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중공업 이야기

10. 한국중공업 매각

Thomas Lee 2022. 3. 4. 07:36

10. 한중매각

 

그러니까 90년이던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전이 한중에 발전설비를 몰아주고 영광 3,4호기 주기기와 보조기기를 발주해 주는데도 한중은 여전히 적자에 허덕이다가 결국 4,210억원의 자본금이 다 잠식되어 370억원만 남는 경영위기에 봉착하고 만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중은 한전의 발전설비만으로는 도저히 경영이 안 되어 동남아로, 중동으로 영역을 넓혀 수주활동에 나섰었는데 그게 또 화근이 되고 만 것이다. 한중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씨르 시멘트 공장 건설공사를 4천만 불엔가 수주하였다. 그리고 아랍에미레이트의 제벨알리 담수설비-화력발전설비를 1억불에 수주하였다. 그런데 공사를 마치고 보니 사우디아라비아 아씨르 시멘트공장에서는 공사비가 곱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4천만불 가량 손해보고 아랍에미레이트 담수발전설비 공사에서는 공사비가 2억3천만 불이나 들어가는 바람에 1억3천만 불 적자를 보고 말았다.

 

결국 한중자본금 전액잠식위기......, 한중의 자본금 4,210억원이 370억원인가밖에 남지 않은 구제불능의 늪 속으로 빠져 들었다.

결국 정부는 한국중공업을 매각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80년대초에도 매각시도가 있었다니 두 번째 매각시도였던 셈이다.

 

한중을 민간기업에 매각하여 민영화하려는 시도가 진행되었다.

현대, 삼성, 대우 등 재벌들이 관심을 보이고 인수경쟁에 나섰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규모와 확장을 지향하는 국내 중공업 업체들에게 한국중공업의 세계최대규모의 주단조설비와 공작기계는 매력적인 인수대상이라느니, 한국중공업을 인수하면 단숨에 한국 중공업계의 왕자(王者)인지 황제인지가 될 거라느니, 언론들은 떠들었다.

 

우리부서가 졸지에 한중매각을 검토하는 주무부서가 되어버렸다. 한중의 시설들과 설비들의 가치와 생산능력을 검토하는 업무가 나에게도 주어졌다.

125톤 전기로, 35톤 전기로, 155톤 진공로......,

1만톤 프레스, 4천톤 프레스...

황삭선반 311번, 312번, 313번 3대, 정삭선반 411번, 412번, 413번,

수직형 보링머신 3대, 수평형 보링머신 3대, 드릴링머신, 밀링머신....,

터빈날개가공용 공작기계들, 제관설비......

세월이 흘러 지금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한중의 설비는 들여다볼수록 엄청났다.

그러나 설비들의 효용성이나 가동율은 역시 문제다 싶었다. 많은 인원도 문제였다.

 

만일 한중이 민간기업에 매각되고 산업합리화기준이나 한국경영정상화방침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고 국내업체들과 자유경쟁체제로 간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러면 한전도 한중에 더 이상 비싼 값으로 기자재를 사오지 않아도 되겠지...., 우리는 은근히 그런 기대도 했다.

어쨌든 몇 주 동안 한중의 매각금액이 검토되었는데 처음에는 수천억 원 정도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그런데 정부에서 여태 돈을 퍼부어 넣은 한중을 그렇게 값싸게 매각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한중매각 후에도 한전의 발전설비발주가 지금처럼 계속되어 물량보장이 된다면 한중의 매각가치는 1조원 이상에 달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었다.

우리로서는 어이없는 이야기였다.

“아니, 그럼 그게 한중을 매각하겠다는 거야? 우리를 끼워 팔기 하겠다는 거야?

과연 1조원 넘는 돈을 내고 누가 한중을 인수하게 될까? 흥미진진하게 굴러가던 한중매각은 결국 한중매각을 주장하는 조순 총리와 한중을 정부의 강력한 관리하에 두어야 한다는 문희갑 경제수석의 의견충돌로 무산되고 말았다. 다시 외환은행과 한전이 500억원씩, 산업은행이 1000억원인가 추가출자를 하여 죽어가던 한중을 다시 되살려놓았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영광 3,4호기는 그런 가운데 진척되어갔고, 이어서 영광 3,4호기와 똑같은 설계로 울진 3,4호기도 건설에 들어갔다. 화력발전소 건설도 늘어났고 복합화력 개스터빈 발전소들도 건설되었다. 그렇게 한국중공업은 살아남았다.

나는 순환보직방침에 따라 기술2부로 자리를 옮겨서 보조기기구매기술업무를 하다가 92년에 12년 만에 뒤늦은 부장승진을 하였다. 그러니까 입사한 지 24년 만에 딱 두 번 승진한 셈이다. 인사적체로 원자력에서 단 한 사람을 승진시켰는데 그게 나였다. 나 앞에도 똥차들이 많았는데 왜 나를 승진시켰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영광 3,4호기 격납건물 크레인에 천장접근설비를 설치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었던 것 때문인지, 평소에 윗분들이 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울진 3,4호기 건설공사 현장으로 내려가 공정관리부장으로 1년 가까이 일하다가 다시 본사로 픽업되어 울진 3,4호기를 담당하는 공사운영3부장이 되었고, 그 후 해외근무를 자원하여 뉴욕사무소 부장으로 나가서 3년 동안 일하다가 귀국하여 영광 5,6호기 건설현장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IMF경제위기, 김대중 정부 탄생......

 

김대중 정부는 이종훈 사장을 해임하고 장영식 사장을 데려다 앉혔고, 나는 1998년 12월 마흔여덟 살 나이에 장영식 사장이 불법적으로 시행한 한시퇴직으로 30년 청춘을 바친 한전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는 한전을 일곱 토막 내어 해외자본에 팔아먹으려는 시도를 하였으며, 2000년 12월 스패코 컨소시엄이라는 듣보잡 들러리를 세워 한국중공업을 불과 3,000 억원 헐값에 맥주 만들던 두산에 넘겨주었고 한국중공업은 두산중공업이 되고 만다.

 

한국중공업 3,000억원 헐값불하사건..... 이 사건은 반드시 밝혀져야 할 김대중 정부의 비리, 아니 범죄사건이라고 본다. 김대중 정권이 정상회담 대가로 김정일에게 갖다 바친 4.5억불과 혹은 어떤 다른 것과 어떤 관계가 있지는 않을까? 두산이 현대그룹이 조달한 그 돈을 대신 갚아주기로 했든지 아니면 무슨 다른 말 못 할 사연이 없고서야 그 엄청난 설비를 보유한 한국중공업, 3조원, 4조원을 헤아리던 자산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되던 한국중공업을, 그 드넓은 부지에 어마어마한 시설을, 한국전력이 그렇게 기술자립비 수백억원, 수천억원을 쏟아부어 도입한 기술들까지 몽땅, 산업은행, 외환은행, 한국전력이 출자한 돈이 얼마인데, 출자원금의 몇 분의 일밖에 안 되는 단돈 3,000억원에 맥주회사에 넘겨준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한국중공업을 판 3,000억원을 산업은행, 외환은행, 한국전력에 얼마씩 나누어 돌려주었을까? 한중헐값매각, 그것은 명백히 배임이며 제삼자부당이득제공이며 국가재산 도적질이라고 생각한다.

 

20년 가까운 세월 계속된 한국중공업의 경영정상화는 어쩌면 밑 빠진 독에 물붓기였는지도 모른다. 한국전력이 한국중공업 경영정상화라는 그 무거운 짐을 지고 20년 가까운 세월 한국중공업에 퍼다 준 돈은 아마 수십조 원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일 한국중공업이 아니었더라면 한전은 영광 3,4호기를 비싸게 건설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 그 이후 후속기 원자력발전소들도 더 저렴한 공사비로 건설할 수 있었을 것이고, 화력발전소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한전의 경영은 더 탄탄해졌을 것이고 전력요금도 낮게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한국전력은 그 오랫동안 짊어졌던 한국중공업경영정상화의 짐으로부터 그렇게 벗어났다. 아니 벗어난 게 아니었다. 원자로설비와 터빈발전기를 계속 의존할 수밖에 없는 독점공급자가 한국중공업에서 두산중공업이라는 민간 기업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그래도 한국중공업일 때는 한전에 대한 기술도입의 빚, 마음의 빚이라도 있었지만 두산중공업은 그 엄청난 도입기술들을 자기네들 것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 그들이 한국중공업을 이어 대한민국의 원자력기술자립의 책무를 다 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기나 하는 것일까?

 

두산중공업이 발전설비로 돈을 벌어 두산그룹의 다른 기업을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도 들리는 것 같았다. 탈원전으로 신한울 3,4호기가 중단되자 두산그룹이 휘청거린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두산중공업이 한국전력이 시행하는 아랍에미레이트(UAE) 바라카 원전건설공사에 참여하여 납품한 주기기는 영광원전 3,4호기의 몇 배, 그러니까 고리3,4호기나 영광 1,2호기에 비교한다면 10배도 넘는 금액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만일 그렇다면 두산은 한전에 빨대를 꽂은 새로운 한중일 뿐이다. 배신이고 배은망덕이다.

 

그토록 한국전력을, 국내산업을, 전력요금을 희생해가면서 한국중공업을 꼭 그렇게 살려내었어야 했을까? 차라리 그 돈으로 IBRD에 싹싹 빌고 사과하면서 차관을 갚고 벌금을 무는 방법으로 마무리하였더라면 그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그리고 한국중공업을 매입하여 국내업체에 깨끗이 매각처분하였더라면 어땠을까?

원자력기술자립을 꼭 그런 방법으로 추진했어야 했을까?

한국중공업의 경영위기가 원자력기술자립을 추진하게 된 계기라도 되었다는 것일까?

 

역사에 만약이 없다지만, 만약에 1962년 정주영 회장의 동생인 정인영 회장이 현대양행을 세우지 아니하였더라면, 만약에 그 현대양행이 대한민국 중공업입국의 원대한(?) 꿈을 안고 그 거대한 창원공장을 세우지 아니하였더라면, 만일 GE는 정밀가공을 하고 현대양행은 GE에 금속소재 공급을 한다는 그런 협력체제를 전제로 설비투자를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한국의 발전설비를 독점생산 하겠다는 계약조건을 붙여서 IBRD 차관을 들여오는 무리수를 두지 아니하였더라면 어땠을까? 그렇게 들여온 한국중공업의 그 엄청난 주단조설비가 과연 대한민국의 기계중공업에, 또 방위산업에 얼마나 기여를 한 것일까?

 

신군부정권이 처음 빅딜을 했을 때, 현대가 자동차를 선택하고 대우가 발전설비를 선택하였을 때, 김우중 회장이 2,000억원만 지원해 달라고 했을 때 꼭 그렇게 발끈해서 현대양행을 국영화해서 한국중공업으로 만들었어야 했을까? 그 2,000억원의 열 배, 백 배를 한전이 출혈하도록 만들었어야 했을까?

한국전력은 정부가 그렇게 마음대로 동원해도 되는 것이었을까? 국민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국회의 의결도 없이 한중을 살리는데 한국전력을 동원하여 그렇게 출혈하도록 한 것이 옳은 일이었을까? 그것은 명백히 국가의 배임행위요 월권이 아니었던가? 법인, 곧 기업이 아무 이득도 없이 다른 기업을 위하여 그렇게 특혜를 베풀고 지원을 한다면 그것은 좋게 말해 지원이지 탈취요 강탈이요 도적질 아니던가?

굳이 그렇게 하려면 한국중공업을 한전이 매입하여 소유하도록이라도 했어야 옳은 것 아닌가?

그렇게 해서 한전이 한중을 키우든지 매각하든지 처분하든지 하도록 했어야 맞는 것 아닌가?

그렇게 20년 가까운 세월 죽도록 살려놓고 두산그룹에 헐값매각하라고 한국전력으로 하여금 그렇게 피를 흘리게 했단 말인가?

 

아무튼 그렇게 한전의 희생으로 추진한 원자력기술자립의 큰 부분인 원자로설비와 터빈발전기 제작기술까지 몽땅 2000년에 두산에 팔려 두산중공업의 소유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렇게 희생을 치르며 살려내고 키워낸 한국중공업이, 아니 두산중공업이 그 원자력기술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원자력산업을 이끌고 드넓은 세계로 진출하기라도 한다면 그것으로 자랑스러워하고 만족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원자력기술자립은 한국형원자로와 아랍에미레이트 원전수출이라는 쾌거에까지 이르렀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의 벽에 막혀 버렸다.

원자력연구소와 한국전력기술(주)가 쌓아올린 원자로계통설계와 플랜트종합설계기술, 수많은 국내업체들이 습득한 제작기술, 현대건설과 동아건설 등이 축적한 건설시공기술도 활용되지 못 하고 사장되고 있다. 죽어가고 있다.

온 세계가 한국원전을 향하여 손짓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 꼴 보려고 그렇게 열심히 원자력기술자립 했더란 말인가?

참으로 어이없고 허망하고 한탄스럽다.

 

누가 뭐래도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일군 것은 원자력이다.

대한민국이 수출경쟁력을 얻고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원자력 때문이다.

한중경영정상화니, 기술도입이니 하는 이 따위 뻘짓이 가능했던 것도 다 원자력 덕택이다.

그러고도 한국전력이 건재할 수 있었던 것도 원자력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문재인 정권이 탈원전이니, 태양광이니 탄소중립이니 하면서 헛짓거리를 할 수 있는 것도 다 원자력이 일구어 놓은 전력산업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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