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회사를 떠나서

83. 회사를 떠나서

Thomas Lee 2023. 4. 3. 16:18

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출근을 하였다. 그리운 얼굴들을 다시 보았고, 내 자리에서 다시 근무하고 있었는데 사내방송으로 인사발령이 발표된단다. 무슨 이동발령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발령을 받았는데 내 이름은 안 나온다. 그제야 난 내가 한시퇴직자가 되어 회사를 나왔다는 걸 깨닫는다. 갑자기 슬퍼진다. 서러워진다. 꿈속에서 난 그게 꿈이라는 것도 깨닫는다. 그래도 계속 슬프고 서럽다. 해 저문 들녘에 홀로 동그마니 내버려진 아이처럼 난 울고 있었다. 또 이런 꿈을 꾸다니..... 함께 퇴직한 2,368명은 무얼 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도 아직 떠나지 못 하고 회사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을까? 그들도 나처럼 꿈속에서 출근했을까?

 

퇴직당한 지 두 달 후인 1999년 2월 17일은 내가 입사한지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입사 30주년이 되면 조촐한 자축연이라도 열고, 아내와 함께 아직껏 가보지 못 한 제주도 여행이라도 가야지, 별러왔는데 그 입사 30주년에 내가 퇴직자가 되어버렸다. 두 달만 더 버텼으면 입사 30년이라도 채웠을 텐데.

 

빛바랜 사진 한 장. 30년 전 연수원 옥상에서 눈 덮인 백운대와 인수봉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여덟 명의 앳된 신입사원들. 연수원 내무반 동기생들, 오래 전 회사를 떠난 친구, 신혼초에 젊은 아내 남겨놓고 신장염으로 죽은 친구, 그리고 이번 한시퇴직에 몰살당하고 둘 남았네.

 

시집가서 아이 둘 낳고 이젠 40대 중년에 접어든 여동생을 만났다. 오빠가 왜 퇴직해야만 했느냐고 안타까워한다. 실직 당한 오빠 친구들의 이름을 몇이나 대면서 오빠또래 한창 일할 나이의 사람들이 왜 이처럼 밀려나오느냐고 분해한다. 6.25전쟁 속에서 태어나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 하고, 자라서는 조국근대화, 경제개발시대에 죽도록 일하고 이제 구조조정으로 밀려나는 세대가 오빠세대란다.

 

어떻게 연락이 되었는지 MBC에서 나를 인터뷰하잔다. 송파에 있는 정혜선 정신과병원에서 만나잔다. 어떻게 나를 알았느냐고 했더니 한전 사내인터넷에 올린 나의 글들이 조회수 수천을 기록하고 외부에까지 알려졌단다. 찾아가 만났더니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고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한국전력은 절대로 부실공기업이 아니고 외채의 주범도 아니고 이 나라를 이끌어왔고 앞으로도 이끌어갈 국가원동력 에너지공기업이라고, 절대로 감원이나 구조조정의 대상이 아니라고 대답한 것 말고는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며칠 뒤 뉴스시간에 나올 거라고 하더니 방송도 되지 않았다.

 

정혜선 의사와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도 좀 나누었다. IMF경제위기에서 불어닥친 퇴직과 해고, 실업의 회오리바람이 사람들을 위기의식과 두려움과 좌절과 분노를 일으키는데 정신의학 용어로 무슨 외상후증후군이라는 증세를 보인단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음의 공포에 내몰린 유대인들이 홑겹 옷을 걸치고도 영하의 눈밭에서 추위를 느끼지 못 하며, 손가락이 이겨져도 아픔을 느끼지 못 하며, 보통이라면 인간이 이겨낼 수 없는 그런 상황을 이겨내는 그런 증상 같은 거란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정신이나 마음이 아주 평온하고 안정적이라 퇴직 후에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격려인지 위로인지를 해 준다.

 

친척 중 한 분은 내가 한전을 퇴직했다니까 은근히 부러워하는 눈치다.

“한전은 퇴직금이 많다는데, 자네는 30년 근속했으니까 퇴직금 한 5, 6억은 되지? 마사회는 20년 근무하고도 퇴직금이 5억 넘는다고 신문에 났던데.....”

서글프다. ‘그 절반 밖에 안 됩니다.’라고 대꾸도 못 하겠고...., 해봐야 믿지도 않을 거고....

마사회와 관광진흥공사 같은 국영기업에서 퇴직금을 많이 준다고 신문에 떠들썩하게 나는 바람에 사람들은 한전도 퇴직금을 그렇게 많이 지급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한전이 명예퇴직금까지 빼앗았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친구나 친척들은 내가 그 때 퇴직금을 많이 받아서 퇴직한 줄 알고 있다.

 

국영기업 스물 세 개 중에 한전의 퇴직금이 가장 적었을 뿐 아니라 명예퇴직금을 빼앗은 회사는 한전이 유일하다. 다른 공기업이나 은행들은 희망퇴직인지 명예퇴직인지 하면서 퇴직금도 더 주고 미안해하면서 내보낸다던데..... 한국전력은 공갈협박하여 명예퇴직금 빼앗고 대신 한시퇴직금이라고 조금 쥐어주고 내몰았는데.......

 

나는 회사생활 30년 하면서 승진 딱 두 번 해보았다. 직원생활 12년, 과장으로 승진해서 12년, 그리고 부장 되어서 5년 반 만에 퇴직했다. 부장, 꽤 높은 이름이다. 한전 부장이라면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언제 이사(理事)로 승진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속으로, 이사 좋아하시네요, 이사(移徙)는 많이 다녔죠.

 

참 이사는 많이도 다녔다. 입사해서 마산, 영월 거쳐 부산, 감천동 하숙집을 거쳐 합숙소, 군에 갔다 와서 결혼한 다음엔 감천동, 괴정동에서 전세 단칸방 살이, 서울로 와서는 잠실주공 2단지, 1단지, 3단지, 두 아이 데리고 방 두 칸 열세 평짜리로만 이사 다녔다. 전세금 사백만원으로 이리저리 13평으로만 찾아 살다 보니 천호동 가는 길목 잠실시영아파트 13평까지 흘러갔다. 그 다음엔 영광에 내려가서 5 년 동안 사택에 살면서 사택 안에서 이사 한 번 했고 다시 서울로 와서 삼성동 AID아파트 15평을 얻어 살았고, 이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또 한 번 옮겼고, 우여곡절 주택조합으로 자양동으로 이사했고, 그 다음엔 가족은 서울에 두고 혼자 울진에 내려가 홀아비생활을 하였고, 그 다음엔 가족을 이끌고 해외사무소까지 갔다.. 그러니 주민등록표의 주소변경난은 가득 차고, 결혼할 때 아내가 마련해온 농짝은 어느 길바닥에 흘러버렸는지 흔적도 없다.

 

10월 26일 오후, 장영식 사장은 ‘구조조정에 따른 현원 처리방안’에 싸인해서 시행지시를 해놓고 산업자원부에 들어가 직원들 봉급에서 삭감한 465억원을 실업기금으로 바쳤다. 신문들은 “한전, 연내 3천5백명 감축, 조직재편, 부장급 이상 30% 줄여” 하는 제목의 기사와 “한전직원, 자회사 실업기금 465억 기탁”의 기사를 함께 보도하였다. 한전과 한전사장이 앞장서서 IMF경제난 극복에 나섰단다. 자기 식구를 임금과 퇴직금을 빼앗아 내쫓고 그걸 남에게 베푼단다. 이게 갈취, 횡령, 제삼자부당이득취득 범죄 아니면 뭐냐?

 

한시퇴직시행공문이 내려오고 장기근속자 무보직 서열명부가 나왔다. 열아홉 살에 입사한 죄로 내 이름은 서열명부 윗부분에 올라 있었다. 나이 마흔 일곱에 퇴직종용대상자라니. 법률, 정관, 회사규정, 근로계약, 단체협약 같은 건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아니, 원래 휴지조각이었다. 사랑도 눈이 맞아야 하고 손뼉도 손이 맞아야 치지, 아, 회사를 나가는 수밖에 없겠구나. 난 일 잘 하는 사람이요, 회사가 나 같은 사람을 내보내면 안 되오, 해봐야 들어줄 것 같지도 않고, 울며불며 이수일이 바지가랭이를 붙잡는 심순애는 사나이 대장부가 할 배역도 아니고...... 그래, 퇴직위로금, 그거라도 받아 가지고 나가자. 이걸로 아이들 학교 졸업할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보자. 피자배달을 하든 택시 운전을 하든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냐?

 

30년 세월, 발전소에서, 원자력건설현장에서, 내가 아니면 이 일을 누가 해낼 것인가 하는 사명감인지 과대망상을 해가면서 애국, 애사, 긍지, 보람, 주인의식..... 이런 고상한 단어들로 근로착취를 포장하며 죽어라 일해 온 자랑은 허망한 배신감과 분노로 바뀌어 빈 가슴속에 소용돌이치는 찬바람과 함께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모기에 뜯겨가며 밤샘을 하고, 한 푼의 공사비라도 줄이려고 애쓰며, 아이디어를 짜내며, 텔렉스를 주고받으며 외국인 회사들과 씨름하며..., 내가 나의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절감한 공사비와 예산만 해도 수 십 억 원, 수 백 억 원, 아니 어쩌면 수 천 억 원도 넘을 텐데..., 나는 회사를 위하여 그렇게 애썼는데, 그렇게 했는데.....

그래, 나가자.

 

그렇게 나는 백수가 되어 거리를 나섰다. 회사를 나서는데 등 뒤에서 못 다 떨어진 똥색의 이파리들이 나뭇가지 위에서 바람과 함께 까르르 웃고 있었다.

“이 봐, 당신 청춘이 떨어졌어. 주워 가야지......”

 

그렇게 떠나온 회사, 내가 떠나온 한전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한전, 지난 해 경영합리화 통해 9,000억원 순이익”

“한국전력, 올해 당기순이익 2조 3,000억원대 전망”,

“사상최대 당기 순이익 기대”

“한국전력, 사상최고 12% 배당”

“주총소식, 한전 자산재평가차액 9조 내지 10조원”

“한전 경영혁신 최우수, 기획위 평가”

“한전 구조조정 모범생”........................

굉장하다. 화려하다. 역시 한전이다. 아니, 씁쓸하다. 우리를 잘라내고 나니까, 한전의 이익이 사상최대규모라는 것일까? 나 같은 사람들이 나오고 나니까 한전이 잘 된다는 것일까? 우리 2,369명을 쫓아내고 나니까 그렇게 이익이 남았다는 것일까?

아니다. 우린 분명히 연말에 나왔으니까 우리를 잘라내고 이익이 더 났을 리는 만무하다. 그래, 맞아. 우린 바로 한전의 이익이 사상최대일 때 쫓겨 나온 거다. 긴박한 경영상 이유라는 게 사상최대의 이익발생 사태였던 거다.

 

보도자료를 보니까 사장의 경영개선 공적의 자랑이 요란하다. 속 들여다보이는 거짓말...

각종경비 예산 1,277억원 줄였단다. 연료비를 전년도 보다 2,361억원 줄였단다. 연료비는 환율이 내려가서 줄어든 거지 지가 잘 해서 줄였나? 원자력발전소 가동률 올라가서 연료비 절감된 건 왜 말 안 하지? 가장 핵심이 될 나머지 대부분의 이익금의 내역에 대하여는 왜 한 마디 설명도 없을까? 모든 게 사장의 공로란 말일까? 회사의 경영내역까지도 사장의 공로로 치장되어야 하는 걸까?

 

퇴직한 다음, 울진원자력에 들렀더니 작년 여름에 준공된 울진 3,4호기 준공을 기념하는 조그만 기념탑이 정문 왼편에 서있었다. 기념탑에 새겨진 천여 명의 이름들 속에 내 이름도 조그맣게 들어 있었다. 그런데 무슨 준공탑을 요렇게 조그맣게 만들어 놨지? 총공사비가 3조원이 넘는데 내 키 보다 조금 더 큰 초라한 준공탑..., IMF 때문이라지만 너무 했다. 그런데, 장영식 사장 이름을 맨 위에 큼지막하게 새겨놨다. 그걸 보니 준공탑을 확 두들겨 깨부숴 버리고 싶어졌다. 아니, 이 양반이 뭘 했다고 경애하는 수령동지 이름처럼 맨 위에다 커다랗게 새겨놨을까? 커다랗게 새겨놓은 장영식 사장의 이름 저 밑에 조그맣게 새겨진 내 이름을 파내 버리고 싶어졌다.

 

필리핀 정부에서 한전 사장에게 최고훈장을 수여했다는 기사도 올라있었다. 말라야 발전소를 복구하여 전력을 생산, 필리핀 경제에 기여한 공로란다. 그건 전임 사장이 한 건데 장영식 사장이 훈장을 받다니......, 필리핀 정부도 참 웃긴다.

“올해 발전소 주변지역에 1,800억원 지원”,

“중소기업에 1조 6백억원 등, 3조 3,600억원 지원”,

“한전 실업극복 앞장 465억원 실업기금 운동본부에 기탁”,

“한국전력, 일자리 1백만 개 만들기(OMJ) 통장에 2백억원 예치”,

대단하다. IMF 경제난 실업구제에 한전이 수 조원 씩 인심을 펑펑 쓴단다. 막 퍼 준단다. 우리를 쫓아내놓고 사상최대의 이익을 올리고 펑펑 인심 쓴단다. 씁쓸하다. 화도 나지 않는다. 쓸쓸하다.

 

원자력발전소 중수누설이니, 방사능누출이니 기사들도 보인다. 인원을 너무 줄여서 그렇다는 기사도 보인다. 쳇, 기계만 잘 돌면 되지 사람이 무슨 필요? 내가 근무하던 원자력건설 분야는 별 일 없을 거야. 내가 없어도 다들 잘 하겠지 뭐. 밀려나온 주제에 그 따위 걱정일랑 말자. 내가 뭐 원자력 기술인인가? 이젠 백순데...

 

그래도 쓸쓸해진다. 도대체 내가 왜 나와서 여기에 이러고 있을까? 내가 왜 나왔지? 정말 내가 나온 것일까? 미련은 아직도 거기에서 등신같이 꾸물거리고, 꿈은 아직도 거기에서 머저리같이 서성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