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영광 1,2호기 건설현장

53. 보조기기 Back Charge와 MSIV

Thomas Lee 2022. 9. 29. 02:17

영광 1,2호기에서 구매한 보조기기 품목들의 계약건수는 200건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중에 기계품목, 내가 담당한 품목이 가장 많았다. 원자로설비와 터빈발전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거기에다 국내분, 해외분을 막론하고 온갖 펌프, 밸브, 열교환기, 공기조화설비, 복수기, 보조보일러, 디젤발전기, 물처리설비, 복수탈염설비, 고체폐기물 설비, 액체폐기물 설비 등이 모두 기계품목이라 하여 모조리 우리 기계과 일이 되고 기계기술계가 공급계약을 관리해야 했다. 아마 보조기기 절반 가까이는 기계품목이었을 것이다. 내가 본사에서 보조기기구매업무를 했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업무량이 워낙 많았다. 그리고 품목들이 워낙 많다보니 문제도 많았다. 부러지고 망가지고 없어지고 잘못 된 온갖 문제들이 부적합보고서(NCR)로 모두 우리 기계기술계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 중에는 제작공급사의 잘못으로 발생한 문제도 많았다. 그러한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는 국내업체들인 경우에는 업체에 연락해서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해외업체들인 경우에는 텔렉스로 기기결함을 통보하였다. 그러면 국내업체들은 현장으로 출장을 와서 해결하든가 아니면 현대건설과 이야기해서 현대건설로부터 작업인력을 제공받아 기기를 고치는 수정작업을 했다. 문제는 해외업체들이었다.

 

예를 들어 배관이나 밸브가 잘못 붙었거나 볼트구멍에 잘못 뚫어져 있거나 뭐가 잘못 되어 수정작업이 필요할 경우, 아주 심각한 문제라면 몰라도 그걸 고치겠다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작업인력을 파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현대건설로부터 예상작업인력을 받아서 해외업체에 제안을 하게 된다.

 

“발견된 문제를 신속히 검토하고 수정방법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당신들이 기술검토를 하고 지시한 대로 건설현장에서 수정작업을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기기를 수정하는 데 이러이러한 작업이 필요하고 현대건설이 기계공 두 사람과 용접공 한 사람, 보조인력 한 사람, 작업을 지시하고 감독할 기술인력 한 사람, 그리고 품질검사요원 한 사람, 도합 여섯 사람이 5일간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작업인력에 대한 임금은 기계공과 보조인력은 일당 100 달러, 용접공은 일당 150 달러, 엔지니어는 일당 120 달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시공자인 현대건설은 이 작업에 하루에 690 달러, 5일간 3,450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Quotation 해왔습니다. 당신들을 대신하여 현대건설이 기기수정작업을 하는데 동의하시겠습니까? 귀사가 건설현장에 직접 와서 수정작업을 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면 미국업체들은 별다른 이의 없이 동의했다. 나는 현대건설의 계약상 임금수준에 비하여 10 배 가량 되는 높은 임금을 제시하였다.

“우리가 당신들을 위하여 값싼 국내임금으로 인력을 제공할 일이 있냐?”

그래도 내가 아리조나 팔로버디 원전건설현장에서 보았던 미국의 급여수준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저렴한 임금이었다. 그러니 내가 좀 비싸게 불러도 그 작업을 위하여 미국에서 작업자를 비행기에 태워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미국업체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을 것이다.

 

작업이 끝나면 나는 미국업체에 다시 텔렉스를 보내어 ‘당신들의 지시에 따라 기기수정작업이 잘 이루어졌으며 이 금액이 청구될 것입니다.’라고 텔렉스를 보내놓고 이 금액을 Back Charge 하도록 계약부서로 통지하여 환수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현대건설에는 시공계약변경으로 계약에 따라 공사금액을 증액시켜주었다. 현대건설 담당차장은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넉넉하게 달라고 하는데 내가 아무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달라는 대로 공사금액을 증액시켜 주니까 무척 신기해했다. 그러나 현대건설이 달라는 대로 넉넉하게 작업비용을 계산해 주어도 해외업체로부터 받는 금액이 훨씬 많았으므로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그렇게 해외업체에 Back Charge한 건수는 55건인가 되었고 그 금액은 55만 불이 넘었다. 나는 이러한 계약변경 작업내용들을 하나하나 요약해서 서류철에다 붙여놓았다. 나중에 본사 감사실에서 감사를 내려왔었는데 내가 이렇게 해놓은 걸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 했다.

그렇게 해외공급사들로부터 Back Charge를 받아내었지만 MSIV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MSIV 불량은 단 한 품목의 Back Charge가 100만 불에 달한 최악의 사건이었고 잊을 수 없는 악몽이었다.

 

MSIV는 Main Steam Isolation Valves, 주증기차단밸브이다. 호기당 3대로 비상시에 증기발생기로부터 터빈으로 공급되는 주증기를 차단하여 방사능유출을 막는 역할을 하는 큰 밸브들이며 안전설비들이다. 미국의 Atwood and Morrill Co. 라는 밸브전문업체가 제작공급 하였는데 구동장치는 Munroe Hydraulic 이라는 회사가 만든 것이었고 계약금액은 106만 달러였다.

모터와 유압장치를 갖춘 구동장치는 밸브 상부에 장착되어 운전원의 조작이나 신호에 따라 밸브를 작동시켜 주증기를 완전차단 할 수도 있고 부분개방도 할 수 있고 조정도 할 수 있는, 이른 바 “Statue of Art"라던가 "환상적인 예술작품”이라고 자랑하는 매우 민감하고 복잡한 장치였다.

 

그런데 이 MSIV들이 일찌감치 건설현장에 도착하여 2년 가까이 자재창고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미리미리, 빨리빨리”식 공정관리의 문제였다. 좀 뒤늦게였지만 건설현장 품질관리부서에서 이 문제를 인식하고 “기자재점검 유지보수팀(Maintenance Team)”을 만들었다. 10여명 가까운 인원들로 편성된 유지보수팀이 매일같이 자재창고와 건설현장을 뒤지며 온도유지가 필요한 기기는 보온을 해주고, 펌프 모터 같은 회전기기는 회전 작동을 시켜주고, 윤활유를 점검, 충전해주고, 녹이 슨 건 닦아주고, 기기 매뉴얼을 찾아보고 정기적으로 작동시켜 주어야 하는 기기들은 작동시켜서 기능을 점검하는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MSV를 점검하려고 작동을 시켰더니 구동장치에서 기름이 터져 나와 줄줄 샌다는 것이었다. 유압장치의 배관과 호스를 연결하는 부위의 패킹과 O-Ring들이 물러져서 터져버린 것이었다.

 

여간 일이 아니었다. 긴급히 Atwood & Morrill 사로 텔렉스로 연락을 했다. Atwood & Morrill사는 건설현장에서 기기를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거라면서 기기를 점검하고 보수하기 위하여 기술자를 현장으로 파견해 주겠다고 하였다. 어쩔 수가 없었다. Atwood & Morrill사에서 Munroe Hydraulic사로 연락하여 기술자가 날아왔다. 멕시코 출신인지 콧수염을 기르고 이름도 무슨 곤잘레스인가 그랬다. 이 친구에게 한전이 지불해야 하는 일당이 하루 천 달러였다. 내 월급이 400 달러밖에 안 되는데 한전이 이 친구에게 하루 천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니 내 눈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친구, 현장에 도착해서 기기를 창고에 옮겨놓고 지원작업자도 붙여달라고 해놓고 하루 종일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트러블 슈팅(Trouble Shooting)인지 뭔지 한다면서 도면을 펴놓고 나무판자 위에다 전깃줄과 꼬마등과 스위치를 달고 해서 뭘 복잡하게 만들더니 그걸로 구동장치를 점검해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아낸단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서 그제야 구동장치를 분해해서 패킹과 O-Ring을 뜯어내고 교체하고 하더니 이번에는 P. O. Check Valve라는 부품이 고장 나 있어서 교체해야 한단다. Atwood & Morrill사로 연락해서 P. O. Check Valve를 재공급해 달라고 했더니 밸브 한 개에 5천 달러씩 모두 3만 달러를 지불하란다. 어린애 주먹 보다 작은 조그만 밸브 한 개가 5천 달러라니 기가 막혔다. 그 때가 막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진출하여 처음으로 포니엑셀을 판매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 포니엑셀 판매가가 4,999 달러였다. 그런데 아이 주먹만 한 벨브 하나가 5천달러라니!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계약관리부서에 연락하여 P. O. Check Valve 여섯 개를 Atwood & Morrill사로부터 긴급구입하여 항공운송해 오도록 하였다. 그리고 또 패킹과 O-Ring과 그 외에도 여러 부품들도 긴급구매하였다.

 

그렇게 P. O. Check Valve와 부품들이 도착하는데 또다시 2주일인가 3주일이 지나갔다. 그 동안 이 친구는 또 뭘 하는지 구동장치를 갖고 놀고 있었다. 하루 천 달러씩, 한 달에 3만 달러나 지불하면서 모셔온 기술자님의 하는 꼴을 보자니 속이 터져 견딜 수 없었다. 하여간 그렇게 두 달인가 지나고 나서 MSIV 구동장치가 마침내 고쳐졌고 곤잘레스인가 하는 친구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제 내 차례였다. 그 동안 한전의 약점을 쥐고 횡포를 하던 공급사를 향하여 내가 포문을 열었다. 나는 아래와 같은 점에서 MSIV 구동장치의 문제발생은 한전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 공급자의 책임이라고 지적하였다.

- 공급사는 한전이 해당물품을 창고에 오래 보관하면서 적절한 유지보수를 하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는데 그 적절한 유지보수라는 게 뭐냐? 정기적으로 작동시험을 하지 않아서였단 말인가? Packing과 O-Ring을 교체하지 않아서였다는 말인가?

- 고무제품인 Packing과 O-Ring은 보관을 하든 운전을 하든 상관없이 시간이 지나면 불어터지게 되어 있는 것 아닌가? 이것이 40년 설계수명기간을 가지는 원자력발전소 기기에 적절한 소재인가? 만일 Packing과 O-Ring의 소재가 현재의 기술로는 어쩔 수 없이 수명을 갖는 부품이라면 이를 매뉴얼에 명시하고 예비품을 공급하고 또 우리에게 알려주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 한전이 구동장치의 기름을 교환해 주지 않아서 문제가 되었다는 주장도 했는데, 그렇다면 너희들은 왜 공장시험을 마친 다음 그대로 납품했는가? 말이 되는가?

- 이 작은 P. O. Check Valve 한 개가 5천 달러라니 어이가 없다. 당신네 회사는 이런 기름 새는 MSIV를 팔아놓고 수리, 보수해 준다는 명목으로 돈 뜯는 회사냐?

 

나와 Atwood & Morrill사 간에 여러 차례 텔렉스가 오간 끝에 결국 Atwood & Morrill사에서 부사장인가와 수석기술담당인가 하는 두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건설현장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건설현장의 한전 간부들과 회의를 했다. 이 친구들은 화려한 영어로 요리조리 책임을 회피하였다. 우리의 서투른 영어로 어찌 해 볼 수가 없었다. 내일 다시 회의를 하기로 하고 그 날 회의를 마쳤다. 그 친구들이 회의장을 떠날 때 나는 미리 준비하였던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오늘 밤 이거 읽어 보시고 내일 이야기합시다.”

그 종이는 내가 그 동안의 경위와 문제의 내용, 곤잘레스가 한 일들, 그리고 왜 이 문제가 공급사 책임이냐 하는 문제를 조목조목 나열하고 쓴 것이었다. 그리고 한전은 이 문제를 미국의 원자력산업계에 알리고 소송도 불사하겠다고도 써져 있었다.

 

다음날 아침 그 두 친구가 다시 건설현장에 왔을 때는 태도가 180도 달라져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MSIV의 문제로 발생한 곤잘레스에게 지불한 돈, 추가부품을 구입한 돈, Atwood & Morrill사가 한전으로부터 부당하게 뜯어낸 돈, 그리고 한전의 손실비용 등을 계산한 돈, 합쳐서 모두 100만 달러 가까운 손해배상 약속과 서명을 받아내었다.

 

나의 이 활약(?)에 모두들 놀랐다. 그런데 계약관리부장은 이 배상과 별도로 보험회사에 100만 달러 보험청구를 한다고 했다. 내가 공급사로부터 이만큼 배상을 받아내었는데 또 무슨 보험청구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기자재취급 사고에 의한 손해와 기기공급사와 싸워서 배상을 받아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나중에 건설현장에 내려와 감사를 시행한 본사 감사팀에 의하여 위에서 말한 55건의 Back Charge 건과 함께 감사와 사장님에게도 보고가 되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본사에 출장을 갔을 때 감사실에서 부르더니 사장상 1등급 표창장을 전해 주었다. 표창장 줄려면 월례조회 때 공식적으로 주든지.....

 

그런데 시운전부서의 모 과장이 Atwood & Morrill사를 만나 회의를 하고 나서 구동장치 두 대를 예비분으로 받기로 하고 이 100만 달러 배상금액을 감해주었다. 그 이야기 들었을 때 그 과장을 패죽이고 싶었다. 겨우 구동장치 두 대를 100만 달러와 바꾸다니! 그 돈 100만 달러가 어떻게 받아낸 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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