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중공업 이야기

7. 현가화지수

Thomas Lee 2022. 2. 22. 10:31

7. 현가화지수

 

그런데 이러한 획기적인 원자력기술자립을 추진한 박정기 사장은 일부국회의원들과 반원전단체의 집요한 비난과 공격을 받게 된다.

영광 3,4호기가 “짜집기 설계”라는 것이었다. 마치 영광 3,4호기가 너덜너덜 누더기로 누빈 옷처럼 위험한 원전이라도 되는 듯 떠들어댔다.

이런 공격을 받자 박정기 사장은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라는 듯 “태산을 넘는 큰 바람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훌훌 떠나버렸다. 1988년 늦여름인가 그랬다.

그러나 박정기 사장의 사임 후에도 영광 3,4호기에 대한 비난과 의혹과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짜집기 설계”라는 공격과 아울러 “CE로부터 3억 달러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아, 영광 3,4호기 계약추진이 진행되는 동안 역사는 숨가쁘게 달려 86 올림픽이 있었고, 6.29가 있었고, 87년 대통령선거가 있었고,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하였고, 88 올림픽이 열렸다.

 

영광 3,4호기 추진과 계약에 참여했던 한전 간부들과 직원들이 줄줄이 불려가서 검찰조사를 받았다. 나는 영광 1,2호기 준공 후 뒤늦게 본사로 올라왔기 때문에 직접 해당은 없었지만 요청자료를 제공하고 검찰에 불려간 동료직원들을 기다리며 밤늦도록 사무실에서 대기해야 했다. 바로 옆 잠실에서 올림픽이 개최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때 우리는 검찰조사에 시달려야 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CE가 받아가는 돈을 몽땅 다 합쳐도 3억 달러 조금 넘는데 3억 달러 리베이트라니 이게 말이 되나? 괜히 애꿎은 한전직원들만 들들 볶았지 검찰조사에서 무슨 특별한 건덕지가 나올 턱이 없었다.

그러나 주기기 한국중공업 부분은 이야기가 달랐다. 한중에 지불된 지나치게 높은 계약금액 말이다. 그러나 국회와 검찰은 정작 이 문제에 대하여는 관심도 없었고 엉뚱하게 있지도 않은 3억불 CE 리베이트에만 집중하였다.

 

나는 기술1부에서 처음 1년 정도는 터빈발전기를 담당했고 나중에는 원자로설비를 담당했다. 내 오랜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내 기억에 의하면 터빈발전기는 GE분이 천 몇 백만불(한화로 백 몇 십억)인가 밖에 안 되었고 한중분이 훨씬 많아 1,400억원 가량 되었다. 그리고 원자로설비 총계약금액은 CE분이 약 3억불, 한중분이 2천억원 가량 되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내가 보기에 고리 3,4호기나 영광 1,2호기에 비하여 한중분 터빈발전기도 좀 비쌌지만 한중분 원자로설비 계약금액은 비싸도 너무 비싼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비싸야 했느냐고 선임자에게 물어보니 한중이 보유한 세계최대규모의 주단조설비와 중기계설비를 사용하여 제작하기 때문에 비싸지 않을 수가 없었단다. 한중은 한전이 생각하는 금액의 3배에 가까운 높은 금액을 요구하였다. 한전이 그렇게 비싸게는 계약할 수 없다고 하였으나 한중은 요지부동으로 그 높은 가격을 고수하였단다. 하긴 세계최대의 주단조설비를 사용하여 제작해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예산회계법에 의하면 국가기간이나 공기업은 구매나 공사발주 때 적정한 가격으로 계약하기 위하여 목표금액(예상금액)을 산출하도록 되어 있다. 거래실례가격을 기준으로 그 동안의 물가상승을 고려하여 산출하거나, 물가자료 등 공인된 자료를 기준으로 하거나, 3개 이상 업체들로부터 견적을 받거나 또는 원가계산이라는 걸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전은 고리 3,4호기와 영광 1,2호기 때의 웨스팅하우스 공급금액을 기준으로 여기에다 물가상승분을 얹어서 한중에 제시하였으나 한중이 요구하는 금액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한중이 높은 금액을 고수하자 한전이 고민에 빠졌다. 나중에 감사기관이 감사할 때 왜 이렇게 높은 금액을 주고 샀느냐고 추궁하고 책임을 물으면 한전의 관련자들이 애꿎게 처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중은 비싸게 받아가고 애꿎은 한전은 한중에 지불하는 금액이 합당하다는 논리를 개발해내야 했다.

 

한전의 심CS, 정K 같은 머리 좋은 분들이 머리를 싸맸다. 이리저리 궁리하고 연구하다가 희한한 방정식을 개발하여 “현가화지수”라는 걸 만들어내었다. 그 희한한 방정식은 물가상승계산식에다 여러 가지 팩트와 변수를 집어넣고 빼고 곱하고 나누고 좌변과 우변을 왔다리 갔다리 바꿔치는 현란한 야바위 놀음 같았는데 그렇게 해서 현가화지수 2.53이 도출된 것이다. 물가상승은 그만큼 안 되지만 여러 변수를 고려할 때 영광 3,4호기에서는 고리 3,4호기 금액의 2.53배를 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한국중공업의 비싼 원자로설비 계약금액이 성립되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영광 3,4호기에서 원자로설비와 터빈발전기 주계약자가 된 한중 창원공장은 이로써 경영정상화가 되고 일감부족문제가 해소될 수 있었을까?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 가압기 등 원자로설비의 특수강 압력용기들은 어마어마한 크기에다 5 센티미터 이상 10 센티미터 가량의 엄청난 두께를 자랑한다. 증기발생기나 원자로용기는 그 안에 들어가는 내장부품들, 튜브들을 포함하면 중량 수백 톤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웨스팅하우스나 CE 등 원자로설비 제작업체들은 이러한 압력용기를 만들 때 두꺼운 강철판을 가열하여 구부려 둥글게 말아서 원통모양으로 만든 다음 그 이음새를 용접하고 그렇게 만든 원통들을 이어 붙여서 용기를 완성한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제작을 한다면 한중이 보유한 거대한 용해로와 전기로, 만톤 짜리 프레스, 거대공작기계들이 쓰일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그래서 영광 3,4호기에서는 철판을 구부려 만들지 않고 쇳물을 녹여 부어 강괴를 만들고 이를 세계최대를 자랑하는 만 톤 짜리 프레스로 단조하고 세계급 거대공작기계로 가공하여 만들기로 했다. 원자로나 터빈발전기를 만들어 본 적도 없는 한중이 이런 초유의 시도를 하기로 한 것이다.

한중이 보유한 125톤 전기로, 35톤 전기로, 155톤 진공로에 고철과 철광석 및 필요성분의 금속소재를 넣어 녹인 다음 그 쇳물을 틀에 부어서 강괴(잉곳: ingot)를 만든다. 그 다음 이걸 프레스로 쿵덕쿵덕 찧으면서 구멍을 내어 도넛 형태로 만든다. 그리고 빙글빙글 돌려가면서 계속 쿵덕쿵덕 찧어 원통 모양으로 다듬어간다. 모양이 거의 완성되면 거대한 수직보링머신에 올려놓고 깎아내어 정밀하게 가공한다. 그런 이야기도 나왔다. 한중이 이렇게 주조, 단조 방식으로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가압기 같은 압력용기를 만들면 철판을 구부려 만들 때 들어가는 세로방향 용접선(Weld Seam)이 없기 때문에 더 견고하다는 거다. 거 참! 그게 얼마나 차이난다고...

 

특수강이 갖추어야 할 기계적 성질을 갖도록 재질을 만들기 위하여는 엄청난 노력과 기술이 뒤따라야 한다. 철에 포함되는 탄소, 망간, 크롬, 니켈, 바나듐, 텅스텐, 규소, 인, 황..... 이런 수많은 함유물질들의 비율을 ASTM 규격에 맞추어야 한다. 전기로에서 국자로 떠낸 쇳물 샘플을 고속 진공튜브로 시험실로 보내 고감도 분광기로 분석하여 함유된 각종 성분들이 요건에 맞는지를 검사한 다음 모자라는 금속성분을 더 투입하고, 이런 과정을 거쳐 성분요건이 합격되면 쇳물을 주형틀에 부어서 백 톤, 이백 톤이 넘는 강괴로 만들고 이걸 만톤 짜리 프레스로 쿵덕 쿵덕 찧게 되는 것이다.

 

터빈이나 발전기 회전자축은 더욱 거대하다. 발전기 회전자축을 만들기 위한 강괴는 300톤을 훌쩍 넘는다. 이걸 한중의 전기로 두 대와 진공로를 총동원하여 주조하여 세계최대 크기인 만 톤 짜리 프레스로 쿵쿵 찧어서 길다랗게 늘여 축 형태를 만든다. 이걸 고구마라고 불렀다. 이 고구마를 거대한 황삭선반에 올려놓고 깎아서 치수가 맞도록 가공해 간다.

이걸로 원자로, 증기발생기용기나 터빈, 발전기 회전자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도중에 몇 차례 열처리를 해야 하고, 정밀가공을 해야 하고, 표면처리를 해야 하고, 각 부분을 설계에 따라 세부적으로 가공해나가야 한다.

 

원자로용기나 증기발생기, 가압기 내부는 부식방지를 위한 크롬 스테인레스 피복이 입혀졌다. 원자로용기 안에는 미국 CE에서 제작되어 한중으로 오는 복잡한 내부설비(Reactor Internal, 한중의 기술범위 한참 밖이라 지금도 한중이 제작하지 못 하고 웨스팅하우스에 의존하고 있다.)이 조립되어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증기발생기 안에는 매우 두꺼운 튜브시트가 삽입되어 조립, 용접된 다음 수 천 개의 티타늄 튜브를 끼워 조립하게 된다. 티타늄 튜브를 조립할 때는 튜브 안에 작은 량의 폭약을 집어넣어 이를 폭발시켜 튜브가 튜브시트 구멍에 단단히 밀착조립 되게 하는 공법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상부에는 습분분리기 등 내장설비가 조립되었다.

 

발전기의 경우는 발전기 케이싱과 회전자에 엄청난 무게의 규소강판들, 그리고 코일이 감겨 조립되기 때문에 수백 톤이 넘는 어마어마한 무게로 만들어지게 된다.

터빈의 경우는 제작과정이 더 복잡했다. 회전자와 케이싱은 한중이 제작할 수 있지만 터빈회전자의 블레이드(부채살)는 한중이 제작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우선 블레이드 재질이 한중의 기술범위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블레이드는 GE가 제작하여 한중에 보내오고 비교적 가공이 쉬운 부분만 한중이 가공하였다. 한중은 3차원 입체도형 컴퓨터 조종 CNC 밀링머신을 도입하여 그 블레이드들을 가공하였다.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로는 터빈블레이드 전부를 가공할 수 있도록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다.

그렇게 블레이드들이 완성되면 이를 터빈축에 조립하게 된다. 물론 터빈축에는 블레이드를 삽입할 수 있도록 역T자형 홈이 가공된다.

 

그 다음이 또 문제였다. 자동차 타이어를 조립해도 이를 고속회전시켜 발란싱을 하듯이 조립이 완료된 터빈을 발란싱해야 하는데 한중에는 발란싱설비와 기술이 없으므로 GE에 보내어 발란싱을 해야 했다. 한중에서 조립된 터빈은 마산만을 출발하여 태평양을 건너고 파나마 운하를 지나고 뉴욕 맨해튼을 지나 허드슨강을 따라 올라가서 올바니 지나 스케넥터디 GE 공장으로 실어보내고 거기에서 발란싱이 완료되면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와 건설현장으로 도착하였다. 아무리 빨라도 왕복 반년은 족히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호기당 고압터빈 1대, 저압터빈 2대씩을 이렇게 하려니 제작기간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영광 3,4호기 제작이 끝나고 나중에 한국중공업은 발란싱머신을 도입, 설치하였다.)

 

과거 웨스팅하우스나 미국업체들의 일반적인 제작방식대로 원자로설비 압력용기들을 제작한다면, 그리고 터빈을 한자리에서 제작, 조립하고 시험할 수 있다면 비용이나 기간이 훨씬 적게 들겠지만 주기기 제작을 한 번도 해 보지 못 한 한중이 이렇게 새롭고 위험한 시도를 한 것이다. 한중의 거대한 주단조설비를 활용하고 경영정상화를 꾀한다지만 그 거대한 주단조설비를 사용하여 원자로설비 용기들을 만들고 터빈발전기를 제작하는 그 일이 한중에겐들 쉬운 일이었을까? 한중의 원자로설비, 터빈발전기 계약금액이 고리 3,4호기, 영광 1,2호기에 비하여 훨씬 비싸다고는 하지만 그 금액이 과연 한중의 엄청난 규모의 주단조설비를 이용하는 제작방식에 따르는 고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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