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영광 1,2호기 건설현장 14

49.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원자력발전소가 어떻게 건설되는 것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기초과학부터 첨단기술까지, 토목공사로부터 정밀기계와 컴퓨터까지 포함하며, 과학기술 뿐 아니라 금융, 법률, 상거래, 사무, 인력관리 등, 모든 경영분야를 망라하는 기술과 자본, 인력의 총력전이며 거대하고 치밀한 경영매카니즘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원자력건설에 종사하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한국인들은 자기분야의 일은 잘 한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프로젝트는 어렵다. 단독으로는 뛰어난데 협업은 약한 것이 한국인들이 아닌가 싶다. 삼성전자가 반도체와 핸드폰 분야에서 세계정상급 수준에 있지만 발전소를 구상하고 설계하고 복잡한 설비를 만들고 프로젝트를 해낸 것은 서양인들이다. 증기기관차부터 시작..

48. 원전건설현장 기계기술계장

영광 1,2호기 건설공사는 순조롭게 시작되지 않았다. 내가 초임계장으로 본사 원자력건설부에서 일하던 1981년, 현대양행이 쓰러지고 전두환 국보위가 나서서 현대 정주영 회장과 대우 김우중 회장을 불러놓고 누가 자동차를 하고 누가 발전설비를 할 테냐 하는 빅딜을 시도하였을 때 영광 1,2호기, 곧 원자력 7,8호기의 건설공사는 정지작업과 굴토, 그리고 기초콘크리트 작업이 진행되던 초기단계였다. 그 때 정주영 회장과 김우중 회장이 ‘자동차를 하겠다,’, ‘발전설비를 하겠다,’, ‘아니다. 도로 바꾸자,’면서 몇 차례 번복하고 오락가락하였고 영광건설현장에서는 회장님들의 말 한 마디에 현대와 대우가 불도저를 몰고 건설현장에 들어왔다가 나갔다 들락날락했다는 이야기는 앞서 한 적이 있다. 인근 주민들의 반감도 심했..

47. 십자가 네 개, 10월 10일 10시 10분

내가 쌍문동 연수원에 초급간부교육을 받기 위하여 입소한 것은 1983년 8월 하순이었다. 잊을 수 없는 일이 그 때 일어났다. 바로 9월 1일에 전해진 KAL 007기 격추사건이다.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던 그 날 아침 전해진 엄청난 뉴스는 그야말로 끔찍하고도 두려운 것이었다. 소련공군기의 미사일에 맞아 269명의 목숨이 한꺼번에 국화꽃잎처럼 산산이 부서져 사할린 검은 바다에 떨어진 사건...... 아무리 공산당 유물사관으로 인간의 목숨을 우습게 아는 저들이라지만 어떻게 저럴 수가.......! 밤하늘을 날던 비행기가 미사일로 피격되던 그 순간, 그 미사일은 비행기의 어느 부분에 맞았을까? 미사일이 폭발한 순간 그 자리와 그 근방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비행기는 동강이 났을까, 큰 구멍이 난 채..

46. 보조기기 구매 기술업무

다시 서울생활, 본사생활이 시작되었다. 홀아비 도시락 싸들고 아리조나 사막길을 달려 건설현장으로 가다가 이제 아내가 지어주는 밥을 먹고 잠실에서부터 버스가 내뿜는 매연을 마시며 회사로 출근하는 그 생활로 돌아간 것이었다. 본사는 그 때 청담동 경기고등학교 맞은 편 한라빌딩에 입주해 있었다. 그 무렵 고리 3,4호기 건설공사는 중반에 접어들어 한창 진행중이었고 영광 1,2호기 공사는 초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고리 1호기 복수탈염설비는 내가 귀국하기 얼마 전인 1982년 6월말 30개월 공사기간 계획대로 완성되어 계통에 성공적으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내게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대우엔지니어링 염B 상무님이 내가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서 보고(?)를 해 주셨다. “고리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