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원전건설현장 기계기술계장
영광 1,2호기 건설공사는 순조롭게 시작되지 않았다. 내가 초임계장으로 본사 원자력건설부에서 일하던 1981년, 현대양행이 쓰러지고 전두환 국보위가 나서서 현대 정주영 회장과 대우 김우중 회장을 불러놓고 누가 자동차를 하고 누가 발전설비를 할 테냐 하는 빅딜을 시도하였을 때 영광 1,2호기, 곧 원자력 7,8호기의 건설공사는 정지작업과 굴토, 그리고 기초콘크리트 작업이 진행되던 초기단계였다. 그 때 정주영 회장과 김우중 회장이 ‘자동차를 하겠다,’, ‘발전설비를 하겠다,’, ‘아니다. 도로 바꾸자,’면서 몇 차례 번복하고 오락가락하였고 영광건설현장에서는 회장님들의 말 한 마디에 현대와 대우가 불도저를 몰고 건설현장에 들어왔다가 나갔다 들락날락했다는 이야기는 앞서 한 적이 있다.
인근 주민들의 반감도 심했다고 한다. 79년, 80년 무렵이었던가 영광 1,2호기 건설공사 착수를 위하여 한전직원들이 도착하여 건설부지의 바닷가 쪽 귀퉁이에 철거된 사례지오 여학교 별장 폐건물에다 임시사무실을 차려놓고 업무를 시작할 때 지역주민들이 곡괭이와 삽을 들고 출근길을 막는 일도 벌어지고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아 눈이 좀 오면 발이 묶이기도 하는 등 애로가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1983년 9월 내가 건설현장에 부임하였을 때는 공사가 많이 진척되어 1호기는 주요건물들이 거의 제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었고, 1년 시차로 진행되는 2호기 역시 원자로격납건물의 철판조립공사가 막바지 단계에 있었는데 그 때 그 엄청난 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다. 아무튼 영광 1,2호기 건설공사는 주요건물들이 제 모습을 갖추고 설비와 가자재들이 현장에 도착하여 설치되기 시작하는, 본격적인 공사단계에 접어들고 있었으므로 때맞춰 기계기술계장으로 부임한 나의 앞에는 그야말로 고생문이 훤히 열려 있었던 셈이다.
영광원자력 부지는 모두 6기의 원전이 건설될 수 있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바다쪽에서부터 1호기와 2호기가 자리 잡았고 안쪽으로는 장차 3, 4,, 5, 6호기까지 후속기 부지가 마련되어 있었으며 건설사무소 건물은 5호기 위치 쯤 앞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1호기, 2호기 건설현장까지 걸어 다니기에는 좀 거리가 멀었다. 건설사무소 건물은 2층이었는데 현관을 가운데 두고 양편으로 나누어져 각 부서의 사무실들과 도면실이 자리 잡고 소장실은 2층에 있었으며 우리 기계과는 1층에 있었고 사무실 뒤편에는 식당과 매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건설사무소 부서들은 서무과, 토건과, 기계과, 전기과, 품질관리과, 자재과 등으로 시작했다가 시간이 흐르고 건설공사가 진행되면서 점차 늘어나 토건과는 토목과와 건축과로 나누어지고, 기계과는 기계과와 배관과로 나누어지고, 품질과는 품질검사과와 품질관리과로 나누어지고, 전기과에 계측제어과가 추가되고 그 외에도 전산과가 신설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자재과는 멀리 뚝 떨어진 방류구 쪽 넒은 터에 드넓은 자재창고를 짓고 거기에 입주해 있었고, 시공자인 현대건설의 사무실들은 1호기와 2호기 건설현장에 가건물들을 지어 사용하고 있었다. 나중의 일이지만 발전소가 마무리단계에 이르러 시운전 부서들이 발전소 부속건물에 입주하였는데 그 무렵 한전의 전체인원은 1,004명에 이르렀다.
내가 부임할 때 우리 기계과에는 기계기술계, 기계감독 1계, 기계감독 2계, 이렇게 3개의 기계계와 배관1계, 배관2계, 도합 다섯 계가 있었고 각 계에는 각각 10여 명씩의 직원들이 있었는데 나의 기계기술계는 사무실에서, 감독 1계와 감독 2계는 공사현장에 마련된 가건물에서 근무하였다.
또 벡텔사 소속 엔지니어 한 사람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기술계장인 나와 책상을 나란히 놓고 함께 근무하였다. 나는 그렇게 사무실에서 벡텔사 엔지니어와 10여명의 직원들을 데리고 각종 기술서류들의 작성, 처리와 계약관리업무를 수행하게 된 것이다.
시공현장에 나가있는 감독 1계는 원자로설비 공사를, 감독 2계는 터빈발전기 공사를 지휘, 감독하는 책임을 맡는 것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토목, 건축, 전기, 품질검사, 품질관리 등 다른 부서들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조직이 구성되어 운영되었다.
원전건설공사의 핵심은 단연 기계였다. 원자로계통과 터빈발전기, 그리고 수많은 기기들을 설치하는 공사들이 모두 기계부서의 일이었다. 내가 맡은, 아니, 우리 기계기술계가 맡은 일은 실로 복잡한 사거리 한복판에서 아우성치며 몰려들고 통행하는 수많은 차량들과 사람들과 자전거, 우마차들을 안내하고 관리하는 것과 흡사한 중심역할이었다.
내가 담당한 보조기기 공급계약 패키지만 100 개에 가까웠고 현대건설 시공계약 기계공사도 6A 기계설치공사, 6B 원자로설치공사, 6C 복수기 설치공사, 6D 터빈발전기 설치공사, 6E 공지조화설비 설치공사, 6F 현장조립탱크 설치공사가 있었고 별도로 한국비파괴검사(부)인가가 수행하는 비파괴검사가 있었다. 이 많은 계약과 공사가 우리 기계기술계가 담당하는 일이었다.
현장에서 기계공사 작업과정에서 발생하는 파손, 실수, 착오, 손망실, 불일치 등 모든 문제들이 부적합보고서(NCR)로 작성되어 우리에게로 날아들었고 나와 벡텔사 엔지니어, 그리고 우리 직원들이 그런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필요하면 벡텔사 엔지니어를 시켜 벡텔사 본사에 연락하여 기술검토를 거치기도 하고, 아무튼 우리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공사를 계속 진행할 것이냐를 판단, 결정하여 부적합보고서에 조치사항(Disposition)을 적어서 현장에 수정작업이나 재작업을 지시하고 또 도면을 그리고 현장도면 변경요청(FCR)이나 절차서 변경 같은 기술문서로 만들어 품질관리부서의 승인을 받아 설계부서에 넘겨서 최종설계에 반영하고 기록보존 되도록 하는 일, 또 필요한 자재를 구매요청하여 조달하는 등의 모든 필요조치들이 따라야 했다.
현장에 도착하는 기자재들에서 발견되는 문제들도 우리 차지였다. 제작불량, 파손, 손망실, 불일치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여 보고되면 우리는 텔렉스로 미국의 제작사에게 연락하여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협의하고 필요한 조치도 해야 했다. 감독계장들이 작업에 필요한 기자재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보고하면 미국이나 국내의 제작사에 연락을 하여 납품을 독촉하고 LA사무소에 장거리 전화를 하여 납품독려를 하는 일도 우리의 몫이었다. 나는 수시로 LA사무소에도 텔렉스를 보내고 통신부서에 국제전화를 신청하여 LA사무소와 연결하여 잘 들리지 않는 전화로 납품이 지연되는 품목들의 제작독려를 요청하기도 했다.
또 기자재 공급사의 귀책으로 인하여 시공계약자인 현대건설이 추가작업을 하게 되면 현대건설이 공사금액 증액을 요구해 오게 되므로 이런 일에 대하여 적정한 공사비를 산출하여 공사금액을 조정해주는 일도 나의 기계기술계의 일이었으며 문제가 발생한 기기를 납품한 국내업체나 해외업체에 계약상 책임을 묻고 변상을 받아내는 일도 해야 했다. 이런 일들에는 본사에서 구매기술업무를 했던 나의 경험이 긴요하게 쓰였다. 계약서 조항과 법률까지도 다루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계약과 법률지식까지 갖추어가야 했다.
우리 기계기술계는 공사진척에 따라 업무량이 계속 늘어나면서 한전직원 여섯, 일곱 명에다 한기지원인력 대여섯 명까지 배치되어 한 때 열 서너 명까지 늘어났다. 나는 그 모든 직원들이 수행하는 업무들을 모두 파악하고 지휘, 통솔하고 지도, 감독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다 해냈는지 모르겠다. 나는 직원들이 작성하여 올리는 모든 결재서류를 체크하였고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방안을 찾아내었다. 때로는 직원들과 함께 밤을 새워 힘든 일을 해내었고 직원들과 함께 먹고 함께 마셨고 때로는 틈을 내어 함께 소풍을 가거나 함께 짧은 여행을 하기도 하였다. 아내는 부산에서 장모님이 오시면 직원들을 집으로 불러서 식사를 대접하였고 직원들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챙겼으므로 우리 기계기술계는 마치 가족 같았다.
영광원자력 1,2호기 건설현장에서 30대 한창나이를 보낸 그 시절이, 마음과 힘을 다 해 함께 일했던 그 시절이 내 일생의 황금기였으며 가장 행복했던 때이기도 하다. 직원들과 또 나와 함께 일했던 벡텔사 엔지니어 아델 메시하씨까지도 나를 신뢰했고 따랐으며 내가 한전을 떠난 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해오는 친구가 있다.
80년대, 내 나이 30대이던 그 때, 영광원자력 1,2호기 기계기술계장으로 일했던 그 5년 동안 있었던 수많은 일들 가운데 특별히 기억나는 일, 기록해두고 싶은 일들을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