 수십 년, 아니 백 년, 백수십 년을 지난다 해도 여전히 건재할 수밖에 없고 펌프나 밸브, 구동장치 같은 일부 노후화되는 설비들과 부품들을 교체한다면 얼마든지 연장하여 운전할 수 있다. 설비의 교체범위를 최대한으로 넓게 하여 많은 비용을 들인다 해도 원전을 처음부터 건설하는 비용 보다는 훨씬 적게 들 수밖에 없다. 보도된 바와 같이 월성 1호기를 고치는데 들어간 비용은 7천억원이지만 만일 월성 1호기를 다시 건설했다면 3~4조원은 들었을 것이다. 3~4조원 들여 건설한 원전과 7천억원을 들여서 고친 원전, 어느 쪽의 발전단가가 저렴하겠는가?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월성 1호기를 경제성조작을 해가면서까지 밀어붙여 결국 생매장해 버렸다.

 

원전건설에 들어가는 금융비용도 그렇다. 원전의 공사비는 집을 살 때 받는 장기대출금융 모기지(Mortgage)나 마찬가지다. 막대하게 투입된 건설비용은 해마다 원금과 이자를 갚아나가야 하고 그것은 전력생산단가에 포함된다. 만일 한국의 원전들을 수명연장 하여 미국처럼 60년, 80년 가동한다면 그 수명연장 재가동 시점부터는 기존의 감가상각이 끝나고 금융비용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에 원전의 전력생산단가가 대폭 낮아지게 되고 이는 경영개선, 전력요금의 인하와 국제경쟁력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수명연장’이라는 단어에는 문제가 있다. 40년 설계수명은 원전의 기자재, 설비들 가운데에서 가장 수명이 짧은 부분의 내구연한을 말하는 것이지 원전 전체의 수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동차의 타이어가 다 닳았다고 멀쩡한 차를 폐차하지는 않는다. 타이어의 수명을 차량의 수명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오래 된 차를 엔진이나 트랜스미션을 교체하여 타고 다닌다. 그게 돈 아끼는 방법이고 돈 버는 방법이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일부 설비와 부품을 교체하면 얼마든지 쌩쌩하게 돌아갈 수 있는 원전을 타이어가 다 닳았다고 폐차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미국은 가난해서 원전을 60년, 80년 고쳐서 돌리고 한국은 돈이 많은 부자나라여서 값비싸게 건설한 원전을 40년 쓰고 내버린단 말인가?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에 이어 고리 2호기, 고리 3,4호기, 영광 1,2호기, 울진 1,2호기 등 곧 40세가 될 젊은 원전들이 고려장 당하려고 줄을 서있다.

 

문재인 정부는 절반가량이나 공사가 진척된 신고리 5,6호기 건설까지 중지시키고 공론인지 뭔지 법석 끝에 마지못해 건설재개를 허가하였지만 건설초기단계에 있던 신한울 3,4호기 건설은 기어이 중단시켜버리고 모든 후속기 건설계획을 백지화시켜버렸다. 그리하여 세계최고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갖춘 국내원자력산업계를 고사시켜버렸다. 많은 원자력기술인력들이 먹고 살기 위하여 중국으로 중동으로 흩어졌고 수많은 원자력 제작업체들은 눈물을 흘리며 제작설비를 뜯어 헐값으로 팔고 공장문을 닫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는 반핵단체, 환경운동단체 인사들을 갖다 앉혀서 운전중인 원전들의 가동을 방해하는 온갖 악랄하고 야비, 치사한 짓을 했다. 고리 1호기를 영구폐쇄하고 월성 1호기를 경제성조작으로 억지정지를 시켰다. 콘크리트 공극을 트집 잡아 영광 3,4호기를 몇 년이나 세워놓았고 인허가 심사를 핑계로 신한울 1,2호기의 준공과 가동을 미루었다. 한 두 달이면 끝날 핵연료교체를 석 달, 넉 달씩 하도록 만들어 원전들을 못 돌리게 훼방하여 원전가동율을 70% 이하로 낮추고 대신 값비싼 LNG를 들여와 한 해에 십수 조원씩을 연기로 펄펄 날려먹었다. 태양광, 풍력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며 중국산 태양광 패널로 전국토를 시꺼멓게 뒤덮었고 나라살림을 거덜 내었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이 탈원전을 폐기하고 원자력 복구를 위하여 노력한다지만 이미 야만적인 탈원전 테러로 파괴되어 참혹한 폐허처럼 되어버린 대한민국 원자력은 쉽게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생각할수록 어이없고 참담하고 분통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