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영광 1,2호기 건설현장

55. 체르노빌 원전 사고

Thomas Lee 2022. 10. 11. 02:25

내가 영광원자력건설현장에서 기계기술계장으로 일한 지 3년 째 접어든 1986년, 7호기는 준공을 앞두고 막바지 시운전을 하고 있었고, 8호기도 뒤를 이어 건설 막바지 공정에 들어가고 있었다. 이 1986년 1월 어느 날씨가 몹시 춥던 날 이른 아침, 건설현장에 출근하던 시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폭발사고 소식이 전해졌다. 아침뉴스 TV 화면에는 일곱 명의 우주비행사를 태우고 힘차게 날아오르던 우주선이 발사 1분 남짓 후 폭발하여 거대한 백조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흰 연기 덩어리와 몇 가닥 포물선 연기구름을 남긴 채 공중에 흩어져 버리는 장면이 비쳐지고 있었다. 연료탱크의 볼트 하나가 잘못 되어 있었다나, 전 세계 수억의 눈이 지켜보는 앞에서 일곱 명의 생명이 수억 불짜리 우주선과 함께 꽃잎처럼 흩어지는 참극이 일어난 것이었다.

 

석 달 쯤 뒤 해 4월 26일 아침, 이번에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소식이 전해졌다. 소련 우크라이나 지방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엄청난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는 우리에게 그 소식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소식은 벡텔(Bechtel)사와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사를 통하여 보다 더 상세히 전해져 왔다.

내 옆에 앉아서 근무하는 벡텔사의 기계엔지니어 아델 메시하(Adel L. Messiha)씨는 연신 벡텔 본사로부터 온 정보라면서 체르노빌 원전의 사고소식을 전해 주었다.

“미스터 리, 소련당국이 사고를 숨기는 바람에 빨리 알려지지 않았대요. 스웨덴 기상대에서 공기중 방사능 오염이 검출되어 알게 되었다는군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벡텔 본사에서 전 세계의 자사 직원들에게 통신문으로 이 소식들을 알려주는 모양이었다. 원자력발전소의 대형사고로 인하여 원자력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가중되고, 원자력산업이 타격을 받고,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이 외면당한다면 벡텔사의 경영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서구형 원자력발전소는 안전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또 그들에게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되었던 것 같다.

 

메시하씨가 또 새로운 소식을 알려 주었다.

“체르노빌 원전은 1950년대에 개발된 구모델의 원자력발전소랍니다. 우리의 가압경수로와는 전혀 다른 흑연감속로라는 모델인데 소련이 군사용 목적으로 플루토늄을 대량으로 추출해내기 위한 모델로 만들어졌다는군요.”

그는 벡텔 사무실과 우리 사무실을 오가면서 내가 묻지도 않은 정보를 날라오고 설명을 해댔다.

체르노빌 원전......, 실로 엄청난 사고였다. 나중에 본 사진은 체르노빌 4호기 발전소건물은 윗부분이 폭격을 맞아 날아가 버리고 주저앉은 듯 한 참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핵연료의 분열을 정지시키고 사고를 수습하기 위하여 수 십 명의 특공대가 원자로 아래로 땅굴을 파고 들어가 붕산, 납, 시멘트를 투입하는 필사적인 작전을 벌였다고도 하고 수습과정에서 많은 작업자들이 다량의 방사선에 노출되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사고가 그 정도였다면 발전소 주변지역도 방사능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고 수많은 피해자가 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체르노빌 원전사고에도 별 동요 없이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마무리하여 원자력 7, 8호기를 가동시키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였다. 그리고 이 해 여름 드디어 원자력 7호기를 준공시켰고 이듬해 1987년 7월에는 8호기를 준공하여 전두환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반핵단체들의 반원전 운동이 본격화되었다고 기억된다. 소련의 비공개 정책으로 체르노빌 원자력사고의 진상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반핵단체들은 끔찍한 기형동물과 이상하게 자란 농작물의 사진들을 체르노빌 사고의 결과라고 주장하며 제시하고 퍼뜨렸다. 최열이라는 자의 이름도 그 때 처음 들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기술첨단분야요, 국가적 사업인 원자력에서 일한다는 우리 원자력 종사원들의 자부심도 상처를 입고 국민들에게 한국경제를 이끄는 첨단기술로 각광받던 원자력도 점차 혐오(3D)업종으로 변해갔던 것 같다.

그리고 체르노빌원전 사고는 반핵단체의 선동인지 계몽인지에 의하여 인근지역주민들의 폭발적인 보상요구의 발화점이 되었고 앞서 이야기한 대로 1987년 어느 날, 인근 가마미 주민들 수 백 명이 몽둥이를 든 선봉대를 앞세우고 발전소로 몰려와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과격시위를 벌였고 이어서 성산리, 홍농읍으로, 다시 주변지역으로 보상요구가 이어져 나갔다.

 

아무튼 체르노빌 원전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체르노빌 원전은 서방의 가압경수로와 전혀 다른 '흑연감속로' 원전이다. 원자로격납건물도 없다. 원자로설비가 그냥 일반 건물 속에 들어 있었다. 체르노빌 사고사진을 보면 원자로의 인공흑연이 불타고 그 열로 건물과 지붕이 타서 날아갔는지 주저앉았는지 처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벡텔사로부터의 설명은 그랬다. 인공흑연을 중성자 감속재로 오래 사용하면 위그너 에너지(Wigner Energy)라는 내부응력이 축적되어 인공흑연이 파괴될 수 있기 때문에 체르노빌 원전에서는 1년마다 한 번씩 위그너 에너지를 풀어주는 풀림(Annealing)작업을 해 준다고 했다. 풀림작업은 원자로의 열을 이용하여 인공흑연을 일정온도까지 상승시킨 다음 서서히 온도를 내려주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단다. 즉 원자로를 아주 낮은 저출력상태로 가동시켜놓고 우라늄의 핵분열을 이용하는데 인공흑연 통을 한 개씩, 혹은 몇 개씩, 가열시켰다가 서서히 냉각시키는 작업을 해나간다는 것이다. 비상냉각수 계통을 가동하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체르노빌에서 바로 이 작업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작업을 빨리 마치려고 한꺼번에 여러 개의 연료봉을 가동시켰는지, 해마다 하던 일이라 별일 없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비상냉각수도 없이 작업을 진행하다가 그랬는지, 비상냉각수 계통이 작동하지 않았는지, 연료봉의 온도가 너무 올라가고, 어물어물 하는 사이에 인공흑연이 발화하여 화재가 발생하고, 이 사고를 초기에 진압하지 못 해서 사태가 악화되어 핵연료봉의 인공흑연들이 마구 타오르고 원자로는 제어불능상태에 빠지고 결국은 고열로 원자로가 녹아내리고 건물까지 타버린 대형사고로 발전되었다는 이야기다. 원자로의 인공흑연에 불이 붙어놨으니 어떻게 됐겠는가? 방사능 연기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솟아올라 성층권 기류를 타고 스칸디나비아 상공까지 날아가서 스웨덴에서 방사능이 검출되는 바람에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서방에 알려졌다는 것이다.

 

원자로에 냉각수가 공급되지 못 하고 핵연료가 통제불능 상태에 빠진 채 망가진다면 우라늄 연료는 핵분열을 계속하면서 원자로 내부를 녹여버리고 만다. 이것이 노심용융사고이다. 사태가 더욱 발전한다면 원자로의 우라늄연료는 금속이든 콘크리트든 뭐든지 녹여버리고 아래로 가라앉아 내려가게 된다. 원자로를 둘러싼 강철용기도 녹고, 그 아래 건물바닥도 녹고, 그 아래 바위도 녹고 우라늄은 뜨거운 용암같이 되어 모든 것을 녹이며 서서히 땅 밑으로 뚫고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이 지경이 되면 그야말로 최악의 사고이다. 우라늄 연료가 지구 중심부를 향하여 게릴라같이 어디까지 내려갈지 모른다 하여 중국공산당이라고 부른다. 체르노빌에서는 원자로노심과 우라늄이 지구중심을 향하여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필사적인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원자로건물 아래에 땅굴을 파고 들어가 붕산과 납과 시멘트 약 5,000톤을 쏟아 넣었다고 한다. 군인들까지 동원되었다는데 이 작업과정에서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그 후로도 구소련, 지금의 우크라이나 공화국은 사고가 난 4호기를 뺀 나머지 3기의 체르노빌 원전을 계속 가동하였다. 서방에서 새로운 원전을 건설해 주거나 전력을 지원해주지 않으면 이 발전소를 계속 돌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서유럽 국가들로서는 한 호기에 40억불, 50억불씩이나 되는 원자력발전소를 거저 지어줄 수도 없고 그대로 두자니 체르노빌의 구닥다리 흑연감속로 원전이 또 언제 사고를 낼지 몰라 전전긍긍했단다.

사고후 체르노빌 원전으로부터 반경 30킬로미터는 방사능오염으로 통제구역이 되어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한다. 30 킬로미터 지점에는 검문소가 지키고 있고 10 킬로미터 지점에 또 검문소가 있다고 했다. 외부인들은 반드시 허가를 받아 체르노빌 원전을 방문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체르노빌 발전소에는 지금도 수 천 명의 인원이 출퇴근하면서 일하고 있고 주변지역은 회복되고 우리나라 비무장지대 같이 동물의 왕국이 되었단다. 수백 년 동안 불모지가 될 거라는 우려는 지나친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최근에 사고가 난 그 체르노빌 원전은 강철로 만들어진 반원통 덮개로 덮여졌다. 그리고 출입통제도 한결 덜 해지고 호기심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 관광지가 되어가고 있다고 들었다.

 

흑연감속로, 인공흑연의 위그노에너지를 풀어주기 위한 열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

나는 오랫동안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원인을 그렇게 알아 왔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다. 구소련당국이 거짓말을 한 거란다.

20~30년 세월이 지난 다음 밝혀진 사실은 그렇단다.

체르노빌원전의 소장인가가 “비상디젤발전기가 기동되는데 약 1분이 소요되는데 이 시간 동안 전원이 끊어져도 괜찮은가, 터빈발전기가 관성으로 계속 돌아간다면 전원이 상실되고 원자로냉각재펌프가 정지되고 비상발전기가 안 돌아가도 1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 실험을 해보자.” 이런 위험천만한 시험을 부하직원의 만류에도 우겨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험을 하던 도중 부하직원들이 우려한 대로 사고가 나버렸다는 것이었다. 저출력상태로 불안정하게 운전되고 제어봉이 과도하게 인출되고 갑자기 원자로가 100 배의 출력으로 폭주하고, 원자로에서 증기폭발이 일어나고 원자로 노심이 용융되고 수소폭발이 일어나고 원자로가 파괴되고 비산물이 터져 나오며 솟구쳐 빌딩지붕을 날려버리는 걷잡을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지는 참사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 무식한 시험을 했던 아나톨리 다틀로프(당시 55세)는 체포되어 10년 징역형을 받았고 5년 후 사고후유에 의한 병으로 석방된 다음 독일로 이주했다가 사고 9년 후 사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무모한 시험을 만류했던 직원 알렉산드로 아키모프(당시 33세)와 레오니드 노프투노프(당시 26세)는 사고발생 3주 후 모두 숨졌다고 한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리고 소련놈들의 거짓말과 진실 숨기기로 나도 어쩌면 평생 체르노빌원전사고의 원인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믿고 살 뻔 했다.

 

우리나라의 원전은 월성원전이 가압중수로(PHWR)이고 나머지 고리, 영광, 울진은 모두 가압경수로(PWR)이다. 1950년대 구소련의 흑연감속로와 같은 위험한 노형이 아니다.

우리의 원전들은 후쿠시마 같이 원자로의 물이 증발되어 직접 터빈을 돌리는 비등수로형(BWR)도 아니다. 후쿠시마원전은 비등수로형(BRW)인데다 원자로격납건물이 작고 얇았다.

그 후쿠시마 원전도 진도 8.9의 강진에 버텨냈다. 그러나 쓰나미가 밀려와 발전소를 뒤덮어버리자 비상디젤발전기를 포함한 모든 전원이 상실되고 원자로의 제어가 불가능케 되어버린 것이다. 후쿠시마의 원자로가 폭발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수소폭발이었다.

원자로가 제어불능상태가 되어 노심이 녹았다. 그리고 연료봉 피복재의 화학작용으로 수소가 발생하여 격납건물을 채웠다. 격납건물 천장에는 발생하는 수소를 태워버리는 스파크장치가 있었지만 쓰나미로 전원이 상실되었으니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격납건물 안에 수소가 쌓이다가 폭발하자 작고 얇은 격납건물이 견디지 못 하고 깨어져 터져버렸다. 동영상을 보면 격납건물이 부서져 터지면서 폭음과 함께 먼지가 피어오른다. 그것을 일부 언론들은 원자로 폭발이라고 보도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쓰나미로 일어난 사고인데 마치 지진으로 인해 일어난 사고인 것처럼 호도하여 조그만 지진만 일어나도 호들갑을 떠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지진 때문이 아닌데 말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원전들은 훌씬 더 강력한 내진설계가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원전들은 후쿠시마와와 노형도 다를 뿐 아니라 격납건물도 훨씬 크고 강력하여 가상사고시 방사능물질을 외부로 누출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아니, 사고도 가상사고일 뿐이지 그런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없다. 우리나라는 일본 같이 격렬한 지진이 빈발하고 쓰나미가 발생하는 환태평양 지진대도 아니다. 후쿠시마에서도 방사능 피해로 인한 사망자는 없었다. 다만 피난한 임시거소에서 노환이나 다른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은 후쿠시마에서 천 팔백 몇십 명인가가 방사능으로 사망했다는 가짜뉴스를 인용하면서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를 폐쇄하였다. 명백히 협박이고 공갈이고 사기다.

 

우리나라의 가압경수로(PWR) 원전들에서 그런 사고는 일어날 수가 없다. 또 우리나라의 원전들은 세계최고등급의 내진설계에다 완벽한 안전장치들을 갖추고 있다. 전원상실사고에 대비하여 즉각 대체공급이 가능한 직류전원설비를 갖추고 있어 전원상실 자체가 일어날 수 없다. 또 12초 내에 가동되어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비상디젤발전기를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는 체르노빌원전이나 후쿠시마원전 사고 같은 건 일어날 수가 없다. 지금 한국형 원전은 세계최고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인정받고 있다.

판도라라는 오락영화 한 편 보고 감동하여 눈물 흘리며 탈원전 정책을 추진, 이 나라의 전력기반을 무너뜨리고 해외원전진출의 황금밭을 걷어차 버린 어리석고 무지한 정권이 한없이 한심스럽고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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