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독야근

12. 영월화력발전소

Thomas Lee 2022. 3. 25. 20:23

영월읍내에서 발전소까지는 10여리 되었는데 출퇴근 시간에 어두운 초록색깔의 통근차가 다녔고 우린 우체국 건너편에 모여서 통근차를 기다렸다.

구화력은 1931년엔가 왜정 때 지은 참으로 오래 된 구닥다리 발전소였고 신화력은 차관을 도입하여 1965년에 건설한, 당시로서는 비교적 신형에 속하는 발전소였다.

구화력은 8개의 보일러에 4대의 터빈발전기를 연결하여 모두 10만 kw였고 신화력은 5만 kw짜리 2기였으므로 영월화력은 도합 20만 kw의 발전소였다. 당시 전국의 수력, 화력, 내연력 발전소를 몽땅 합쳐 163만 7천 kw였으니 20만 kw이면 약 8분의 1을 차지하는 대형사업소였던 셈이다. 인원은 600명 가까이 되어 본사 보다 인원이 많은 전국에서 가장 큰 사업소였다.

 

구화력의 보일러는 정말 고물이었다. 열출력도 겨우 12,500 킬로와트밖에 안 되어 보일러 두 대를 묶어 25,000 킬로와트 터빈 발전기 한 대를 돌리는 식이었다. 거의 완전 수동식이었다. 운전원이 의자를 놓고 붙어 앉아서 증기드럼의 레벨게이지를 보면서 수위가 내려가면 밸브를 열어주고 수위가 올라가면 밸브를 닫아주는 식이었다. 그런 식으로 50년 세월을 보일러 태워먹지 않고 운전해왔다는 게 신기했다. 터빈발전기는 정문 출입구 쪽에 4대가 한꺼번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우리가 출근하여 출근부에 도장을 찍고 들어가는 통로에서 바로 내려다 보였다.

석탄은 마차탄광과 신영탄광에서 20리, 30리 거리를 삭도(케이블카)로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운반해 왔고 삭도 버킷이 도착하면 사람이 손으로 그걸 붙잡아 뒤집어서 석탄을 쏟으면 삭도 버킷은 다시 삭도 케이블에 매달려 흔들흔들 탄광을 향하여 산 너머로 되돌아갔다. 이 삭도는 영월기차역 근방 동강을 가로질러 건넌 다음 30리 가까이 떨어진 마차탄광, 신영탄광으로 연결되었다.

석탄에는 돌덩어리가 많이 섞여 있었는데 석탄을 뒤집어써서 눈으로는 잘 구분이 안 되었기 때문에 사람이 일일이 쇠꼬챙이 막대로 두들겨 보고 돌덩어리를 골라내었다. 보일러 밑바닥에서는 작업인력이 삽과 괭이로 재와 클링커(재가 녹아서 엉겨붙은 덩어리)를 쳐내었다.

구화력 굴뚝 네 개와 신화력 굴뚝 두 개에서는 잿빛 연기가 뿜어져 나가 온 사방에 재를 흩뿌렸다. 원심분리식 재처리설비를 갖추었지만 비산재(Fly Ash) 제거효율이 80%나 85% 정도밖에 안 되었으므로 석탄재가 발전소 온 사방 산과 강을 새까맣게 뒤덮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발전소 설비가 온통 수동조작 방식인데다 석탄과 재처리에 많은 인원이 필요하여 그야말로 온 발전소에 사람들이 새까맣게 달라붙어서 일했다. 참으로 꾀죄죄한 영세형 발전소였던 셈이다.

 

신화력과 구화력이 따로 나누어져 있었으므로 운전요원의 조직도 별개로 운영되고 있었다. 운전원 조직은 운전과(運轉課) 밑에 구화력, 신화력 각각 4개 운전계(運轉係)가 있었고 그 4개 운전계가 4일 주기로 낮-밤-저녁, 3교대를 하고 있었다. 이걸 Shift 근무라고 했다. Day Shift는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Night Shift는 밤 12시부터 아침 8시까지, After Shift는 오후 4시부터 밤 12시까지...

4일 동안 낮근무를 하고 나면 하루 쉬고 밤근무 4일, 그리고 하루 쉬고 오후근무 4일, 오후근무 4일을 마치면 이틀 쉬고 다시 낮근무... 이렇게 16일 주기로 뱅글뱅글 돌아갔다.

 

구화력은 정규직원 운전요원과 일용직 작업원을 합쳐 각 계가 약 60명이었고 신화력은 약 40명이었다. 그러니 항상 24시간 100여명이 발전소를 운전하는데 동원되는 셈이었다. 공휴일이나 국경일이나 아무 상관없이 이렇게 뱅글뱅글 돌아가는 것이 발전소 운전원 교대근무였다.

 

우리 신입사원들은 2 주일 동안 또다시 영월화력 적응을 위한 교육을 받았고 그런 다음 구화력과 신화력에 나누어 배치되어 운전교대근무를 하게 되었다. 나는 교육평가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바람에 구화력이 아닌 신화력 운전C계에에 배치되었다. 구화력이 아닌 신화력에 배치되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란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내가 받은 보직이 악명 높은 석탄미분기 운전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난 내 평생 이 때만큼 힘들고 험한 일을 해 본 적이 없다. 출근해서 작업복을 갈아입는 순간부터 나는 새까만 깜둥이가 되었다.

 

우리 신입사원들도 벽지수당 2,500원을 합쳐 월급이 약 2만 5천원이나 되었는데 일용직 작업요원들은 그게 아니었다. 그 분들은 하루 일당 300원을 받는다고 했다. 대부분 초등학교 정도의 학력이라고 했다. 우리와 똑같이 운전계에 함께 배치되어 일하지만 주로 석탄을 내리고 컨베이어에 퍼 올리고 석탄 중에 섞인 돌덩어리나 괴탄을 골라내고 석탄재, 클링커를 처리하는 일들을 하면서 하루 일당 300원, 그러니까 한 달에 6900원 아니면 7200원 정도를 받아서 살아가는 분들이었다. 그 돈을 받아서 살면서도 계를 들고 적금을 부어 몫돈을 모으며 알뜰살뜰 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하고 신기하다, 그 분들은 어떻게 그 돈으로 가저을 이루고 아내와 함께 아이들까지 키우며 살았는지.

 

내가 석탄미분기 운전원을 하였기 때문에 나도 그 분들과 함께 일하였는데 그 중 한 분은 나와 같이 C계에 배치되어 컨베이어벨트 타워 꼭대기에서 석탄에 섞인 돌멩이를 골라내는 일을 하셨다. 그 분은 6.25 때 참전한 국군용사이셨는데 적과 대치하고 있던 어느 날 다른 병사가 보초시간을 자기와 바꾸어 달라고 해서 바꾸어 주었는데 그 병사가 보초를 서던 중 포탄이 정확히 그 자리에 날아와 폭사했다고 하였다. 원래 보초시간 대로 보초를 섰더라면 자기가 지금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발전소 안 공기중의 석탄먼지는 안개처럼 희뿌옇게 보였다. 당시에는 소음을 막는 귀마개나 석탄먼지를 막는 마스크 같은 기본적인 보호장구도 제대로 없었다. 지금 같았으면 미세먼지를 막는 황사 마스크라도 있지 그 시절에는 마스크라고는 약국에서 파는 거즈 마스크밖에 없었다. 그걸 끼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군용 방독면을 쓰고 일할 수도 없었고 보자기를 뒤집어써도 답답하기만 했지 소용이 없었다. 그냥 마시는 수밖에 없었다.

 

석탄 미분기(Coal Pulverizer) 원통분쇄기는 발전소 바닥에 있었고 미분탄 배분장치는 발전소 꼭대기에 있었다. 석탄미분기에 보일러에서 나오는 뜨거운 공기를 불어 넣어주는 핫에어 댐퍼(Hot Air Damper), 곱게 부수어진 석탄가루를 위로 불어 올리는 클래시파이어(Classifier), 석탄을 밀어 넣어주는 로콜피더(Raw Coal Feeder), 그리고 발전소 꼭대기 부분에 있는 싸이클론 세퍼레이터(Cyclone Separator), 버너에 석탄가루를 공급하는 벙커와 그 위의 피시 디스트리뷰터(P. C. Distributor)와 벤틸레이터(Ventilator)... 석탄미분기가 가동되는 시간에 나는 쉬지 않고 발전소 밑바닥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오르내려야 했다.

“와르르, 와르르.....탕탕탕....” 석탄미분기 원통분쇄기 네 대가 돌아가면 투포환 같은 쇠공들이 그 안에서 석탄을 빻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지축을 흔들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귀가 먹먹하고 다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밤중에 발전소 꼭대기에서 어두운 밤하늘과 그 아래 시커먼 산들과 그 산들 사이 골짜기를 흘러가는 동강을 바라보면 내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 했다.

 

발전소 운전계는 계장님이 계시고 주임이 계시고 고참순으로 분전반 운전원)DB) 1명, 호기별 터빈발전기 배전반 운전원(BTG1), 호기별 보일러 제어반 운전원(BTG2), 이렇게 7명이 주제어실에 근무하고, 그 다음 각 호기별로 터빈운전원(TO), 보조설비 운전원(AO), 보일러운전원(BO), 보일러보조운전원(ABO), 석탄미분기 운전원(MO), 그리고 500볼트 분전반 운전원, 이런 식으로 업무와 위치가 분담되어 있었다.

 

내가 맡은 석탄미분기 운전이 가장 더럽고 힘든 일이었다. 이게 가장 신입직원이 맡는 첫보직이기도 했다. 미분탄 벙커에 미분탄이 많이 쌓이면 석탄미분기 운전을 중지했다가 미분탄 레벨이 내려가면 또다시 돌려야 했는데 그 때마다 나는 무게가 몇 톤이나 나가는 무거운 핫에어 댐퍼 도르레를 낑낑거리며 돌려야 했다. 그리고 다시 발전소 바닥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오르내리며 기기를 점검하고 미분탄 벙커의 미분탄 량을 확인해야 했다. 로콜피더가 석탄으로 막히면 무거운 해머나 쇠막대기로 두들겨야 했다. 미분탄은 너무나 고와서 미끄러웠고 밟으면 ‘풀썩’ 공기중에 안개처럼 피어 올랐다.

 

한 번은 주임님이 나를 데리고 가서 석탄미분기 로콜 피더 위의 보온재를 떼어냈다가 붙이는 작업을 함께 했다. 보온재는 솜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아주 가늘고 작은 무수한 유리섬유였다. 그 유리섬유가 부스러져 먼지처럼 풀썩풀썩 사방에 퍼졌다. 불빛에 반짝거리며 먼지로 피어오르는 그 유리섬유들을 나와 주임은 아무런 보호장구도 없이 함께 코로 나누어마셨다. 그 작은 유리섬유들이 내 폐 속에 박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몸속을 돌아다니다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피부를 뚫고 나오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밤새도록 뛰어다니며 석탄먼지를 마시고 그로기 상태의 깜둥이 모습이 되어 근무를 마친 다음 샤워실에 가서 몸을 씻고 퇴근했다. 카악, 침을 뱉으면 목에서 검은 석탄이 나왔다. 샤워를 해도 눈 가장자리는 제대로 씻기지 않아 아이 셰도우로 눈화장을 한 모양이 되었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하숙집으로 돌아오면 곤죽이 되어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곯아떨어졌다. 너무나 힘들어 하루는 발전과장님께 면담을 요청하였다. 너무 힘드니 보직을 좀 바꿔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쫄병이 와줘야 내 자리를 이어받지 누가 내 자리를 채우겠는가? 나는 높은 발전과장님을 뵙고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서러움이 북바쳐 그냥 울기만 했다.

 

Night Shift에 들어가 밤 1시쯤 되면 배전반(주제어실)에 근무하는 고참직원 아저씨들이 라면을 끓여놓고 우리를 불러주셨다. Night Shift 때가 되면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라면 밤참이 준비되었다. 터빈운전을 담당하던 고참 직원은 옛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신화력 준공직후 터빈 폭발사고가 있었단다. 송전선로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전력부하가 끊어지고 터빈이 순식간에 폭주하기 시작했단다. 터빈은 60 싸이클, 즉 초당 60회전 속도로 운전되어야 하고 만일 터빈이 폭주하면 증기밸브가 즉각 닫혀야 하는데 그러한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던지 터빈이 순간 왜앵~ 하면서 돌아가더니 천지가 무너지는 듯 '꽝-' 하면서 터빈이 폭발해 버렸단다. 원심력에 못 이긴 터빈 블레이드가 터빈 케이싱을 뚫고 발전소 전장을 뚫고 1 km까지 날아갔고 아래방향으로 떨어져 나간 블레이드는 복수기 튜브들을 뚫고 땅바닥에 깊숙이 꽂혔단다. 무시무시한 사고가 일어난 것이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단다.

 

그런데 바로 한 해 전에 대구공고를 졸업한 신입직원, 그러니까 나의 한 해 선배 한 사람이 복수기 냉각수배관 위에 올라갔다가 쌓인 석탄가루에 미끄러져 바닥에 추락해서, 불과 2미터 정도 높이였는데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서 죽었단다. 스무 살도 안 된 나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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