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미국해외훈련 15

35. 전두환의 공사화와 김대중의 해외매각

대구공고 선배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선배가 무슨 소용인가? 구악일소니 새 질서 확립이니 하는 적폐청산(?)은 나에게도 많은 피해와 상처를 안겨주었다. 지금도 문재인 정권에 의하여 적폐청산이니 보수궤멸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물갈이 작업이 있었지만 그 때에도 신군부는 이른 바 기득권층을 비리척결 대상으로 보는 듯 했다. 한전에서도 앞서 이야기한 대로 살벌한 인원감축이 이루어졌고 퇴직금을 대폭 삭감하여 개선(?)하였으며 민간이 보유한 한전 주식을 100% 강제매입 하여 한국전력주식회사를 한국전력공사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북한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보유주식은 은행에 공탁한다고 들었다. 퇴직금 제도를 바꾸는 것은 노사단체협약의 변경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신군부는 모든 공기업의 노조위원장들을 불러 ..

34. 초급간부임용고시, 그리고 해외훈련요원 선발

앞서 이야기한 대로 1979년, 한전 본사는 비좁은 을지로 사옥을 떠나 여의도로 이사하였고 우리 원자력건설부도 퇴계로에서 여의도 KBS맞은편 전경련 빌딩으로 이사하였다. 나는 잠실에서 통근버스를 타고 여의도로 출퇴근하였는데 통근버스를 놓치면 택시나 버스, 또는 지하철로 영등포를 거쳐서 여의도로 출근하였고 퇴근할 때는 영등포로 나와 천호동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천호동에서 출발하여 잠실을 거쳐 여의도로 가는 통근버스는 강변도로(올림픽대로)를 달렸으므로 우리는 버스 안에서 아침의 한강을 바라볼 수가 있었다. 우리 어린 시절에 듣기로는 겨울에 한강이 두껍게 얼어붙어서 멋진 스케이트장이 된다고 했는데 그 때에는 한겨울에도 한강이 거의 얼지를 않았다. 성수동을 끼고 옥수동 쪽 한강으로..

33. 고리 1호기 복수탈염설비

고리원자력 1호기가 준공된 것은 1978년 4월, 그러니까 내가 원자력건설부로 가기 딱 1년 전이었다. 나는 고리 1호기 건설에는 참여하지 못 했다. 부산화력에서 일하면서 대학교에 다닐 때 대학친구들과 고리 1호기 건설현장이 바로 건너다보이는 월내해수욕장에 가서 놀다 온 적이 있었고 또 고리 건설현장에서 근무하는 친구를 만나러 한 번 갔던 적이 있다. 그 때 고리 부소장이었던 이종훈씨를 찾아 인사드린 기억이 난다. 고리 1호기를 1972년에 착공할 때 계획공사비는 550억원이었고 계획설비용량은 55만 킬로와트였다. 6년 뒤 1978년 4월 준공되어 상업운전 착수 때 최종공사비는 물가상승으로 인하여 1,280억원이 되었고 설비용량은 58만 7천 킬로와트가 되었다. 공사비가 두 배 넘게 늘었지만 불과 1,2..

32. 원자력건설부

원자력건설부에 전입한 나는 기전공사과에 배치되었다. 나는 입사한 지 11년째나 되는 고참직원이었지만 원자력건설부에 전입하자 도로 신입사원이 되어버렸다. 발전소 안을 뛰어다니며 운전기록지(Log Sheet)를 적고 밸브 돌리고 버너를 뽑아 교체하던 내게 사무실에서 하는 업무는 생소한 새로운 일이었다. 내부결재니 기안지니 협조전이니 하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고 다른 부서와의 업무관계 파악도 어려웠고 원자력 업무에 사용되는 영어와 용어들도 생전 들어보지 못 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물어가면서 배워가는 수밖에. 과장님과 계장님은 처음에는 내게 비교적 쉬운 일들을 시키다가 내게 문장력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부터는 우리 과에서 작성되어 올라가는 거의 모든 기안서류를 나더러 작성하거나 교정하게 하였다. 김 계장님..

31. 서울로 가다

1979년 3월, 공고졸업 10년 만에 대학을 마친 나는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갔다. 당시 사장님은 김영준씨였고 원자력건설부장은 이종훈씨였다. 사실 나는 서울로 올라갈 처지가 전혀 안 되는 상황에 있었다. 서울 본사로 간다고 서울에 사택이 있거나 주택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우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달랑 전세금 80만원 들고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그 무서운 서울로 올라갔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일가족 집단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인 무모한 행보였다. 잠깐 그 당시 내가 받던 한전의 봉급수준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내가 군대에 가기 전에 받던 월급은 대략 2만 5천원이었다. 군에 있을 때 우리 정보작전과장 대위의 봉급이 2만원도 안 되다가 대폭 인상되어 3만원이 넘게 되었다. 그 때 나는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