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회사를 떠나서

87. 가짜부품, 케이블성적증명서 조작, 그리고 CFSI

Thomas Lee 2023. 4. 9. 18:49

한국에선 아직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던 때, 뉴저지 퍼블릭 골프장에 갔다가 한 한국인과 함께 골프를 치게 되었다. 나이는 사십대 후반이나 오십 근방 되어 보였고 키도 크고 준수하게 생긴데다 엄청난 장타를 때리는 수준급 골퍼였다. 함께 골프를 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뉴욕에서 일하는 변호사란다. 또 문재인을 지지하는 모임의 회원이란다. 박근혜를 끌어내려야 한단다. 또 원자력발전소는 위험하므로 없애야 한단다. 가만히 듣다가 내가 원자력에서 수십 년 일한 사람인데 원자력이 그렇게 위험한 거 아니라고 했더니 며칠 전에도 한국에서 원자로가 누설되었는데 어떻게 안전하냐는 것이었다. 내가 어이가 없어 도대체 무슨 기사를 보고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골프를 치다 말고 그 기사를 찾아 보여주겠다며 셀폰으로 기사검색을 한참 하더니 통신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 검색이 안 된단다. “원전에서 원자로가 누설되는 일은 없어요. 그거 틀림없이 복수기 같은 데서 바닷물 누설되는 걸 그렇게 쓴 기사일 거예요.” 했더니 자기가 기사를 읽어봤는데 그게 아니라고 씩씩댄다. 차츰 언성이 높이더니 화를 내면서 같이 골프 못 치겠다면서 다른 홀로 가버렸다. 그랬다. 그랬다.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일반 발전소에서 일어난다면 아무것도 아닌 조그만 일이 원자력발전소에서 일어나면 원자력발전소가 사고 났느니, 원자로가 고장 났느니, 복수기 해수가 누설되어도 원자로가 누설되었다느니 하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언론들, 그리고 그 언론보도에 휘둘리는 인간들....

 

2000년대 들어 한국에서는 “APR 1400”이라는 모델명으로 140만 킬로와트급 한국형 원전설계가 개발되었고 이를 적용하여 신고리 3,4호기를 건설하고 있었고 또 이명박 정부 때 2009년에 수주한 아랍에미레이트(UAE) 바라카 원전은 신고리 3,4호기의 성공적인 준공을 전제로 계약이 성사된 것이었다. 즉 앞서 진행되는 신고리 3,4호기를 성공적으로 준공하지 못 한다면 아랍에미레이트 원전 건설계약 위반이 되는 것으로 연동된 것이었다. 그런데 2012년, 2013년 무렵 한국을 뒤흔든 대형사건이 터졌다. 바로 “원전 가짜부품, 짝퉁부품, 품질검증서 위조사건”이었다. 원자력발전소에 가짜, 짝퉁 부품이 사용되고 서류가 조작되었다니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당시 보도에 의하면 2003년부터 2012년 10년 사이에 해외검증기관의 검증서 60여건이 위조되었고 237개 품목 7,682개의 제품이 영광과 울진 원전에 납품되었는데 거의 대부분 영광 5,6호기에 공급되었단다. 언론들은 이를 ‘가짜부품’, ‘짝퉁부품’ 같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보도하였고 관련된 발전소들이 정지되어 부품을 교체하는 난리를 쳤고 전기가 모자라 블랙아웃이 우려된다고들 하였다.

 

그런데 실상은 이 부품들이란 게 원자력발전소의 안전과 품질에 관련되는 부품들이 아니라 발전소나 산업설비들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스위치, 소켓, 계전기, 퓨즈, 팬 같은 일반공업표준품목(IS) 들이었다. 그런데 한국정부규제기관의 규제와 원전의 품질절차서에 따라 국제공인검증서를 받도록 한 품목들이었다. 예전에는 일반적인 품질검사와 성능확인 절차에 따라 구입, 사용하던 이러한 잡다한 부품들을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려면 국제공인검사를 받고 인증서를 첨부해야 한다고 요건을 강화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었던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다음 김균섭 한수원 사장은 부품을 납품하는 국내업체들이 해외검증기관에서 인증을 받으려면 2000만원 기자재값 중 300만원이 나가니 국내업체들이 유혹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수원 관계자들도 이들 미검증제품들을 언론에서 ‘짝퉁부품’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했다. 이 제품들은 시장에서 이미 유통중인 일반 규격제품으로서 제조사와 제원 등이 동일해 가짜나 모조품을 뜻하는 ‘짝퉁부품’은 절대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뒤늦은 일이고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러게 말이다. 왜 쓸데없이 까다로운 검증절차요건을 만들어 이런 소동을 자초했느냐 말이다. 이미 규격제품인데 왜 스위치, 소켓, 계전기, 퓨즈, 팬 같은 일반산업표준품목들을 해외의 공인검증기관에 가서 다시 검증을 받아오라는 조건을 달았느냐 말이다. 오늘날 해외에서조차 한국산이 얼마나 우수하다고 평판이 나 있느냐 말이다. 국내에도 전기시험소도 있고 제작업체에 훌륭한 시험시설도 많고, 한수원 직원들이 제작공장에 가서 제품검사와 품질관리 체계를 확인할 수도 있고, 또 수십 년 시중에서 널리 사용되어 이미 충분한 검증이 된 제품들인데 왜 해외검증업체에 가서 검증받아 오라는 조건을 달았는가 말이다. 핫바지가 만든 건 못 믿겠고 코쟁이가 인증해야 믿겠다는 말인가? 쓸데없이 갖다 붙여 강화한 “해외검증인증서”요건으로 가짜부품, 짝퉁부품으로 몰린 부품들은 억울하다.

 

뒤이어 2013년, 이번에는 신고리 3,4호기에서 케이블 시험성적증명서 위조사건이 터졌다. 신고리 3,4호기의 문제는 아랍에미레이트 원전건설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사안이었다. JS전선이 제작하고 새한피이티가 검증을 했다고 한다. 케이블은 그 종류가 다양하지만 대체로 도선(구리선)을 절연체로 감싸고 그 겉을 고무피복으로 입히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외부 전기, 전자파 간섭신호를 차단하기 위하여 금속망 피복을 입히는 경우도 있다. 케이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선(구리선)이고 케이블의 핵심은 그 도선을 감싸서 보호하는 절연체(Insulation)이다. 다시 말하자면 도선을 감싸는 절연체를 어떻게 제작하느냐, 그 절연체가 어떠한 환경이나 충격이나 사고시에도 도선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느냐이다.

 

원자로설비 계통의 설비에 연결되는 안전등급(Q Class)으로 분류된 케이블의 절연체는 만약의 경우 발생하는 가상의 사고, 즉 원자로노심이 녹아내리는 최악의 사고를 가정하여 그러한 사고 때에도 도선을 보호하는 기능을 갖도록 튼튼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과거에는 원전이 40년 수명기간으로 설계되었지만 신고리 1,2호기부터는 60년 수명기간으로 설계되므로 60년 동안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케이블, 아니 전선을 보호하는 절연체가 60년의 수명을 가지면서 또 최악의 가상사고에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하는가? 그것은 가상압축실험방법이다. 즉 케이블에다 온도변화도 주고 진동을 가하여 흔들기도 하고 가열했다 냉각시켰다를 반복하기도 하고 방사선도 쬐면서 60년 세월만큼의 악조건을 만들어 가한 다음 그 샘플을 테스트 하여 60년 세월 동안에도 충분히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방법이 사용된다. 원자로계통에 사용되는 케이블은 원자로 노심이 녹는 가상사고, 즉 냉각재상실사고(LOCA: Lost of Coolant Accident)를 가정하여 시험을 해야 하는데 국내에 이러한 시험 시설이 없기 때문에 해외에 의뢰하여 수행했다.

 

그런데 JS전선이 제작한 케이블 시편을 새한피이티가 검증하는 시험에서 60년 악조건을 가한 시편들은 3개 중 1개만 합격하고 2개는 불합격이 되었단다. 악조건을 가하지 않은 보통 상태에서 시행한 시험에서는 3개 모두 실패하였단다. 재차 시행된 시험에서는 시편 6개 중 2개는 합격하고 4개는 불합격 하였단다. 일부는 합격하고 일부는 불합격한 것으로 보아 합격선 근방에서 아슬아슬 모자랐던 듯하다. 만일 설계자가 요구수치를 조금만 낮춰 부여했더라면 무난히 합격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그들은 했을 것이다. 그들은 너무 지나치게 높은 수치를 요구하는 시험요건을 원망했을 것이다. 건설현장에서는 빨리 납품하라고 독촉하고, 시간은 없고..... 이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시험결과치에 살짝 손을 댄 것이리라.

 

모든 시험합격 요구수치는 절대로 손 못 대는 신성불가침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설계도 사람이 한다. 모든 설계에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안전율도 있고 여유치도 있다. 설계자는 최대한 합리적이고 적정한 조건을 규격서에 부여한다. 그러나 설계자는 신이 아니다. 아무래도 여유를 주어 좀 높게 안전한 방향으로 요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과거 벡텔사에서는 그런 시스템이 있었다. 현장에서 얻어진 최종 결과수치를 원설계자에게 보내서 시험요건에 약간 미달하는데 사용될 수 있는지 폐기해야 하는지 다시 검토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원설계자가 면밀히 재검토해서 사용가능여부를 최종판단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설계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약간 미달하는 결과수치가 허용되는 때가 많았다. 또 필요한 경우 다른 보완조치를 할 수도 있다. 물론 원칙이 있다. 아무리 원설계자라 해도 규제요건이나 ASME, IEEE 같은 표준규격을 벗어나거나 위배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아무튼 이러한 시스템은 기술인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없으면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신고리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이 없었는지, 결국 시험결과 조작이라는 방법으로 가 버린 것이다. 아니 설계자가 설계를 마치면 그 요건은 이미 설계자의 손을 떠나서 설계자도 어쩌지 못 하는 절대요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짝퉁부품, 가짜부품 사건에 이어 케이블 시험성적서 조작사건이 대서특필되었고 대로(大怒)한 박근혜 대통령은 일벌백계 차원에서 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케이블을 전부 교체하도록 지시하였다. JS전선은 공급업체 블랙리스트에 올라갔고 대체 케이블이 미국의 RSCC에 긴급발주 되었다. 그리하여 케이블이 전량 교체될 때까지 1년 반인가 2년 동안 발전소는 가동중단 되었다. 이것이 어쩌면 탈원전 예고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그 케이블들이 그렇게 엉터리였을까? 기술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의하였다면 그 케이블들이 비록 요구시험수치에는 조금 모자란다고 해도 엉터리는 아니고 성능에 문제가 없고 그 시험수치는 60년 사용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몇 년 동안 사용하는 것은 전혀 문제없을 것이고, 따라서 발전소를 일단 준공시켜 가동하고 중간에 케이블을 교체하도록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수천억원, 수조원의 손실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불가능했다. 기술적 판단이나 기술인의 조언이 설 자리는 없었다. “짝퉁가짜부품”, “케이블 시험조작”, 이 두 가지 사건으로 원자력 산업계는 마피아라는 오명을 뒤집어썼고 검찰이 동원된 대규모 수사로 수많은 사람들이 수사를 받고 투옥되었고 실형을 언도받았다, “정해진 요건대로, 절차서대로 한 거냐, 안 한 거냐?”라는 검사의 취조에 공돌이 기술인력들은 꼼짝없이 범죄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후에 기막힌 품질관리 제도가 생겨났다. 바로 ‘CFSI Procedure’, ‘위조, 모조, 의심품목 절차서’라는 품질관리절차서이다. ‘CFSI'란 ’Counterfeit, Fraudulent and Suspect Items‘, 즉 “<가짜-위조>, <사기-조작>, <의심-혐의> 품목”이라는 살벌한 뜻을 가지는 단어들을 모아 앞머리 글자로 만든 약자이다. 품질서류의 가짜, 허위, 위조, 사기, 조작을 방지하기 위하여 품질관리요원들이 수사관처럼 제작공장과 시험장소에 직접 가서 검사보고서, 시험성적서 같은 품질서류에 직접 서명을 받아서 들고 와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정밀 복사기와 복사기술이 너무 발달되어 있어 시험성적서를 감쪽같이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서류를 조작하거나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자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특히 뇌물을 받았다면 추호도 용서해서는 안 된다. 나는 다만 강화일변도로 흐르는 지나친 조건강화와 까다롭고 불합리한 절차는 고쳐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공인검증서와 CFSI...... 결국 많은 국내업체들이 원자력 납품 더 못 해먹겠다고 두 손을 들었단다. 이젠 돈을 두 배로 준다 해도 다시는 원자력 안 하겠다고 한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나라도 그렇다. 이런 식이라면 나라도 진저리가 나고 다시 원자력에서 일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세계최고라는 한국원전이 지난날의 영광을 되찾고 세계로 진출하려면 설계과다, 안전등급과다 거품을 걷어내고 쓸데없는 공인검증서와 CFSI 같은 거미줄 같이 옭아맨 사슬들은 걷어내고 정리해야 한다. CFSI 같은 일은 품질관리업무가 아니다. 그것은 범죄에 관한 문제이다. 이런 문제는 형법의 엄격한 집행으로 다스려야지 기술인력들을 동원할 일이 아니다. 끝없는 규제강화로 스스로 목을 옭아매는 미련한 일도 그만 두어야 한다. 공돌이 멸시와 기술인력 경시풍조도 사라져야 한다. 기술인의 합리적인 판단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일벌백계, 무조건 세워!” 식으로 아예 묵살하고 깔아뭉개버리는 횡포는 없어야 한다. 끝없는 불신과 감시와 보강과 강화로 무엇이 되겠는가? 믿음과 신뢰와 존중이 없이 무엇이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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