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중공업 이야기

8. 쪼개진 터빈 샤프트

Thomas Lee 2022. 2. 22. 10:33

8. 쪼개진 터빈 샤프트

 

나는 1988년부터 91년까지 3년가량 영광 3,4호기 주기기 공급계약 기술관리 담당과장으로 일하면서 매달 한 두 번씩 한중 창원공장에 내려갔다. 무슨 문제가 있거나 필요할 때면 또 내려갔다. 낡은 포니엑셀 승용차를 몰고 가기도 하고 고속버스편으로 가기도 했다. 나의 낡은 포니엑셀 승용차는 비가 내리는 날 고속도로에서 시속 60킬로미터만 넘으면 수막현상으로 미끄러지는 현상이 발생하여 나를 아찔하게 만들었다.

한중분 주기기 계약금액은 제작진도를 확인한 다음 기성고(旣成高)로 매달 대략 수십억원에서, 백수십억원의 규모로 지불되었다. 기성고검사를 위하여 다른 담당과장과 함께 또 직원들과 함께 내려가면 한중은 우리를 상전 모시듯 영접하였고 한중 경내의 정성관이라는 호텔(?)에 묵게 해 주었다.

 

한중은 마창금속노련에 가입한 노조가 해마다 파업을 하였다. 정부는 성낙정 사장에 이어 노조를 잘 다루기로 평판이 높았던 안천학 사장을 임명하였지만 한중의 노조파업은 그치지 않았다. 노조 시위대가 정문을 막아놓고 출입을 막기도 하였고 간부직원들과 노조원들 사이에 폭력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한중에서 파업이 일어나면 당연히 제작공정이 지연되었다. 안천학 사장은 군화끈을 졸라매고 사내를 돌아다니며 노조원들을 만나 대화하고 한밤중에도 공장을 순시하는 등 몸을 아끼지 않고 노조관리에 노력하였다.

한 번은 우리가 한중을 방문하여 아침에 한중본부건물 안에 앉아 있었는데 마침 건물 앞 마당에서 조회가 열리고 있었다. 창문 밖에서 안천학 사장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거쳐 쩌렁쩌렁 들려왔다. “여러분, 정신 차리십시오. 우리 회사가 지난 해 1조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는데, 그래서 노조에서 성과급을 달라고 하는 모양인데, 여러분이 그만큼 일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매출액 1조원 중 7천억원은 하도급으로 하청회사들이 올린 것이고 우리 한국중공업 공장에서 여러분이 일해서 생산한 매출은 겨우 3천억원입니다. 7천명이 1인당 겨우 4천만원 수준, 겨우 3천억원 매출이라니 창피스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노조문제뿐 아니라 제작과정에서는 더욱 숱하게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우선 제작진도가 매우 더뎌서 영광 3,4호기 건설공정에 쫓기는 우리의 속을 태웠다.

증기발생기 용기 제작이 좀 진척되나 싶더니 초음파검사나 방사선투과검사 때 플레이트 내부에서 슬러지나 불순물, 기공, 기포가 발견되어 폐기하고 재제작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의 원통이 제작과정에서 시료검사(V-notch Test 경도시험)에서 재질요건이 맞지 않거나 요구되는 기계적성질이 나오지 않거나 내부결함이 발견되거나 실패하여 폐기되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터빈제작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터빈 회전자를 만들어 황삭 기계가공까지 진행되었는데 고온으로 가열한 다음 기름에 넣어 열처리하는 과정에서 갈라졌다는 연락이 왔다. 창원공장에 내려가 보니 120 톤에 달하는 터빈회전자축이 장작을 패놓은 듯 좌악 갈라져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어쩔 수 없었다. 다시 제작을 시작한다면 공기를 맞출 수가 없기 때문에 한중은 일본의 고베제철이나 신일본제철에 연락하여 압력용기나 터빈 샤프트를 만들어 왔다. 고베제철이나 신일본 제철은 한중의 몇 수 위였다. 두어 달도 안 걸려 뚝딱 만들어서 한중에 보내 주었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일 외에도 구멍을 잘못 뚫어놓거나, 용접을 잘못 했다거나, 터빈케이싱에 용접으로 입혀놓은 스텔라이트 피복에 균열이 생겼다거나, 뭐가 부러졌다거나, 재질이 틀린다거나, 자재가 안 들어와 납기를 못 맞추게 되었다거나, 심지어는 증기발생기의 인코넬 튜브박스에 화재가 발생한 일 등,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그치지 않았다.

 

여기에서 철강재에 관하여 좀 설명을 해야겠다.

오랜 세월이 지난 기억으로 설명하려니 설명이 제대로 될까 모르겠다.

철(Fe)은 순철일 경우 강도가 그리 높지 못 하다.

철은 기본적으로 탄소가 함유되어야 단단한 탄소강이 된다.

탄소함유량이 많을수록 더 단단해지고 경도가 높아지지만 탄소가 아주 많으면 부스러지는 취성이 증가한다.

탄소함유량 0.35%에서 1.7% 사이의 철을 강철, 혹은 탄소강이라고 부른다.

탄소함유량이 더 많으면 주철이 되고 선철(무쇠)이 된다.

대부분 탄소강의 경우 탄소함유량은 0.5%에서 1.5% 사이가 된다.

탄소함령에 따라 저탄소강, 고탄소강, 아공석강, 과공석강 등으로 세분된다.

 

탄소강은 또 열처리에 따라 성질이 달라진다.

고온상태에서 철은 미세한 조직(작은 알갱이)의 페라이트 조직, 오스테나이트 조직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온도를 낮추어 식히면 액체상태의 철이 응고되면서 마치 물이 얼어 얼음이 되는 것처럼 고체가 되고 결정조직이 커져간다.

다시 가열하여 재결정온도 이상이 되면 다시 조직이 미세해지고 다시 냉각시키면 조직이 성장하여 커진다.

급속히 냉각시키면 경도가 높은 조직을 얻을 수 있고 천천히 냉각시키면 질기고 부드러운 조직을 얻을 수 있으며, 따라서 열처리는 냉각속도를 조절하여 조직의 크기와 성질을 조절하는 작업이다. 물에 넣어 급속도로 냉각시키면 내부가 식기도 전에 외부가 너무 빨리 식어 갈라지거나 쪼개진다. 적당한 속도의 냉각을 위하여 열처리작업에는 주로 기름을 사용한다.

 

재결정온도 이상 가열된 강(鋼)을 기름에 넣어 급속하게 냉각시키면 경도가 높은 마르텐사이트 조직이 만들어진다.

조금 덜 빠르게 냉각시키면 트루스타이트 조직이 만들어진다. 좀 경도가 떨어지게 된다.

더 천천히 냉각시키면 솔바이트 조직이 만들어진다. 탄력이 있고 질긴 성질을 가지기 때문에 피아노선, 스프링 같은 데 사용된다.

아주 천천히 냉각시키면 가장 안정된 퍼얼라이트 조직이 만들어진다.

또 이러한 조직들의 경계에 베이나이트라고 부르는 조직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나중에 뜨임(Tempering)열처리를 통하여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철에는 탄소 외에도 망간, 니켈, 크롬, 몰리브덴, 바나듐, 텅스텐, 규소, 인, 황 등 많은 종류의 금속성분이 들어가 철강의 성질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예전에 선반 절삭공구로 많이 쓰인 고속도강(하이스) 바이트는 텅스텐, 크롬, 바나듐, 몰리브덴 같은 단단한 금속성분이 들어가 매우 경도가 높게 만들어진다.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강이나 내식강에는 기본적으로 크롬과 니켈이 사용된다.

보일러 같이 고온에 사용되는 내화강 소재에도 크롬과 니켈이 많이 들어간다.

아무튼 철강에는 그 목적에 따라 이렇게 다양한 성분이 들어가는데 터빈, 발전기나 원자로용기, 증기발생기, 가압기 같은 압력용기의 금속소재는 미리 설계된 대로 ASTM(미국기계학회) 표준규격에 맞추어 함유성분을 정확히 맞추어야 하고 정확한 온도와 냉각속도에 의하여 설계된 기계적 성질을 부여해야 한다.

기계로 가공할 때는 천천히 냉각시켜 부드러운 재질상태로 만들어놓고 가공을 하고 가공이 끝나면 재결정온도 이상으로 가열하여 열처리를 하게 된다.

 

한중의 제작과정에서 금속재질 문제만 일어난 게 아니었다. 착오로 인한 제작실수도 많았다. 도면을 잘못 읽어 영광 1호기 급수가열기의 안에 Drain Side를 용접하여 막아놓는 바람에 건설견장에서 급수가열기의 배를 용접기와 그라인더로 가르고 복개수술(?)을 해야 했던 일, 내부용접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이온교환수지가 필터 틈으로 줄줄 새던 일, 발전기 조립쐐기가 이탈한 아찔한 사고, 울진 3,4호기 발전기 회전자의 조립불량 등, 때로는 다 된 밥에 뭐 빠진 식으로 준공을 앞둔 단계에서까지 문제가 된 결함들로 애를 먹은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바로 그 영광 1,2호기 기계기술과장으로 5년 동안 근무하면서 한중이 저질러놓은 이러한 제작실수들을 치다꺼리하느라 애먹었던 사람 중 하나다.

 

영광 1호기 가압기 안에 들어가는 가열기를 잘못 조립한 한중의 제작실수는 골치 아픈 문제를 일으켰다. 이미 핵연료장전을 하고 원자로를 가동한 상태에서 시운전하던 도중 이 문제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시운전을 중단하고 가열기 안에 사람을 들여보내 수정작업을 해야 했는데 1인당 방사선 피폭 기준치를 넘길 수 없기 때문에 수많은 작업자를 동원해야 했다. 게다가 가압기는 수직으로 서 있고 가열기는 가압기 맨 밑바닥에 있었기 때문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맨홀 구멍으로 몸을 비집고 가압기에 들어간 다음 줄을 잡고 비좁은 공간을 타고 바닥으로 내려가 작업을 하다가 시간이 경과하여 방사선 피폭한계치 가까이 되면 나오고 다음 사람이 들어가서 작업을 하는 그야말로 악전고투의 작업이었다.

그리고 이 무렵 영광원자력 인근지역에서 무뇌아가 출생하였는데 영광원자력에서 일하던 작업자의 자녀였다 하여 난리가 났다. 그 작업자는 흰 색 작업복을 입고 방사성 구역에서 일했다고 주장했으나 방사능과 별 관계없는 터빈 쪽에서 일했던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반핵단체에게는 이미 좋은 먹잇감이 된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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