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화력

25. 복직, 복학, 그리고 졸업

Thomas Lee 2022. 5. 6. 13:05

어머니는 제대한 나를 데리고 안동시내 구시장 어귀 조흥은행 앞에 있는 양복점으로 가셨다. 입대하기 전에 입던 양복이 한 벌 있기는 했지만 너무 낡은데다 입대하기 전 57kg, 58kg 나가던 내 몸무게가 64kg으로 불어나 있었고 다리통과 어깨쭉지가 굵어져서 맞지가 않았다. 옷을 입고 조금 힘을 주었는데 옆구리의 실밥이 ‘투두둑’ 터져버렸다. 군대생활을 하면서 나도 제법 탄탄한 사나이의 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집에서 이틀인가 지나고 나서 집에서 쉬면 뭣 하겠나 싶어 부산으로 내려가는 중앙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감천 부산화력발전소는 정문 앞에 전에 없던 건물이 한두 개 생긴 것 말고는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나를 맞아주었다. 정문을 지키는 수위 아저씨 얼굴도 낯익었다. 나는 발전과 사무실로 가서 복직원을 작성해 제출했다. 몇 몇 낯익은 얼굴들이 나를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복직원을 제출하고 다시 안동으로 돌아왔다. 며칠 지나지 않아 회사로부터 편지가 날아왔다. 12월 16일부터 부산화력에 복귀하여 근무하라는 통지였다.

 

나는 다시 부산화력 3,4호기 보일러보조 운전원(ABO1)이 되었고 교대근무를 하게 되었다. 감천합숙소(독신자숙소)에도 빈방이 있어 나는 하숙집을 찾을 필요 없이 합숙소로 들어갔다. 군대 가기 전에는 C동에 영하와 함께 기거했었는데 이번에는 더 나은 A동 독방이 내게 배정되었다. 내가 군에 간 다음 다른 친구들도 여럿 군에 가서 아직 제대하기 전이었고 결혼해서 독신자 숙소를 나간 사람들도 많아 독신자 숙소에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통일벼 쌀밥에 국과 반찬 두어 가지 나오는 합숙소 식당의 음식은 거의 예전 그대로였다. 또다시 독신자 숙소 총각생활이 시작되었다. 3년의 긴 여행 끝에 돌아왔으나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나를 떠나간 다음이었다. 다시는 돌아오지도 않고 되찾을 수도 없는 것들.......

 

학교에 복학을 하려면 휴학을 한 2학기가 되기까지 아직 아홉 달을 기다려야 했다. 자유의 몸으로 돌아온 것 같은데 아직 내가 다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꿈속에서 다시 군대로 끌려갔다. 밤새도록 군대에서 헤매다가 눈을 뜨면 부산화력 합숙소였다. 제대가 잘못 된 거라면서 다시 입대해야 한다고 해서 끌려가 신체검사를 다시 받고 군에 재입대하는 꿈도 꾸었다. 내 마음은, 내 영혼은 자리를 잡지 못 하고 헤매고 있었다.

 

나는 근무가 없는 날은 온종일 부산시내를 돌아다녔다. 3년 전 그녀와 만나던 곳으로 가보기도 하고 온종일 당구장에서 당구도 쳐보고 음악다방에 앉아서 커피를 홀짝여도 봤지만 텅 빈 가슴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거닐던 하단의 에덴공원에 갔더니 그 넓은 갈대밭을 메워가며 집들이 들어서고 있었고 달짝지근한 모과주를 팔던 주막집도 사라지고 없었다. 사라진 것은 모과주 팔던 주막집 뿐 아니었다. 모든 것이 떠나버린 나는 머리도 마음도 텅 빈 인간이 된 것 같았다.

 

하루는 출근해서 보일러실에 앉아 있는데 배전반(중앙제어실)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니 보일러 꼭대기에 올라가서 팬(fan 이름이 기억 안 나네) 두 대 중 1번 팬을 끄라는 지시였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9.7미터로 올라갔다. 그런데 팬을 끄려니 두 대 중 어느 것이 1번이고 어느 것이 2번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남쪽 것이 1번인가, 북쪽 것이 1번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려니 정 주임이 달려왔다.

“아니, 1번 팬을 끄라는데 뭐 하고 있는 거요?”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 난 바보가 되어 있었다.

바보가 되었을 뿐 아니라 가슴을 채우고 있는 형언할 수 없는 울분과 상실감으로 나의 말투나 태도가 까칠하고 반항적이었던 모양이다. 한 선배직원이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다들 군에 갔다 오면 사람이 점잖게 달라져 온다던데 OO씨는 어째 더 공격적이고 반항적이 되신 거 같아요?”

 

그것은 어쩌면 자학(自虐)이며 현실도피(現實逃避)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미칠 거 같아서였는지도 모른다. 합숙소에 독신자들이 한 방에 모여 화투놀이를 하고 있었다. 군대에 가기 전에는 없던 ‘고도리’라는 신종 화투놀이였다. 군대에 있을 때 장교들이나 하사관들이 고도리 화투놀이를 하는 것을 곁눈질로 본 적은 있었으나 내가 직접 고도리 화투를 대한 것은 처음이었다. 뒤켠에 앉아 대충 룰을 배운 다음 나는 그 화투놀이에 끼어들었다. 고도리 화투놀이에 서투른 내가 끼어들어 이른 바 민폐를 끼치니 돈 잃고 욕먹는 고문관이 되고 말았다.

 

다른 방에서는 트럼프 포커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포커를 할 줄 모르던 나는 대충 포커족보를 배운 다음 포커판에 끼어들었다. 큰돈은 아니지만 또 잃었다. 그래도 돈 잃고 욕먹는 고도리 화투판 보다는 나았다. 포커에 재미를 붙인 나는 밤새워 포커를 하다가 발전소에 출근하고 근무가 끝나면 포커판으로 출근하기도 했다. 식사도 제대로 않고 담배를 피워대면서 밤새도록 포커를 하고 나면 무릎이 아파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점점 날씬해져서 6개월 쯤 지나자 다시 입대 전 날씬한 몸매와 몸무게로 되돌아갔다.

 

내가 몇 달 동안 빠져있던 포커를 그만 두게 만든 것은 어느 날 밤 포커판에 들이닥친 경찰이었다. 갓 결혼한 직원 중 하나가 며칠씩 집에도 안 들어가고 합숙소 방에 모여 포커판에서 밤을 새니 그 아내가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었다. 우리는 감천파출소로 연행되어 갔다. 그러나 전문도박꾼들의 노름도 아니고 직원들끼리의 포커게임이라 하여 훈방되기는 하였지만 파출소장이 발전소에 전화를 걸어 노조지부장님과 소장님께 직원들 신병을 인계하는 바람에 우리는 소장님으로부터 일장훈시를 듣고 경고장을 한 장씩 받았다. ‘다시 포커를 하다가 발각되면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라는 각서인지 시말서도 썼다. 그 사건으로 합숙소에서 포커판은 사라지고 나의 짧은 포커열병도 끝났다.

 

그렇게 나는 8개월을 보냈다. 그렇게 기다려 9월 2학기가 가까워오자 나는 복학원을 내러 학교에 올라갔다. 담당직원이 자퇴한 경우는 복학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4년 전 단체자퇴사건을 이야기해주고 총장님께서 복학약속을 하셨다고 말해 주었다. 직원이 총장실을 다녀오더니 복학원을 접수했다. 우리가 군대에 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동안 김상복 사장도 떠나고, 박정희 대통령의 근로학생 적극지원 정책에 따라 학비에 대한 세금공제제도도 생기고 오히려 직원들의 진학과 학업을 장려하는 쪽으로 바뀌어 있었다. 방송통신대도 생기고 방송통신대나 전문대학을 거쳐 정규대학 편입도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세월을 잘못 만나 자퇴원을 내고 군대에 끌려간 우리만 억울했다.

아무튼 나는 밤에 일하고 낮에 학교를 다니는 고달픈 생활을 다시 시작하였다. 학교에서는 나 보다 여섯 살 일곱 살이나 적은 기계공학과 동급생 아우들이 나를 형님으로 모셔 주었다. 형은 군대에서 머리가 굳었을 거라면서 리포트도 보여주고 더러 숙제도 대신 해 주고 기특하게도 시험시간에는 커닝페이퍼를 전해 주기도 하였다.

 

1979년 2월 25일, 공고를 졸업하고 한전에 입사한 지 꼭 10년 만에 나는 학사모를 썼다. 동아대학교 졸업식 날, 아버지, 어머니, 두 남동생, 두 여동생, 그리고 백부님, 숙부님과 사촌형, 여기에다 나의 아내와 젖먹이 아들, 처가집 식구들까지 열 대여섯 명이나 되는 대규모 졸업축하단이 내게 꽃다발을 안겨주며 뒤늦은 스물아홉 살의 대학졸업을 축하해 주었다.

 

일류대학이든 이류대학이든, 성적이 어떻든 그건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해내었던 것이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던 날, 아버지는 못내 감회에 젖어 하셨다. 만일 내가 영월화력에서 주저앉았거나, 예비고사에서 떨어져 대학을 포기했거나, 대학을 마치지 못 하였더라면 그것은 두고두고 아버지의 가슴에 한으로 맺힐 뻔 하지 않았겠는가? 잘 했든 못 했든, 학점만 따서 졸업했든, 회사를 다녀가면서, 발전소 교대근무를 해가면서, 군대까지 다녀와서 끝내 10년이나 걸려 대학교를 마쳐낸 큰아들을 아버지는 대견해 하셨고 고마워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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