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건설부에 전입한 나는 기전공사과에 배치되었다. 나는 입사한 지 11년째나 되는 고참직원이었지만 원자력건설부에 전입하자 도로 신입사원이 되어버렸다. 발전소 안을 뛰어다니며 운전기록지(Log Sheet)를 적고 밸브 돌리고 버너를 뽑아 교체하던 내게 사무실에서 하는 업무는 생소한 새로운 일이었다. 내부결재니 기안지니 협조전이니 하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고 다른 부서와의 업무관계 파악도 어려웠고 원자력 업무에 사용되는 영어와 용어들도 생전 들어보지 못 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물어가면서 배워가는 수밖에.
과장님과 계장님은 처음에는 내게 비교적 쉬운 일들을 시키다가 내게 문장력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부터는 우리 과에서 작성되어 올라가는 거의 모든 기안서류를 나더러 작성하거나 교정하게 하였다. 김 계장님은 내게 기안지 작성하는 요령과 여러 가지 문서의 종류와 관련규정들을 가르쳐주었다.
“내부결재는 뭐고 기안지는 뭡니까? 어떻게 작성하는 겁니까?”
“내부결재는 우리 회사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이예요. 사장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 중요사안인지, 부장까지 결재를 받아야 하는지, 혹은 과장 전결로 처리될 수 있는 경미한 사안인지는 사규의 업무분장, 권한 규정에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기안지를 작성할 때는 번호를 1, 2, 3, 4로, 또 가, 나, 다, 라로 붙여가면서 논리적으로 전개해 나가는데 1항에는 근거가 무엇이고 무엇과 관련 있는지를 적습니다. 2항에는 사안의 개요와 간략한 경위를 적습니다. 3항부터는 본론이라고 볼 수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며 어떻게 어떻게 추진하겠다든지 하는 계획과 결정이 필요한 사항들을 적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항 끝부분에는 ”이리이리 하고자 합니다.“라고 의사결정을 하는 문구로 씁니다. 다른 회사나 정부기관 등 외부로 공문이 나가야 할 경우에는 내부결재 기안지에 공문서안을 작성하여 첨부하고 '이렇게 공문을 보내겠습니다', 하는 내용으로 결재를 받습니다. 이렇게 작성된 기안문서에 결재가 완료되면 결재문서 등록부에 등록하고 효력이 발생합니다.”
“협조전은 뭡니까? 업무전은 뭐고 메모는 또 뭡니까?”
“협조전은 우리 원자력건설부가 원자력발전부나 내자부, 외자부 등 다른 부처에 내부결재의 내용을 통지하면서 그 부서가 처리하거나 도와주어야 할 일을 알리고 협조를 구하는 것입니다. 업무전은 우리 원자력건설부 안에서 각 부서간 업무요청을 할 때 사용합니다. 부서장 간에 간단히 메모로 통지할 수도 있습니다.”
석탄가루 마시고 아황산가스 속에서 뛰던 내게는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나는 비교적 빠르게 업무를 파악해 나갔던 것 같다.
지금 같으면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문서를 작성하여 프린트하면 되지만 당시에는 모든 서류를 만년필이나 볼펜으로 직접 써야 했고 쓰다가 틀리면 다시 써야 했다. 허 차장님은 올라오는 결재서류를 읽어보고 잘못 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 표현, 틀린 철자를 찾아내어 굵은 파일럿 만년필로 고치거나 쭉 그어서 반려하였다. 그러면 다시 작성해야 했다. 허 차장님 아래의 모든 부서가 결재서류를 올릴 때마다 전전긍긍했지만 허 차장님의 독수리 눈과 날카로운 펜 끝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작성하는 서류는 거의 무사통과 되었다. 나의 문장력과 군대에서 챠트병까지 했던 쓸 만한 글씨는 나를 빠르게 부서업무에 적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세월이 흘러 나중에 내가 계장이 되고 부서장이 되고 보니 허 차장님의 그 독수리눈과 날카로운 펜 끝이 바로 내게 있었다. 부하직원들이 올리는 결재서류를 죽 훑어보기만 해도 어색한 문장, 틀린 문법과 철자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학교에서 도대체 국어공부를 한 건지 안 한 건지, 우리말을 이렇게 못 쓰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부하직원들은 내가 반려하는 결재서류를 피바다라고 불렀다. 때로는 답답해서 아예 내가 써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곧 이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뜻만 통하면 됐지 문장이 좀 어색하고 철자법 좀 틀리면 어때? 그게 무슨 대수라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웬만하면 그냥 결재를 했다.
원자력건설부로 옮긴 후 얼마 안 있어 계장을 뽑는 초급간부임용고시가 있었다. 입사 10년이 지난 나에게도 당연히 응시자격이 주어져야 했다. 그런데 나는 응시하지 못 했다. 부산화력에서 대학공부하면서 계장님에게 찍혀 인사고과점수를 나쁘게 받았기 때문이었다.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해 회사에서는 유난히 많은 합격자를 한꺼번에 뽑았다. 수화력직군도 많이 합격되었지만 원자력직군은 70명 응시에 68명인가, 거의 전원을 합격시켰다. 그리고는 그 후 거의 2년 가까이 초급간부임용고시가 없었다. 너무 속상했다. 한전은 능력위주가 아닌 경력위주 서열순의 승진인사를 하였기 때문에 이 때 초급간부가 먼저 된 수많은 계장선배(?)들은 두고두고 나의 승진을 가로막는 똥차들(?)이 되었다. 거의 2년이 지난 다음에 있은 초급간부임용고시에서 나는 분노의 수석합격을 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고 앞서 차수에서 꼴찌로 붙는 것 보다 못 한 소용없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나에겐 관운이라는 게 몹시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 해에 이렇게 많은 계장을 한꺼번에 뽑은 것은 고리 2호기, 월성 1호기가 한창 건설중이었고 고리3,4호기가 착수되고 이어서 영광 1,2호기, 울진 1,2호기가 추진되고 있었던 때라 원자력에 많은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계장시험 합격자들 중 수화력에서 많은 인원이 원자력 쪽으로 발령받아 왔다. 그런데 수화력에서 계장시험에 합격하여 원자력에 온 사람들이 원자력에 적응하지 못 하고 절반 이상 수화력으로 되돌아갔다. 원자력이 위험하다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영어 때문에 도저히 못 하겠다는 것이었다. 계장시험에서 어학성적이 좋다고 원자력으로 발령을 했는데 그게 영어가 아니고 일본어였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계장이 되었어야 할 나는 계장시험 응시도 못 한 채 직원으로 원자력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던 것이다. 영어 잘 못 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부산화력에서 밤낮을 바꿔가며 교대근무를 할 때는 생체리듬이 혼란을 일으켜 밤에는 말똥말똥하고 낮에는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그래서 항상 몸과 마음이 몽롱하고 멍청한 상태가 되는 것을 늘 느꼈는데 본사에 올라와 일근을 하게 되니 또 다른 형태의 피로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도무지 지켜지지 않는 퇴근시간과 근무시간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고 8시쯤 잠실을 지나는 출근버스를 타고 출근하여 하루 종일 일한 다음 퇴근할 때는 항상 퇴근버스를 타지 못 하였고 일이 있든 없든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다가 밤늦게 시내버스를 타고 퇴근했다. 토요일도 오후 1시 퇴근시간이 지켜지는 적은 거의 없었다. 퇴계로에서 시내버스를 타서 한남동을 지나고 제3한강교를 건너 강남에서 내린 다음 다시 천호동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잠실에서 내리는 그 코스는 내게 딱 정해진 퇴근코스였다.
스물아홉 살 가난한 가장은 그렇게 서울하늘 아래에서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월급 14만원으로 13평 연탄아파트에서 살았다. 매일 회사에 출근하고 일요일이 되면 낮잠을 자며 쉬는 한 주일, 한 주일의 싸이클.... 일요일이 되면 세 살배기 아들은 아빠와 놀고 싶어 했지만 피곤에 쩐 아빠는 금방 방바닥에 누워버리곤 했다.
그 무렵 현대, 삼성, 대우 같은 기업들에서, 그리고 한전기술주식회사에서, 한전직원들을 스카웃해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봉급을 두 배로 올려준다는 것이었다. 부산화력에서 같이 일하던 몇 몇 분들도 직장을 옮겨갔다. 창원의 현대양행으로 옮겨간 분도 있었다. 나에게도 그런 스카웃 제안이 온 적이 있다. 나 같은 말단직원을 뭣 하러 모셔간다는 거냐고 물었더니 발전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봉급을 두 배로 준다는 제안은 솔깃하였지만 그러나 나는 한전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나가 갈아타는 것이 모험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지 못 했다. 어느 날 나는 잠실 길거리에서 부산화력에서 나에게 인사고과점수를 나쁘게 매겨서 계장시험도 못 보게 만든 그 계장님, 한전을 떠나 현대인가 대우인가로 옮겨가신 계장님을 딱 만났다.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생각지도 않게 만나서 그런지 그 계장님은 나를 보고 반가워하셨지만 나는 전혀 반갑지 않았다.
사업을 하려고 회사를 나간 분도 있었다. 바로 우리 계장님이었는데 고리1호기 복수탈염설비 계약까지 다 마친 다음 1980년 봄엔가 사직하고 회사를 나가 성수동에서 무슨 공장을 운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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