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회사를 떠나서

91. 우리는 다리였던가?

Thomas Lee 2023. 7. 13. 12:30

나는 1951년에, 6. 25 전쟁 중에 태어났다.

나는 키가 크지 않다. 아들이 나보다 15센티미터나 크고 딸이 나와 비슷하다.

 

부모님은 왜정 때 태어나 전쟁터를 지나고 지독한 가난과 보릿고개를 넘으며 우리 다섯 남매를 낳아 기르셨고,

나와 동생은 전쟁통에 태어나 자랐고 4.19 학생의거와 5.16 군사혁명 난장판을 지나고 또 경제개발의 먼지 날리는 신작로와 석탄연기 아황산가스 날리는 공해지대를 지났다.

호롱불 밑에서 손톱으로 이를 잡아 죽였고, 기계충 버짐으로 진물 흐르는 머리를 긁었고,

커다란 두 손이 맞잡은 그림 그려진 마분지 드럼통에 담긴 우유와 강냉이가루를 먹었고,

봄철 밭두렁에서 캐온 냉이와 쑥에 밀가루 묻혀 쪄 먹으며 허기를 달랬고,

소나무 껍질도 벗겨 먹고, 진달래꽃, 아카시아꽃도 따먹고, 감꽃도 주워 먹고

덜 익은 채 떨어진 감도 주워 물에 담가뒀다가 먹고 산딸기, 머루, 다래도 따먹었다.

안동 금곡소주공장에서 소주 만들고 내버리는 시꺼먼 찌꺼기 ‘아래기’도 얻어와 먹었다.

 

책보자기에 공책과 필통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 뜀박질하며 국민학교를 다녔고,

그러나 공해 하나 없던 산골에서 잠자리와 메뚜기를 잡고 산과 들을 휘저으며 뛰놀았다.

초가집 울타리엔 노란 호박꽃이 피었고 초가지붕 위엔 하얀 박꽃이 피었고.

더운 여름날 온 가족이 마당에 멍석 깔고 모깃불 피우고 드러누우면 낙동강가 모래밭에 모여 우는 수 십 마리 늑대 울음소리가 들렸고 까만 밤하늘에서 모래를 뿌려놓은 듯 수많은 별들이 눈이 아프게 쏟아져 내렸다.

 

나는 임하댐 물속에 묻혀버린 전교생 163명이던 작은 산골 길산국민학교를 나와 안동중학교를 다니고 대구에서 자취를 하며 대구공고를 졸업하고 한전에 입사하였다.

열여덟 살에 입사해서 발전소 운전원이 되어 마산화력, 영월화력, 부산화력에서 석탄가루 마시고 아황산개스 들이키며 밤을 새웠고, 그러나 대학의 꿈을 놓지 못 해 밤에는 일하고 낮에는 학교를 다니며 코피를 흘리며 대학을 마쳤고, 3년 군복무를 마쳤고,

그리고 원자력 기술인이 되어 고리, 월성, 영광, 울진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조국번영과 경제개발을 위해 조국경제개발의 수레바퀴를 참 열심히도 돌린 셈이다.

그렇게 30년......., 난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살았을까?

 

우리는 다리였다.

국민소득 백 불 시대에서 천 불 시대, 만 불 시대, 삼만 불 시대로 건너다 주는 다리였다

지게와 호롱불 시대에 태어나 원자력과 인터넷 시대로 이어주는 다리가 바로 우리였다.

우리의 등허리를 타고, 어깻죽지를 짓누르고 무거운 것들이 수없이 건너갔다.

우리는 다리 노릇 하느라 우리도 어서 일어나서 쫓아가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컴퓨터, 인터넷, 정보통신산업, 디지틀 혁명이 또 우리의 대갈통을 밟고 지나갔다.

 

어느 날 IMF라는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이제 그만 일어나 나가란다.

우리가 낡은 다리라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명예퇴직금 빼앗기고 한시퇴직위로금 몇 푼 받아 쥐고 떼밀려 나왔다.

그 사이에 치솟은 고층빌딩과 주식과 부동산들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비웃고 있었다.

 

아, 내 젊은 날들은 어디로 갔는가?

내가 돌아가야 할 아름다운 산골짜기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가슴엔 아직 초가집 호롱불이 깜빡이고 들녘 메뚜기, 잠자리가 꿈처럼 나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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