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영광 1,2호기 건설현장

52. 가압기와 무뇌아 소동

Thomas Lee 2022. 9. 6. 16:33

만일 모든 일이 설계대로, 도면대로, 절차서대로, 계획대로 진행되고 이루어진다면 건설공사는 얼마나 쉽고 편했을까? 우리는 별로 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대체 설계대로, 도면대로, 절차서대로 왜 못 하는 것인지, 또 더러는 왜 설계나, 도면이나, 절차서가 그 따위로 잘못 되어 있었는지..... 참 탈도 많고 문제도 많고 일도 많았다. 인간이 하는 일에 애당초 완벽이란 있을 수 없었나 보다. 하긴 완벽했다면 타이타닉의 비극도 콜럼비아호의 비극도 없었겠지.

 

* 현대건설 기술인력이 복수기 도면을 잘못 읽었다. 복수기 내부에 급수가열기를 설치할 브래킷(Bracket)을 엉뚱하게 반대편에다 용접해서 붙여놓았다. 당연히 부적합보고서(NCR)가 발행되고 용접된 브래킷을 다시 뜯어내어 반대편 제자리에 붙이는 재작업을 해야 했다. 왜 그런 실수를 했느냐니까 도면에 “Looking North"라고 되어 있었는데 이걸 ”북쪽에 설치하라“는 뜻으로 해석했단다. ”북쪽을 바라보면서“를 ”북쪽에“로 이해하고 브래킷을 반대편에다 갖다 붙인 것이었다. 허허, 이건 영어가 잘못 한 거다.

 

* 한국중공업이 제작하여 납품한 급수가열기를 복수기 안에 설치해놓고 배관을 연결한 다음 시험을 위하여 펌프로 물을 넣어보니 Drain Line으로 나와야 할 물이 나오지 않았다. 급수가열기의 응축수 배출구가 막혀 있었던 것이다. 이 역시 한국중공업이 도면을 잘못 읽어서 개방되어야 할 응축수 통로를 예쁘게 용접해서 막아놓은 것이었다. 급수가열기의 기능과 구조를 알았더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실수를 운전경험이 전혀 없는 한국중공업이 저질러놓은 것이었다. 한국중공업에 연락하여 작업인력들이 출장 와서 용접기로 급수가열기를 개복수술(?) 해서 고쳤다. 외과의사도 아니면서.....

 

* 한국중공업이 만들어온 방사성폐기물 처리 이온교환수지탑을 설치하고 이온교환수지를 주입하였다. 그랬더니 웬걸, 탱크 아래로 이온교환수지가 줄줄 새어나온다. 확인해 보니 바닥에 용접되지 않은 틈새로 이온교환수지가 줄줄 새어나온 것이다. 이 역시 설비의 기능과 구조를 이해하지 못 한 한국중공업이 밀봉되어야 할 부분을 개방해놓은 채로 납품하였던 것이다. “이 물건이 어따 쓰는 물건인지 저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 현대건설이 핵연료저장 수조(거대한 탱크)의 스테인리스 철판을 설치해놓고 콘크리트 타설을 완료했다. 콘크리트 양생이 끝난 다음 거푸집을 떼고 보니 아뿔싸, 수문(水門)을 설치할 기둥 벽면이 튀어나와 불룩 배가 솟아올랐다. 이렇게 되면 수문을 설치할 수가 없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스테인리스강 철판을 직선으로 덧대고 그 틈을 용접으로 메워서 정확한 수직선이 되게 고쳤다. 그리고 스테인리스강 수문을 눕혀놓고 가운데를 좍 갈라 쪼갰다. 그리고 잘라내고 갈아내어 수문의 폭을 줄여서 다시 용접하여 이어 붙였다. 수문 싸이즈를 2~3 센티미터 정도 줄여서 작게 만든 것이다. 그제야 수문이 들어맞았다. 높이가 6 미터가 넘고 폭이 3미터가 넘는 거대한 스테인리스강 수문을 고치는 일은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간도 많이 걸렸고.....

 

* 어느 날 영광경찰서에서 형사들이 건설현장으로 들이닥쳤다. 건설현장에서 김일성 찬양 선동문구가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문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가끔 그런 사보타지 같은 일이 생기곤 했다. 뭘 망가뜨려놓는다든지, 뭐가 없어진다든지....

한 번은 공기냉각기를 설치하여 배관을 연결해놓고 시험을 위하여 밸브를 열었는데 물이 아주 적게 조금만 흐르는 것이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공기냉각기를 도로 떼어내어 시험통수를 해보니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배관을 연결해 놓고 밸브를 열면 물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혹시 배관이 막혔나 하여 방사선투과시험으로 배관을 검사했지만 발견되는 것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인간이 파이프 안에다 각목을 때려 박아놓고 용접해버린 것이었다. 나쁜 인간 때문에 골탕 먹은 것이었다.

 

* 호기당 비상디젤발전기가 2대씩 있다. 이 비상디젤발전기들은 미국 TDI사가 제작한 것으로 용량은 7,000 킬로와트였고 발전소 전원이 상실되는 비상시에 10초 내로 가동되어 전력을 공급하도록 되어 있는 매우 중요한 비상설비다.

그런데 1979년 미국 드리마일 아일랜드 원자력발전소 사고 발생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US NRC)는 원자력규제요건, 안전요건을 대폭 강화하였으며 이와 아울러 비상디젤발전기가 제 때 가동되지 못 하면 큰일 난다 하여 비상디젤발전기를 분해, 세부점검하고 갖가지 시험을 하여 비상디젤발전기를 개선하도록 명령하였다. 이 명령에 따라 TDI사는 200 개 이상의 점검 및 보수, 개선항목을 알려 왔고 영광 1,2호기 건설현장에서는 이미 도착하여 설치된 비상디젤발전기를 점검하고 고치고 바꾸는 숱한 작업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일일이 과기처 안전위원회에 보고해야 했다. 에구, 끝도 없는 점검항목과 설비개선, 거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비상디젤발전기는 한 주일에 한 번씩인가 비상기동훈련을 하면서 언제든지 10초 내로 출동할, 아니 전력을 공급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 비상디젤발전기에 사용하는 연료유는 디젤유인데 지하의 아주 큰 탱크(아마 2천 입방미터 정도)에 저장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땅을 파고 지하에 이 탱크를 설치하고 기초 볼트를 체결하고 흙을 메웠다. 그날 밤 비가 내렸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지하에 묻어놓은 거대한 탱크가 불쑥 땅 위로 솟아올라와 있었다. 빈 탱크의 부력(浮力)이 이렇게 엄청날 줄이야.

 

* 가압기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그것도 두 차례나.....

가압기는 원자로계통의 중요설비이다. 원자로냉각재의 압력을 176Kg/㎠로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직경 2.3m, 높이 12.8m의 기다란 원통형 용기로 내부 바닥에 전기가열기를 내장하고 있다. 이 전기가열기가 온도를 이용하여 원자로계통의 압력을 올리거나 낮추는 조정역할을 한다. 가압기의 강철벽체는 약 4.2인치(11Cm) 두께의 ASME 규격의 철판을 용접하여 제작하였고, 내부표면은 붕산수 부식을 막기 위하여 두께 5mm 정도의 두꺼운 스테인리스강으로 입혀져 있다.

 

원자력발전소의 주요설비들이 모두 엄격한 요건에 따라 설계, 제작, 검사되는데 원자로 및 증기발생기와 함께 원자로냉각재계통을 구성하는 가압기 역시 제작공정에서 두께 4.2인치의 철판을 용접하면서 매 과정마다 ASME Sec. Ⅲ 요건에 따라 방사선 투과시험을 하여 내부의 용접슬래그, 미세균열, 기공 등 작은 결함까지도 검사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원자력규제요건은 증기발생기와 가압기가 이러한 검사를 거쳐 제작, 공급된다 하더라도 건설현장에서 사용자가 핵연료를 장전하기 전에 다시 초음파탐상시험을 실시하여 재질내부 상태를 기록하도록 하고, 발전소를 운전하는 도중에도 매년 동일한 검사(사용중 검사)를 하여 기록된 내부결함이 혹시라도 변화하는지를 감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일 발견된 내부결함이 성장한다든지 규정치를 초과하는 크기인 경우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보수하도록 되어있다.

 

이 같은 규제요건에 따라 건설현장은 7호기에 이어 8호기도 증기발생기와 가압기에 대한 사용전검사(PSI)로 초음파 탐상시험을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8호기 가압기 수직용접선 부위에서 규정치를 초과하는 크기의 내부결함이 발견되어 현장 기술진을 당황케 하였다. 가압기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크기의 결함이 발견된 것이었다. 아니, 웨스팅하우스가 제작한 가압기에서 이런 결함이 발견되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누구 잘못을 따지기 전에 무조건 결함을 도려내고 보수해야 했다. 두께 4.2인치의 강철용기를 결함이 존재하는 위치까지 갈아내고 결함부위를 제거한 다음 동일한 금속재료 용접으로 그 자리를 채워 넣어서 벽체를 성형해야 한다. 용접도 그냥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기 가열설비를 덮어서 가압기를 가열, 약 360℃에 달하는 고온으로 만든 다음 용접을 하고, 냉각시켜서 방사선 투과시험으로 용접상태를 검사한 다음 다시 가열하여 용접하고, 다시 냉각하여 방사선 투과시험을 하는 4, 5회의 반복작업을 해야 한다. 건설현장으로서는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핵연료장전 계획공정의 차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심각한 문제였다.

 

가압기에서 이러한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었는데도 웨스팅하우슨 "우리 웨스팅하우스 공장에서 제작한 물건에 그런 결함이 있을 수 없어요. 그건 틀림없이 한국중공업이 뭘 잘못 했거나 건설현장에서 뭘 잘못 한 걸 겁니다.“ 하면서 뒷짐을 졌다.

 

건설현장은 벡텔, 과기처 원자력에너지센타, 한국검사개발, 그리고 가압기의 제작에 참여한 한국중공업의 기술진을 총동원, 전담반을 구성하고, 코발트 60이라는 강력한 방사선동위원소를 긴급 수배하여 가압기 용접부위를 방사선투과시험으로 정밀조사 하는 한편, 공장 품질검사기록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이 결함이 웨스팅하우스의 공장검사과정에서 발견되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냄으로써 웨스팅하우스를 가압기 수정작업에 동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리하여 웨스팅하우스가 어쩔 수 없이 기술진과 용접사들을 건설현장으로 긴급파견 하였으며, 방사선검사장비 확보 등 까다로운 작업준비와, 비좁은 공간에서 360℃까지 가열된 모재를 용접하고 냉각시킨 후 방사선시험으로 용접부위를 검사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힘든 작업을 주야로 강행함으로써, 20일 만에 보수작업을 마칠 수 있었고 8호기 핵연료장전 공정의 지연을 막을 수 있었다.

“하루공기 백만 불”을 외치는 건설현장에서 막바지에 이런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는 것은 악몽이나 마찬가지였다.

 

* 가압기 문제가 또 있었다. 그게 7호기였던가 8호기였던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이번에는 웨스팅하우스가 아니라 한국중공업이 저지른 실수였다. 즉 웨스팅하우스가 제작한 다음 한국중공업에서 내장 전열기(Heater)를 가압기 내부 바닥에 용접하여 설치하여 건설현장에 납품하였는데 핵연료장전을 마친 다음 가압기 내부 전열기가 잘못 설치되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가압기 때문에 또 난리가 났다. 더 큰 문제는 핵연료장전을 마친 다음이었기 때문에 원자로계통과 가압기가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내장된 전열기를 제대로 고쳐놔야 했다. 핵연료장전 시험은 중단되고 원자로는 정지되고 가압기 보수를 위하여 원자로 계통의 냉각수를 빼내어졌다. 시간을 다투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한국중공업이 용접사와 작업인력을 데리고 오고 또 현장에서 작업인력을 조달(?), 동원하였다.

 

직경이 작고 높이가 12미터가 넘는 기다란 가압기의 맨홀을 열고 안에 사람이 들어가 로프를 타고 비좁은 바닥에 내려가서 작업하는 일은 여간일이 아니었다. 제염작업을 하였지만 방사능으로 오염된 가압기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20여 분에 불과하였다. 20분이 지나면 인체허용 방사선량이 초과되기 때문이었다. 몇 십 명인지 모르지만 하여간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줄을 세워서 한 사람이 들어가 작업하고 나오면 그 다음 사람이 들어가 작업하고 나오는 교대작업으로 가압기전열기를 고쳤다.

 

많은 인원이 방사선을 쪼이며 작업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언론과 반핵단체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엔가 무뇌아 사건이 터졌다. 영광원자력 건설현장에서 일한 한 작업자가 낳은 아이가 무뇌아라는 충격적인 뉴스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작업자는 자신이 흰 방호복을 입고 원자력발전소 가압기에서 일했고 그 때문에 기형아를 낳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조사결과 그 작업자는 가압기에서 일한 것이 아니라 방사능과는 관계가 없는 터빈 쪽에서 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아, 방사선피폭 허용량은 너무나 엄격하여 그 정도 방사선 쬐었다고 문제 생기는 거 절대 아니다. 병원에서 X-ray 몇 번 찍거나 CT 촬영 한 번 하는 선량 보다 더 적으니까.....

그러나마나 무뇌아 사건은 반핵단체의 좋은 껀수였다.

 

이런 이야기 다 하려면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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