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영광 1,2호기 건설현장

51. 복수기 목욕 시키기

Thomas Lee 2022. 9. 6. 16:32

이번에는 5년 동안 영광 1,2호기 기계기술과장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몇 가지 일들을 나의 기록과 기억을 더듬어 몇 개 적어볼까 한다.

 

1. 복수기 목욕시키기

 

호기당 3 대의 복수기는 각각 길이 약 20M, 너비 약 12M, 높이 약 20M의 거대한 철판 통이다. 제작공장에서 부분품으로 가공되어 건설현장에서 터빈 아래에 조립, 설치된다. 복수기 안에는 길이 18 미터에 달하는 손가락 굵기의 기다란 튜브 2만 여개가 촘촘히 들어간다. 그러니 호기당 3 개의 복수기에 들어가는 티타늄 튜브는 6만 개가 넘는다. 그리고 이 티타늄튜브로 바닷물이 통과하면서 터빈을 돌리고 나오는 증기를 냉각시켜 다시 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오랜 건설기간 동안 복수기를 조립하는 과정에서 탄소강재가 녹슬어 부식될 것이므로, 기술용역사(벡텔)는 복수기 내부 구석구석을 물에 녹는 방청도료로 도포하도록 기술사양서에 명기하였고, ARCOHIB-C-135라는 특수도료가 제작공장과 건설현장에서 사용되었다.

즉, 이 특수도료는 건설 중에는 녹 발생을 막고, 나중 시운전 때 터빈급수계통을 세척(Flushing)하면 저절로 물에 녹아 제거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4년 3월, 복수기의 조립이 거의 끝나고 배관을 연결 설치코자 할 때, 이 도료가 물로도 씻기지 않고 뜨거운 증기로 불어도 씻기지 않는 딱딱한 상태로 굳어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기계감독계에서 작성한 부적격보고서(NCR) 우리 기계기술계로 날아왔다.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그냥 두면 이 도료들이 서서히 주급수계통에 섞여 복수탈염설비의 이온교환수지를 싸발라 망가뜨리고, 계속하여 증기발생기로 들어가 스케일을 만들 것인데, 수 만개의 티타늄튜브가 빽빽한 복수기 속을 무슨 재주로 긁어낼 것인가? 그렇다고 지금까지 몇 년 간을 공들여 조립한 복수기를 산산조각 도로 뜯어낼 것인가? 실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나 벡텔사의 도료선정 잘못을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나는 즉시 벡텔사로 텔렉스를 보내 상황을 설명하고 도료세척방법연구를 지시하였고, 벡텔사는 6개월여의 실험실 연구 끝에, 복수기에 물을 채우고 6가지나 되는 수 천 포의 약품을 용해하여 82℃ 정도로 가열한 다음, 이를 순환시키면 복수기 내부의 도료를 제거할 수 있다고 알려왔다.

 

건설현장은 벡텔사의 지시에 따라 복수기 화학세정작업을 위하여 보조보일러로부터 증기배관을 복수기로 연결하고, 복수기 속에 배관과 노즐을 설치하고, 대형펌프 2대, 용수공급배관, 순환배관, 세척수 배출배관과 약품용해장치를 설치하는 한편, 약 200톤에 달하는 6종류의 약품을 구입하였으며, 터빈발전기 설치공정에 영향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7호기는 85년 8월에, 그리고 8호기는, 한겨울인 85년 12월에, 약 2주일이 걸리는 세척작업을 해야 했다.

물론 그 임시설비들을 어떻게 구성하여 설치할 것인가를 설계하고 구매부서에 약품구매를 요청하고 독려하는 일들이 다 우리 기계기술부의 일이었다. 그렇게 복수기 도료제거작업이 수행되었다.

 

작업자들이 눈을 맞으며 수 천 포의 약품을 뜯어 넣던 일, 벡텔사가 설계한 약품 용해설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뜯어고치기를 여러 차례, 결국은 용해조를 뜯어내어 다른 높은 위치에 다시 설치한 일, 벡텔사가 약품량을 잘못 산출한 것을 발견하여 부랴부랴 긴급 추가구매를 한 일, 밤을 새워 보조보일러를 운전하고, 펌프를 돌리고, 밸브를 돌리고, 세척폐수가 넘칠까봐 애쓰던 일...... 지금도 아련한 추억이다.

잘못 선정된 방청도료가 만들어낸 엄청난 일은 이렇게 수행되었다.

덕분에 복수기는 8 억원 짜리 뜨뜻한 고급 비눗물에 목욕 한 번 잘 했고......

 

벡텔사는 고리 3,4호기에서는 다른 종류의 도료를 사용토록 했었단다. 그런데 이슬만 내려도 씻겨 버리니 녹방지 효과가 없었단다. 그래서 다른 도료를 찾아서 ARCOHIB-C-135를 사용하도록 했는데 그것이 이렇게 큰 실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벡텔사로 손해배상청구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도 있었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 한 벡텔사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2. 한전 역사상 최대 중량물 429톤 발전기 고정자

 

1984년 12월, 95만KW급 원자력발전소라, 발전기 또한 대형설비답게 헤비급 체중을 자랑하며 건설현장에 도착하였다.

발전기 고정자(Stator)는 강철로 만들어진, 길이 약 10M, 높이 약 4M 크기의 몸체 속에 철심과 코일을 감아놓은 그야말로 무게의 덩어리. 나중 회전자(Rotor)가 삽입 설치되면 발전기가 완성되게 될 것이었다.

 

GE사가 제작한 고리 3,4호기의 발전기는 수소냉각장치를 현장에서 조립토록 되어있어 그만큼 덜 무거웠는데, 웨스팅하우스가 제작한 영광 1,2호기의 발전기 고정자는 수소냉각 장치를 이미 포함한 구조로 되어 있었고 429톤이나 되는 한전의 건설사상 최대 취급 중량물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영광 1,2호기 설계는 고리 3,4호기의 설계를 복제(Replication)하였으므로 429톤을 인양할 수 있는 용량이 아니었던 것이다.

1968년 가을이던가, 서울화력 5호기 25만KW급 증기터빈 회전자 약 230톤 무게가 한강인도교를 건널 때 떠들썩하던 매스컴의 보도를 기억하는 분들은 429톤이 어느 정도일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터빈건물 크레인은 불과 230톤 용량, 5,6호기에서 사용된 다음 영광 1,2호기로 옮겨온 중량물 인양용 특수 크레인도 400톤 용량밖에 되지 않아, 건설현장에서는 이 헤비급 괴물을 어떻게 터빈건물 10M 높이에 들어 올릴 수 있을지 아득하였다. 섣불리 대들었다가 크레인이 무너지는 날이면? 이미 8호기 격납건물 돔 철판 사고를 겪은 터라,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그러나 해내야 한다면 못 해낼 일 있을까. 지름 4인치 (약10Cm), 길이 약 26M의 대형 와이어로프 2개를 긴급수배토록 벡텔사에 지시하는 한편 영광원자력의 벡텔사 기술자들을 총동원하여 400톤 특수 크레인의 도면을 펴놓고 며칠을 두고 부분 부분의 강도와 구조응력을 계산하고, 크레인의 구조를 고치는 방법을 검토한 끝에, 지지컬럼을 한곳에 더 세워 보강하면 크레인 와이어 드럼이 약 5Cm쯤 쳐진 상태에서 400톤 크레인이 429톤의 중량물을 지탱할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해 내었다.

그리고 이 계산과 구조수정방법에 따라 크레인을 고치고 보강한 다음 약 500톤짜리 콘크리트 덩어리를 매달아서 리허설을 하여 안전성을 확인하였으며, 이 때 측정장비를 크레인 구조물의 요소마다 설치하여 변형을 측정하고 계산의 결과와 비교 검토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리허설을 해보고도 마음 놓을 수가 없었고, 영하의 추운 날씨에 혹시 철구조물이 혹 취성을 일으킬까봐 걱정이 되어 대형 가스버너까지 동원하여 크레인 기둥을 데워 가면서 발전기 고정자 인양작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발전기 고정자를 매단 이만기 선수 팔뚝만큼 굵은 와이어로프 네 가닥이 끊어질듯 팽팽히 당겨지고, 크레인 구조물이 힘겨운 듯 용을 쓰고, 429톤의 고정자가 서서히 끌어올려지던 순간을 지켜보던 조마조마한 마음이야 !

 

 

3. 목욕물을 데워서 윤활유를 가열하는 기발한 아이디어

 

터빈발전기의 유(油)계통 배관은 탄소강재 파이프로 이루어져 있으며, 배관설치가 다 되면 파이프 안쪽의 녹, 이물질, 용접찌꺼기를 깨끗이 씻어내는 유세정작업이 되어야 하는데, 그 방법은 4시간 만에 윤활유 온도를 82℃ 이상으로 급속가열 했다가 다시 4시간만에 이번엔 18℃ 이하로 급속히 냉각시키기를 반복하면서, 유계통배관 내부로 순환시켜, 열팽창 수축을 이용하여 녹피막 같은 것이 떨어져 나오게 하는 방법이며, 순환되는 윤활유의 필요양은 약 20,000갤런 (8톤 유조차 10대분), 작업기간은 윤활유가 깨끗해질 때까지 수개월이 소요된다.

 

유계통 가열을 위한 가열설비는 1,100KW 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계산되었는데, 가열기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가 고심꺼리가 되었다.

이 때문에 7,000KW나 되는 보조보일러를 가동하여 돌렸다 세웠다 하고, 또 수백 미터의 증기배관을 설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선행호기인 고리 3,4호기에서는 어떻게 했느냐고 알아보았더니 2억인가 3억 원이나 주고 전기히터를 사서 사용하였단다. 그래서 웨스팅하우스에 좋은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더니 가열설비도 붙어있지 않는 3억원 짜리 장비나 사라고 권유한다.

 

손쉽게 아무 방법이나 돈만 들인다면 쉽겠지만 단 한 푼이라도 외화절감, 공사비절감 해야 한다는 의협심이 또 발동하였다. 비용 덜 드는 방법 없을까?

궁리 끝에 발전소 직원들이 방사선 작업후 샤워를 할 수 있도록 출입통제건물에 설치되는 270 KW 짜리 온수가열기 4 대를 이용할 수 없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이 온수기들을 모아놓고 윤활유 냉각기(열교환기) 에다가 온수를 냉각수와 번갈아 공급한다면 윤활유가 더워졌다, 식었다 하겠지. 그런데 기껏 90℃ 정도의 온수로 4시간 만에 18℃의 윤활유 20,000갤런을 82℃까지 덥히는 것이 가능할까, 자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없다고 포기하고 3억원짜리 전기가열기를 구입해버릴 수는 없는 일.

다행이 한기로부터 우리 기계기술계에 파견되어 함께 일하는 직원 가운데 양Y씨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이 문제를 검토하도록 요청하였다.

비열, 열량, 온도, 점성계수, 열전달계수, 배관두께, Fouling Factor, 방정식.....

그 친구가 밤을 새워 전공기술서적을 뒤적이며 계산기를 두들겨 보고 이 기발한 방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계산해 내었다.

 

이리하여, 이미 설치까지 완료된 온수가열기를 출입 통제건물로부터 도로 뜯어내어 터빈발전기 옆에 끌어다 놓고, 물탱크, 송수펌프, 임시배관을 맞추어 조합하여 최신형(?) 온수가열방식 윤활유가열설비를 구성하였다.

역시 그 친구의 열전달 계산이 맞아들어, 이 기발한 아이디어의 설비는 터빈 윤활유계통 세정작업을 훌륭히 수행해 내었으며, 3억 원 이상의 공사비를 절감하는 공을 세웠다. 85년초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