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영광 1,2호기 건설현장

54. 영광원자력 해수냉각수 이야기

Thomas Lee 2022. 10. 10. 23:11

 

 

* 서해안의 해수냉각수

 

화력이든 원자력이든 발전소에서는 터빈을 돌리고 나오는 증기를 복수기에서 응축시켜 물로 만드는 데 엄청난 양의 냉각수를 사용한다. 영광원자력에서도 서해의 바닷물을 끌어들여 복수기를 통과시킨 다음 지하관로를 통하여 방류구로 내 보낸다.

 

그런데 동해안은 비교적 수심이 깊고 해수온도도 낮지만 영광은 서해안이라 바다의 수심이 얕고 해수온도도 높고 뻘도 많다. 영광 1,2호기 설계가 고리 3,4호기의 설계를 복제(複製, Replication)하는 것이지만 조건이 다르면 그 부분의 설계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터빈을 돌리고 나오는 증기를 냉각시키는 데는 해수온도가 낮으면 많은 냉각수가 필요 없지만 해수 온도가 높으면 훨씬 많은 냉각수가 필요하게 되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해수 냉각수가 많이 필요하게 되면 펌프도 더 커야 하고 복수기도 더 커져야 하고 각종 열교환기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처음 영광 1,2호기 설계착수 때는 여름철 가장 더울 때의 해수온도를, 내가 잘 모르긴 하지만, 섭씨 32도인가 33도로 잡았다고 한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높게 잡은 것이다. 그런데 과기처인지 안전위원회에서인지 이의를 제기했다. 이조실록인지 뭔지 조선시대의 역사를 뒤져보니 법성포에서 한여름에 고기가 죽어서 떠올랐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었다. 고기가 죽어서 떠오를 정도면 바닷물이 얼마나 더웠겠느냐, 40도 가까이 되었을 것이란다. 그래서 여름철 바닷물 최고온도를 40도로 가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고리 3,4호기 보다는 훨씬 높은 온도를 가정하여 발전소 설계를 하였다고 들었다. 복수기나 열교환기들이 더 크게 설계되어 제작되고 해수냉각수 펌프나 관로도 더 크게 설계되고 기자재 금액이나 공사비가 더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다.

 

* 복수기 도장

 

또 다른 문제는 바닷물에 섞여 들어오는 뻘이었다. 이 문제는 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조금 누런 흙탕물이지만 뻘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온갖 무수한 날카로운 모래와 돌의 조각들로 복수기나 열교환기를 통과하면서 연마제와 같은 역할을 하여 구리합금으로 된 튜브시트들을 갉아먹어 구멍을 내 버리는 것이었다.

 

86년 여름이었던가. 1호기의 시운전이 진행되던 때였다. 두어 달 시운전을 하다가 정지하고 복수기 수실을 열어서 점검을 하였다. 그랬더니 복수기의 튜브시트 곳곳에 갉아 먹히고 뚫어진 구멍들이 무수히 생겨나 있었다. 그 중 몇 곳은 좀 있으면 튜브시트가 관통될 정도로 침식이 심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문제도 우리 부서에 떨어졌다. 해결방도가 아득하였다. 그러나 어떻게든 아이디어를 내야 했다. 이리저리 알아보고 의견을 나눈 끝에 나온 방법은 복수기 튜브시트에 특수도료를 발라서 침식을 막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없었다. 시운전을 멈추고 무한정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3주일 내로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몇 도장업체를 수배하여 긴급하게 연락을 하였다. 간략하게 문제점 내용을 설명한 안내서를 준비하였다. 도장업체 몇 군데에서 건설현장으로 찾아왔다. 자기네가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두 업체는 유성페인트를 도포하면 해수침식을 막을 수 있다고 하였고, 한 업체는 돈이 많이 드는 세라믹 도포를 제안하였고, 한 업체는 자기들이 대학 연구팀과 함께 개발한 특수도료를 제안하였다. 이 네 업체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했다. 시간이 없으니 실적증명을 요구하거나 실증실험을 해보자고 할 수도 없었다. 주먹구구식으로, 나의 판단으로 결정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유성도료 도포를 제안하는 업체를 선정한다면 돈은 적게 들겠지만 미덥지가 않았고, 세라믹 도포는 너무 비싸서 호기 당 3억원 가량이 들 것 같았다. 결국 해수침식을 위하여 개발했다는 특수도료를 선택하기로 했다.

 

나는 네 개 업체의 제안내용과 제시금액을 비교한 표를 만들고 이 중에서 특수도료를 제안한 업체를 선택하여 복수기 긴급도장작업을 하겠다는 결재서류를 만들어 일사천리로 부장 소장까지 결재를 받은 다음 선정된 업체에 작업지시를 내렸다. 일상감사반에서 뭐라고 했지만 모든 책임은 우리가 진다고 그냥 밀어붙였다. 우물쭈물할 시간조차 없었다. 선정된 업체가 작업인원을 데리고 와 복수기 안에 작업대를 설치하고 복수기 튜브시트를 청소하고 산세정을 하고 공기를 불어넣어 말린 다음 도료 도포작업을 시작하여 며칠 밤을 새워가며 복수기 3대의 도포작업을 마쳤다. 그리고 도료가 양생되기를 기다려 작업을 종료한 다음 시운전반에 발전소를 재가동 하도록 통보하였다. 그 일을 3주 안에 다 해치운 것이었다.

 

복수기 수실의 해치는 닫혔고 시운전이 계속되었고 발전소가 준공되어 운전이 계속되었다. 나는 그 도포된 도료가 복수기 튜브시트에 제대로 붙어서 잘 견디고 있는지, 혹시 떨어져 나가거나 해수에 침식되어 손상이 되는 건 아닌지 궁금하기도 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거의 일 년이 지난 다음 발전소를 세우고 복수기를 점검해 보니 그 도료가 손상된 곳 하나 없이 깨끗하게 잘 붙어서 튜브시트를 보호하고 있었다.

 

복수기 말고도 내 기억에 경원세기(주)가 한국중공업을 이기고 예상가의 절반도 안 되는 헐값 6억 9천만 원에 낙찰 받아 엄청난 손해를 보면서 제작, 공급한 중앙냉각기(Central Ciller)도 뻘 때문에 열교환기가 침식되는 문제 때문에 고심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내가 영광건설현장을 떠나온 후 세월이 흐른 다음 복수기와 열교환기들의 구리합금 튜브시트들은 단단한 타이타늄 튜브시트로 모두 교체되어 해수침식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들었다. 이젠 그런 문제는 없겠지.

그러나 그런 문제 해결하면 뭣 하나? 1986년, 1987년에 준공된 영광 1, 2호기는 40년 수명기간 다 되는 2026년, 2027년에 폐기하기로 했다던데......

 

* 주변지역보상과 해수온도

 

1987년 어느 날, 인근 가마미 해수욕장 지역 주민들 수 백 명이 몽둥이를 든 선봉대를 앞세우고 발전소로 몰려와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의 발전소와 사무실의 진입을 막는 직원들과 멱살을 잡는 몸싸움까지 벌이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건설사무소로도 몰려와 몽둥이로 직원들을 위협하고 소장 면담을 요구하였다. 원자력발전소 때문에 여름철 해수욕객이 줄었다는 것이었다. 원자력 때문에 해수욕장이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억지합의가 이루어졌다. 가마미 마을 시위대 대표가 요구하는 대로 전남대학교에 피해보상액 조사용역을 맡기고 그 결과에 따라 보상하기로 한 것이다. 조사용역을 맡은 전남대학교는 그야말로 소신껏 가마미 마을 주민의 편을 들어서 피해액을 산정하였다. 40년이 지나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백 가구 남짓한 조그만 가마미 마을에 여름 3개월 동안 해수욕객이 매일 천 명씩 몰려들어 한 사람이 1만원원 씩을 쓰는 걸로, 또 집집마다 방을 있는 대로 해수욕객들에게 빌려주고 하루에 방 한 개에 만 원 씩인가 받는 걸로 해서 가구당 하루 3만원 원, 한 달 90만원, 석 달에 270만원씩, 100가구 좀 넘는 동네 전체가 2억 7천만원의 수입을 올렸고 식당들도 생선회를 팔아서 수억 원 씩의 수입을 올렸는데 영광원자력이 들어서는 바람에 해수욕객이 오지를 않아서 망했다는 식이었다.

 

뭐 이런 식으로 계산해서 10년인가 15년인가 계산해서 모두 74억원이라는 액수가 보상액으로 산출되었다. 크지도 않은 해수욕장, 많지도 않은 가구수, 가마미를 오가는 버스도 하루 몇 대밖에 없는데 매일 천명의 해수욕객이 석 달 동안 바글거렸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전남대학교의 조사용역결과에 따라 보상해주기로 합의하였으니 한전은 가마미 마을에 74억원을 보상하였다.

 

그랬더니 1988년, 이번에는 상하리, 홍농읍 주민들이 몰려와 직원사택정문과 발전소 정문을 막고 출퇴근을 못 하게 하고, 직원들에게 김치국물과 오물을 던지며 보상을 요구하였다. 발전소 주변에서는 불안해서 못 살겠으니 집단이주 시켜 달라고 하였다. 가마미만 보상해 주고 우리는 왜 안 해 주느냐고 하였다.

그들은 다시 버스 수 십 대를 대절하여 서울 삼성동 한전본사에 몰려와 시위를 벌였다. 마당과 화단에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을 새웠고 대형 유리창에 돌을 던져 깨어진 파편에 직원이 다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였다.

 

조사용역이니, 보상합의니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정부와 한전은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법”이라는 법률을 만들어 반경 몇 킬로미터까지는 얼마, 몇 킬로미터까지는 얼마 하는 식으로 해마다 수 십 억 원의 돈을 인근지역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 반경거리에 아슬아슬 벗어나는 지역의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금 하나 사이로 보상에서 제외된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 주민들의 보상요구는 더욱 확대되어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온배수 영향으로 인한 피해보상요구로 번져나갔고 드디어는 발전소에서 십 수 킬로미터 떨어진 어촌까지도 발전소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고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시위를 했다.

원자력이든 화력이든, 발전소에서는 바닷물을 끌어들여 냉각수로 사용하기 때문에 냉각수가 배출되는 해역의 온도가 올라가기 마련이다. 터빈 증기를 냉각시키는 복수기를 막 통과한 바닷물은 섭씨 10도 정도 온도가 올라간다. 방류구로 나가면서 온도가 많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방류구 방파제 근방에서는 보통은 섭씨 5도 정도, 심하면 7~8도가량까지도 수온이 올라간다. 해수냉각수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지만 그래도 수 백 미터 거리까지는 1~2도 정도까지 수온이 올라가게 된다.

 

이 정도의 수온상승이 얼마나 인근해역에 영향을 미치는지 걸까? 확실치 않다. 따뜻한 물이 반드시 나쁜 쪽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도 없다. 오히려 겨울철에는 방류구의 따뜻한 수온 때문에 물고기들이 몰려들고 이 물고기를 낚으려는 낚시꾼들이 발전소 방류구 방파제에 몰려든다. 최고의 낚시터이기 때문이다.

 

일부 발전소에서는 양어장을 만들어놓고 이 따뜻한 물로 고기를 키운다. 성장속도가 아주 빠르다. 발전소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이 오히려 생태계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한 때 울진원자력발전소 방류구 하류에 약삭빠른 어떤 양반이 양어장을 만들어서 광어, 도다리 같은 고급어종을 양식하여 서울에 갖다 팔아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연료비도 안 들이고 따뜻한 물에서 고기의 성장속도가 3~4 배나 빠르단다. 그런데 1996년 여름, 폭서가 몰아쳤을 때 이 양어장에서 수많은 물고기가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 사람은 원자력발전소에 배상을 하라고 항의를 했다. 추운 겨울에 발전소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을 끌어다가 양식을 할 때는 좋았는데 여름에 혹서로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 벌어진 일이 글쎄, 그게 발전소 책임일까?

 

뭐, 좋든 나쁘든 아무튼 영향을 받는다는 데는 할 말이 없다. 뭔가 전에는 자라지 않던 꺼뭇꺼뭇한 잡종 해초가 자라나서 김양식, 조개채취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도 했다. 더구나 중국 황하강 하류 지역, 발해만, 산동반도 지역의 급속한 공업화와 폐수방류로 인한 서해 전역의 오염과 중국어선들의 무분별한 남획에 의한 어종고갈의 피해가 겹쳐져 원전의 온배수문제가 애꿎게 더 두들겨 맞는 꼴이 된 셈이다.

 

아무튼 정부와 한전은 결국 어민들에게 피해보상을 해주기로 하였다. 그런데 어디까지 피해보상을 해주느냐가 문제였다. 주변해역의 수온변화를 측정하여 섭씨 1.5도 상승해역까지 보상해 준다니까 혜택범위가 너무 좁다고 항의하여 섭씨 1도 상승해역까지 보상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는데, 이번에는 그 바깥쪽의 어민들이 0.5도 상승해역까지 보상범위에 넣어달라고 요구를 했다.

0.5도 상승해역까지라......, 결국 서해안 전역이 원자력발전소 온배수 피해보상지역이 될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또 장차 원전 40년 돌리고 정지시켜 폐쇄해버리면 그 때는 무슨 배상을 해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