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회사를 떠나서

86. UAE 바라카 원전

Thomas Lee 2023. 4. 8. 17:24

2001년 김대중 정부에 의하여 일곱 토막이 나고 2004년과 2005년에 걸쳐 노무현 정부에 의하여 전국 방방곡곡에 흩뿌려진 한국전력이 2009년 12월에 아랍에미레이트(UAE) 바라카 원전을 수주한 것은 어쩌면 기적이라 할 만 한 일이었다. 2009년 11월초만 해도 아랍에미레이트는 프랑스 원전도입을 거의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알스톰과 프라마톰은 울진 1,2호기에서도 보여준 바와 같이 우람하고 튼튼한 미국 원전에 비하여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어떻게 보면 다소 축소지향적인 설계로 자재가 적게 들면서 실용성과 경제성, 그리고 안전성을 모두 달성한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 국내에서 수 십 기를 건설함으로써 탄탄한 실력과 경험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아랍에미레이트를 방문하고 나서 뒤집혀졌다. 아랍에미레이트가 대통령 정상회담에서 한국에 원전건설을 맡기겠다는 발표를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한국이 바라카 1, 2, 3, 4호기를 각각 140만 킬로와트급으로 건설, 총 560만 킬로와트에 달하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200억 달러에 수주하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반가우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수주금액 총 200억 달러면 한 호기당 50억 달러, 당시 환율로 5조 원 가량이다. 내가 알기로 1999년엔가 착공되어 2005년인가 2006년에 준공된 100만 킬로와트급 울진 5,6호기의 총공사비가 약 4조 4,700억원, 그러니까 100만 킬로와트급 원전 1호기당 건설비가 2조 2,500억원이었던 셈이고, 140만 킬로와트급 원전 1기라면 건설비가 3조원은 넘을 거라는 계산이 되고 그 동안 시차가 10년이니까 물가상승을 고려한다면 국내에서 140만 킬로와트 규모의 원전을 건설한다 해도 1기에 4조원은 더 들 것이고, 4기 건설에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16조원 가량은 들 텐데 머나먼 아랍에미레이트 열사(熱砂)의 땅, 열악한 환경에서 20조원으로 건설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더구나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설계로 가격경쟁력이 높다고 정평이 나 있던 프랑스 원전을 이기고 한국이 더 낮은 금액으로 바라카 원전을 수주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더 그랬다. 또 80년대에 한국중공업이 아랍에미레이트 제벨알리 발전담수설비를 1억 달러에 수주했다가 공사비 2억 3천만 달러가 들어가는 바람에 1억 3천만 달러나 손해를 보고, 거기에다 사우디아라비아 아씨르 시멘트공장에서 4천만 달러인가를 손해 보아 자본전액잠식 사태에 몰렸던 뼈아픈 역사가 떠올랐다. 그 때는 한국중공업이 당했는데 이번엔 한전이 당하는 거 아닌가 싶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영광 3,4호기 때 짜깁기 설계라는 비난을 받으며 추진하였던 원자력기술자립의 결실이 해외진출이라는 쾌거로, 또 이를 발판 삼아 세계로 진출할 계기로 열매 맺게 되었다는 점은 아무튼 참으로 고무적이고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1986년 영광 3,4호기 건설을 추진하면서 기술능력이 안 되는 한국업체들을 주계약자로 하고 CE와 GE, Sargent & Lundy사를 하청계약자로 만들어서 기술자료와 전산자료를 가져오고 인원의 훈련을 위하여 수백억원씩 기술자립비를 지원해가며 추진한 원자력기술자립의 커다란 가시적 성과가 아랍에미레이트 바라카 원전인 셈이다.

 

그리고 한국형 원전의 설계가 140만 킬로와트급 APR 1400이라는 점은 큰 이점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랬다. 한국형 원전이 140만 kw급이라는 것은 엄청난 이점(利點)이었다. 짜깁기설계라는 비난을 받으며 영광 3,4호기를 통하여 도입된 기술로 울진 3,4호기, 영광 5,6호기, 울진 5,6호기를 계속 건설하면서 기슬을 축적하고 한국형 원자로라는 이름으로 100만 킬로와트급 OPR 1000 모델을 개발하고 다시 여기에서 출력을 대폭 올려 140만 킬로와트급 APR 1400 원전모델을 개발한 것은 바로 영광 3,4호기의 그 “짜깁기설계”의 바탕이 130만 킬로와트급 팔로버디 원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즉 130만 킬로와트로 건설된 팔로버디 원전에도 설계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APS(아리조나 전력회사)는 원자로와 터빈발전기 등 핵심설비의 용량을 늘려 140만 킬로와트로 용량을 늘였고 이에 따라 한국도 자연스럽게 한국형 원전의 설계용량을 140만 킬로와트급으로 늘일 수 있었고 이로 인하여 가격경쟁력 제고의 이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짜깁기설계라니! 원전은 원래 짜깁기 설계를 하는 것이 당연하고 정상적인 일인데 이걸 ‘짜집기“라는 자극적인 언어로 반원전 선동에 사용했던 것이다. 새로운 자동차 모델을 개발하면서 과거에 쓰던 타이어를 신형타이어로 채택하고 롤즈로이즈 신형엔진을 채택하면 이걸 ’짜집기 설계”라고 할 것인가? 1986년에 계약된 영광 3,4호기는 팔로버디원전의 바탕설계, 브레이드우드 원전의 원자로 노심설계, 카토바 원전의 터빈설계, 라살레 원전의 MSR 설계 등 우수한 설계를 채택, 접목하여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설계를 한 것인데 이걸 “짜집기 설계”라고 모함하고 선동한 것이다.

 

아무튼 140만 킬로와트 원전 4기, 무려 560만 킬로와트의 대규모 원전을 200억 달러에 수주해서 사막에다 한국에서 기자재를 운반하여 건설한다는 것이 수지타산이 맞는 일일까, 해수냉각수 취수구와 방류구, 그리고 물량장 부두설비를 축조하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닐 텐데, 과연 프랑스 보다 더 낮은 입찰금액으로 수주해서 적정이윤을 남기는 것이 가능할까 싶은 생각은 아직도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다. 더구나 바라카 원전의 준공과 상업운전이 상당히 지연된 것도 그렇다. 그러나 계약에 의하여 실제 수주금액이 230억 달러라고도 하고 향후 60년 동안 운영지원으로 또 수백억 달러를 벌게 된다니 설마 손해를 보진 않겠지.

 

그런데 한국형 원전의 해외진출은 UAE 바라카 원전에서 멈춰버렸다. 계속하여 영국과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진출하려던 노력은 정부차원의 금융지원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세계최고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자랑하는 한국의 원자력이 탈원전으로 발목 잡힌 사이 중국과 러시아 원전이 세계 원전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하게 되었다. 문재인은 뻔뻔스럽게도 탈원전과 원전박해를 하면서 중공과 러시아를 도와주고 밖에 나가서는 한국의 원자력이 안전하니 사달라고 쇼를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

 

또 한국 원자력 해외진출의 중대한 저해요인 하나는 한국전력이 일곱 토막으로 쪼개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전력이 쪼개지기 전인 1990년대만 해도 성장과 건실한 재무구조를 동시에 이룬 한국전력의 신용도는 대한민국의 국가신용도 보다 오히려 높았다. 그러나 한국전력이 일곱 토막으로 쪼개져 불구(不具)가 되고 자회사인 전력회사들로부터 전력을 구입하여 국민들에게 판매하는 전기도매상으로 전락한 다음에는 한국전력의 신용도가 예전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력이 일곱 개 회사로 쪼개어지자 한국전력이 두산중공업(전 한국중공업)과 원자력연구소, 한국전력기술, 그리고 현대건설과 컨소시엄을 이루어 해외진출을 추진함에 있어서 모회사인 한국전력이 사업주체가 되어야 하느냐, 자회사인 한수원이 사업주체가 되어야 하느냐를 놓고도 의견이 갈렸다. 보유기술과 인력으로 볼 때는 당연히 한수원이 아랍에미레이트 원전건설을 주도하는 것이 맞겠지만 대외신인도나 네임밸류로 볼 때는 모회사인 한국전력이 맡는 것이 유리할 것이었다. 아무튼 원자력해외진출이라는 영광을 빼앗기기 싫었던 한국전력은 자회사들의 주식을 100% 가진 모회사라는 점을 활용하여 한국전력이 사업을 주도하기로 결정하고 일부 원자력 기술인력을 한수원에 보내지 않고 한국전력에 잔류시켜 UAE사업추진부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계약이 체결되어 아랍에미레이트 바라카 원전 건설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자회사 한수원으로부터 많은 원자력기술인력을 차출하여 인원을 보충하고 또 UAE 바라카 건설현장으로도 수많은 한수원 인력을 차출, 파견하였다.

 

한수원 직원들의 입장에서 볼 때 모회사인 한국전력의 인원차출은 일종의 징집 같았을 것이다. 한국전력은 한수원 인력을 차출하여 바라카 원전 건설현장에 파견하면서 급여를 더 주고 해외수당도 더 주고 또 주기적으로 귀국휴가를 주었을 뿐 아니라 2년 기간만 근무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인력운영으로 과연 건설현장의 업무가 원활히 수행될 수 있었을까? 과연 한수원에서 차출되어 한시적으로 뜨거운 사막에 파견된 인력이 한전을 위하여 사명감과 책임감과 주인의식으로 최선을 다 하여 일할 수 있었을까? 영광 1,2호기 건설현장에서 기계기술과장 한 자리에서 준공될 때까지 5년 동안 청춘시기를 보낸 내가 보기엔 그렇다.

 

그런데 한시퇴직으로 한국전력을 떠나 미국에 와서 주의 길을 간다고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던 나에게 UAE 바라카 원전을 위하여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한전을 떠난 지 16년이나 지난 2014년에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1980년대 영광 1,2호기 건설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부하직원이 30여년이 지난 그 때 한전 UAE사업처 책임자가 되어 있었는데 내가 어머니 장례로 한국을 방문하였다가 그를 만난 것이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무척 반가워하면서 그 옛날 부장님 밑에서 배운 걸로 지금까지 일해 왔다고 하면서 안 그래도 지금 미국에서 공급되는 일부 기자재들의 제작이 심각하게 지연되고 있어 건설공정이 위협받고 있는데 부장님이 미국에 계시니 미국에서 기자재제작독려 업무를 맡아줄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그렇게 연결되어 나는 용역업체인 한빛파워(주)와 위탁용역계약을 한 다음 미국에 돌아와서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한빛파워(주)는 한전과 계약한 용역업체로 UAE건설현장에 품질검사인력을 파견하고 있었고 또 한국 국내업체들의 기자재제작관리와 독려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미국에서 3년 반 동안, 60대 중반의 나이에 한국전력의 용역업체인 한빛파워와 위탁용역계약을 체결한 용역자 신분이긴 했지만 UAE 바라카원전 기자재 제작독려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한전을 떠나고 16년 만이었지만 옛날에 하던 일이라 일부 새로운 용어들이나 달라진 업무시스템에 적응하는 것 외에는 크게 어렵거나 힘들지 않았다. 내가 맡은 제작업체들은 케이블, 밸브, 펌프, 시스템설비 등을 제작하는 업체들로 뉴져지주, 커넥티컷주, 매사츄세츠주, 뉴햄프셔주 등 뉴욕에서 멀지 않은 미국 묵동부에 흩어져 있었고 나는 이들 업체들을 방문하여 기자재 제작상황을 파악, 독려하고 미국과 서울, 그리고 UAE 바라카를 연결하여 소통채널을 가동하고 문제점을 해결하고 제작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하는 역할을 하였다.

 

제작업체들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보니 자동차를 장시간 운전해야 하는 때가 많았고 매주 며칠 씩 출장을 다녀야 했다. 또한 제작품목이나 업체 중에 심각하게 제작이 지연된 경우도 있었고, 골치 아픈, 하마터면 건설현장의 공사지연을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지연업체와 품목들도 있었다. 그러나 16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기쁘게 열심히 일하였다.

 

그런데 한국전력은 나에게 제대로 용역대가를 주지 않았다. 한국전력과 한빛파워가 체결한 용역계약에는 한국 국내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인력에 대하여는 한국국내기준 기술용역대가를, UAE 건설현장에서 업무를 수행되는 인력에 대하여는 한국국내기준 기술용역대가에 KOICA(한국국제협력단) 기준 해외체재비를 추가로 지급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KOICA(한국국제협력단) 해외체재비 산출기준에 의하면 UAE와 미국은 동일한 기준으로 해외체재비를 지급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내가 미국에서 기자재제작독려 업무를 수행했으므로 나에게도 UAE와 같은 기준으로 해외체재비를 지급했어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미국에서 근무하는 것을 고려하여 이에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한전은 한빛파워에 나에 대한 용역대가는 해외체재비를 제외하고 한국국내기준 금액만 지불하였다.

 

한국전력이 이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하도급 관련 법률에 의하면 한전은 사업주, 한빛파워는 용역주계약자, 그리고 나는 한빛파워의 용역을 하도급 받아 수행하는 위탁용역자의 관계가 된다. 하도급 관련법은 내가 한빛파워가 한전으로부터 계약으로 받은 용역을 다시 나에게 위탁하는 것이므로 그 계약의 내용과 조건이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 하도급 되도록 되어 있다. 다시 말하자면 한빛파워가 한전으로부터 100원을 받아서 나에게 80원이나 90원만 주고 그 일을 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탁용역자인 내가 한빛파워로부터 제대로 대가를 받지 못 할 경우는 나는 법률에 따라 발주자 사업주인 한국전력에 직접지급을 요청할 수도 있게 되어 있다.

 

나는 처음엔 다시 한전을 위하여 일하게 된 것이 그저 감사하여 열심히 일하였지만 한전에서 나온 과장들이니 다른 업체에서 나온 직원들에 비하여 나에게만 유독 한국국내기준 대가만 지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부당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몇 차례 “미국에서 일을 시켜놓고 한국급여만 주면 되느냐?”고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이 문제는 끝내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내게 지급된 한국국내기준 기술용역대가는 사실 내게 아들 뻘 연령인 뉴저지에 나와 있는 한국전력 뉴욕사무소의 부장(소장)이나 과장급 직원의 급여에도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더구나 뉴욕사무소에 파견된 한전 부장과 과장급 직원에게는 해외수당과 현지주택비, 보험 등이 추가로 지급되었고 사무실을 임대하여 운영하는 비용도 적지 않았다. 만일 한전이 나를 채용하지 않고 한전직원을 파견하였더라면 훨씬 많은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한전은 내게 왜 그랬을까? 내가 한전퇴직자라서 그랬을까? 아무튼 한전은 30년 동안 내 청춘을 다 가져가고 명예퇴직금까지 빼앗아가고 한시퇴직으로 내몬 나를 또다시 이용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이익을 챙긴 셈이었다.

 

나는 한전에 편지를 보냈다. “미국에서 한국국내기준 대가만을 지급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한전-한빛 간 용역계약에 따라 저에게도 해외체재비를 지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열흘 쯤 지나서 한빛파워 사장이 내게 전화를 해왔다. 한전에서 불러서 들어갔더니 용역직원을 어떻게 관리했기에 용역직원이 한전에 이런 편지를 보내도록 만들었느냐고 노발대발 호통을 치더란다. “이 부장님, 우리를 봐서라도 한전에 이런 편지 보내지 말아 주세요. 한전이 일을 안 주면 우리 회사는 못 먹고 삽니다.”

 

두세 달이 지나 한전으로부터 DHL 노랑봉투로 회신이 왔다. “한전은 귀하를 직접 채용하지 않았습니다. 해외체재비를 지급할 수 없습니다.” 그 때부터 3년 동안 나의 청구서선과 한전의 오리발 거부서신의 왕복이 계속되었다. 한 번 편지를 보내면 두 달, 세 달 지나야 회신을 보내주었으므로 3년 동안 오간 서신의 회수는 열 두어 차례가 된다. 내가 계약조항과 법률조항을 조목조목 들어 해외체재비 지급을 요구했지만 한전은 “우리는 모른다. 한빛파워에 알아 봐라.”, “미국은 용역계약상 해외가 아니다.”, “직접계약관계가 없으므로 귀하에게는 청구권이 없다.”는 식의 오리발 내밀기 회신으로 일관하다가 최근에는 아예 회신조차 없다. 나쁜 인간들, 차라리 마늘을 빼먹지.....

 

한국전력은 내 돈 안 주고 오리발 내밀고 있지만 그래도 아랍에미레이트 바라카원전에는 한 번 가보고 싶다. 계획 보다는 좀 늦었지만 1호기는 이미 상업운전중이고, 2호기도 준공되었고, 3호기, 4호기도 거의 완공 되었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