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미국해외훈련

45. 미국아, 잘 있거라.

Thomas Lee 2022. 7. 23. 20:22

피닉스를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는 짐을 싸고 살림살이를 정리하였다. 이민백에 도저히 들어갈 것 같지 않은 많은 물건들을 버려야 했다. 벡텔사가 한아름씩 안겨준 교육훈련교재도 너무 많고 무거워 눈물을 머금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여덟 달을 신었지만 아직도 새것 같은 아까운 안전화는 누구 신을 사람 있으면 신으라고 쓰레기장 앞에다 고이 갖다 놓았다. 키우던 선인장 화분도 거기 갖다 놓았다. 가방과 이민백 안에는 카메라와 라디오와 밥솥과 사진들과 환등기 필름들을 챙기고 입던 옷과 선인장 그려진 티셔츠도 챙겨 넣었다.

 

여덟 달 가까이 우리를 태우고 다닌 72년형 크라이슬러 뉴포트는 ‘For Sale"종이를 붙이고 다녔지만 끝내 사는 사람이 없어 내가 몰고 LA까지 가기로 했다. 우리는 팔로버디에서 정들었던 친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Paul과 또 누군가가 우리가 떠나는 날 아파트에까지 와서 우리를 전송해 주었다. 우리는 그들과 작별하고 아파트를 떠나 우리가 날마다 출근버스를 타던 몰, 영화관과 스케이트장과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 그 몰 앞을 지나 우리가 날마다 달리던 10번 고속도로를 타고 LA로 향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아마도 다시는 못 보겠지.

 

피닉스에서 LA까지는 일곱 시간인가 여덟 시간이 걸렸다. 밤중 가까운 시간에 LA에 도착한 우리는 벡텔사가 마련해 준 허름한 호텔에서 며칠을 지냈다. 팔지 못 한 72년형 크라이슬러 뉴포트는 미안하였지만 문계장님에게 처리를 부탁하였다. 다들 선물을 준비한다고 LA 올림픽로 한인가게를 갔다. 나도 갔지만 무엇을 사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커피나 과자, 초컬릿 같은 거나 조금 샀다. 귀국하는 교육생 중에 내 짐이 가장 초라한 것 같았다. 내가 가져가는 코끼리 밥솥의 코팅이 벗겨진 것을 보고 문 계장님 부인이 밥솥 속 그릇을 새로 사서 넣어주셨다.

 

LA 사무소에서 우리를 LA공항으로 태워주고 전송을 해주었다. 서울로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가 LA 국제공항을 이륙하자 이제 미국을 떠나는 것이 실감이 났다. 미국아, 잘 있거라. 내가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비행기 좌석 구멍에 이어폰을 꽂으니 한국노래가 흘러나왔다. 남궁옥분이라는 처음 듣는 이름의 가수가 부르는 노래였다. 아, 얼마 만에 다시 들어보는 한국노래인가. 그러고 보니 우리가 지난 열 달 동안 한국방송이나 한국노래를 한 번도 듣지 못 했다는 생각이 비로소 났다. 아, 이제 내 조국 한국으로 돌아가는구나.

 

비행기는 하와이 호놀룰루에 잠시 기착하였다. 몇 몇 교육생들은 하와이에서 이틀인가 관광을 하고 간다고 했지만 나는 공항 울타리 너머로 호놀룰루를 잠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갈 때처럼 요란한 대규모 환영단은 없었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가 공항에 나와 나를 맞아주었다.

그 사이에 아들은 한 살 더 먹어 다섯 살이 되어 있었고, 딸은 첫돌을 지나 두 살이 되어 있었고, 잠실 2단지 아파트에 있던 집은 잠실 3단지 아파트로 옮겨져 있었다.

10개월 미국 해외훈련이 꿈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