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미국해외훈련

44. 미친 서부일주여행

Thomas Lee 2022. 7. 18. 20:10

7월이 되고 8월이 되자 피닉스의 태양은 더욱 뜨겁게 타올라 사막과 사막의 선인장들과 또 건설현장을 달구었고 들판의 농작물은 더욱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우리의 훈련기간도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다. 이제 한 달 남짓이면 해외훈련도 끝나고 귀국해야겠지. 그러면 언제 다시 미국에 올 수 있을까?

 

귀국하기 전에 미국 구경을 더 해보고 싶었다. LA사무소 김계장님 한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우리도 하계휴가 한 주일 낼 수 있습니까?” 김계장님은 별 문제 없으니 알아서 하란다.

나와 한 방을 쓰는 장o씨와 또 LA에 있는 양o씨가 의기투합하여 서부일주여행을 하기로 했다. 한 주일 휴가를 내면 토요일과 일요일이 앞뒤로 붙어서 9일간의 여행이 가능했다. 지도를 펴놓고 LA에서 요세미티 국립공원,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러쉬모어 마운틴, 콜로라도 록키산을 거쳐 피닉스까지 크게 한 바퀴를 돌아오는 노선을 그렀다.

우리 두 사람은 한 주일 휴가를 내어 마침 휴가를 가는 벡텔 직원의 차에 얹혀서 LA로 가서 양o씨와 합류하였다. 거기에서 승용차 한 대를 렌트하여 북쪽으로 출발하였다. 세쿼이아 국립공원을 거쳐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올라갔다. 세쿼이야 공원의 하늘을 가리고 치솟은 어마어마하게 큰 거목들 사이로 난 길을 운전하려니 우리가 조그만 스머프가 된 것 같았다.

 

우리는 요세미티의 거대한 바위산과 높은 폭포와 흡사 새대가리 같이 생긴 하프돔을 보았고 거대한 나무를 뚫어서 만든 길을 통과했다. 세상에 이런 데가 다 있나?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트럭이 끄는 지붕 없는 트레일러를 타고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거목들을 구경하였다. 쓰러져 드러누운 거목에 터널을 만들어놓았고 나무를 깎아 집처럼 만들어놓았다. 벼락으로 속이 새까맣게 타버린 거목이 꿋꿋이 버티고 서 있었고 직경이 5미터는 됨직한 거대한 나무를 잘라 안에서부터 나이테에다 연도를 써놓았다. 예수 탄생, 십자군 전쟁, 콜럼버스 미대륙 발견..... 그 나무가 2,500년인가 3,000년이나 되었단다.

 

우리는 까마득한 바위벼랑 아래에 있는 조그만 인디언 마을에서 인디언 춤을 보고 나서 요세미티 뒤편으로 넘어가는 도로를 따라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요세미티를 지나 고지대로 올라가니 거기는 하늘 위에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바위세상이었다. 드넓은 바위산 위에 호수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 텐트를 치고 밤을 새우려는 것 같았다. 우리도 그 호수 옆에다 텐트를 쳤다. 우리는 바위세상에서 바위언덕에 올라가 저무는 해를 바라보았다. 석양에 비친 바위세상의 호수와 텐트촌이 붉은 저녁노을 속으로 어두워져갔다.

 

우리는 다음날 아침 일어나 네바다주 북쪽의 리노(Reno)로 갔다. Reno는 네바다 북쪽의 작은 라스베가스 같은 도시였다. 우리는 호텔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카지노에 들어가 슬롯머신을 조금 당기다가 동쪽으로 출발하였다. 그 때 우리가 알았더라면 유명한 모노호수(Mono Lake)와 타호 호수(Lake Tahoe)에도 들렀겠지만 그 호수들은 우리의 계획에 들어있지 않았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유타주 솔트레이크였고 또 옐로스톤 국립공원이었다. 우리는 장거리 선수처럼 부지런히 자동차를 달렸다. 네바다주 경계를 벗어나는 지점에 조그만 카지노들 여러 개가 “떠나기 전에 마지막 챤스!”라는 커다란 광고판을 붙여놓고 관광객들의 호주머니에 남은 마지막 동전까지 긁어내려는 듯 진을 치고 있었다.

 

네바다주를 벗어나 유타주에 접어들어 한참을 가니 눈앞에 눈밭이 나타났다. 그건 눈밭이 아니라 소금밭, 아니 소금바다였다. 그 소금바다에서 불도저가 소금을 밀고 있었다. “야, 이 나라에선 염전이 아니라 이런 곳에서 소금을 퍼다 먹는구나.” 그 소금바다를 지나고 나니 물이 가득한 드넓은 소금호수(Salt Lake)가 나타났다. 솔트레이크를 지나 유타주 주도(州都) 솔트레이크시티로 들어갔다. 주청사를 구경하고 주청사 앞에 선 인디언 동상의 손를 잡고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우리는 다시 15번 고속도로를 타고 계속 북상하였다.

 

15번 고속도로는 아주 넓었고 마침 퇴근차량들로 붐비고 있었다. 내가 운전하고 있었는데 이삼일 잠을 설쳤다고 눈꺼풀이 마구 감겨 내려왔다. 핸들을 잡은 채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러고는 소스라쳐 잠을 깨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분명히 내가 잠에 떨어진 것이었다. 차는 여전히 수많은 차량들 속에서 달리고 있었는데 ‘내가 졸았구나.“ 생각하니 등줄기에 땀이 솟구쳐 나왔다. 휴게소에 들어가 잠시 쉰 다음 운전자 교대를 했다.

 

우습지만 우리는 그 절경으로 유명한 Grand Teton 국립공원을 거쳐서 Yellowstone 국립공원으로 갈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냥 다음 목적지가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이었으므로 부지런히 달릴 뿐이었다. 가다가 휴게소에 들어가 간단히 개스버너로 밥을 지어먹거나 라면을 끓여먹었다. 밤이 되면 캠핑그라운드를 찾아들어가서 텐트를 치고 잤다. 한 번은 밤이 너무 늦어서인지 캠핑그라운드 입구를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그냥 들어가서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잔 다음 아침 일찍 일어나 나왔는데 역시 출입구에 돈 받는 사람이 없었다.

“이거, 돈 안 내고 그냥 가도 되나?”

“어떡하냐, 찾아가서 지불할 수도 없고.”“모르겠다, 그냥 가자. 이 돈으로 햄버거나 사 먹자.”

캠핑그라운드에서만 자지는 않았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은 모텔에 투숙해서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고, 전기밥솥으로 밥을 짓고 모처럼 푹신한 침대에 몸을 뉘었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 도착한 우리는 뜨거운 물과 김을 내뿜는 Old Faithful 분수를 보았고, 옐로스톤 폭포를 보았고, 넒은 호숫가에서 부글부글 끓는 온천들을 보았고, 진흙온천을 보았고, 흘러내리다 굳은 멋진 석회석 온천도 보았다. 커다란 버팔로 들소와 무쓰니 엘크니 하는 큰 사슴들도 보았다. 온종일 구경하고 나니 날이 저물었다. 우리는 어두워질 무렵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북쪽으로 빠져나와 90번 고속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차를 몰았다.

 

이따금 작은 동물이 튀어 나왔다. 갑자기 토끼가 튀어나오더니 자동차에 부딪혔다. “탁” 하는 작은 소리만 났을 뿐 차는 전혀 요동함이 없었다. 토끼에게 죄를 지은 듯 미안했다. 이번엔 저 멀리 어두움 속에서 사슴가족이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넘고 있었다. 바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사슴들 바로 앞에 가서야 가까스로 멈췄다. 사슴들은 길을 건너다 말고 ‘저게 뭐지?’ 하는, 무슨 영문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우리 자동차 불빛을 쳐다보고 서 있었다. 헤드라이트를 끄니 그제야 놀라서 후다닥 도망을 갔다.

 

나는 너무 피곤하여 양o씨에게 핸들을 넘겨주고 뒷자리에 누워 눈을 붙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이른 아침이었고 차는 여전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양O씨가 우리가 지난밤에 500 마일을 달렸단다. 그리고 곧 우리는 거대한 대통령 네 사람의 바위조각이 있는 러쉬모어 마운틴(Rushmore Mountain)에 도착했다.

 

싸우스다코타주 러쉬모어 마운틴(Rushmore Mountain) 대통령 얼굴 구경을 한 다음 우리는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얼마를 가니 윈드 케이브(Wind Cave)라는 간판이 보였다.

“바람 부는 동굴? 저거 재미있겠다.”

우리는 입장료를 내고 관광객들 틈에 끼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동굴 아래로 내려갔다. 석회암 동굴이긴 한데 색깔이 붉었고 한국의 동굴 같이 아기자기한 동굴은 아니었다. 안내하는 사람이 말했다. “여러분은 이제 절대 암흑을 체험하시겠습니다.” 불이 꺼졌다. 코를 베어가도 모를 완전 깜깜한 암흑이 되었다. 절대 암흑 체험, 참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그렇게 동굴 안을 구경하고 밖으로 나오더니 안내요원은 바위틈에 난 조그만 구멍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여기에서 이 구멍을 통하여 바람이 동굴 안으로 불어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 동굴 이름이 ‘바람 동굴’입니다.”

 

싸우스다코타주를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가니 네브라스카주였다. 우리가 내려가는 길이 대평원이 시작되는 경계가 되는 곳이었다. 서편으로는 저 멀리 록키산맥이 보였고 동편으로는 드넓은 대평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네브라스카주에는 목장들이 많았고 소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는 부지런히 달려 콜로라도주 덴버에 도착했다.

덴버는 해발고도가 거의 2천 미터에 이르는 고지대라고 했다. 덴버시내에서 지나는 젊은이들이 우리 차 번호를 보고는 소리를 치며 손을 흔들었다. “야, 캘리포니아에서 왔구나!”

 

우리는 덴버시내 한복판에 있는 콜로라도 주 청사를 구경하고 북서쪽으로 차를 몰아 록키산으로 향했다. 도로는 웅장한 록키산 허리를 타고 굽이굽이 돌아 우리를 점점 높이 들어올렸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고 저 멀리 덴버시내가 보이고 멀리 대평원이 내려다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몇 차례 길가에 차를 세우고 드높은 산봉우리들과 골짜기들을 구경하였다. 드디어 키 큰 나무들이 사라지고 관목지대가 나타나고 다시 풀밖에 자라지 않는 지대가 나타났다. 도로가 록키산 고개 꼭대기에 도달하였다. 해발 2,300 미터라던가 거기가 미국에서 가장 높은 도로라고 했다. 또 거기가 Continental Divide, 동쪽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미시시피강을 거쳐 멕시코만, 대서양으로 흘러가고 서쪽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콜로라도강을 거쳐 태평양으로 흘러간다고 했다. 우리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잠시 걸으면서 높은 록키산을 넘는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진행하여 록키산을 넘었다, 반대편으로 넘어가니 드넓은 산골짜기가 알프스 풍경처럼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 다시 덴버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덴버 남쪽의 공군사관학교 입구로 들어갔다. 경비병이 차를 막았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단다.

 

서운했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남서쪽으로 아리조나를 향하여 방향을 돌렸다. 또 밤새도록 달렸다. 차창 밖으로 별들이 유난히 밝게 빛나며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그 동안 정신없이 달리느라 보지 못 했던 별들이 한꺼번에 아우성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새벽녘이 되어 먼동이 트고 있었다. 나는 곤죽이 되어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었다. 눈이 아팠다. 길가에 붉은 사암 벼랑이 서 있었다. 나는 태양이 비치지 않는 그늘 쪽 공터에 차를 세우고 엔진을 끄고 의자를 뒤로 젖히고 기대어 눈을 감았다. 뒷자리의 두 사람은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져 있었다. 몇 시간을 잤을까, 더워서 잠을 깼다. 사막의 뜨거운 태양이 어느새 그 바위벼랑을 넘어와서 우리를 따끈하게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어기적거리며 일어나 거기에서 아침식사를 대충 해먹고 Four Corners Monument 라는 곳으로 갔다. 콜로라도주, 뉴멕시코주, 아리조나주, 유타주, 이렇게 네 개의 주 경계가 십자(+) 모양으로 한데 만나는 유일한 곳이라는 데 안 들를 수가 없었다.

우리는 다시 그곳을 떠나 아리조나주로 들어가서 모뉴먼트밸리로 찾아갔다. 죤 웨인이 말 달리던 서부영화에서 보던 광야에 솟은 그 벙어리장갑 같은 거대한 바위들, 우리는 공원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 하고 입구 전망대에서 그 풍경을 바라만 보고 사진을 찍은 다음 그곳을 떠났다. 시간이 촉박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계속 차를 달려 그랜드캐년으로 갔다. 나와 장o씨는 몇 번 가 본 그랜드캐년이었지만 LA에 있던 양o씨에게는 그랜드캐년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 마일스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랜드캐년 싸우스림 전망대 몇 곳을 돌아본 다음 그랜드캐년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와 세도나의 아름다운 붉은 바위들을 건성건성 바라보면서 피닉스로 돌아왔다. 드디어 돌아온 것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달린 거리는 2,800 마일이 넘었다. 피닉스 아파트에 도착한 우리는 모처럼 식사다운 식사를 하고 좀 쉰 다음 양o씨 혼자서 차를 몰고 LA로 400마일 가까운 먼 길을 다시 출발하였다.

 

7박 8일, 아니다, 사흘 밤은 캠핑그라운드에서 텐트 치고 자고 이틀 밤은 모텔이서 자고 이틀 밤은 도로 위에서 새웠으니 5박 8일 동안 우리는 그렇게 미국서부 일주여행을 해낸 것이었다. 꿈같았다. 살아 돌아온 게 기적 같았다. 아슬아슬하고 위험했던 순간이 몇 차례나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졸기도 하였고, 엔진출력이 크지도 않은 승용차로 다른 차를 추월하려다가 맞은편 차와 조우하는 위험한 순간도 있었고, 어두운 밤길 숲속 도로를 달리다가 도로가 갑자기 직각으로 꺾이는 바람에 반대편 차선으로 넘어가 맞은편 차와 충돌할 뻔 한 적도 있었다. 8일간의 서부일주 강행군 여행, 그건 여행이 아니라 미친 짓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살려주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