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미국해외훈련

35. 전두환의 공사화와 김대중의 해외매각

Thomas Lee 2022. 6. 10. 09:51

대구공고 선배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선배가 무슨 소용인가? 구악일소니 새 질서 확립이니 하는 적폐청산(?)은 나에게도 많은 피해와 상처를 안겨주었다. 지금도 문재인 정권에 의하여 적폐청산이니 보수궤멸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물갈이 작업이 있었지만 그 때에도 신군부는 이른 바 기득권층을 비리척결 대상으로 보는 듯 했다. 한전에서도 앞서 이야기한 대로 살벌한 인원감축이 이루어졌고 퇴직금을 대폭 삭감하여 개선(?)하였으며 민간이 보유한 한전 주식을 100% 강제매입 하여 한국전력주식회사를 한국전력공사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북한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보유주식은 은행에 공탁한다고 들었다.

 

퇴직금 제도를 바꾸는 것은 노사단체협약의 변경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신군부는 모든 공기업의 노조위원장들을 불러 임금과 퇴직금을 대폭삭감 하는 변경협약안에 서명을 강요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공기업이나 은행의 노조위원장들은 몸을 피하고 도망을 가서 끝까지 서명하지 않았는데 한전 노조위원장만 바보같이 잡혀가서 퇴직금 적치 개월수를 3분의 1로 대폭 줄이는 퇴직금제도 개선에 합의, 서명을 하였고 그렇게 우리 한전의 퇴직금만 뭉텅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내가 해외훈련을 떠난 다음 1982년 1월 1일부로 한국전력주식회사는 한국전력공사로 바뀌었다.

 

우리 다 알다시피 1961년 5월 16일 군사혁명을 일으킨 박정희 군사혁명정부가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조선전업, 경성전기, 남선전기 등 민간 3사를 통합하여 7월 1일 한국전력주식회사를 발족시킨 일이다. 당시 남한의 발전설비 전체를 다 합쳐봐야 원자력발전소 1기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36만 7천 kw 용량이었는데 전력회사가 세 개였으니 그 꾀죄죄한 영세성과 비효율성은 말로 할 수 없었고 따라서 군사혁명정부는 경제발전을 위하여는 강력한 전력설비 확충정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이 전력회사들을 통합하여 국영 전력회사를 출범시킨 것이다.

 

군사혁명정부는 주식의 51%를 국가소유로 매입하여 경영권을 확보하고 49%는 민간이 소유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모든 경제활동이 국민에게 속하며 모든 국유재산이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것이라는 점, 전력산업의 국영화는 한시적이어야 하고 언젠가는 국민에게 되돌려져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국유재산법을 제정하여 정부가 보유하는 주식을 처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하였다. 당시 제정된 국유재산법 제 31조를 보면 정부가 보유하는 보존재산 및 관리재산은 일체 매각할 수 없도록 못을 박았고 다만 용도폐기 되거나 사업에 불필요한 잡종재산에 한하여 매각이나 처분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전두환 정부는 또 석유공사, 도로공사, 주택공사, 철도공사 등 주요기간산업들도 전부 공사화 하였다. 그러나 전두환 신군부의 한국전력 완전국유화는 그러나 나중에 IMF경제위기 때 김대중 정부가 정부보유 주식을 해외에 내다팔고 회사를 매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꼴이 되고 말았다. 김대중 정부에게 법은 휴지조각이었고 정부가 보유한 주식은 점령군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전리품이었을 뿐이다.

 

다시 돌아가서....., 드리마일 아일랜드 원전사고 이후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USNRC)의 강력한 안전규제강화로 인하여 1980년대 들어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원전건설은 고사상태(枯死狀態)에 빠졌지만 한국은 고리 2호기, 월성 1호기, 고리 3,4호기, 영광 1,2호기, 울진 1,2호기 등 무려 8기의 원전을 1980년대에 잇달아 건설하여 전력생산의 40% 이상을 원자력이 점유하게 되었고 계속하여 영광 3,4호기의 설계를 기초로 하여 국산화와 기술자립, 그리고 한국형원자로 설계를 추진하고 있었다. 1980년대 한국의 노동임금은 미국의 10분의 1도 안 되었으며 대한민국은 근면하고 우수한 노동력을 저렴하게 동원, 한국전력의 원전들과 포항제철의 제철고로시설들은 “가장 빠른 공기, 가장 저렴한 공사비, 최고의 품질”로 건설하여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랬다. 80년대 대한민국의 임금수준은 정말 낮았다. 내가 1980년대 중반 5년 동안 영광 1,2호기 건설현장에서 기계기술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때 시공자인 현대건설이 근로자에게 지불하는 임금은 잡부가 일당 5천원, 용접공이 일당 만원 수준이었으며 이는 미국의 원전건설현장 근로자 임금의 10분의 1에서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였다. 근로자뿐이었겠는가? 우리 직원들의 봉급도 미국의 기술인력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박봉이었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해외훈련요원으로 아리조나 팔로버디 원전건설현장에 8개월 있으면서 그들의 급여수준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1980년대에 10여기나 되는 원자력발전소들을 줄줄이 건설하여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값싸게 풍부한 전력을 공급하는 나라로 만든 한국전력은 세계전력업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1996년엔가는 ‘에드슨경영대상’을 받기에 이른다. 그리고 뉴욕증시에 원리금을 100년 뒤에 상환한다는 이른 바 “센츄리 본드”채권과 ‘사무라이 본드’라는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모을 정도로 한국전력은 국가신용도를 뛰어넘는 국제신용을 얻게 된다. 그런데 뉴욕증시에 주식을 상장하지 못 하고 채권만을 발행한 것은 공사(公社)가 되려면 정부가 100% 주식을 보유해야 한다는 원칙, 그리고 정부보유주식 매각을 금지하는 국유재산법 때문이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를 기화로 이러한 원칙과 법률은 준비된 대통령 정부에 의하여 짓밟히고 무너지고 만다. 죽 쑤어 개 준다더니,....

 

김대중 정부는 정부가 100% 보유하고 있던 한전주식을 1주를 2DR로 쪼개어 DR당 12 달러엔가로 뉴욕증시에 상장하여 매각하였다. 국민들에게 물어보거나 국회에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전력을 일곱 토막으로 쪼개어 송배전과 원자력만 남겨두고 다섯 개의 전력회사들을 해외자본에 팔아넘기려는 망국적 전력산업 해외매각을 추진하였다.

 

나는 1969년 입사할 때 쌍문동 연수원에서 배운 회사경영수치를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총발전설비용량 163만 7천 kw",

“자본금 460억원, 자산 1,519억원, 68년 이익금 74억원, 종업원 수 14,000 명”.....

오늘날 한국의 발전설비용량은 1억 2천만 kw를 훌쩍 넘고 있다.

한국전력과 한수원, 발전회사들의 자산규모가 몇 백 조원인지 나는 모른다.

우리는 그 엄청난 성장과정에서 바쳐진 희생물이었다.

 

도대체 정권 잡았다고 한국전력을 마음대로 팔아먹을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퇴직한 다음 미국으로 건너왔지만 정부의 한전주식매각이 국유재산법을 위반하는 위법행위라는 점을 당시 경제기획원에 이메일을 보내어 지적하고 중단과 시정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증권사이트 팍스넷 토론방에 “한전분할해외매각은 망국적 해국행위”라는 주장의 글들을 올렸다. 또 그 때 알게 된 한 분을 통하여 행정심판청구를 제기하고 검찰고발을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아무 말이 없었다.

나의 외침은 묵살되어 묻혔고 김대중 정부의 위법행위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국유재산법이 개정되었다. 개정된 국유재산법을 읽어보니 도대체 법률조항에다 무슨 소리를 적어놓은 것인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무튼 국유재산을 정부가 필요할 때 맘대로 팔아먹을 수 있도록 바꾸어놓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아무도 손 못 대도록 법을 만들어 그토록 애써 모든 재산을 김대중 정권이 법을 고쳐 팔아먹는 셈이었다. 아니 팔아먹다가 뒤늦게 법을 뜯어고친 것이다.

세상은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가 보다.

세월도, 나의 청춘도, 나의 조국도........