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회사를 떠나서

95. 한전 1998, 외채의 주범

Thomas Lee 2023. 11. 22. 08:02

<한전 1998, 외채의 주범>

 

1979년엔가 수립된 장기전원개발계획은 2000년까지 원전 40기를 건설한다는 목표로 되어 있었다. 1980년 현대양행 부도사태 때 신군부는 이 원전 40기 건설계획을 가지고 현대 정주영 회장과 대우의 김우중 회장을 불러놓고 "자동차를 할래, 발전설비를 할래?" 하는 빅딜을 시도한 바 있다.
2000년까지 원전 40기를 건설한다는 계획은 좀 무리하고 의욕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만일 이 계획대로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추진되어 지금 대한민국이 원전 40기를 보유하고 있었더라면 오늘날 한국의 전체 발전설비의 약 40%, 전력생산량의 50% 이상을 원전이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고 한국은 값싼 원전의 전력으로 지금 보다 훨씬 저렴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었을 것이다.
 
1980년대에 거의 한 해에 한 기씩 원전이 준공되어 1989년 울진2호기까지 9기의 원전이 준공되었다.
1978년 고리1호기
83년에 고리2호기 및 월성1호기
85년에 고리3호기
86년에 고리4호기 및 영광1호기,
87년에 영광2호기
88년에 울진 1호기
89년에 울진 2호기
 
그리고 이들 9기의 원전 덕분에 81년에 kwh당 70원 가량이던 전력판매단가가 91년에 50원으로 떨어져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대한민국의 전력요금이 세계에서 가장 저렴해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 후 6년 동안 추가 원전준공이 없었다.
이후 원전이 다시 준공된 것은 6년 후인 95년과 96년의 영광 3,4호기였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90년대 들어서자 국민생활 향상으로 에어컨 전력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한전은 부랴부랴 LNG발전소와 석탄발전소를 지어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였다.
<당시 보유발전설비 현황>
1994년=2,875만 ㎾
1995년=3,218만 ㎾ ( 343만 ㎾ 증가)
1996년=3,571만 ㎾ ( 353만 ㎾ 증가)
1997년=4,104만 ㎾ ( 533만 ㎾ 증가)
1998년=4,340만 ㎾ ( 236만 ㎾ 증가)
 
1994년부터 1998년까지 4년 동안 무려 1,465만 ㎾, 50% 가량이나 폭발적으로 발전설비가 늘어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 기간 중 준공된 영광3,4호기, 월성2,3호기, 울진3호기 등 원전 5기가 포함되어 있지만 이들 원전을 제외하면 약 1,000만 kw의 화력발전소가 4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준공되었음을 의미한다. 당시 신규화력발전소는 1기가 50만 kw에 달하는 대용량 화력이었으므로 50만 kw급 화력발전소 20기가 4년 동안 매년 5기 꼴로 준공된 셈이다.
국민들이 30만원짜리 에어컨 한 대를 사다 돌리면 한전은 100만원, 150만원을 들여 발전소를 다급하게 건설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그 전후로도 전력수요가 급팽창하였지만 이 4년 동안 늘어난 1,465만 kw만 해도 건설비용이 30조원(300억 달러)을 훌쩍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이 발전설비의 건설비용을 거의 한전이 자체조달해야 했다. 일부는 채권발행 등으로 국내조달을 하였지만 더 많은 자금을 해외에서 조달했다. 당시 국가시책에 따라 국내금융기관의 융자는 주로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고 한전에 대하여는 국내의 금융지원이 거의 전혀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한전은 1991년에 세계에서 가장 값싼 전력요금을 실현하고 고도성장을 이룬 덕분에 세계 전력산업계의 주목을 받았고 1996년엔 에디슨경영대상을 받았으며 뉴욕증시에서 100년채(센츄리본드)를 발행하고 사무라이본드를 발행할 정도로 높은 신용도를 얻고 있었으므로 막대한 건설비용을 해외로부터 조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1997년 IMF 발생 무렵, 한전의 외채는 약 100억 달러(10조원)를 헤아리게 된다. 이 100억 달러의 외채는 사실 앞서 말한 4년간 화력발전소 건설비용 300억 달러의 3분의 1밖에 안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큰 금액도 아니었고 한전의 재무상태로 볼 때도 별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급팽창한 전력수요를 원전이 아닌 화력발전설비로 감당하다 보니 91년도에 kwh당 50원이던 전력판매단가가 슬슬 올라가서 98년에는 도로 1981년 수준인 kwh당 72원으로 복귀하고 말았다.
그헐지만 이러한 급격한 발전설비 증설과 늘어난 외채에도 한전의 재무구조는 여전히 부채비율 110% 정도로 아주 우량한 수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는 전적으로 80년대에 집중적으로 건설, 준공된 원전들 덕분이었다. 그 동안 원전을 바탕으로 건실한 재무구조가 한전을 떠받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998년 김대중 정부는 이종훈 한전사장을 해임하고 미리 짜놓은 각본에 따른 공모절차를 거쳐 장재식 의원의 형 장영식 뉴욕대 교수를 에너지전문가라 하여 한전사장으로 임명하였다. 장영식 사장은 한전사장이 되어 1998년 5월 18일 성난 고릴라처럼 으르렁거리며 구조조정의 칼을 휘두르며 부임하였다. 언론도 함께 멍멍, 왈왈댔다. “한전은 외채의 주범!” "한전은 복마전!"
졸지에 한전은 IMF를 불러온 외채의 주범, 부정부패, 비리의 온상 복마전으로 낙인 찍히고 말았다.
국내금융이 수출기업만을 지원하는 바람에 해외에서 열심히 돈을 얻어와 발전소를 건설하여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전력수요를 감당해낸 노력이 “외채의 주범”, "복마전" 오명으로 전락한 것이다.
 
장영식 사장은 한전에 “외채의 주범”이라는 누명을 씌워놓고 그 해 2,369명의 인원을 강압적으로 감원하는 횡포를 저질렀고, 김대중 정부는 "외채의 주범" 한전을 일곱 토막으로 쪼개어 경쟁체제라는 명분과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5개의 발전자회사 해외매각을 추진하려 하였다.
그 때 영화회계법인이라는 개떡같은 법인에 용역을 주어 수립한 "한전분할해외매각방안"은 매국적 시도였다.
해외자본이 그 때 요구한 투자보수율은 무려 15%였다.
15%라니!
만일 그 때 발전자회사를 해외매각하려던 김대중 정부의 이 망국적 시도가 성공하였더라면 대한민국 전력산업은 더 일찌감치 패망하였을 것이다.
한전이 외채의 주범이라니, 더러운 프레임이었다.
 
그런데 2018년 지금 한전의 부채가 얼마인가?
약 1000억 달러, 100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IMF 경제위기 때의 100억 달러의 10배를 넘어선 것이다.
그리고 탈원전으로 인한 적자에다 신재생 에너지 지원에다 한전공대 설립까지...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원전건설을 중단하여 세계최고의 원전기술은 고사상태에 허덕이고 있으며, 멀쩡한 원전을 트집잡아 못 돌리게 하고 정지시키고 대신 LNG를 사다 때니 연간 10조원 가까운 돈이 LNG 연기로 풀풀 허공으로 날아가고 있다. 1998년에 장영식 사장이 "외채의 주범"이니 "복마전"이 하고 몰아부치던 때의 외채 10조원(100억 달러)이 한 해에 LNG연기로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고도 한국전력과 국가에너지산업이 망하지 않으면 기적일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탈원전을 기어이 밀어붙이고 있다.
한국전력과 국가 에너지산업을 아예 완전히 망해서 재기불능이 되도록 밟아뭉갤 모양이다. 오직 탈원전! 국가경제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기어히 대한민국을 망하게 할 모양이다, 이 역-적-놈이.....
(그리고 김종갑 사장은 콩값 두부값 타령만 하고 앉았다, 이 머어저얼이 같은 놈이.....)
 
- 5년 전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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