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회사를 떠나서

84. 명예퇴직금이라도 돌려다오

Thomas Lee 2023. 4. 5. 00:57

한국전력의 사규(社規)와 노사단체협약, 그리고 한국전력공사법에 의하면 사장에게 회사의 규정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권한이 없다. 그런데 한국전력은 장영식 사장의 내부결재로 규정에 없는 한시퇴직을 만들어서 2,369명을 퇴직시켰다. 명백히 무효이고 불법이다. 거기에다 명예퇴직금을 삭감하였다. 머슴의 새경을 떼어먹고 두들겨패서 쫓아낸 꼴이요 마늘을 빼먹은 더러운 짓이었다.

 

1998년초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다음 아직 이종훈 사장님이 물러나기 전, 한국전력 직원들 일부, 수십 명이 명예퇴직 신청을 했다. 회사의 규정과 단체협약에 의하면 입사한 지 20년이 지나고 정년까지의 잔여기간이 10년 이내로 남았을 때 명예퇴직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나도 이 조건에 해당하여 명예퇴직을 신청할 수 있었지만 나는 신청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종훈 사장님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들의 명예퇴직을 허락하고 명예퇴직금을 지급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종훈 사장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몇 달 동안 명예퇴직 처리를 끌다가 3직급 부장급 이상만 명예퇴직을 허용하고 4직급 과장급 이하 직원들의 명예퇴직원은 반려하였다. 명예퇴직을 반려당한 4직급 이하 직원들은 나중에 더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된다.

 

결국 김대중 대통령의 압력으로 이종훈 사장님이 물러나고 형식적인 공모형식의 사장선임절차를 거쳐 연어충성가신 장재식 의원의 형 장영식 씨가 5월 18일에 한전 사장으로 부임하였는데 장영식 사장은 일체 명예퇴직 신청조차 받지 않고 묶어 두었다가 규정에도 없는 한시퇴직이라는 걸 만들어서 시행하게 된다.

“앞으로 명예퇴직은 없다. 그리고 한시퇴직은 이번 한 번, 한시적으로 시행한다. 한시퇴직위로금이라도 받고 싶으면 지금 퇴직하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 장기근속자가 한시퇴직에 응하지 않으면 무보직발령, 수당 삭감, 업무추진비 삭감 등으로 급여를 삭감할 것이고 급여가 삭감되면 퇴직금은 대폭 줄어들 것이다. 그 때는 한시퇴직금도 없다. 이래도 버틸 테냐?”

장영식 사장은 아랫것들에게 보고서와 내부결재를 만들어 올리게 하고 아랫것들은 “구조조정을 위한 현원감원방안”이라는 보고서와 내부결재를 작성하여 사장에게 결재를 올리고 장영식 사장이 여기에 서명하여 한시퇴직을 시행하였으니 법률과 규정과 단체협약을 모조리 휴지조각으로 만든 불법행위인 것이다. 이것이 장영식 사장이 시행한 한시퇴직이다. 10월 26일에 장영식 사장이 싸인을 했으니 한국전력판 10.26사태였고 그렇게 2,369명이 장영식 사장이 쏜 한시퇴직의 희생자가 되었다.

 

이듬해 1999년, 명예퇴직을 반려당하였던 4직급 과장급 직원 김성선 외 68(?)명이 명예퇴직금을 돌려달라고 명예퇴직금반환청구소송을 내었다. 그들은 더욱 억울했던 것이다. 이들로부터 사연을 들은 김환기 변호사와 권택신 변호사는 분기탱천(?)하여 재판에서 이기면 변호사례비를 받겠다는 성공불 조건으로 사건을 맡았다.

“이런 불법행위는 당연히 시정되어야 하고 최소한 명예퇴직금은 돌려받아야 합니다!”

당연히 소송에서 이길 줄 알았다. 그러나 졌다.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가서도 졌다.

 

한국전력의 변호사는 최기학이었다.

“강압은 없었습니다. 한시퇴직은 퇴직자들의 자발적 의사에 의한 것입니다.”

“명예퇴직이 규정에 정해져 있고 근로기준법이 사용자와 퇴직자간 퇴직금 협상을 금지하고 있지만 민법으로 퇴직금이나 퇴직조건을 변경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시퇴직금은 회사와 근로자가 근속기간 동안의 채권과 채무를 정산하고 합의한 금액을 한시퇴직금으로 지급한 정산금액입니다.”

“퇴직원에 첨부된 각서에는 ‘퇴직금을 수령한 다음 퇴직금에 대하여 일체의 소송이나 이의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부제소특약이 명시되어 있는 바, 원고들이 명예퇴직금을 돌려달라고 소를 제기한 것은 부제소특약을 위배한 위법행위입니다.”

한전측 최기학 변호사는 이런 새빨간 거짓주장과 말도 안 되는 변론을 했다.

그런데 법원은 한전 편이었다.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한전측 변호사가 불러주는 대로 판결문을 썼다. 원고패소.... 명예퇴직금을 돌려달라고 하는 것은 부제소특약을 위배한 위법행위란다.(2001다 50838 임금, 대법원 2001. 11. 30)

 

변호를 맡았던 김환기 변호사와 권택신 변호사는 승소사례금 한 푼도 못 건졌다. 원고들은 소송에서 진 것은 물론 한전이 청구한 소송비용까지 물어내야 했다.

“법원이 소송비용으로 소가의 0.35%인가 되는 수입인지를 받아 처먹으면서 이 따위 개판 재판을 한단 말인가? 이게 대한민국이란 말인가?”

도대체 법률상 임금으로 되어 있는 퇴직금을 깎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고용자가 퇴직하려는 근로자를 붙잡고 “야, 너 퇴직금 많으니 깎자.” 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그건 범죄행위다.

설사 그런 합의를 했다 해도 강행법규인 근로기준법 96조 및 97조에 의거, 무효다.

 

한시퇴직금이 근로기간 중 채권, 채무를 정산하고 합의하는 지불금이라고?

한전과 퇴직자들이 채권채무청산을 하고 퇴직금을 정산했다고? 합의를 했다고? 합의각서를 받았다고? 이게 말이 되는가? 그런데 법원은 원고측 변호사의 변론은 묵살하고 한전측 변호사가 불러주는 대로 주문을 쓰고 판결이유를 적어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명예퇴직금을 빼앗기고 소송을 했더니 이런 말도 안 되는 판결을 하고 도적 같은 한전이 거꾸로 소송비용 물어내라고 청구를 하고.......

아마도 그들은 억울하여 칼이라도 물고 죽고 싶었을 것이다. 신나병을 던지고 석궁을 쏘고 싶었을 것이다. 옥상에서 불을 붙이고 뛰어내리고 싶었을 것이다. 미치거나 암에 걸려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다행일 게다.

 

그 일이 있은 다음 미국에 가있던 다른 바보 같은 인간 하나가 소송을 냈다. 이번엔 퇴직금이 아니고 장영식 사장이 삭감한 급여를 돌려달라고 소송을 냈다. 이건 옴짝달싹 못할 빼박이기 때문에 이길 줄 알았다. 그런데 또 졌다. 왜? 한전측 이명현 변호사가 “임금을 삭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금액은 회사와 퇴직자가 합의한 한시퇴직금에 이미 포함되어 합의되었으니 이미 끝난 거다”라는 거짓말을 한 거다. 이 거짓말을 서울지방법원 그대로 채택하여 원고패소판결을 하였다.

항소를 하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설사 퇴직 전에 그런 합의가 있었다 해도 근로기준법에 의거, 무효라고 고등법원에 올라갔더니 이번엔 퇴직한 사람은 근로자가 아니니까 근로기준법에 해당 안 된다는 판결을 했다. 분통이 터져 다시 대법원에 상고하였다. 대법원에 올라갔더니 대법원이 또 이명현 변호사가 불러주는 대로 판결문을 써서 원고패소반결을 확정지었다.

“근로기준법이 사용자와 근로자 간 근로조건을 변경하는 합의를 금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원고가 퇴직원을 낼 당시에는 퇴직하기로 한 상태의 ‘사실상 퇴직한 자’이므로 회사와 근로자간의 합의에는 하등의 위법요인이 없다.”, 이게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 판결 : 사건번호 2002다56291 임금

- 판결일자 : 2003. 4. 11 상고기각, 원고패소판결 확정

- 관련법관 : 재판장 대법관 손지열, 대법관 조무제, 주심 대법관 유지담, 대법관 이규홍)

 

그 바보는 졸지에 “사실상 퇴직자”가 되었고 소송비용, 변호사비용만 깨졌다. 이것이 대한민국 법원이다. 변호사들은 사악한 인간들이고 대한민국의 법원은 썩어빠졌고 한국전력의 파렴치한 근로자 갈취행위, 감원행위는 이렇게 대법원판결로 정당화되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화염병이라도 던지고 석궁이라도 쏘고 옥상에서 불을 붙이고 몸을 날리고 싶었다. 대포를 쏘고 폭탄을 던지고 싶었다. 그런 상상을 수없이 했다.

 

한시퇴직자들이 그렇게 회사를 떠난 다음 회사는 한시퇴직자들의 약을 올리는 듯 한 조치들을 했다. 퇴직금을 정산하여 미리 지불해 주었다. 그럴 것 같았으면 왜 한시퇴직을 했단 말인가? 김대중 정부는 증시를 해외자본가들에게 개방하고 외국인투자자라는 지위를 부여하여 외국인투자자들이 한국증시를 주물럭거릴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코스피에다 코스닥 시장을 만들어 수많은 벤쳐기업 먹튀들이 먹고 튀게 만들어 주었다. 국내 개미투자자들은 외국인이 사면 우루루 따라 사고 외국인이 팔면 우루루 따라 팔았고 벤쳐기업이 먹고 튀면 닭 쫓던 개들처럼 지붕을 쳐다보면서 발을 굴렀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퇴직금중간정산이라는 이름으로 퇴직금을 미리 지급한 것이다. 그 돈 들고 증시에 가서 외국인들에게 보태주고 코스닥 먹튀 벤쳐기업들에게 보태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동안 눌러놓았던 봉급을 올려주기 시작했다. 한시퇴직자들로부터 빼앗은 명예퇴직금을 나누어 먹자는 것인지 몰라도 2000년대에 들어서자 한전의 봉급이 두 배, 세 배로 올랐다. 30년차 부장이던 내가 1998년 마지막 받은 월급이 250만원 가량이었는데 불과 몇 년 사이에 부장급의 봉급이 천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올랐고 곧 억대 연봉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전직원들은 말이 없었다. 자기들만 오른 봉급 받고 직장이 안전하면 그만이었다. 동료들이, 억울한 한시퇴직자들이, 억울하게 명예퇴직금을 빼앗기고 한시퇴직으로 밀려나가 명예퇴직금 돌려달라고 하소연을 하며 법원에 소송을 하는데도 바른 말 하는 인간 하나 없었다. 자기만 사자에게 잡히지 않았으면 상관없다고 동료가 사자에게 뜯어 먹히는 옆에서 다시 풀을 뜯는 초식동물들 같았다. 한시퇴직자들의 억울한 하소연과 소송은 한국전력의 사악한 변호사들에게 맡겨졌고 변호사들은 그 소송을 법원이라는 도살장에 매달아놓고 요리하였다.

 

한국전력은 더 이상 우리가 청춘을 바쳐 일하던 사랑하는 한국전력이 아니었다. 한국전력은 도적이었고 강도였고 착취자였고 배신자였다. 우리의 한시퇴직(限時退職)은 한시퇴직(寒屍退職), 찬시체퇴직이었고 우리는 차가운 겨울날 길거리에 던져진 “찬 시체”들이었다. 1998년 12월 16일, 그 날 한국전력 시구문(屍口門)으로 2,369 구의 찬 시체가 내던져진 것이었다. 아, 시구문 밖에 내던져진 찬 시체 나는 25년이 지난 지금도 바위에 계란을 던지며 눈을 감지 못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