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회사를 떠나서

92. 꿈

Thomas Lee 2023. 7. 18. 00:03

젠장, 또 그 꿈을 꾸었다.

몇 차례로 나누어 이어 꾼 시리즈 꿈이다.

시꺼멓게 낡고 녹슨 부산화력 3,4호기 보일러 빌딩 꼭대기에서 나는 다시 일하고 있었다.

우중충한 감천만 앞바다가 내려다보이고 나는 다시 보일러운전원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정규직원이 아니었다. 나는 더럽고 낡아빠진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봉급이 정규직원의 4분의 1도 안 되는 임시직 일용원 신분이 되어 있었다.

부장이던 내가 이 무슨 꼴인가, 슬프고 서러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년 일하면 다시 옛날 신분을 회복시켜 준다는 것이었다.

꿈속에서조차 억울하고 서러웠지만 나는 울음을 삼키면서 참았다.

 

그 꿈을 꾼 며칠 뒤 그 다음 꿈이 이어졌다.

드디어 나의 신분이 회복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 우중충하고 낡아빠진 보일러 빌딩에서 내려왔다.

3호기와 4호기 사이에 있는 부속빌딩(Annex Building)으로 들어갔다.

그 빌딩에는 전에 못 보던 기다란 복도가 있었고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층으로 올라갔다.

꼭대기층 사무실에 나의 옛 부하직원이 승진하여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부하직원에게 호통을 쳤다.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나는 소리를 질렀고 그 친구는 내게 쩔쩔 맸다.

꿈속이었지만 가슴이 좀 뚫리는 것 같았고, 그러나 나는 여전히 억울하고 서럽고 분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또 며칠인가 몇 주인가 지난 다음 또 이어서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부산화력이 아니라 서울의 본사 건물이었었다.

맨 아래층에는 주차장과 도로가 나 있었고 자동차와 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본사건물 아래층 기다란 복도를 따라 들어가니 이층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고 이층에 올라가니 또 어두운 통로와 빈방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 방에선가 나는 종갑이를 만났다.

종갑이가 나를 보고 미안해하면서 뭐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손을 뿌리치고 나왔다.

 

내 봉급이 입금되었다는 것 같았다.

주차장과 길이 나있는 맨 아래층에 내려갔더니 은행인지 증권회사가 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복직해 있었고 급여통장을 가지고 있었고 몇 개 종목의 주식도 갖고 있었고 그 중 한 종목은 주가가 오르고 있다는 것 같았다.

 

잠을 깨고 보니 꿈이었다.

한시퇴직 당하여 밀려나와 25년 세월, 속절없이 늙어가는 내가 이런 꿈을 꾸다니,

돈 한 푼, 주식 한 주 없는 빈털터리 늙은이가 이런 꿈을 꾸다니,

그런데 그 꿈을 몇 번 이어서 꾸고 나니 내가 정말로 한전에 다시 복직하여 있고

꿈속에서 꿈과 현실이 뒤범벅이 되어 분간이 되질 않았다.

 

내가 왜 이런 웃기는 꿈을 꾸는 것일까?

무의식의 위로일까? 기억의 혼돈일까? 두뇌 오작동일까? 혹시 치매증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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