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영광 1,2호기 건설현장

50. 한국식 공정관리와 세계 최저가 원전건설

Thomas Lee 2022. 8. 31. 05:13

우리나라의 80년대는 실로 대한민국 원자력발전소 건설의 전성기였다. 78년에 고리 1호기가 준공되고 5년 뒤 83년에는 고리 2호기와 월성 1호기가 준공되었다. 고리 1, 2호기는 웨스팅하우스, 월성 1호기는 캐나다원자력공사(AECL)가 건설하여 한전에 열쇠를 넘겨주는 턴키(Turn Key)방식이었다.

이후 고리 3,4호기부터는 한전이 건설공사의 주인이 되어 난턴키(Non Turn Key)방식으로 건설하였다. 그리하여 85년 고리 3호기, 86년 고리 4호기와 영광 1호기, 87년 영광 2호기, 88년 울진 1호기, 89년 울진 2호기, 그야말로 해마다 원전이 잇달아 난턴키 방식으로 준공되었다. 원전의 잇단 준공으로 대한민국의 전력단가는 80년대의 엄청난 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떨어져 82년 kwh당 70원 수준이던 판매단가가 91년에는 54원 수준으로 20% 이상 내려가는 황당한(?) 기적으로 나타났다. 발전단가는 약 50원에서 약 30원으로 무려 40%나 내려갔다.

 

당시의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전기값이 10분의 1 이하로 내려갔다고 할 수 있다. 전등 하나 켜는 것도 무서워 달달 떨었던 국민들에게 전기는 이제 아무 때나 걱정 없이 펑펑 쓰는 것으로 바뀌었고,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의 전력요금이 세계에서 가장 값싸고 일본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게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원자력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수출경쟁력은 엄청나게 제고되어 경제발전을 견인하게 되었다. 실로 놀라운 원자력의 힘이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 기적을 보고 누린 역사의 증인들이다.

 

원자력발전 전력원가는 우라늄 연료비가 아니라 투자비, 즉 건설비용에 좌우된다. 즉 원전을 얼마나 값싸게 건설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원전건설 공사비를 줄이려면 기자재와 품질을 절대로 지키면서, 원자력안전성을 고수하면서 공사기간을 최대한 단축하여 금융비용을 줄여야 한다. 그렇다. 대한민국이 80년대의 그 심한 인플레 속에서 세계에서 가장 값싸게 원전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건설공사기간을 최대한 단축하였기 때문이었고 값싸고 우수하고 부지런한 노동인력과 기술인력을 동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으로 영광 1,2호기에 소요되는 건설비용의 절반 가까이 되는 10억 달러인가가 미국 수출입은행(EXIM)차관으로 조달되었고 나머지는 국내자금으로 충당되었다. 당시만 해도 인플레가 심했고 이자가 비쌌다. 일반서민들 사이에서는 월 3% 이자가 일반적이었고 시장통에서는 10% 이자를 미리 떼고 100일 동안 원금을 갚는 일수 돈놀이가 성행하였다. 그만큼은 아니었지만 한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행히 미국에서 빌린 EXIM 차관은 연리 8.5%인가 그랬다. 국내자금은 연리가 20% 근방이었으며 한전은 여러 차례 연리 25%의 회사채를 발행하였다. 미국에서 빌린 EXIM 차관은 이자율이 낮았지만 한전이 임의로 한꺼번에 인출하여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 돈을 미국은행에 그대로 두고 미국에서 기자재를 사올 때 기자재 대금으로 인출하여 지불하는 방식으로 미국 내에서 거의 사용되었다.

 

어쨌든 원자력발전소는 준공이 되어 전기 장사를 시작할 때까지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돈만 들어가고 그 들어간 돈에 이자에 이자가 붙어 공사비가 가속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뒤로 갈수록, 날이 갈수록, 준공일이 다가올수록 금융비용이 빠르게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사착수 첫해에 1천억원, 그 다음 해 2천억원, 그 다음해 3천억원 식으로 투입공사비가 늘어나고 연리는 10%라고 가정해 보자. 그 이자는 100억원, 200억원, 300억원 식으로 붙는 게 아니라 복리이자로 가속도가 붙어서 100억원, 240억원, 400억원, 600억원 식으로 불어나서 나중에는 이자가 공사비 보다 많아지게 된다. 이 이자비용을 “건설이자”라고 불렀는데, 영광 1,2호기 총공사비 2조 440억원 중 20% 가량이 건설이자였다고 들은 것으로 기억난다. 그런데 나는 건설이자가 그 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고 총공사비도 더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전의 경영재정부서가 원전의 건설비용을 산출할 때 미국에서 빌린 EXIM 차관의 연리 8.5%를 기준으로 계산했기 때문이다. 대외적인 이미지 때문에 그랬겠지만.....

 

아무튼 원전 건설비용을 줄이는 방법은 어떻게 해서든 “빨리, 빨리, 값싸게” 짓는 것 밖에는 없다 할 것이다. 금융비용이 연리 10%라고 할 때 건설공사비가 거의 다 투입된 막바지 단계 공사기간 1년은 공사비 10%를 좌우하게 된다. 1개월간 발생이자가 1% 가까이 되므로 총공사비 2조원이 투입된 영광 1,2호기 건설 막판에는 한 달에 2백억 원씩, 하루에 7억 원씩 이자가 불어나는 꼴이니 “하루 공기 백만 불”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원전건설공사는 그야말로 피 터지는 시간싸움인 것이다.

 

그리고 또 값싼 인건비였다. 내가 82년, 아리조나 팔로버디 원전 건설현장에서 훈련을 받을 때 만났던 한국인 용접사 방씨가 받은 보수는 시간당 25달러였다. 하루 200달러, 한 달이면 5천 달러가 넘는 보수였다. 그런데 내가 영광 1,2호기에서 일할 때 현대건설 시공계약서상 용접공 일당은 하루 만원이었고 잡부는 하루 5천원이었다. 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에서 용접공의 월급은 30만원(400 달러 정도), 잡부 인부의 월급은 15만원(200 달러) 정도였으니 미국 근로자의 10분의 1도 안 되었던 셈이다. 그 때 내 월급 역시 30만원이 안 되었으니 박봉이긴 나도 마찬가지였고 모든 기술인력들이 다 마찬가지였다.

 

영광 1,2호기 건설공사가 피크에 이르렀을 때 건설현장에는 하루 1만 명 가까운 인원이 일했다. 한전인원도 천 명 수준에 달했다. 만 명의 인원이 받는 월급여를 일인당 20만원 수준이라고 본다면 한 달에 20억원, 1년이면 240억원 가량이 된다. 대충 잡아 공사기간 5~6년 동안 인건비로 지출되는 공사비는 1,500억원 가량으로 전체공사비의 7~8%를 점유하는 셈이다.

 

그런데 만일 인건비가 미국수준이었다면 인건비는1,500억원이 아니라 1조 5천원원 규모가 되었을 것이고 총공사비는 3조 5천억원 수준에 달하였을 것이다. 또 미국이었다면 “할 수 없지 뭐.”, 이 공사비를 전력원가에 반영하여 소비자들로부터 적정한 전력요금을 받으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국가를 위하여, 국민을 위하여 수많은 인력을 값싼 인건비로 사용하면서 채찍질을 가하여 “빨리, 빨리, 값싸게”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였다.

 

아무튼 다른 원전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공식적인 영광 1,2호기 건설공정은 부지정지와 기초굴착공사를 한 다음 원자로건물 기초에 철근조립을 해놓고 거기에다 처음으로 콘크리트를 붓는 "기초콘크리트 타설(First Concrete)"부터 시작된다. 물론 그 전에 건설계획을 수립하고 주기기 공급자와 발전소 설계자를 선정하고 발전소 전체 설계와 안전성을 분석한 예비안전성분석보고서(Preliminary Safety Analysis Report: PSAR)를 정부의 규제기관에 제출하여 심사를 받고 건설허가를 받는 과정이 있었지만 거기까지는 공정으로 보지 않고 건설허가를 받아서 첫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시점을 건설공사의 출발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초콘크리트 타설로 출발총성을 울린 다음 전속력으로 질주, 건설공사를 하여 수압시험, 고온기능시험을 마치고 정부기관에 다시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FSAR)를 제출하여 심사를 받고 운영허가를 받아 핵연료장전을 하고 점차 출력을 올리면서 각종 안전시험을 마치고 설계출력에 도달하여 상업운전에 들어가는 준공일까지를 공사기간으로 보고 공정관리를 하는 것이다.

 

영광 1호기의 최초콘크리트 타설부터 준공까지 63개월간의 공정표, 굵직굵직한 주요공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 81년 6월: 기초콘크리트 타설; 원자로건물 기초를 콘크리트 타설

- 이후 격납건물, 터빈발전기 건물, 보조건물, 핵연료건물 등 공사진행, 기기설치, 배관공사, 전기공사 등 계속

- 84년 6월: 초기전원 가압: 건설중인 발전소 전기계통에 전기공급

- 이 무렵 원자로격납건물에 컴프레서로 공기를 집어넣어 계속 압축시켜서 4기압까지 올려서 원자로격납건물의 안전성과 기밀을 확인하는 시험(LLRT 및 ILRT)을 수행

- 85년 6월: 원자로설비계통 수압시험(Hydro Test): 원자로용기, 증기발생기, 가압기, 냉각재펌프 등 설비와 배관에 물을 채우고 원자로계통 운전 설계압력의 1.5배의 압력(정확히는 모르나 300 기압 가까운 엄청난 압력이다.)을 가하여 기기와 계통의 안전성을 확인

- 85년 10월: 고온기능시험(Hot Functional Test): 핵연료 없이 원자로계통을 가열하여 증기를 발생시키는 시험. 냉각재펌프(RCP)를 계속 돌리면 기계적 마찰열로 물의 온도가 올라가게 되는데 이를 이용하여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계통을 계속 가열하여 드디어는 증기를 발생시키고 이것으로 원자로계통의 성능을 확인하고 또 터빈발전기까지 돌려서 시험한다.. 핵연료 없이 발전설비의 기능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시럼.

- 86년 1월: 핵연료 장전. 정부규제기관이 FSAR을 검토, 승인하고 운영허가를 발급한다. 그러면 원자로에 핵연료를 장전하고 중성자 소스로 핵분열을 일으키고 서서히 원자로출력을 증가시켜 임계점을 넘어서 핵연료가 연쇄반응을 일으키도록 하면서 각종 안전시험을 수행한다, 원자로와 터빈발전기가 최대출력에 도달하도록 하면서 안전성과 성능을 확인한다.

- 86년 8월; 모든 시험을 완료하고 상업운전에 들어감으로써 준공.

대략 위와 같은 순서로 건설공사가 63개월 공정으로 진행되었다.

 

이렇게 1981년 6월에 착공하여 1986년 8월에 준공을 한 영광원자력 1호기의 공사기간은 63개월(5년 3개월)은 미국에서는 순조로울 경우에도 80 개월 이상 걸리던 공사기간을 1년 이상 앞당겨서 초스피드로 마쳐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영광원자력 1,2호기의 건설공사비는 미국에 비하여 인건비에서 1조 3천억원 유리하고 건설공정에서 또 2천억 내지 3천억 원 이상이 유리하여 미국 보다 1조 5천억 원 이상 값싸게 원전을 건설하게 된 것이다.

확대해서 본다면 한전은 80년대에 난턴키 방식으로 건설된 고리 3,4호기, 영광 1,2호기, 그리고 울진 1,2호기 총 6기의 원전을 건설하면서 모두 4조 5천억원 이상을 절감한 셈이고 안 그래도 값싼 원자력발전단가를 더욱 값싸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전력’이라는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4조 5천억원을 지금 기준으로 생각지 마라. 80년대의 4조 5천억원은 지금의 45조원도 넘을 것이고 당시 수 조원 규모에 머물던 한전의 자산규모에 비하면 엄청난 것이었다. 원자력으로 인하여 한국전력은 일약 세계최고의 전력회사로 각광받게 되었고 1996년에는 에디슨 대상을 받고 뉴욕증시에서 센츄리본드를 발행하는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지금 돌아보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값싼 전력요금”과 “세계최고의 전력회사:를 위한 희생양이고 제물이었다. 도대체 우리는 왜 그렇게 “빨리, 빨리, 값싸게”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하여 채찍질(?)을 당하며 피땀 흘리고 청춘을 바쳐야 했을까?

 

또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렇게 밀어붙이는 한국식 공정관리는 필연적으로 기형적이고 비경제적인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바로 한국식 공정관리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

 

원래 미국에서 공정관리는 계획된 공사기간 내 공사를 마칠 수 있도록 세부 공사항목을 관리하는 목적과 아울러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공사비 집행으로 금융비용을 절감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예를 들어 원자로설비와 터빈발전기, 혹은 아주 비싼 기기가 있다고 하면 건설공사기간을 맞추면서 기기는 최대한 늦게 사와서 설치하는 것이 건설이자를 줄이는 비결이다. 회사나 공장에서 재고관리를 통하여 재고를 최소화하는 것이 원가를 절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공정관리를 맡은 사람은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기자재 구임이나 항목별 공사수행 시기를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식 공정관리는 애초부터 그 목적과 뜻이 달랐다. 무조건 “빨리, 빨리” 공정계획을 앞서가도록 해야만 했다. 공정률이 계획에 뒤떨어지고 있다거나 공정이 지연되고 있다고 상부에 보고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또 웃기게도 공사 진도는 집행금액으로 산출되었다. 그래서 비싼 기기를 먼저 구입해놓고, 반드시 빨리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먼저 해서 공정이 목표를 앞서고 있다고 보고해야만 했다. 건설현장에는 값비싼 기기와 자재들이 조기 도착하여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아무도 “왜 쓸데없이 미리 구입하여 건설이자를 발생시키느냐.“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조기집행식 ‘미리미리’ 공정관리는 후속기로 갈수록 더 심해졌다. 후속기의 건설공사비 집행 Cash Flow를 비교해 보면 아주 명확하게 눈에 보인다. 하지만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과연 한전에 경영이라는 게 있기는 한 것인지.....

나는 93년도에 “2000년 대화”로 이 문제를 제기한 적 있다. 묵살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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