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회사를 떠나서

85. 흩뿌려진 공룡 고기 일곱 토막

Thomas Lee 2023. 4. 6. 18:39

한국전력, 대한민국의 산업의 동력을 책임 진 회사, 1961년 불과 36만 7천 킬로와트라는 보잘것없는 발전설비로부터 오늘날 1억 킬로와트를 훨씬 넘는 거대한 몸집으로 불어난 공룡 같은 회사, 우리에게 “하루공기가 백만불”이라며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회사를 자신의 몸처럼, 회사 일을 자신의 일처럼, 밤새우고 피땀 흘려 회사 위해 나라 위해 몸 바쳐 일하라 하더니, 그렇게 30년 청춘을 바쳐 일한 나를 찬 시체로 만들어 내팽개친 회사....... 수만 명의 종업원들이 일하고 있지만 주인 없는 회사. 누가 물어뜯어도, 팔다리를 잘라가도 아파할 줄도 모르고 말 한 마디도 못 하는 회사......,

 

그 한국전력은 정권을 잡은 자들에게 크고 먹기 좋은 고깃덩어리였다. 이 한국전력을 “준비된 대통령”이 요리를 했다. 사장을 갈아치웠고 새로 온 장영식 사장은 불법적인 한시퇴직으로 나를 포함하여 2,369명을 감원하였다. 이듬해 1999년, 김대중 정부는 개성에 공단을 만들겠다고 하였고, 아나운서 하다가 국회의원 된 정모 의원이 나서서 전력 200만 킬로와트 정도는 얼마든지 공급할 수 있다고 떠들었고 장영식 사장은 그런 일은 한전이 하겠다고 설치다가 산자부장관과 부딪혀 결국 한전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2000년에 대통령은 5억 달러를 바치면서 평양으로 가서 김정일과 ‘영광스럽게’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하였다. 당시 국유재산법에 의하면 정부가 보유한 국영기업의 주식은 매각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1961년 5.16 군사혁명정부가 민간삼사를 합병하고 민간주식 51%를 매입하여 한국전력주식회사를 국영기업으로 발족시켰을 때 정부는 한국전력이 정부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요 국가의 것이라는 인식하에 정부가 주식이나 재산을 마음대로 매각할 수 없도록 법을 제정한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은 1998년 국유재산법을 무시하고 정부보유 주식을 해외에 매각하였다. 1999년 3월 26일에는 또다시 정부보유주식 3,140만 주를 DR당 12달러(1주에 2 DR)로 24달러(그러니까 원화로 3만원 가량)씩, 7억 5,360만 달러에 팔아치움으로써 정부보유지분이 53.19%로 떨어져 더 이상 팔아먹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자 아예 한국전력을 쪼개어 팔아먹으려는 계획에 착수하였다. 법을 어기고 한전주식을 도적질하여 뉴욕증시에 내다 팔다가 아예 한전을 헐값으로 해외매각 하려고 일곱 토막을 내어 푸줏간에 매단 것이었다.

 

명분은 민영화(民營化)였다. 김대중 선생이 망명으로 미국에 있을 때 보니 미국에는 이천 여개나 되는 전력회사들이 있었고 영국에 가 있을 때 보니 오백 여개나 되는 전력회사들이 경쟁하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전은 경쟁이 없는 독점체제이다 보니 안일하고 방만하다는 것이었다. 김대중 정권의 용역에 따라 2000년 8월, 영화회계법인은 한전의 자산을 실사하고 일곱 토막으로 분할하여 발전회사들을 해외자본에 매각하는 방안을 포함한 용역보고서를 만들어내었다. 보도된 내용을 보니 어처구니없었다. 우선 한국전력의 자산규모를 최대한 낮추어 헐값을 매겨서 해외매각이 쉽게 이루어지게 하고, 둘째, 최대한 낮게 매긴 그 자산가치 보다 높은 값으로 매각하여 해외매각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려고 하는 야비한 꼼수가 내 눈에 보였다.

 

2000년 그 해 한전의 발전설비는 약 4,800만 kw규모였고 이 중 원자력은 1,370만 kw 가량이었다. 그 당시 발전설비 건설비용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만 kw급 신규화력 1기에 약 1조원, 100만 kw급 원자력 1기에 2조원 이상이 소요될 때였으므로 이 정도의 발전설비를 건설한다면 화력 70조원, 원자력 27조원 이상, 도합 100조원 이상이 든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한전이 보유한 자산가치는 발전설비만으로도 100조원을 넘었다고 할 것이다. 게다가 전국을 커버하는 송배전설비와 전국에 흩어진 사옥들과 토지 등 부동산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150조원 가치는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회계법인은 한전의 총자산가치를 달랑 61조 5천억원으로 산정하였다. 물론 설비들은 시간이 지나면 노후화하고 감가상각이 되어 자산가치가 줄어들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것은 말도 안 되게 낮추어 잡은 것이었다. 내가 보기엔 한국전력 싸구려 헐값매각 작전이었다.

 

그리고 그 반역행위의 하수인 영화회계법인은 ‘한국전력 재산실사 및 분할매각계획 보고서’에서 한전을 아래와 같이 일곱 토막으로 나누었다.

- 5개 화력 발전자회사 : 16조 5,157억원 (1 개 발전회사당 약 3조 3천억 원)

- 1개 수력원자력발전회사 : 17조 3,096억 원

- 1개 잔류 송.배전회사 : 27조 7,133억 원

- 합 계 : 61조 5,386억 원

 

보라. 얼마나 웃기는 자산배분인가? 화력발전회사 1개당 800만 kw 씩으로 나누었다. 800만 kw 화력발전소를 지으려면 16조원 이상이 들어갈 텐데 그 가치를 겨우 3조 3천억원으로 매겨놓았다. 5개 발전회사들을 다 합쳐봐야 겨우 16조 5천억원이란다. 여기에 반하여 송배전설비, 빨랫줄 전기회사에는 27조 7천억 원을 배분해놓았다. 송.배전회사에 거의 절반이나 되는 27조원 7천억 원을 배분하고 화력발전회사에는 이렇게 헐값을 매긴 것은 물론 해외매각을 쉽게 하려는 것이었고, 가치에 비하여 좋은 값에 팔았다는 명분을 얻기 위함이었다고 생각된다. 한전을 분할하여 해외에 매각하려는 정권의 망국적 음모와 여기에 동원된 영화회계법인을 잊어서도 용서해서도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욱 한심한 것은 투자보수율(投資報酬率)을 15%로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해외자본가들이 발전회사를 사면 그 투자자들에게 해마다 투자액의 15%의 이익을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투자자들이 연리 2%, 3%짜리 대출을 받아 한국의 발전자회사 매입에 투자를 해놓으면 해마다 15%의 보수율을 인정받아 12~13%의 투자이익을 남겨먹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대한민국 바겐세일이라지만 이건 미쳐도 보통 미친 것이 아니다 싶었다.

 

나는 한시퇴직자가 되어 명예퇴직금 빼앗기고 미국에 와 있었지만 내 30년 청춘을 바친 한국전력이 김대중 정권에 의하여 헐값에 해외에 매각되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어 ‘팍스넷’이라는 증권사이트 토론방에 ‘맨날느저’라는 필명으로 많은 글을 올렸다. 그리고 나의 글은 많은 독자들에게, 한전직원들과 노조원들에게, 그리고 새천년민주당 김방림 의원에게까지 읽혀졌다. 그리고 한 번도 노조투쟁이라곤 해 본 적 없는 전국전력노조가 역사상 단 한 번 준법투쟁이라는 이름으로 “한전민영화반대투쟁” 파업을 했다. 그 때가 2000년 연말 무렵, 겨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전은 노조의 파업에 대응하여 노조소속이 아닌 과장급 이상 간부직원들을 발전소 운전에 투입하고 퇴직한 직원들까지 불러와 투입하였으므로 노조파업의 파급효과는 그리 크지는 않았다. 아무튼 각계의 반대와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의 김방림 의원까지 나서서 반대하는 바람에 김대중 정권의 한전민영화인지 해외매각은 결국 중단되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 때 발전자회사들이 해외자본에 매각되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김대중 정권의 IMF 경제위기극복 방법은 한 마디로 국부(國富)의 헐값매각, 바겐세일이었다. 은행을 넘겨주고 기업들을 넘겨주고 주식시장을 넘겨주어 외국인 투자자들의 놀이터로 만들어주고.... 아무리 IMF 경제위기라지만 이렇게 등신같이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IMF 경제위기는 대한민국의 경제가 어렵고 돈이 없어서 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흑자부도(黑子不到)였다. 불과 몇 십억 달러의 일시적인 자금경색(資金梗塞)이 몰고 온 자금난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일시적 자금경색이 몰고 온 IMF 경제위기로 수많은 국부가 헐값으로 해외자본가의 손으로 넘어갔다. 만일 한전마저 일곱 토막으로 해외매각이 이루어졌더라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전기요금은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갔을 것이고 국가는 일찌감치 패망하였을 것이다. 한국전력매각계획은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라 준비된 반역행위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튼 그렇게 한전은 일곱 토막으로 나누어졌다. 송배전 전기회사가 <한국전력>이라는 이름을 차지했고 쪼개진 여섯 개 회사들은 <한국수력원자력>, <남부발전>, <서부발전>, <중부발전>, <동서발전>, <동남발전>이라는 새 이름들을 부여받게 되었다. 한국전력이 이들 회사들의 주식을 100% 보유하는 방식으로 자회사로 삼고 자회사들이 생산하는 전기를 전력거래소에서 사서 국민에게 공급하는 2단계의 유통구조를 만들었다. 전에는 중앙급전실에서 ABS(자동급전시스템)를 갖추고 전국의 전력부하와 공급을 관리하고 경제성을 고려하여 각 발전소들의 전력생산을 조절했지만 이제는 각 전력회사들이 한전에 전력단가를 입찰하고 낙찰 받아 전력을 공급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각 회사들의 인원과 조직과 기능들이 중첩, 분산되고 많은 경비와 비용이 드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한전은 한전대로, 각 자회사들은 자회사들대로 이익을 남겨야 하고 또 살아남기 위하여 경쟁을 벌려야 하게 되었다. 전력요금이 상승한 것은 물론이다. 1998년, 1999년 72원이던 킬로와트아워당 평균전력판매단가가 2010년에는 86원, 2015년에는 112원으로 상승하였다. 이것은 전력수요가 늘어나고 값싼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2단계 구조에 따른 비효율과 중복, 즉 영업원가와 이윤 등의 중복에 따른 비용증가가 큰 이유라 할 것이다. 지난 해 한국전력의 전력구입원가와 판매단가를 비교해보고 발전자회사들의 비용을 합산하여 보라. 그리고 이를 한전이 분할되기 전 한전의 영업비용과 비교해 보라. 얼마나 많은 비용이 늘어났는지, 한전의 분할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부담을 지워왔는지. 한국전력이 방만하다는 이유로 일곱 개 회사가 쪼개어 놓으니 아주 감당이 불가능하게 방만해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전을 일곱 토막으로 갈라놓고 보니 기가 막히게 좋은 일도 있었다. 그것은 정권이 낙하산 인사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대폭 늘어난 것이었다. 사장만 일곱 명, 부사장, 감사, 이사까지 수십 명의 자리가 생겼으니 정권으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노무현 정권은 아예 한전이 다시 합쳐지지 못 하도록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전국 방방곡곡에 흩뿌려 놓고 대못을 박아버렸다. 한전본사는 전남 나주로 내려가고, 한수원은 경주로 내려가고, 남동발전은 진주로, 중부발전은 충남 보령으로, 서부발전도 중부발전 따라 충남 태안으로, 남부발전은 부산으로, 동서발전은 동으로 갈까 서로 갈까 눈치 보다가 울산으로 갔다. 한국전력은 그렇게 뿔뿔이 이산가족처럼 흩어지고 삼성동 사옥은 현대그룹에 10조원에 팔렸다. 한전에 붙어서 한전과 함께 살아온 관련회사들도 졸지에 풍비박산, 온 사방으로 흩어져야 했다. 전력계통기술, ICT 기술을 담당하는 한전 KDN과 전력설비 정비보수를 전문으로 하는 한전 KPS는 한전본사가 간 나주로 따라갔다. 한전원자력연료는 대전에 굳세게 자리를 지켰고 한국전력기술은 아무도 없는 경북 김천 들판에 어정쩡하게 자리를 잡았다.

 

도대체 한전의 주인은 누구일까? 누가 주식을 팔아먹었는가? 그 돈은 다 어디로 갔는가? 누가 한전을 일곱 토막 내어 팔아먹으려다 온 사방에 흩뿌려 버렸는가? 도대체 누가 열아홉 살이던 나를 채용하여 30년을 부려먹고 내버렸을까? 한 때는 내가 회사의 주인이라고 착각하고 몸 바쳐 마음 바쳐 그렇게 죽도록 일했건만 나는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일한 것일까? 내가 입사한 1969년 그 해 1519억원 자산에 설비용량 167만 킬로와트에서 오늘날 200조원 1억 3천만 킬로와트를 헤아리는 공룡으로 수 백 배도 넘게 자란 회사, 그렇게 불어난 몸집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누가 한국전력을 그렇게 키운 것일까? 누가 그렇게 죽도록 피 땀 흘리며 한국전력을 위하여 일한 것일까?

 

30년 동안 쥐꼬리만 주며 부려먹고 퇴직금까지 빼앗고 내모는 만행을 저지른 회사, 동료들이 퇴직금 빼앗기고 쫓겨나도 멀뚱멀뚱 구경만 하는 회사, 옳은 일, 바른 말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회사, 전기요금도 직원봉급도 경영계획도 모두 정부가 결정하는 회사, 낙하산이 내려오면 어떤 낙하산이 내려오든 그 낙하산 아래에 숨죽이고 충성하는 회사, 도대체 어떻게 된 회사일까? 전기요금 내리라면 내려야 하고, 올리라고 허락하면 올리고, 동결하라면 동결하고 적자가 나도 말 못 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회사, 나라 망치는 탈원전 하라 하면 탈원전 하고, 수 십 조원 들여 태양광 해상풍력 하라고 하면 태양광 풍력에 수십조 원 처넣고, 공약이라고 한전공대 세우라 하면 1조 6천억원 들여 나주의 골프장에 한전공대 세우고, 경영도 없고 주인도 없고, 회사를 토막 내어 팔아먹는다 해도, 온 사방에 흩뿌려도 수만 명 노비들이 말없이 꾸벅꾸벅 수행하며 붙어먹고 사는 회사, 너는 누구냐? 너의 주인은 도대체 누구냐? 너는 도대체 어떻게 된 회사냐?

 

한국전력 도로 합쳐라. 도대체 머리 따로, 팔다리 따로 나누어져 버둥거리면서 무슨 경영이고 무슨 일류고 무슨 세계진출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