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회사를 떠나서

89. 아랍에미레이트 항공

Thomas Lee 2023. 4. 13. 10:42

아랍에미레이트(UAE) 바라카원전의 사업주는 에미레이트원자력에너지공사(Rmirate Nuclear Energy Corp.: ENEC)이다. ENEC에서는 세계각지로부터 많은 엔지니어들을 고용하여 사업관리체제를 갖추고 한전의 건설업무를 감독, 확인하고 미국에도 품질검사요원을 파견하여 미국에서 제작되는 기자재 품질검사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 ENEC 품질검사요원은 뉴햄프셔주 뉴잉턴의 웨스팅하우스 본사에 주재하고 있었는데 커넥티커트의 하트포드 북쪽에 있는 RSCC에도 가끔씩 방문하여 케이블 제작검사를 하고는 했다. 한 번은 나와 한전 피츠버그사무소의 K차장, 그리고 코센(KOCEN) 품질검사자로 피츠버그 사무소에 나와 있는 L부장이 아랍에미레이트 전력회사(ENEC)에서 나온 검사원 B씨와 함께 하트포트 브레들리 공항 근처의 양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아랍에미레이트 전력에서 나온 친구들은 한전사람들이나 한국인 직원들에게 갑(甲) 행세를 하며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인도출신이라는 B씨는 전혀 그런 느낌이 없이 소탈하고 격의없이 우리를 대했다. 까무잡잡하고 자그만 그의 얼굴과 체구는 오래전 1981년도에 내가 원자력 7.8호기 건설요원으로 선발된 30여명에 포함되어 벡텔사에 파견되어 아리조나 팔로버디 건설현장에서 원자력기술훈련을 받던 때 만났던 쿰블라 라오(Kumbla Lao)씨를 떠올리게 했다. B씨는 30여년 전 캐나다로 이민 와서 살다가 거기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아들이 둘 있고, 그러다가 아랍에미레이트원자력이 엔지니어를 모집할 때 지원하여 미주 품질검사자로 일하게 되었다는 자신의 이력까지 우리에게 스스럼없이 말해 주었다.

 

그리고 ENEC에서 받는 연봉이 얼마라고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오십만 달러는 넘는 것 같았다. 아랍에미레이트는 직원들에게 얼마의 보수를 지불하는지를 전혀 밝히지 않는단다. 미국 정부가 아랍에미레이트에 나가 일하는 자국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하기 위하여 밝히라고 요구해도 한국 같으면 그런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기가 어렵겠지만 아랍에미레이트는 철저히 무시하고 거부한단다. 그건 캐나다 정부도 마찬가지란다. 그래서 캐나다는 해외거주자에게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지만 나중에 캐나다로 10년 내에 귀국하면 세금을 일시에 내도록 되어 있단다. 그래서 B씨는 아랍에미레이트 원전 일이 끝나면 캐나다로 돌아가지 않고 멕시코에 가서 10년 정도 살다가 캐나다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단다. 그렇게 하면 캐나다 정부에 세금을 안 내도 된단다. 이미 그런 계획을 가지고 캐나다 국적 ENEC 직원들 여덟 명이 멕시코의 한 아름다운 바닷가에 드넓은 부지를 확보하고 거기에다 멋진 집까지 지었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앉아 있으려니 은근히 부럽기도 하고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B씨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아랍에미레이트가 어떤 나라냐? 일곱 개의 토후국이 모여서 만든 연방이란다. 그 중 제일 돈 많은 토후국이 아부다비란다. 그 다음이 두바이. 그래서 대통령은 아부다비 왕이 하고 총리는 두바이, 장관들은 다른 토후국 왕들이 차지한단다. 그런데 두바이가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거대한 도시건설을 추진, 버즈 칼리파인가 하는 800미터가 넘는 세계 최고층 건물을 짓고 한 동안 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몇 년 전 금융위기가 닥쳤단다. 두바이는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하고 건물들은 비고 건축은 중단되고..... 그리고 두바에에 대한 신용도가 AA플러스에서 B인가로 떨어졌단다.

 

그래서 두바이 왕이 아부다비 왕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단다.

“형님, 큰 일 났습니다.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 얼마나 필요한데?”

“지금 당장 70억불이 필요합니다. 안 그러면 두바이가 부도가 납니다.”

“그래? 알았어. 걱정 마.”

아부다비 왕이 그날 밤 바로 70억불을 송금했단다.

그리고 그 다음날 이 소식이 전해지자 두바이의 국제신용도는 AA플러스에서 AAA, 트리플에이로 거꾸로 올라갔단다.

 

아랍에미레이트에 석유로 벌어들인 돈이 얼마나 많은지 아무도 모른단다.

어느 날 아부다비 왕이 “왜 우리나라에는 국제항공사가 없지?”라고 하면서 세계 톱 클래스의 국제항공사를 만들라는 명령을 내렸단다. 즉시 70기의 여객기가 긴급 발주되었단다. 그것도 항공기 제작회사가 아닌 국제시장에 나와 있는 항공기와 다른 항공사들이 보유중인 항공기에 웃돈을 주고 즉시 양도받는 식으로.

그리고 조종사, 정비사, 승무원, 스튜어데스 등, 수백 명의 인원모집과 스카우트가 일사천리로 이루어져 불과 한 주일 만에 세계 톱클래스의 아랍에미레이트항공이 탄생했단다. 그리고 그 때까지는 한전이 서울과 아랍에미레이트를 오갈 때 대한항공을 이용해왔는데 이제부터는 무조건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하라는 강압적인 요구로 한전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을 타야 한단다. 아무튼 그렇게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은 최고의 서비스와 품격으로 단숨에 세계최고의 항공사로 올라섰단다. 항공사 뿐 아니라 호텔도 세계최고를 지향하여 얼마나 고급스럽고 화려하게 만들었는지 아랍에미레이트 호텔에서 자다가 미국에 오면 미국의 최고급호텔이 허접하게 보인단다.

 

아랍에미레이트 원전이 시작될 때 ENEC은 수많은 인력을 해외에서 모집했단다. 그 때는 왠만하면 연봉 50만 불이었고 한전출신도 여러 사람이 채용되었단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렇게 안 준단다. 한참 B씨의 이야기를 듣자 하니 지난 15년 세월, 신학공부를 하고 가난과 궁핍의 험난한 길을 걸었던 나의 지난날이 새삼 되돌아보아진다. 진작 나도 아랍에미레이트로 갈 걸 그랬나? 그 때 P 부장님이 전화를 걸어왔을 때 내게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이었을까, 그 때 나도 아랍에미레이트로 갈 걸 그랬나 싶어진다. 내가 그런 생각까지 하게 하는 걸 보니 돈이 좋기는 좋은가 보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오일달러, 그 많은 돈으로 모래사막에다 세계최고의 도시를 건설하고, 세계최고의 항공사를 만들고, 수백만밖에 안 되는 인구에 무려 여덟 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짓고, 세계최고의 전력회사를 만들고..... 돈으로 세계최고를 이루려는 아랍에미레이트의 시도가 얼마나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또 얼마나 갈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